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남친이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불편하고 불쾌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 헤어스타일에 신경 안 써서 마음에 안 들어요.
- 밥 먹을 때 쩝쩝 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 몸에 근육이 너무 없고 힘도 없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 뽀뽀를 하려고 하면 기분 좋은 게 아니라 불편해요.
- 논쟁이 발생했을 때 저보고 근거를 제시하라고 해서 마음에 안 들어요.
- 피부에 주름이 많고, 모공이 넓고, 탄력이 없어서 마음에 안 들어요.
- 성적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지금까지 딱 뽀뽀만(혀X)했어요.
- 키도 속인 것 같아요. 전남친보다 훨씬 작은데 똑같다고 주장해요.
'혀X'에서 뿜었다는 건 훼이크고, 사귄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애정이 크지 않은 거라면 나도 해줄 말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그게 아니라 남친을 그냥 역하게 생각하는 것에 더 가깝기에, 뭐라고 얘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연의 주인공인 A양은 남친과의 만남이나 연락도 줄이고 있는데, 난 솔직히
“그럼 대체 왜 사귀는 건가요?”
라고 물어보고 싶다. A양의 말대로, 그래도 남친이 잘해주고, 순수한 구석이 많으며, 나아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A양은 내게 “이런 연애라도, 참고 사귀면 나아지는 건가요?”라고 물었는데, 내 대답은 당연히 ‘아니요’다. A양의 사연엔 사실 남친이 발생시키는 문제보다, A양이 발생시키는 문제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둘은 왜 이별하게 될 수밖에 없는지, 함께 살펴보자.
1. 화기애애한 카톡대화의 주인공은 누구?
난 처음 A양이 첨부한 카톡대화를 읽고는, 내가 다른 분의 사연에 첨부된 카톡대화를 연 줄 알았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A양 사연에 첨부된 대화가 맞았고, 그래선 난
‘아…, A양이 이번 남친과의 카톡대화를 보낸다는 걸, 전남친과의 카톡대화를 보냈나보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카톡대화엔 화기애애한 두 사람이 있었으며, 신청서에 적힌 문제들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다정한 말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청서에는 상대의 실명을 적는 란이 없는 까닭에, 카톡대화에 등장한 이름으로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날짜를 보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날짜를 확인했는데, 그 카톡대화는 지금 사귀고 있는 남친과의 대화가 맞았다.
난 A양이, 이번 연말에 열릴 대종상, 청룡영화제,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자기 마음을 완벽하게 감추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카톡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카톡대화 속 A양은
- 남친과의 건강하고 발전적인 관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이다. 행동에서야 물론 자세히 보면 티가 나긴 하지만, 말은 분명 저렇다. 저런 말과 더불어 미소 짓고, 파이팅을 외쳐주고, 하트를 찍어서 보낸다. 난 이 사연을 각색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남친이 이 사연을 정독하더라도 A양이 보낸 사연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사연에 이름을 밝혀도, 남친은 ‘저 여자가 질색하는 남친이 나랑 동명이인이네.’하는 생각만을 하고 말 것이다.
바로 이게, A양의 근본적인 문제다. A양은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내질 않는다. 상대에게 절대 흠 잡힐 일 없으며 남들이 봤을 때에도 ‘모범적인 여친상’으로 보일 모습을 연기할 뿐이다. 겉으로는 웃으며 아무 문제도 없는 척하는데, 속으로는 이미 상대에게 낙제점을 부여했으며, 몇 가지 지점에 대해서는 질색까지 하는 중이다.
이런 식이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은 피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가까워져봐야 애정과 신뢰는 최대 49%만 형성되고 마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본심은 철저히 감춘 채 웃어주니 상대는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고, 거기다 A양은 인연을 끊는 그 순간까지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며 ‘연애 역할극’에 충실하고 있으니, A양이 실제로는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 상대는 그걸 전혀 모른 채 이제 결혼할 일만 남았다고 착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A양은 가까운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 놓을 때에야 비로소 연기를 멈추곤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속내를 밝힌다. A양은 자신의 성격 및 성향에 대해
“누구와 있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중략)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의 경계가 뚜렷하며, 쓰잘 데 없는 관계로 인한 소모를 줄이려고 하는 편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현재의 남친이 저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는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이 연애 역시 ‘쓰잘 데 없는 관계’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A양은 이전 연애들에서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를 경험했던 것 같은데, 그게 바로 A양의 이런 태도가 원인이 되어 벌어진 일이라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애초에 마음이 딱 그만큼이며, ‘애정’보다 ‘못마땅함’이 더 커도 연애를 시작하고, 또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며 상대에 대한 비판만 할 뿐이라면, 그 끝은 이별일 수밖에 없다.
2. 남친 외모에 대한 불만을 빼면, 나머지 불만은 사실 A양 잘못.
A양은 남자친구에게 ‘남자친구다운 것, 남자다운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사람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때문에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필연적으로 상대에 대해 실망을 느끼며 동시에 정이 떨어지고 만다. A양이 한 말을 보자.
“제가 느긋한 성격이라 약속시간에 5분에서 10분정도 늦는 경우가 많은데 전남친 뿐만아니라 제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의 경우에는 그냥 주변 구경하고 약속장소를 착각해서 1시간을 서서 기다리게 한 적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는데 지금 남자친구는 자긴 약속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니까 시간약속에 늦게 오는 거 너무 싫어한다. 적어도 1분이라도 늦을 거 같으면 미리 얼만큼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하라고 하는데 좀 속이 좁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참 답답하다. 얼마 전 한 여성대원의 사연에서도
“저랑 같이 일하는 언니는, 남편이 회사에 매일 데리러 와요. 저희가 칼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늦으면 1시간이나 1시간 30분까지 퇴근이 미뤄지는데, 그때까지 언니 남편은 주차장에 차 대고 차에서 기다리거든요. 결혼한 사람도 그러는데, 제 남친은 30분 조금 넘게 기다린 걸로도 짜증을 내요. 시간 낭비하게 되니 그냥 확실하게 약속 잡을 수 있는데서 보재요. 이런 걸 보면 남친이 절 생각하는 마음이 그것밖에 안 되나 싶기도 하고….”
라는 부분이 등장하던데, 이런 부분들은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게 될 지에 대해 제발 한 번쯤이라도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남녀를 떠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한 시간 이상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건 잘못된 일인 게 맞다. 그리고 상대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고 말하는 건데, 그걸 ‘속이 좁아 보인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역시 잘못이다.
‘논쟁’이 벌어졌을 때의 일에 대해선, 둘 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으니 결국 둘 다 혈압만 높아지는 치킨게임이 되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A양은
“남친은 제 의견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30분 동안 자기주장만 펼치기도 했습니다.”
라고 했는데, 그건 남친이
- ‘사실’과 ‘통계’를 찾아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야만 마음을 놓는 바보.
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A양이
- ‘예측’과 ‘감정’에 따른 주장을 하며, ‘부분적으론 옳다’고 주장하는 우김쟁이.
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남친의 전문분야에서, 남친이 그것에 대한 근거를 대며 주장을 할 때에는, A양도
“아 그래?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구나.”
하며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A양의 자존심 역시 보통이 아니라서, 그걸 또 “다 그런 건 아니잖아?”라는 식으로 맞서고 만다. 그러면 남친은 남친대로 답답해서 데이트 중 통계자료를 검색해 보여주려고 하고, A양을 그런 걸 경험하다 결국 내게
“남친은 정말, 불쾌할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폰으로 통계자료만 뒤적뒤적 하고 있을 수 있나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아마 이 둘에게
- 힐러리가 낙선한 것엔 ‘여자’라는 것이 영향을 끼쳤는가, 아닌가?
라는 주제를 던져주면, 내일 모레쯤 결국 둘이 헤어졌다는 사연이 도착할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 - 백인여성 51%가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출구조사 통계가 있는데?
여자 - 전체 남녀 득표로 봤을 땐? 그리고 불이익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어?
남자 -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게 큰 영향은 안 끼쳤다는 거야.
여자 - 큰 영향을 안 끼친 거랑 전혀 영향을 안 끼친 거랑은 다르지.
라며 바쁘게 검색해보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서로 집에 가버리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둘의 어떤 태도가, 사실 그 주제의 당사자들도 고민 안 하는 일들로, 태평양 건너 이곳에서의 이별을 불러오게 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더불어 A양은 평소 ‘잘 모르겠다’, ‘헷갈린다’, ‘이해가 안 간다’는 이야기들을 해 남친의 도움이나 관심을 받으려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일들의 축적이 남친으로 하여금 은연중에 ‘A양은 내가 가르쳐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약간의 엄살을 부려 도움을 받을 땐 좋겠지만, 그게 계속 되면 나중엔 ‘그런 사람’으로 보게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A양이 이렇게까지 질색하고 있는 관계를, 굳이 내가 나서서 이것저것 권해가며 연애를 유지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관심 있는 척, 보고 싶은 척, 사랑하는 척만 하며 하는 연애는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테니, 남친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커녕 무슨 핑계로 약속을 취소할까 고민해야 하는 연애는 이쯤에서 그만두길 권한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A양이 서운할 수 있으니, 엊그제 저녁에 찍어온 슈퍼문 사진을 올려둘까 한다.(응?) 사진으로라도 슈퍼문을 보며, 다음 연애는 ‘짐이 되는 연애’가 아닌 ‘힘이 되는 연애’가 되길 빌어보길 바란다.
사진으로만 보면 생동감이 별로 없을까봐, 동영상으로 찰영한 뒤 움짤로 만든 사진도 하나 올려놓도록 하겠다. 혹시 폰으로 보시는 분들 데이터 많이 사용하게 되실까봐, 저용량 1초짜리 움짤로 만들었다. 아니 근데 왜 이게 안 움직이지? 착한 사람 컴퓨터에서만 움직이나? 업로드 하면 안 움직이네….
바람이 꽤 부는 날이라 천체망원경은 안 폈다. 그냥 망원렌즈로 찍은 거라 디테일이 살아있지 않은데, 다음 슈퍼문은 18년 후인 2034년 11월 26일이라고 하니, 그땐 천체망원경에 카메라 연결해서 생생한 영상을 찍어 올리도록 하겠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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