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제 친구의 후배의 친구가 다음 달 시집을 갑니다. 그녀의 신랑이 될 사람은 그녀를 지키고자 경찰서에 몇 번이나 간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에게 헌팅을 한 남자를 두들겨 패서 경찰서에 간 적 있고, 커피숍에서 그녀 다리를 쳐다본 남자를 때려서 경찰서에 간 적 있습니다. 길거리를 걷다 그녀와 부딪힌 남자에게 선빵을 날려서 경찰서에 간 적도 있고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여자친구를 엄청 아끼며 물불 가리지 않고 지키려는 모습처럼도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 녀석이 두 달 전엔 지 여자친구까지 때리고 말았습니다. 자기 엄마에게 무례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그런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그녀가 파혼을 하네 마네 하며 주변에 상담을 하다 사연이 저한테까지 오게 된 건데, 전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그가 여자친구에게까지 폭력을 쓰는 걸 보면, 이전의 ‘여자친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건 그냥 구실일 뿐, 다혈질인데다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라 그랬던 것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서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은 지나가다 그녀에게 부딪히기만 해도 엄청난 죄를 지은 것처럼 여기면서, 자신은 그녀의 뺨을 후려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좀 황당하지 않습니까?
1. 서형은 왜 연애경영에 실패했나?
서두의 사례는 ‘폭력’이 등장한 까닭에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보이지만, 폭력이 아닌 ‘내 방식의 강요’, ‘상대 단점 지적’, ‘상대 생활에 대한 간섭’이라면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서형은 제게
“저는 노멀로그를 통해 연애를 배웠고, 매뉴얼과 오답노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사귈 때의 약속에도 신경 쓰고 만나는 중에 최대한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는지, 이렇게 연애경영에 실패하게 된 것 같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아기자기하게 예쁜 사랑하려 들며 상대를 열심히 챙긴다고 끝인 게 아닙니다.
만약 제가 서형을 저희 집에 초대한 후, 진수성찬을 대접하고 상석을 다 서형에게 내준다고 해도,
“TV액정에는 손대지 마세요. 액정에 손대는 거 제가 정말 싫어하는 거거든요.”
“앉지 말고 누워 계시라고요. 편하게 있으시라는데 왜 자꾸 앉아 계세요.”
“이거 별로 맛이 없어서 안 드시는 거죠? 다른 거 시킬까요? 부담 없이 말해주세요.”
“이 게임 같이 하죠. 못 해도 괜찮아요. 그냥 같이 해요. 같이 해야 재미있죠.”
“이 드라마 말고 다른 드라마 보세요. 다른 드라마가 더 재미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면, 숨 막힐 것 같지 않으십니까?
서형의 연애경영을 실패로 이끈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바로 저겁니다. 서형은 좋은 마음으로 그러는 거라지만, 상대에겐 구속과 간섭과 갑갑함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 여친 아플 때 죽 사가지고 달려가 간호하는 헌신을 보이면 뭐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선 또 여친에게 젓가락질 이상하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아무리 전망 좋고 돈 많이 들여 인테리어 한 집이라고 해도, 냉난방 안 되면 지옥일 수 있습니다. 뷰와 인테리어가 헌신과 배려라면, 냉난방은 존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형의 경우 헌신과 배려의 측면에서는 9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존중에서는 30점대의 점수를 받은 거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 둘을 합쳐 평균 60점이 되는 게 아닙니다. 둘 중 하나가 30점이라면, 30점이 최종점수라는 걸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2. 대립의 순간, ‘나 VS 너’로 가른 뒤 이기려는 문제.
끝장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여자친구와의 대화중에
“누가 그래? 데이터 가져와.”
라는 말이 나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 경우, 친구와 대화할 때 친구가 억지주장을 해도 저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강하게 주장을 해봐야,
“아냐. 내가 본 **에서는 그게 그렇지 않다고 나왔었거든. 이거 내가 며칠 전에 본 거라 확실하게 기억해. 이 정보가 맞을 거야. 내가 어디서 봤냐면….”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폰으로 검색해 그 자료를 확인시켜주고 말입니다. 제 친구들 역시, ‘이 꽃이 철쭉이냐, 진달래냐’를 놓고 저와 의견이 갈렸을 때에도(응?), 제가 잘못된 주장을 했지만 친구는 “이건 진달래가 맞을 거야.”정도로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뿐이었습니다.
친구나 여자친구는 ‘아군’입니다.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같은 편에게 총부리를 겨눠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서형은 대립의 순간이 찾아오면, 이상하게 공격적으로 변하며 상대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이기려고 듭니다. 막 욕을 하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큼이나 못된 태도로 비아냥거립니다.
“참 말 기분 좋게 하네.”
“넌 네가 하는 말이 다 맞으니까, 너랑 다른 말 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겠다.”
“그냥 내가 다 이상한 거겠지 뭐. 그래 내가 이상해.”
저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나면, 막 기분이 좋아지거나 행복해지십니까? 그런 즐거움이 너무 좋아 멈출 수 없는 게 아니라면, 저 상황에선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꼭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져야해?”
“왜 이 문제로 그렇게까지 말을 해?”
“이게 그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
서형이 참 속 좁게 행동했으며, 평소 세상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주겠다고 말했으면서 정작 저런 순간엔 남에게도 하지 않을 행동까지 하며 여친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저 대화 직후의 모습도 한 번 보겠습니다.
서형 – 정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난 늘 틀린 사람인 것 같네.
서형 – 오늘 만날 생각 없지?
여친 – 응
(몇 시간 후)
서형 – 자기야 왤케 연락이 안돼요??
병 주고 약 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런 행동을 두고 서형은 서형이 혼자 기분 풀고 한 번 양보하며 넘어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상대에겐 궁지까지 몰렸던 끔찍한 기억과 대립으로 인한 피곤이 축적되었을 것입니다.
3. 폭발, 완급조절, 리드에 대한 이야기.
서형도 억울한 부분이 많다는 건 인정합니다. 서형은 얼른 여친도 서형에게 풍덩 빠져서 서형만 바라봤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친구나 지인, 그리고 공부에도 마음을 두고 서형을 2순위로 분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니 말입니다. 밖에서 다른 사람과 통화하느라 폰 배터리가 다 닳아 서형에겐 연락할 수 없을 때, 서형은 분명 섭섭하고 서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진짜 고쳐. 짜증난다 너무. 말이라도 하든가 또 이러네.”
“몇 번을 말해 한두 번도 아니고.”
“보조배터리 충전기 그냥 챙겨 다녀. 배터리 관리 안 하고 맨날 꺼트리는 거 진짜 싫다.”
라며 폭발해버리는 건 좀 심한 겁니다. 서형이 제가 매뉴얼을 통해 권했던 ‘하루의 시작과 끝에 연락하기’를 약속한 후 여친과 다퉜을 때도 잠시 보겠습니다.
“나 먼저 잘게. 이렇게 오래 씻을 거면 난 그냥 자는 게 나을 것 같아. 매번 한 시간씩 걸리는데. 잘 자고 내일 연락해.”
전 이게 참 답답한 게, ‘하루의 시작과 끝에 연락하기’라는 건 ‘우리’를 위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걸 ‘너의 문제’로 놓곤 실망을 그대로 드러낸 채 대화를 단절할 거라면, 차라리 약속 같은 걸 안 정하는 게 낫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효도하고자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준비 늦게 한다고 부모님께 생난리를 칠 거라면, 그런 여행 같은 건 안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또, 상대에게 부족하거나 상대가 잘 못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완급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균 샤워시간이 근 1시간 가량 걸린다면, 그것에 맞춰 서형이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여친을 데리러 갈 때마다 여친이 늘 20~30분씩 늦게 나오며 아무리 말을 해도 안 고쳐진다면, 서형이 그 ‘코리안 타임’까지를 고려해 시간조정을 해도 된다는 얘깁니다.
서형만 다 이해하고 양보하고 손해를 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서형이 조절해도 되는 건 좀 알아서 조절을 하고, 그게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짜증난다. 진짜.”가 아니라 상대가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아니라 회사 상사가 와서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면, 그땐 이렇게 한 없이 기다리게는 안 하지 않을까? 난 널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그러다보니 그게 당연시 되고, 한 달로 따지면 근 하루가 될 시간을 난 멍하니 기다리느라 보내야 한다면, 피곤은 피곤대로 쌓이고 낭비는 낭비대로 될 것 같아. 이런 시간을 좀 줄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어디쯤 지나고 있을 때 연락하면 그때 나오는 걸로 할까? 아니면 너 나올 때 연락하면 내가 출발하는 걸로 할까?”
정도로 이야기하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마찰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 내 감정을 설명하고 상대에게 대안을 찾자고 이끄는 게 리드입니다. 에버랜드 가자고 말한 뒤 계획 세우고 자유이용권까지 끊어주는 게 리드가 아니라 말입니다.
끝으로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건, 상대와 서형은 ‘다른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도 서형처럼, 그냥 동네 공원만 돌아도 되는 걸 굳이 헬스장에 가서 돈 내고 런닝머신 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성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쓰기 위해 버는 돈 왜 자기 건강을 위해 쓰지도 못하냐며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필라테스 요가 그런 거 큰 도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걸 배우고 싶은 사람도 있는 법이고 말입니다.
또, 고기를 먹어도 가성비 생각하며 만 원짜리 고기뷔페에서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100그램에 3,000원 돈 하는 국산 냉장고기만 먹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후자가 자기 분수도 모르며 과소비를 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겐 한 끼를 먹어도 그렇게 냄새 안 나는 고기로 제대로 먹는 게 행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는 것, 신는 것, 쓰는 것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친이 백만 원짜리 가방 하나 사겠다고 하면 골빈 사람 취급하면서 자긴 수천만 원짜리 중형차 사겠다는 남자에 대한 사연도 있었는데, 상대가 다단계에 빠진다거나 위험이 분명히 보이는 일을 저지르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내 기준’으로만 판단해 “그걸 뭐하러 하냐.”라고 말하진 마셨으면 합니다.
서형이 상대를 업고 다닐 정도로 헌신하고 밥을 떠먹여 줄 정도로 아꼈다고 해도, 상대로 하여금 ‘오빠는 과연 내 편이 맞는 걸까?’라는 의문을 들게 했다면, 이별은 필연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서형은 제게 상대만큼 서형을 사랑해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는데, 전 그게 서형 하기에 달린 일이라는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막연히 다 잘 될 거란 위로보다는, 쓰리고 아프겠지만 이 매뉴얼이 서형에겐 더 도움이 될 거란 말씀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밤 정도 자고 나면 폭염이 가신다고 하니, 다들 더위 조금만 더, 무사히 참아내시길!
▼ 하트 버튼과 좋아요 버튼 클릭은 제게 해주시는 응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연애매뉴얼(연재중) > 연애오답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의 남친들이 전부 무성의하고 무기력해진 이유는? (65) | 2016.08.18 |
---|---|
다음 카카오 <연애학개론> 채널 운영자님, 전 참 속상합니다. (83) | 2016.08.18 |
연애 결벽증, 그런데 이상한 남자들한테는 시달려요. (44) | 2016.08.16 |
남친 장난에 화를 냈다가 헤어졌는데요, 재회 불가능한가요? (58) | 2016.08.08 |
무개념녀 취급당하며 부자 남친과 헤어졌어요. 제가 문젠가요? (88) | 2016.08.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