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P양이, 내가 매뉴얼을 통해 권하고 있는 ‘다가감의 방법’을 은연중에 그 아재들(응?)에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P양은 절대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P양이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로 하여금
‘이 여자가 내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해.’
라는 오해를 하게 만든다. 결코 그게 아닌데 왜 그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한탄만 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 P양이 교정해야 할 그 부분들을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질문과 부탁, 그리고 저자세와 예의와 미소.
나이와 상관없이, 남자에게 여자가 자꾸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거는 건 분명 ‘관심’으로 느껴질 수 있는 행위다. P양은 이걸 두고
“그 분들 대학생 때 제가 태어난 거잖아요. 네다섯 살 차이도 아니고 저랑 최하 13살에서 20살까지도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이런 저를 여자로 보는 거죠?”
라고 말하는데, 내가 받은 사연 중에는
- 노인을 돌봐드리는 일을 하는 30대 여성대원이, 70세 할아버지께 ‘나랑 연애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사연.
도 있었다. 그녀는 어르신들을 돌봐드리는 게 직업이기도 하거니와 그 분이 참 점잖으신 분이라 생각해 더욱 공경하며 대했던 건데, 그 분은 그녀의 공경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하고 만 것이다. 40살의 차이가 나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P양은 20살이나 차이가 난다고 안심하진 말길 먼저 권해주고 싶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니 상대는 분명 어른스러울 것이며 절대 자신을 여자로 안 볼 거라는 P양의 생각이, 상대들의 오해를 부르는 근본적인 이유다.
“저는 당연히 제 또래(동갑이거나 1~2살 연상연하) 외에는 남자로 안 봐요.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대하고, 강의를 듣게 된 사제지간이라면 공손하게 예의를 차린다는 생각으로 대하거든요.”
저런 생각 때문인지, P양은 이번 아재에게도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질문을 하고, 먼저 부탁을 했다. P양은 자신의 손이 미끄러운 까닭에 뭘 좀 열어 달라고 아재에게 부탁하기도 했는데, 그런 행동이 아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걸 왜 못 열지? 왜 나에게 부탁을 하는 거지? 다른 많은 사람들을 두고 굳이 왜 내게? 전에는 이것저것 질문하더니, 이제는 부탁까지 하네? 무슨 뜻이지?’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인 것이다.
P양은 상대의 나이가 많으니 삼촌 같아서, 또는 아버지 같아서 정말 그분들을 대하듯이 대했을 수 있는데, 그렇게 너무 쉽게 타인을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타인은 그냥 타인일 뿐일 경우가 대부분이며, 상대가 유부남이라고 해서 P양을 그저 ‘귀엽고 잘 따르는 꼬마’로만 보진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2. 웃음으로 넘기면, 상대는 그래도 되는 줄 안다.
상황에 따라, 거절과 정색도 할 필요가 있다. 현재 P양에게 찝적대고 있는 아재의 경우 P양에게 계속 군것질거리를 주기도 하는데, P양은 그걸 또 ‘어른’이 주신 거라 생각하며 잘 받는다. 웃으면서 잘 받고 감사함을 표현하니, 아재는 또 P양이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계속 뭔가를 준다. P양은 속으로는
‘아 진짜 짜증나고 괴롭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그걸 웃으면서 받고 말이다.
이 부분은 P양이,
“아뇨. 전 괜찮아요. 드세요.”
라고 확실하게 밝히며 거절을 해야 한다. 거절하기가 너무 어렵다면, 그냥 미소나 감사한 표정 없이 의무적으로 받기만 해도 된다. 다만 후자의 경우, 나중에 뒷담화의 이유가 될 수 있으니 되도록 거절을 하도록 하자.
상대가 장난을 걸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상대가 팔을 벌리며 안으려는 제스처를 취한다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거나 싫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 P양은 이것에 대해
“정말 너무 징그러웠습니다. 저는 슥 피했고요.”
라고 말했는데, 그러면서 자신이 크게 불쾌하다는 표현을 하며 피한 게 아니라 상대가 그걸 알아챘을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난 그걸 다 참고, 받아주고, 웃어넘겨 어쨌든 그 관계를 나쁘지 않게 유지하는 것보다, 애초에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거나 정색하는 표정 등으로 상대에게 일러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P양이 그냥 그 정도로만 대충 넘기면, 상대는 그래도 된다고 착각할 수 있다.
이걸 두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눈다면 말 할 것도 없이 그가 가해자인 게 분명한데, P양은 자신이 피해를 입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혹 상대와의 관계가 불편해질까봐 ‘좋게 좋게’만 넘기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보면 상대는 P양이 좀 부끄러워 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이후 좀 더 과감한 스킨십을 하려 들 수 있고, 그럼 P양은 더욱 불쾌하고 짜증나는 일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더불어 그 아재가 짖어대는 얘기들은, 절대 경청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그걸 P양이 계속 ‘예의 상’ 경청하며 들어주니, 그는 처음엔 자기 자랑의 수위를 높이고, 그 후엔 P양에게 뭘 어쩌라느니 하는 얘기를 하고, 그러다 이젠 더 수위가 높은 괴상한 얘기들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런 얘기들에 리액션을 해주거나 웃으며 듣지 말고, 그냥 “아, 네.”하고 P양의 일을 하거나 최대한 상대와의 대화를 피하길 권한다.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진다면, P양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대놓고 밝힐 필요도 있다.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불쾌한 건 불쾌하다고 말하자. 말을 안 하고 그냥 웃으며 다 들어주고 있으면, 상대는 점점 더 개차반 같은 태도를 보일 테니 말이다. 이런 사례에서는 상대가 보통
“나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 거지?”
“휴가 나랑 같이 가야지? 어디로 갈까?”
“나는? 나도 챙겨줘야지. 아 실망이네.”
따위의 이야기를 해가며 점점 그 수위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어설프게 저 말을 받거나 미소 지어주는 것으로 넘기지 말고, 무시를 하거나 ‘자꾸 그러셔서 불편하다’는 어필을 하길 권한다. P양은 바로 직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냥 자신이 그곳을 그만두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고 성희롱 관련 기관에 상담을 하거나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길 권한다. 가해자가 처벌 받아야지, 피해자가 그만둘 이유는 없는 거다.
3. 모두에게 너무 다 솔직할 필요는 없다.
내 경우, 길거리를 걷는데 누군가 다가와 포교활동을 하려
“장남이시죠? 걱정 되는 일이 있으신가봐요.”
라고 물으면,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둘짼데요.”
하고 지나가 버린다. 여름에 볼 일 보러 서울에 나갔을 땐 외국인이 서명 종이를 들곤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물었고, 난 거기에
“안 사요.”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모든 관계에 이래선 분명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관계에 다 집중하며 달려들어 진지하게 상대해 줄 필요도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별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데, 또는 P양의 경우처럼 이쪽은 상대를 불쾌하게 생각하는데 상대가 자꾸 말을 걸면, 그냥 뭉뚱그려서 대답해 주면 된다.
상대가
“P양은 여행 좀 가봤어? 어디어디 가봤어?”
라고 물으면, 거기에 대해 곧이곧대로 가본 곳을 다 대답해 줄 것 없이, 그냥
“별로 못 가봤어요.”
라고 답해도 된다. 답하기 싫은 건 말을 돌려 피해도 되고, 착한 거짓말을 해도 되며, 질문에 단답만 해도 된다.
“어제 일입니다. **에 대한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나름 성실히 대답했는데, 비꼬고 무시하는 말투로 얘기하셔서 불편했습니다. 본인은 어찌어찌하다고 말씀하시기에, 전 거기에 나름 선을 긋는다고 저는 그것과는 반대라고 대답해버렸습니다. 이 일로 서먹서먹해지길 기대했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아재가 되어 P양을 보면, P양의 그 ‘맞서서 반대로 대답한 것’ 이, 그냥 귀여워 보일 것 같다. P양은 나름 선을 긋는다고 한 대답이지만, 아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 가지고 발끈하며 새침하게 대답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재의 그런 말에는, 그냥
“아, 네….”
하고 받아주는 게 가장 좋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말고, 그냥 ‘그런가보다’의 마음으로만 대답을 하는 것이다. P양이 처한 상황에서 대답을 안 하거나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하니, 불성실한 태도로 답변하며 대화하기 싫다는 기색을 마음껏 내보이길 권한다. 이건 ‘어른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치근덕거리는 남자를 퇴치하는 것’이니, 상대의 감정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P양이 괴로우면 반드시 밀어내길 바란다. 출근하면 그 아재랑 또 마주쳐야 하는 것 때문에 퇴근 후부터 출근 전까지 괴로우면, 확실하게 밀어내는 게 맞는 거다.
오늘 매뉴얼에선 너무 부정적인 얘기만 하게 되는 것 같은데, P양이 정말 순수하고 순진하게 ‘사회에서 만난 나이 많은 아저씨’를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는 사람들로 착각하는 것 같아 이렇게 적게 되었다.
P양은 상대가 ‘삼촌뻘 아저씨’라거나 ‘유부남’이면 완전히 안심한 채 귀여운 꼬마의 태도로 그들을 대하려 하는데, 동화 <빨간 모자>의 이야기가 무얼 말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길 권한다. 그 동화에서 늑대는 빨간 모자에게 어디로 가고 있냐고 물었고, 빨간 모자는 늑대에게 할머니 댁에 가고 있다고 대답한다. 늑대가 할머니 댁을 물었을 때 빨간 모자는 자세히 대답해 주었고, 늑대는 지름길로 달려가 빨간 모자의 할머니를 잡아먹는다. 그러고는 할머니로 위장을 한 뒤, 빨간 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빨간 모자까지 먹어 치운다.
이 이야기가 한국에 소개될 때 빨간 모자까지 먹어 치우는 건 애들 정서에 안 좋을 것 같았는지 ‘손을 보여달라’고 한 뒤 할머니가 아님을 확인하곤 빨간 모자가 도망가는 쪽으로 스토리를 바꿨던 것 같다. 하지만 원작에선 둘 다 늑대에게 잡아먹히며, 이 이야기의 교훈은
- 수상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늑대에게 저녁을 제공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라는 것이라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괴로움을 겪으면서까지 예의를 갖추거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의 기분을 먼저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다. 어른 대접은 어른다운 사람들에게만 해도 충분하니, P양이 더는 너무 아이처럼만 연장자를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잘 풀어 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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