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쉽게 보는 일이 없도록 치아 전체를 은니로 바꿔보라는 건 훼이크고, 그러니까 이건 A양이 ‘차도녀’로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동시에,
‘어차피 지금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남자친구도 없으니까 뭐….’
라는 마음도 가지고 있기에 괴리감이 생기는 거란 얘기를 먼저 해줘야 할 것 같다.
차도녀의 베이스 마인드는 남대문 호떡집이다.(응?) 365일 호떡을 원하는 손님이 줄 서 있으니 길 막지 말고 줄 똑바로 서라며 손님들에게 호통도 치고, 지인찬스를 발휘해 중간에 끼어서 새치기하듯 주문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한테 안 팔아. 호떡 사려면 다시 줄 서.’의 느낌으로 밀어낼 수 있는, 뭐 그런 거다.
그런데 A양의 경우 저런 호떡집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줄 서는 손님’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으니, 바라던 것과는 달리 옆으로 비켜서라는 상대의 호통에 놀라 서둘러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되고 만다. 이것과 더불어 A양의 태도에는 ‘쉽게 보는 남자를 많이 만나게 되는 이유’가 포함되어 있는데, 오늘 함께 전체적으로 쭉 살펴보자.
1. 이성을 만나는 루트의 문제.
술집에서 헌팅을 하는 남자 중에 좋은 남자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취한 채로 다가와 번호를 묻거나 합석을 제안할 땐, 진지하게 상대를 알아가려는 마음보다는 ‘머릿수가 맞으니까’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그렇게 다가온 남자가 저더러 ‘오늘 같이 있자’는 이야기를 할 때면, 전 ‘내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상대에게 마음이 있더라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충격을 받아서 멍해지고요.”
A양이 바라는 걸 정리해보자면,
- 술집에서 먼저 다가와 합석을 제안한 남자가, 인간적으로 서로를 알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첫 만남에선 그저 번호 정도만 묻고 이후 A양을 차도녀로 생각하며 어느 땐 좀 어려워하고 어느 땐 또 아주 사랑스러워하는 시나리오.
라는 건데, 난 대개 총을 든 사냥꾼이 노리는 건 사냥감을 잡는 것이지 보살피거나 키우는 게 아니며, 또 사냥꾼은 노루가 지나가든 토끼가 지나가든 멧돼지가 지나가든 일단 눈에 띄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A양도 이걸 모르진 않는 듯
“물론 장소가 장소다 보니, 믿을만한 상대들이 아닐 수 있겠지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래도….’라는 생각 역시 갖고 있기에 기대나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진 못하는 것 같다. A양은 이것과 더불어
- 같이 헌팅을 당해도 남자들이 친구에게는 안 그러는데, 나한테만 그러는 문제.
에 대한 고민을 틀어 놓았는데, 그건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2. 속으론 기분상해도, 겉으로는 다 받아주는 문제.
상대가 좀 부담스러운 요구를 해도 A양은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속으로는 상대에게 실망하고 기분 상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 네. 네. 뭐, 그래요 ^^”
라는 정도로만 표현을 하고 만다. 빈정상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말수를 좀 줄인다든가, 상대가 무례한 태도를 보일 때 정색을 한다든가, 아니면 정말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정확히 짚어서 따져 묻기도 해야 하는데, A양은 마치 상대가 ‘고객’인 것처럼 대하며 절대 기분 상하거나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A양은 자신에 대해
“남자하고 대화하다 보면, 저는 좀 잘 생글생글 거리는 것 같아요. 상대방 얘기하는 거 듣고 잘 웃어주고 반응도 잘 해주는 편이구요. 아, 저 노래방 가게 되면 노래 잘 부른다고 칭찬받아요. 친구들과 남자들 말에 의하면, 저는 말 많고, 애교가 좀 있는 편이래요.”
라고 설명했는데,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남자 입장에선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데 A양의 호의와 친절을 그렇게 다 누릴 수 있는 거라면 굳이 뭘 더 할 필요를 못 느낄 수 있다. 그냥 합석해서 재미있는 얘기 몇 개 던지자 리액션 잘 해주고 이끄는 대로 다 따라가는데, 나아가
“네가 눈에 띄었고,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다.”
라는 말 한 마디만 해도 A양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자신도 마음에 든다는 식으로 대답을 해주는데, 뭐 이런 상황에서 둘 다 술도 좀 취했겠다 마음도 확인했겠다 하면 십중팔구 쉴만한 곳을(응?)찾아 가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A양의 사연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은, A양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라서 저게 뭔지 알면서, 막상 또 저런 상황이 되어 상대가 ‘친구 보내고 우리는 같이 있자’고 제안할 경우, “넌 첫판부터 장난질이냐.”라며 오함마 가져오란 얘기는 못 하고,
“에이, 어떻게 그래. 그냥 친구랑 다 같이 놀자.”
라는 식으로 살짝 밀어내고 마는 것이었다. 난 사연을 읽었기에 그게 A양 입장에선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서 거절한 것’이란 걸 알지만, 상대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으면서 한 번 튕긴 것’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어쩌면 A양 역시 거절하면 그걸로 끝장일 것 같아 그런 식으로 돌려 밀어내고 마는 것일 수 있는데, 그런 건 딱 그 순간 끊어내야지 어중간하게 거절하면 상대가 노골적으로 돌변해 달라붙기에 더 떼어내기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 나와야지, 뭐 당장 나가도 딱히 할 것 없다며 거기서 뱅뱅 돌고 있다간 더욱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3. 차도녀로의 변화보다는, 표현과 거절의 방법 사용으로….
A양은 신청서에
“저는 정말 발랑 까진 캐릭터도 아닌데, 왜 이렇게….”
라며 신세한탄을 했는데,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다만 위에서 말한 이성을 만나는 루트의 문제와 강하게 거절하지 않는 문제, 그리고 상대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느라 자신이 느낀 불쾌함을 혼사 삭이고 마는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A양이 원하지 않는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본다.
난 A양이 이걸, 그간 본래 살아오던 모습을 전부 뒤집어 ‘차도녀’로의 변화를 꿈꾸기 보단, 가장 익숙하고 A양 다운 모습을 유지하며 거기서 몇 가지만 교정하길 권하고 싶다. 우선, 마음으로 불편함이나 실망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말고, 표현해야 한다. A양이 소개팅에 나갔을 때의 대화를 보자.
남자 - 뭔가 A씨는 클럽 같은 곳에서 인기 많을 것 같아요.
A양 - 네? 클럽이요?
남자 - 아, 아니 그런 나쁜 뜻이 아니에요.
남자 - 정말로, 그런데, 뭔가 그런 곳에서 인기가 많을 분 같네요.
A양 – 네…. 난생 처음 듣네요.
첫 만남에서 저 따위로밖에 얘기할 줄 모르는 남자는 뭐 거르는 게 낫겠지만, 여하튼 저런 상황에서는
“클럽 같은 곳에서 인기 많을 것 같다는 게,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클럽 자주 다니시나 봐요. 전 클럽 문턱도 못 밟아 봤는데.”
“지금 좀 당황스럽네요. 두 번이나 강조해가며 말씀하시고….”
정도로 받아쳐도 된다. 저런 상황에서 A양의 기분이 어떻다는 걸 표현하지 않고 넘기면 상대는 그래도 된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을 꺼내면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질까봐, 또는 상대가 무안해지는 상황이 만들어 질까봐 넘어가지 말고 바로 표현하길 바란다.
또, 그냥 막 다 들이대는 모든 이성들에게 사냥하게 대해주며 전부 받아주다 보면, 앞서 말했듯 계속해서 그 관계는 꼬여갈 뿐이며 A양의 ‘약한 거절’을 튕기는 거라 생각한 상대가 더욱 치근덕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니 오는 이성 안 막고 다 받아주느라 시간과 에너지와 청춘을 다 낭비하지 말고, 아니다 싶으면 강한 거절로 빠르게 상황 정리를 하길 권한다.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면, 처음 만난 상대가 무슨 고백을 하고 어떤 애정표현을 하든 그건 술김에, 또는 당장 좀 어필하기 위해 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말들일 수 있으니, 상대에 대한 평가는 ‘첫 만남, 첫 느낌’만으로 하지 말고 충분히 상대를 겪어 본 뒤에 했으면 한다. 당장 상대가 하는 말들이 달콤하다며 아무 생각 없이 다 오픈한 채 그의 리드만 따라가지 말고, 의식적으로라도 A양의 템포를 늦추며 길게 보고 넓게 생각하자.
A양은 신청서에
“남자들이 저를 보고 뒤에서 수군대다 ‘얼굴보자’며 확인하러 올 때도 있어요. 근데 남자들이 얼굴만 확인하고 그냥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제 몸매와 얼굴에 괴리감이 있기 때문인가요? 제 얼굴이 더 예뻤다면 저러진 않았겠죠? 이런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요. 남자들에게 제가 어떻게 비춰지는 여자인지 궁금합니다.”
라고 적기도 했는데, 대상을 자꾸 그렇게 ‘남자들’이라며 만인으로 설정하진 말았으면 한다. 모든 남자와 사귈 것도 아닌데 모든 남자의 마음에 들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또, 그게 만약 반대로 어떤 남자가 지나가는데 여자들끼리 ‘얼굴보자’며 수군대다 돌아가면, A양은 그 여자들을 이상하게 보지 그 남자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아닌가. 이처럼 A양에게 그러는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A양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니, 이런 일은 그냥 어느 길을 걸어가는데 그 길에 있던 개들이 짖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동네 개들이 짖는다고 그거 다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니, 무시해도 되는 건 그냥 사뿐히 무시했으면 한다.
자 그럼, 이제 이십대를 벗어난 A양이 삼십대에는 같은 고민을 계속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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