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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술 마시고 여자들과 논 남친, 전 어떻게 해야 하죠?

by 무한 2016. 7. 27.

모두가 헤어짐을 권할 때 자신만은 상대를 한 번 더 믿어보겠다며 너그러이 용서해 준 대원들은, 대개 훗날 피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실수도 누군가에게 얘기했을 때,

 

“뭐, 그럴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해.”

 

라는 실수를 용서하느냐 마느냐 고려할 수 있는 거지, 지인이 대신 나서서 상대에게

 

“넌 진짜 개*끼야.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했어.”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의 일을 두고 ‘실수’라고 말하면 많은 것이 복잡해진다.

 

“제가 남자친구에게 마음을 열고 진짜 좋아하게 되던 중에 벌어진 일이라 너무 힘듭니다.”

 

진짜 좋아하게 되던 중에 벌어진 일이라 그나마 다행인 건지, 훗날 둘이 미래를 약속하거나 상견례까지 마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문제를 초기에 발견한 지금 잘라내길 바라며, L양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아래에 적어둘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정말 술 때문에 실수한 걸까요? 그런 애로 안 봤는데요.

 

늘 얘기하지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인 것이지 ‘원래 그런 사람, 아닌 사람’ 으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L양은 남친의 화난 모습, 짜증내는 모습, 귀찮아하는 모습도 아직 못 보지 않았는가. 연애 초기에 열정적으로 들이대고 뭐든 배려해줘 마음을 얻으려는 모습만 봐 놓고는, 그를 다 겪은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술 핑계 이전에, 이미 그는 L양에게 ‘말해도 모르는 친구’라며 남자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여자 다섯에 남자 셋이 같이 노는 자리라는 건 숨긴 채 말이다. 남친이 몇 주 전에

 

“나 여자들이랑 연락 다 끊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까지 떠올려보면 참 가소롭고 뻔뻔하게 느껴지는 부분인데, 여하튼 그는 술 취하기 이전부터 L양을 속이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아는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술 취했다고 해서, 게임으로 수위 높은 스킨십까지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놀던 가락이 있으니 그럴 수 있는 거고, 그 중 한 여자와 밖에 나가 단둘이 이야기한 걸 보면 남친은 열심히 작업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후 L양이 지인들의 제보를 듣곤 남친이 있는 자리에 갔을 때, 그가 적극적으로 해명하긴커녕 L양과는 끝났다고 생각하며 그들과 계속 어울려 있던 것 역시 사람 같지 않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L양은 울고 있는데 그는 담배 피우며 깔깔대는 다른 남녀들 무리에 끼어 L양을 피해있지 않았는가. 나중에 L양 지인들이 가서 욕을 섞어 말하자 마지못해 와서는 L양에게 사과하려 했는데, 이 따위 남자를 용서하고 다시 만나 대체 얼마나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2. 제가 너무 집착하지 않아서, 원인제공을 한 걸까요?

 

‘원인 제공’이라고까지 하긴 좀 그렇고, 자신의 것을 지키는 부분에서는 L양에게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위의 일도, L양의 지인들에 제보를 하지 않았다면 L양은 그저 잘 자고 일어나 다음 날 남친과 연락하지 않았겠는가.

 

사진을 찍어 보내라든가 몇 시까지 꼭 들어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더라도, 대략 누구와 어디서 만나 몇 시까지 있을 예정인지는 알아야 한다. 내 경우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릴 일이 있을 경우 혹시나 걱정을 하게 될까봐 미리 동선을 얘기해주며, 자리가 바뀔 경우 톡을 보내거나 사진을 찍어 보내주기도 한다. 반대일 때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누구와 어디서 뭘 하든 ‘알아서 잘 하겠지’하며 신경을 끄고 있는 건, 절대 쿨한 게 아니며, 서로에게 간섭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건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우며, 상대가 연락두절한 채 밤새 놀아도 신경 쓰지 않는 건 상대를 자유의 바다에 던져 놓은 채 방치해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긴장을 완전히 푼 채 놀 수 있으니 상대가 허튼 짓을 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고 말이다.

 

또, 누구와 만나는 거냔 질문에 남자친구가

 

“말해도 자기는 모르는 사람일 거야.”

 

라는 대답을 한 걸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계속 ‘말해도 모르는 사람’으로 둘 것 아니면 이번 기회에 짤막한 소개를 들을 수도 있는 거고, 두 사람이 고립된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따로 어울리기 전에 소개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좀 보고 사귀고, 또 믿음직한 행동이 축적되는 것을 보며 신뢰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그저 상대가 고백했다고 사귀고, 연인이니 일단 다 믿겠다며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아두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98.72% 이상이니 말이다.

 

 

3. 연속 두 번 이별을 한 건데요, 다음 연애에 대한 자신이 없어요.

 

자전거 국토종주를 가기 전 연습할 겸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 난 처음 나간 날 타이어가 터져 한참을 끌고 와야 했고, 두 번째로 나간 날엔 오르막에서 페달이 부러져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그때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자전거를 탔고, 이후 넘어져 뒷바퀴가 휘었던 것 한 번을 제외하고는 무사히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종주했다.

 

L양에게 일어난 일도, 내 타이어가 터지고 페달이 부러졌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어쩌다 그렇게 되려다보니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앞으로 매번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 거란 얘기다. 쉽게 말해, 여행 두 번 갔는데 두 번 모두 여행지에서 똥 밟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또 똥 밟게 될까 무서워 ‘역시 집이 제일 안전해’라며 여행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니겠는가. 똥 밟으면 닦으면 되고, 밟기 전에 미리 잘 살펴 피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 L양이 알아야 하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A. 질질 끌고 가지 말고, 정리한 후 새로 시작하기.

 

다른 사람과 썸을 타면서 그에게 ‘이전 남친과의 기억 때문에….’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 되고 난 뒤 새로운 썸을 타거나, 새로운 썸을 탔으면 상대에게 털어 놓아 후련해질 생각은 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상대는 L양이 아닌 ‘L양과 L양의 구남친’과 만나는 느낌이 들게 되고, 당장은 큰 문제가 없더라도 훗날 어떤 형태로든 상대가 불만이나 서운함을 표시할 수 있다. 썸남이 구여친과의 기억을 질질 끌고 와 L양과 만난다면 L양도 싫을 것 아닌가. 썸남을 내 상처와 외로움의 해결사로 고용하려 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마음으로 만나길 권한다.

 

B. 괜찮은 척, 쿨한 척 하지 말고 표현하기.

 

텔레파시 같은 걸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L양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꼭 표현하자. L양이 말하지 않아도 완전히 L양의 마음과 일치하기에 알아서 챙기거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반대로 L양이 L양과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L양 역시 모든 걸 다 짐작하고 숨은 의미까지를 파악하기보단 대해지는 대로 상대를 대하게 될 것이다.

 

질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질투심을 내보인다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게 과해 상대에게 해를 끼치려고 마음먹는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며, 서운하거나 섭섭하면서도 ‘괜찮은 척’, ‘쿨한 척’을 해버리면 상대는 정말 그런 줄로 오해할 수 있다. 말로 하기 힘들다면 글로라도 써서 상대에게 꼭 L양의 마음을 전달하길 권한다. 그리고 진중한 얘기를 하며 그 무거움을 희석시키려고 ‘ㅋㅋㅋㅋ’ ‘ㅠㅠㅠㅠ’같은 것도 섞어 쓰지 말길 권한다. 그래버리면 그걸 보는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C. ‘깊은 얘기’나 ‘비밀’같은 것에 큰 의미두지 말기.

 

내 경우, 누군가 내게 자신에게 이복형제가 있다는 얘기를 하거나 파란만장한 가정사에 대해 털어 놓는다고 해도, ‘그렇구나’정도의 느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고 해서 깊은 사이가 된 거라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얘기를 안 나눴다고 해서 얕은 사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쁠 때 축하해주고 어려울 때 도와주며 힘들 때 옆에서 토닥여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거지, 비밀을 공유하고 흑역사를 털어 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상대가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고 해서 덜컥 모든 권한을 부여하지도 말고, 반대로 L양이 상대에게 털어놓았다고 해서 평생 함께할 사람이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런 것도 일종의 판타지라서, 비밀 하나 알았다고 해서 상대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다고, 또는 내가 그런 얘기를 털어놓았으니 깊은 사이가 되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건 선택과 집중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의지이지, 뭘 어디까지 말했나가 아니다.

 

 

L양은 내게

 

“만나서 얘기하자고 계속 연락이 오는데요, 헤어지더라도 만나서 관계를 정리해야할까요? 아니면 그냥 여기서 인연을 끊는 게 맞나요?”

 

라고 물었는데, 난 솔직히, 맹목적으로 꼬리를 내리고 어떤 말을 해도 다 감내하겠다는 그를 좀 더 불폄함 속에 놔두고 싶다. 만나서 대화를 하면 조목조목 따지기 보다는 그냥 참고 마는 L양이 그의 변명을 다 들어주는 일이 되고 말 것인데, 변명은 그가 있던 현장에 갔을 때 들었던 것으로 충분하니 그만 듣는 게 어떨까 한다. 어차피 ‘술 때문이다, 난 아직 널 좋아한다, 염치없는 것 같아 용서해달라고도 못 하겠다’의 반복일 게 뻔하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얘기해도 어차피 L양은 상대를 만날 것이고, 어쩌면

 

‘그래, 한 번 저질렀고 이렇게 반성하고 있으니, 다시 또 그러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만날지도 모르겠다. L양의 사연과 비슷한 사연을 보낸 대원들이, 열에 아홉은 그랬으니까. 어쨌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 내 몫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 L양이, 상처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자책까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번 사연은 달달한 이야기로 보내주시리라 믿으며 기다리고 있겠다.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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