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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연애 결벽증, 그런데 이상한 남자들한테는 시달려요.

by 무한 2016. 8. 16.

연애와 관련된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 때문에, 이젠 ‘남자’라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 여성대원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간 세 명을 사귀었는데 세 명 모두 스킨십 진도를 다 나간 후에 연락을 끊었다든가 결국은 셋 모두 바람을 피웠다든가 하면, 다음 남자를 만나도 그 역시 그러고 말 거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대원들의 사례가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독수리 잡기(미국 여권에 독수리 문양이 있기에 만들어진 말)’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로 ‘시민권’ 때문에 그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대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데, 오로지 ‘결혼을 통해 시민권을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이성을 서너 번 경험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다음 이성을 만나더라도, 그 이성이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위와 같은 불운한 경험들로 인해, 누구를 만나도 상대의 불순함부터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연애 결벽증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순함 탐지기’같은 걸 만들어 상대를 통과시켜 볼 수도 없는 일이고, 또 각서 쓰고 공증 받아 온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라서, 이 대원들은 속은 속대로 태우며 ‘혹시나’하는 기대를 걸었다가 ‘역시나’하는 경험을 거듭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 사연의 주인공인 H양도 그런 대원들 중 한명인데, 그녀의 문제와 해결책을 함께 살펴보자.

 

 

1.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패턴.

 

H양이 구구절절 의미부여한 것은 다 접어두고, 사실관계만 보자. 남자들이 스킨십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의심부터 하며 철벽을 친다는 H양은, 이번 남친을 어떻게 만났는가?

 

- 산책 중 남친의 헌팅으로.

 

헌팅이라고 해서 다 불순한 목적만을 가지고 접근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눈에 띄기에 만나보고 싶어서’라는 의도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H양은 보통의 남자들에겐 그의 의도를 의심해 철벽을 친다면서도 연애는 헌팅 하는 남자와 시작해버리니, 여우 피해 산길로 돌아가려다 호랑이를 만나고 마는 거라 할 수 있다.

 

또, 이래버리면 내가 해줄 말이 없다. 이건 마치

 

“전 원래 중고거래 할 때에도 상대가 선입금 안 하면 물건 안 보내거든요. 입금 미루다가 잠수 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요. 그런데 이번 상대는 자신이 입금하려고 ATM 앞까지 왔다며 사진 찍어서 보냈기에, 제가 먼저 물건을 보냈어요. 지금 상대는 잠수 타고 있는데, 어쩌죠?”

 

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에, 다음부터는 통장에 입금기록이 찍힌 거 보고 물건을 보내든가 직거래를 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성을 못 믿는다면서도 우연이 겹치면 운명인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연애를 시작한다든가, 상대가 투박함 없이 달콤한 얘기를 앞세운다고 해서 덜컥 믿어버리면, H양의 연애 결벽증은 ‘보통의 남자’만 밀어낼 뿐 ‘이상한 남자’들은 전혀 걸러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2. 남친이 되기만 하면 모든 권한을 다 주는 게 문제.

 

그간 발행한 매뉴얼에서 난 ‘준회원과 정회원의 차이가 없는 문제’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했었다. 사귀지 않아도 연인처럼 지낼 수 있으니 굳이 사귈 생각을 안 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할 때 한 얘긴데, H양의 경우는 그것과 반대로 구분이 너무 극명하다.

 

남성 – 불순한 목적으로 다가오는 정신병자들.

남친 –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줄 사람.

 

저 둘에게 허용된 권한에도 역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남성 – 내게 말만 걸어도 짜증나고, 싫고, 무서움. 무조건 차단.

남친 – 날 가져요.

 

이걸 좀 어떻게 해야 한다. 인터넷 카페만 해도 가입 몇 주가 지나야 등업신청을 할 수 있다든가, 아니면 게시글 몇 개 댓글 몇 개의 조건을 충족해야 다음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든가 하는 기준이 있잖은가. 그런데 H양은 가입신청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강퇴시키며, 그러다 뭔가 다를 거란 생각이 드는 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에게 카페 공동 매니저의 자리까지를 주고 만다.

 

H양과 남친이 일주일간의 연애를 하며 불타올랐지만, 스킨십 진도까지 다 나가고 난 뒤 남친이 잠수를 탔을 때 H양이 했던 생각은 무엇인가?

 

“남친이 혹시 딴 여자랑 있나, 아니면 설마 여친이 있는 사람이었나, 그것도 아니면 결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H양은 상대가 누군지도 확실하게 몰랐으면서, 그와 연애를 했던 것이다. 상대가 어느 순간 나타나선 유머러스하게 자기 얘기하고 애교를 섞어 구애하니, 그냥 덜컥 사귀었을 뿐인 거다. 사귀는 사이니 연인끼리 할 수 있는 것도 그냥 다 한 거고 말이다. 상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과 전화번호와 상대가 한 얘기들 밖에 없으면서.

 

이런 식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연애를 하면 금방 불타오를 수는 있겠지만, 둘 사이에 단단한 기반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당장 24시간 붙어서 스킨십하고 사랑한다 말하면 뭐하는가. 상대가 다른 사람과 연애 중인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아는 게 없는데.

 

좋은 사람을 잘 골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H양이 바른 길로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연애를 하고 싶어 상대가 좋은 사람일 거라 스스로 최면을 걸지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던 중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연애하길 권한다.

 

 

3. 그는 진심이었을까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상대가

 

“난 널 더 깊이 알고 싶어. 내가 어떤 얘기를 했을 때, 네가 그것에 관한 어떤 얘기를 해준 것이 내 가장 깊은 부분을 건드렸거든. 그게 뭔지는 나중에 얘기해줄게.”

 

라는 얘기를 한다면 그건 ‘사람 헷갈리게 하는 얘기로 흔들어 놓는 것’쯤으로 보는 게 좋다. 저건 뭔가 상대를 띄워주고 싶은데 마땅히 띄워줄 건 없고 해서 그냥 형태도 없는 소리들을 읊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저 따위 얘기를 하며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인 척 하지만, 사실은 무책임한 바람둥이에 지나지 않는 악당들이 꽤 많다.

 

모 감독에 대해 배우 고현정씨가 말했다는 인터뷰 내용을 잠시 보자.

 

“재미있는 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아마 모 감독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는 배우는 저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컨대 저는 감독님한테, 나한테 술 먹이지 마라, 술은 회식 자리에서 내가 알아서 먹는다. 대신 연기할 때 원하는 게 있으면 얘기를 해라. 나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상한 현학적인 말로 나를 헷갈리게 하지 말아라. 나 그런 말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다 안다. 했어요.(웃음).”

 

내가 늘 ‘말보다는 행동’을 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저거다. 마음은 말보다 행동으로 드러나며, 상대의 진심은 축적된 행동으로 증명된다. 상대가 한 말을 보자.

 

“우리 예쁘게 만나자.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내가 너 일하는 곳으로 자주 데리러 갈게. 매일 보고 싶어.”

 

그 다음으로는 행동을 보자.

 

영화 본 적 있는가? -> 없음.

맛있는 것 먹으러 간 적 있는가? -> 없음.

일하는 곳으로 자주 데리러 왔는가? -> 온 적 없음.

치맥 먹기로 한 날 치맥을 먹었는가? -> 상대가 약속 미룸.

김밥 사서 산책가기로 한 날 갔는가? -> 상대가 잠수탐.

 

상대가 H양에게 한 것들은 전형적인 ‘공수표 발행’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만날 때마다 그가 다른 건 다 접어두고 스킨십 진도를 나가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다는 게 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H양은 그걸 다 겪으면서도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여야 하는데…. 왜 또 불길한 예감이 들지?’

 

하고 있었을 뿐이고 말이다.

 

그가 ‘지금 만나러 가게 되면 돌아올 방법이 없어서 찜질방에서 자야 할 것 같다’느니, H양 만나러 가면 떨어지기 싫을 거라느니, H양이 수줍어해서 스킨십을 잘 못하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H양이 스킨십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 줄 것인지를 떠보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해 다 지고 택시 할증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런 대화만 해가며 만나지 말고, 해 떠있을 때 만나서 팥빙수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러라고 질리도록 말했거늘…. 다음부터는 해 떠있을 때도 H양을 보고 싶어 하며, 낮에도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길 권한다.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신뢰가 생길 수 있는 것이며, 가까이 두고 오래 보아야 둘의 인연의 끈도 두꺼워 지는 법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촘촘한 채로 걸러 그걸 모두 통과한 사람에게 덜컥 내 모든 걸 다 주고,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해도 믿겠다며 빠지는 게 사랑이 아니다. 최소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 정도는 파악을 한 후 사랑에 빠져도 빠지도록 하자.

 

또,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고 해서

 

- 이젠 내가 배신당하며 차일 일만 남은 것.

 

이라고도 생각하지 말길 권한다. H양은 연애가 시작되자마자 자신이 언제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계속 불안해하던데, 상대를 만나던 중 언행일치가 전혀 안 되는 결함을 발견하면 H양도 그를 돌려보낼 수 있는 거다. 자기 삶의 핸들까지도 상대에게 쥐어준 뒤 그의 판정만 기다리진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다들 스킨십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하면서,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친에게는 너무 쉽게 H양의 자취방에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건 참 당황스러운 일이다. H양은 그걸 두고 상대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일단 멍석을 깔아둔 것처럼 말하던데, 반대로 보면 그건 H양이 먼저 유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직 서로의 생일도 언제인지 모르는 사이인데, 그 와중에 자기 집에서 재워주겠다는 여자가 있으면, 남자는 그걸 보며 ‘다른 남자들에게도 그러는 여자’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H양이 진심으로 상대를 특별하게 생각해 그런 거라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상대는 그 말을 믿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안 그래도 되는, 오해를 살 수 있는 그런 일은 애초에 만들지 말도록 하자.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이어지는 폭염 때문에 밥맛이 없다는 건 훼이크고 말복이라 삼계탕 먹으러 가야하니, 배웅글은 생략하도록 하자.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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