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S씨는 ‘무성의한 징징거림’부터 좀 어떻게 해야 한다. A4용지 절반도 안 되게 사연을 적어 보냈던데, 무엇이 답답하고 그동안 어땠는지를 적어서 보내야지
- 좋은 오빠동생 사이로만 남는 전형적인 호구남입니다.
- 여자들과의 대화법을 모릅니다.
- 심리전도 못합니다.
- 자존감도 바닥이라 제가 봐도 제 자신이 한심합니다.
라는 이야기만 적어서 보내면, 나도 막연한 대답만을 해줄 수밖에 없다. S씨가 하는 얘기를 영어공부에 비유하면,
- 영어로 침대가 Bed인지 Bad인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 수능 때도 외국어 영역 3번으로 다 찍었습니다.
- 발음기호 문법 뭐 그런 거 하나도 모릅니다.
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야기 아닌가. S씨처럼 내게 그냥 막연하게 질문을 던지곤 기가 막힌 조언을 해주길 바라는 대원들이 종종 있는데, 스스로 뭔가를 하다가 막히는 지점에 대해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냥 전부 다 떠맡기고 알아서 해결해 달라는 이런 식의 신세한탄은 의미가 없다.
오늘은, S씨와 비슷한 태도로 관계에 임하는 대원들이 연애에서 자주 벌이는 헛발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성을 마치 외계의 존재처럼 여기며 천체망원경으로 바라보고, 교신을 위한 신호만 간헐적으로 보내는 대원들의 이야기다. 출발해 보자.
1. 퍼주는 대가로 받는 감사와 호의에 젖지 말자.
누군가와의 관계가, 또는 썸이나 연애가 ‘퍼주는 것’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거라면, 난 매뉴얼을 적고 있는 대신
“지금 잠이 옵니까? 오늘 보냈어야 할 기프티콘은 보내고 주무시는 겁니까?”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을 때 상대가 미소를 띄며 감사인사를 하는 건, ‘이쪽이란 사람에 대한 호감의 증폭’이라기보다는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표현’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관계에 서투른 대원들은, 이 ‘퍼주기’에 대한 상대의 리액션을 ‘관계의 그린라이트’, ‘나에 대한 호감의 증폭’으로 쉽게 오해하곤 한다. 때문에 내게 카톡을 보낼 때는 인사도 없이
“여자에게 이런 답장이 왔다는 건 무슨 의미죠? 거절인가요?”
라는 질문부터 들이밀던 대원들도, 상대와 카톡할 때 보면 카페모카부터 시작해서 마사지 쿠폰까지 안 보내는 게 없을 정도다.
그렇게 선물을 해 상대로부터 감사인사를 받으면 당장은 화기애애하겠지만, 보낸 쿠폰으로 주문한 커피가 식기도 전에 그 화기애애함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쿠폰 보낸 걸 주제로 몇 분쯤 안부 물으며 대화하다가, 이후 할 말이 없으니 인사한 뒤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 뒤에 다시 또 대화를 하려면 쿠폰을 보내야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 그렇게 온라인 게임에서 아이템 구입하듯 기프티콘을 구입해 맺는 관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계속 기프티콘을 들이 부어야 하는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게다가 이런 대원들은 상대와의 관계가 좀 어색해진 것 같다거나 낌새가 좋지 않다고 느낄 때 더욱 빈번하게 기프티콘을 보내곤 하는데, 그땐 상대가 이제 그만 보내라는 이야기를 해도 부담 갖지 말라면서 계속 보내는 일까지를 저지른다. 거 안 먹겠다며 그만 보내라는 거면 나나 주지.(응?)
상대가 다른 사람들과 술 마시고 숙취로 고생할 때마다 숙취해소음료 기프티콘 같은 걸 보내는 서포터즈 활동은 그만 하고, 그냥 상대와 만나 밥을 한 번 먹거나 술을 한 잔 하는 게 둘의 관계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잊지 말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판타지로 다 퍼주기만 하다가는, 잘게 잘려서 가구가 되거나 ‘축의금 용 좋은 오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가까이에서 만나는 걸 두려워하며 강 건너에서 기프티콘 보내는 걸 그만하고, 직접 만날 약속을 잡아 한 번 더 만나자.
2. 대화는 꾸준하게, 자주, 이어서 해야 한다.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삼사일에 한 번, 또는 주말이 가까울 때만 상대에게 연락하는 대원들을 보면 난 솔직히 좀 답답하다.
남자 – 수지 뭐해~
여자 – 친구 만나러 가는 중이요 ㅎㅎ
남자 – 그래~ 잘 다녀와~
여자 – 네~
(3일 후)
남자 – 수지 뭐해~
여자 – 밥 먹고 있어요~
남자 – 그래~ 맛있게 먹어~
여자 – 네~
(3일 후)
남자 – 수지 뭐해~
여자 – 아직 회사에요. 오늘 야근.
남자 – 에구 힘들겠네. 수고해~
여자 – 네~
위와 같은 카톡대화를 볼 때마다 난 가슴이 먹먹하고 손발이 떨려오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줘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데, 여하튼 매번 그냥
“뭐해?”
“자?”
“똑똑똑.”
라며 데자뷰를 느끼게 만드는 대화는 좀 그만 하자. 나름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3일의 시차를 두고 연락하는 걸 수 있겠지만, 그러느라 대화의 주제는 유효기간이 지나버리고, 또 뭔가를 제대로 물어 본 적이 없으니 할 이야기도 바닥나게 될 수 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상대가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면 친구와 만나는 장소나 만나서 먹은 메뉴를 주제로 ‘다음 번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이걸 또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어디서? 몇 시에? 어떤 친구? 무슨 약속인데? 뭐 먹을 건데?”라며 한 번에 다 조사를 마치고 혼자 뿌듯해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화기애애할 때 한 발짝 더 들어가서 묻는 건 문제없지만 그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꼬치꼬치 캐물어서 안 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길 바란다.
이건 사실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기 애매한 ‘눈치’의 영역이라,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서부터는 곤란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개별사연을 받고 있는 것이니, 정말 정 모르겠다면 자신의 상황을 신청서에 적어 사연으로 보내주길 바란다. 중요한 건 ‘서서히 다가가겠다며 3~4일 간격으로 연락해 출석체크 하듯 대화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니, 지금까지의 대화가 어땠는지도 한 번 천천히 점검해봤으면 한다.
3. 뭔가를 하지도 않고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개/폐업을 너무 자주하면 필연적으로 단골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 아닌가. 자신은 모태솔로이며 연애가 정말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 알게 된 지 3~4주면 고백을 하려 들거나, 제발 사귀어달라는 식의 애걸복걸을 해서 겨우 사귀었다가 하루나 이틀 만에 차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그 중 가장 큰 건
- 꽂히면 급격히 들이댐, 하지만 반응이 부정적이면 반대로 급격히 실망하거나 포기.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주 작은 부정적 반응에도 급격하게 손을 털려 하는 태도는, 나이가 들수록 10%씩 증가해 30대를 넘어서면 20대일 때의 두 배 가까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점점 ‘되면 한다’의 마음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올 해 봄이 다 지나기도 전에 ‘2016년 세 번째로 호감가는 여자’에 대한 사연을 보낸 대원이 있을 정도인데, 상대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애정과 지구력을 가진 채 ‘여자친구’가 되어 달라고 말하던 사람을 잘 걸러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까?
그 다음으로 큰 이유는, 만나는 걸 불편하고 어색해하며 전화통화는 아직 한 적 없으면서, 그냥 무작정 사귀자는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남자들은 사귀기만 하면 ‘오늘부터 1일’이 되는 날 모든 것이 저절로 진행되며 상대는 온 마음 다 해 자신을 사랑해줄 거라 생각하는데, 늘 얘기하지만 연애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둘 다 금사빠라 사귄 첫 날부터 연애 역할극에 충실하며 여보, 자기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대다수인 보통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궁금하고, 상대와 만나고 싶고, 상대와 대화하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미소가 지어질 때 연애를 시작한다. 그게 되어야 연인이란 간판을 거는 거지, 간판부터 건다고 모든 게 아무 노력 없이 해결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아주 단순하게 ‘데이트’만 하더라도, 어딘가를 가본 적 없고 누군가와-그게 동성친구라 할지라도- 밖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다면, 그냥 아무 것도 안 떠오르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난 매뉴얼을 통해
- 연애 전 자신의 생활을 가꿔나가세요. 혼자 있을 때에도 즐거울 수 있어야, 함께여도 즐거운 법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건 무슨 내면을 가꾸고 행복을 찾자는 뜬구름 잡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이 인상 깊게 가본 곳, 또는 맛있게 먹은 음식, 흥미가 생겨 가보고 싶은 곳 등이 있어야 짝꿍에게도 마음이 동할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런 것들을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안 되면, 주말에 인기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면 줄을 서야한다는 걸 몰라 고생할 수 있고, 남들이 다 간다고 하니 어디 축제장 갔다가 그냥 둘 다 지치고 피곤해지기만 할 수 있다. 혼자일 때 해봤다면 그때 이미 겪었을 시행착오들을, 썸이나 연애 극 초반부터 같이 겪게 되어버린단 얘기다. 믿기 어렵겠지만 난 반구정이나 자운서원만 가도 내 짝꿍에게 이야기해줄 것이 많다. 그냥 파주 근처의 논밭에만 가더라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들이 있으니 이야기 해줄 수 있고, 지금은 기러기 떼가 논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니 그걸 보여줄 수도 있다. 철새도래지에서 친구가 눈물을 흘렸던 이야기도 해줄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니 혼자일 때 준비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다 접어둔 채, 심리전을 못하겠다느니, 여자와의 대화법을 모르겠다느니, 자존감이 낮다느니 하며 신세한탄만 하고 있진 말자.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고, 하다 보면 자연히 잘하게 된다. 그건 체념이나 포기 역시 마찬가지라, 계속 그것만 반복하다보면 나중엔 상대에게서 답장만 좀 늦어도 글렀다고 생각하며 대화방에서 나와버리는 일만 벌일 수 있으니, 어떤 것이 ‘내일의 나’에게 도움이 될 방향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 후 그 방향으로 습관을 들이길 권한다.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사용하고 있던 연동 서비스가 문을 닫아서, 11월 초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연동 발행이 안 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쪽을 통해 노멀로그의 새 글 소식을 받아보시던 분들께서 무슨 일이 있어서 글을 안 올리는 거냐며 많은 걱정을 해주셨는데, 오늘 다른 서비스에 등록을 했고, 아마 이 글부터는 다시 연동될 것 같다.
슈퍼문이 뜬다고 하던데, 구름도 많은데다 미세먼지도 ‘나쁨~매우나쁨’ 수준이라고 해서 나가지 않기로 했다. 실시간으로 기상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에 가보니 수도권은 미세먼지 직격탄을 맞고 있던데, 사실 슈퍼문이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크기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기에 일부러 나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시간이 지나며 점점 하늘이 열려서, 보러나갈 예정이다.) 오히려 보통의 보름달이 ‘막 뜨기 시작할 때’가 훨씬 커 보인다. 그때는 진짜 커보여서 ‘합성인가?(응?)’ 싶을 정도인데, 조만간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사진을 좀 찍어 올려두도록 하겠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월요일 저녁 보내시길!
▼ 공감과 추천,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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