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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사슴벌레는남자의로망

사슴벌레 많은 곳, 6년 만에 다시 찾은 이야기.

by 무한 2016. 7. 26.

노멀로그에 올린 사슴벌레 이야기를 다시 보니, 2010년에 올린 글이 마지막이었다. 대략 6년간 사슴벌레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던 것인데, 말은 안 했지만 여름이면 언제나 내 마음은 사슴벌레를 향해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 핫스팟에, 수액 먹으려 온 녀석들이 몰려들어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며 여름을 보냈다.

 

이건 소식이 끊긴 채 살고 있는 내 친구나 지인, 독자 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일인데, 그들은 날 잊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계속 기억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한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로부터 전해 듣게 되면, 마음으로 품고 있던 그 친구와 현실 속 그 친구의 거리차이 때문에 상심하곤 한다. 정동진에 여럿이 놀러 갔다가 너무 많이 마신 술 때문에 다음 날까지 오바이트만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니.

 

노멀로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던 독자 분이, 갑자기 사라지셨다가 몇 년 지나 얼굴을 내미시며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라며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 난 그 분과 여전히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날 낯설게 대하는 모습에 오히려 이상함을 느끼곤 한다. 기억할지 모르겠냐니. 난 엊그제까지 같이 수다를 떨고 놀았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TV에 ‘버리지 못하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데, 나도 언젠가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할아버지’같은 걸로 방송을 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올해도 여름은 찾아왔고, 사슴벌레들도 고개를 내밀었으니, 오랜만에 사슴벌레도 보고, 하늘소도 보고, 매미도 볼 겸 산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핫스팟에 들르기로 했다. 고봉산. 일산이 속해있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인데, ‘고양’의 ‘고’자가 고봉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고봉현’과 ‘덕양현’이 합쳐져 ‘고양’이 되었다. ‘일산(一山)’이라는 이름 역시 하나의 산을 말하는 건데, 그 산이 바로 고봉산이다. 고도 208미터의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여럿이 있는데, 나와 H군은 안곡습지 쪽에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최근엔 ‘고양고봉누리길’이란 이름으로 정비를 해두었다. 저 길을 따라 올라가는 곳 부근에 ‘장희빈 가족 묘역’이 있는데, 언젠가 음침한 기운을 잘 느낀다는 지인과 함께 올랐을 때 뭔가를 봤다며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한 적이 있다. 그 지인은 거기가 장희빈 가족 묘역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딱 그 지점쯤에서 뭔가가 느껴진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지인과 차를 타고 연천 쪽을 지날 때에도 뭔가가 느껴진다며 무섭다고 한 적 있는데, 코너를 돌자 거기엔 파평 윤씨 묘역이 있었다.

 

내 경우, 혹 귀신을 보게 되면 귀신과 얘기라도 좀 해보곤 노멀로그에 “귀신과의 대화, 지루하지 않게 이끄는 세 가지 방법”같은 글을 쓸 수 있으니 오히려 횡재한 거라 생각하는데, 조용히 있던 지인이 비명을 지르거나, 갑자기 잡아끌거나, 서둘러 뛰어 내려가려고 하면 그건 확실히 무섭다. 이번에 함께 간 H군은 영화 <곡성>을 감명 깊게 봤는지, 오르면서 계속

 

“라이트 딱 비췄는데 곡성에 나온 그 할아버지가 뭐 뜯어 먹고 있으면 완전 무섭겠지?”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난 혹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연사로 찍어야하나 아니면 동영상으로 촬영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점점 산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한국 어딜 가나 비슷하긴 하지만, 소나무가 빼곡하게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나무 근처엔 내가 반기는 숲속 곤충들이 살고 있지 않으며, 비 온 뒤 버섯 같은 것만 자라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사슴벌레를 잡으러 온 꼬꼬마들을 보면 혹시나 해서 소나무도 살펴보고 있던데, 거기에 사슴벌레가 있을 확률은 0.03% 미만이니 그러지 말길 권한다. 사슴벌레는 시큼한 수액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있다.

 

아, 지금까지 외장 플래시를 터트린 사진만 올린 까닭에

 

‘저 정도 숲길이면 나도 갈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한밤중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서 오르는 산길을 최대한 실제모습과 가깝게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다.

 

 

 

저런 길을 걷는 중 수시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굴엔 거미줄이 달라붙으며, 모기들은 달려들고, 가끔씩 큰 동물이 지나가듯 푸드득-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별로 크지 않은 산개구리가 낙엽 사이로 뛰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숲속에서 잠자고 있던 새가 인기척에 날아갈 때에도 어마무시한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에도 심장이 얼어붙는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진 까닭에 숨을 배가 아닌 가슴으로 쉬게 된다.

 

 

 

좀 더 올라갔을 때의 모습이다. 주변의 나무들이 활엽수로 바뀐 걸 볼 수 있다. 저런 숲에 들어섰을 때부터 사슴벌레 채집이 시작되며, 사진 속 나무의 서너 배 정도 되는 굵기의 나무를 먼저 찾아야 한다. 가끔 그리 크지 않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굵은 나무가 허연 거품 같은 것까지를 수액과 함께 흘리고 있는 곳이 핫스팟이다.

 

 

 

가장 처음 만난 곤충은 ‘버들하늘소’라는 녀석이다. 종종 저 녀석을 두고 ‘장수하늘소’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을 볼 때엔 ‘박각시’를 ‘벌새’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처럼 답답하다. 그런 태도는, 우리 애충인(응?)들 사이에선 순대를 보고 김밥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11시 방향에 수액이 흘러나오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번에도 버들하늘소다. 귀찮아서인지 다쳐서인지 날개수납을 제대로 못한 걸 볼 수 있다. 버들하늘소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서 꼬꼬마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 알락하늘소는 그 특유의 무늬와 ‘씩씩’거리는 소리 때문에 ‘씩씩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버들하늘소는 어쩌다 엄청 큰 녀석을 잡아 ‘사슴벌레와의 결투’를 시킬 때 빼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

 

꼬꼬마 시절, 큰 버들하늘소와 사슴벌레 싸움을 붙이곤 했는데, 그건 소유자가 가위바위보를 한 뒤 진 사람의 곤충을 한 번씩 물리게 하는 거였다. 사슴벌레 소유자가 이기면 사슴벌레로 하늘소 가슴과 배 사이를 겨냥한 뒤 ‘우지직’ 소리가 나도록 물렸고, 하늘소 소유자가 이기면 마치 손톱깎이 같은 하늘소 턱으로 사슴벌레 다리를 물게 했다. 그래서 사슴벌레 다리가 잘리면 사슴벌레 소유자가 울면서 다시 사슴벌레를 필통 속에 넣곤 했는데….

 

저 사진을 찍은 게 7월 13일인데, 하늘소만 보일 뿐이라 너무 이르게 온 건 아닌가 싶었다. 어린 시절 사슴벌레 성수기는 여름방학식 직전과 직후였는데, 방학식이 대략 7월 28일 정도였으니 분명 우리가 좀 이르긴 했다. 그래서 다다음 주 쯤에 다시 와보자고 기약하며 내려오려던 찰나,

 

 

 

두둥. 넓적사슴벌레 수컷이 바닥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날아오다 착지를 잘못 했거나 뭔가와 싸우다가 떨어진 것 같은데, 뒤집힌 채로 일어나지 못하곤 버둥거리는 중이었다. 이런 식이면, 사슴벌레 ‘잡기’보다는 ‘줍기’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뒤집혀 있는 사슴벌레를, 김광석의 <일어나>를 부르며 일으켜 나무에 매달아 주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사슴벌레가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응?)

 

사슴벌레 발견 직후 H군과 나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걸 느끼며 다른 사슴벌레를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활엽수 밑으로 비를 피했지만 소용이 없었으며, 난 카메라가 젖을까봐 몸으로 감싸 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주만 해도 비가 올 거란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안 온 것이 세 번이었고, 당일엔 구름만 많을 거라 했지만 소나기가 내렸다. 이쯤 되면, 기상청을 없애고 점을 쳐서 날씨를 알아내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나와 H군은, 불타는 열정을 식히는 소나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 우리는 다시 고봉산을 찾았다.

 

 

 

역시나 가장 먼저 만난 곤충은 버들하늘소였다. 짝짓기를 하려 수컷이 작업을 걸고 있었는데, 사슴벌레와 비슷하게 T포지션을 취해가며 더듬이로 암컷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저런 형태로 수컷이 암컷을 구석으로 몬 뒤 자신의 더듬이로 암컷의 등날개와 머리 부분을 쓰다듬는다. 아래에 깔린 색이 더 진한 녀석이 암컷인데, 꼬리 부분에 산란관이 나와 있는 걸 볼 수 있다.

 

 

 

H군과 나는 비 온 뒤라 그런지 수액냄새가 별로 나지 않아 좀 시무룩해 있었는데, 수액 부근에 사슴벌레가 없으니 아래쪽 나무나 들춰보자며 뒤적이다 사슴벌레 암컷을 발견했다. 겉날개에 광택이 나지 않으며 무늬가 있으니 ‘애사슴벌레 암컷’이다.

 

 

 

암컷은 보통 ‘돼지’라고 불리며, 수컷의 긴 턱과 달리 작은 턱을 가지고 있다. 애사슴벌레 암컷의 경우, 저 턱으로 나무에 구멍을 낸 뒤 거기에 알을 낳는다. 다른 사슴벌레들은 낙엽 밑이나 흙 속에다 알을 낳는데, 애사슴벌레는 나무속에 알을 낳는 까닭에 사육 시 산란목을 넣어줘야 한다. 나중에 그 산란목 해체하며 알 발견하는 게 또 꿀잼인데, 그만큼 집이 더 어질러지는 까닭에 보통 어머니들께서는 두 배로 싫어하시긴 한다.

 

 

 

이후 한참을 더 찾았지만 사슴벌레를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고봉산의 사슴벌레 핫스팟은 두 곳이며 매미 집단 우화지는 한 곳인데, 이대로 발길을 돌릴 순 없으니 그곳들까지 모두 돌아보기로 했다. 정상까지 가기 전 수액터를 보니, 아까 작업을 걸던 하늘소 수컷이 같이 포켓몬 잡으러 가자며 암컷을 계속 꼬시고 있었다. 암컷은 수컷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기 부모님이 엄하다며 통금시간이 가까워지니 집에 가 봐야 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 이 드립은 재미없는데 괜히 친 것 같다.

 

 

 

다른 핫스팟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사슴벌레 암컷. 겉날개에 광택이 도는 걸로 봐서는 ‘넓적사슴벌레 암컷’이다. 아까 봤던 애사슴벌레 암컷이랑 뭐가 다르냐고 할 수 있는데, 눈 옆의 넓이와 앞다리, 그리고 겉날개의 무늬가 다르다. 왜 그런 걸 구분해야 햐냐고 또 물으실 수 있는데, 집에 데려와 짝짓기를 시키려면 같은 종류끼리 넣어줘야 하는 까닭에 그런 거라 답하도록 하겠다.

 

 

 

또 발견한 사슴벌레 암컷. 위의 녀석과 같은 넓적사슴벌레 암컷이다. 나무가 아닌 땅에서 세 번이나 사슴벌레를 보긴 처음이었다. 물론 사슴벌레 암컷은 낙엽이나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들추면 그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긴 한데, 이전까지 난 열심히 이것저것 들춰봤지만 한 번도 사슴벌레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렇게 ‘사슴벌레 줍기’를 할 수 있게 되니, 앞으로는 나무 뿐만 아니라 바닥도 잘 보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핫스팟 두 곳엔 하늘소만 가득했다. 전부 버들하늘소였으며, 하늘소 사진은 많이 찍었기에 더 찍지 않았다. 사슴벌레 촬영만큼이나 기대했던 것이 매미우화 촬영이었는데, 당황스럽게도 매미 허물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전엔 그냥 눈 돌리면 땅에서 기어 나오는 녀석이나 매달려 있는 녀석, 우화에 성공해 날개를 날리고 있는 녀석들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매미우화에 안식년 같은 게 있지 않다면 조만간 집단 우화를 할 테니, 때를 잘 맞춰 가서 다시 한 번 촬영을 시도해 봐야 할 것 같다.

 

예전에 사슴벌레를 사육하다 톱밥파리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을 한 번 한 까닭에, 녀석들을 데려오진 않았다. 난 앞으로 사슴벌레를 키울 생각은 절대 없지만 훗날 내 아이가 사슴벌레를 키우고 싶어 하면 당연히 사육장을 마련해 줄 것인데, 그 때는 톱밥파리가 번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책을 세울 생각이다. 우리 옆집에서도 아이 때문에 마트에서 장수풍뎅이를 사다가 키웠던 것 같은데, 톱밥파리가 어마무시하게 발생하자 사육통을 현관에 내다 놓았다. 그걸 얼른 버려야지 현관에 내 놓으면 어쩌라는 거?

 

난 새로운 핫스팟을 개척하기 위해, 조만간 동네 공원 탐사를 나설 생각이다. 언젠가 어느 독자분이

 

“왜 사슴벌레 같은 걸 보러 다니시는 거예요?”

 

라고 묻던데, 난

 

“왜 보러 안 다니시는 거예요?”

 

라고 반문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할까 한다. 이거 한 번 빠지면 숲속에 사는 친구를 둔 것처럼 살 수 있으며, 사슴벌레 핫스팟을 아는 사람들은 대개 다 좋은 사람들인 까닭에 마음 맞는 동료를 구하기도 쉽다. 그 동료가 열 살, 열두 살이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여하튼, 모두 잠든 후에 산 속에서 사슴벌레를 만나러 다니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혹 현재 우울한 감정에 빠진 분이 계시거든 날 떠올리며 힘내시길 바란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만 행복해지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뭐든, 풍덩 빠져서 즐겨보자.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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