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시즌이라 그런지, 알바 중 짝사랑을 시작한 남성대원들의 사연이 무더기로 날아들고 있다. 남중남고라는 솔로부대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대학에 입학한 후 이제 막 짝사랑을 시작한 대원부터, 휴학하고 알바 하다가 짝사랑을 하게 된 대원들의 사연까지 참 다양하다.
물론 그 사연들의 마지막이
- 분위기가 좋았기에 고백했지만 까임.
- 카톡으로 대화하다 돌직구를 날렸지만 까임.
- 마침 남친과 헤어졌길래 사귀자고 했지만 까임.
- 다정한 거절이라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까임.
등으로 ‘까임’으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여하튼 그렇게 한 번 까였다고 세상 끝나는 것 아니며 그 시점에 가장 중요한 건 무작정 ‘재고백’만을 노리진 않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와 함께, 저 대원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지점들을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1. 사실 정말 상대를 좋아하는 게, 아닐 수 있다.
사연 속에 등장하는 ‘짝사랑 상대’를 보면, 그게 혹시 한 여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그 여성들은
- 카톡을 보내면 답장 잘 해주며 연락을 거부하지 않음.
- 물어보는 것에 친절하게 답해주며 깊어 보이는 속 얘기도 함.
- 만나자고 해도 거절하지 않으며 둘이 밥을 먹은 적도 있음.
- 드립을 잘 받아주며 잘 웃어주고, 또 리액션도 잘 해줌.
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저건 진입장벽이 낮으며 이성과 단둘이 만나 노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논다는 의미인데, 그녀를 짝사랑하게 된 남성대원들은 하나같이 저걸
- 그녀의 상대가 ‘나’라서 가능한 일. 내게 호감 있는 것이 분명함.
으로 굳게 믿고 만다. 자신이 접하고 있는 이성이 상대밖에 없으니, 상대 역시 그러리라 믿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실제로 살펴보면 상대는 같이 알바 하는 다른 오빠나 동생과도 그렇게 지내는데, 이쪽에선 그것에 대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거나 그들을 들러리쯤으로 여겨버리고 만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 즈음 그대들의 말처럼 ‘얼굴이 매우 예쁨’이라든가 ‘피부가 희고 고양이 상. 애교가 많음’의 평가를 받는 여성대원들은 봄날의 꽃처럼 수많은 벌과 나비의 구애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같이 알바 하는 형이 그녀에 대해
“야, 걔는 뭐 지가 여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그냥 딱 보면 보이잖아. 여우인 척 하려는 거지, 여우는 못 돼.”
라며 겉으로 쿨하게 이야기하더라도, 뒤에서는 그녀에게 “지영아 너 내일 오전이야 오후야?”라며 말 한 마디 더 걸고자 노력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거기에 속아 넘어가 그 형을 대단하게, 그녀를 만만하게 생각하진 말자.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는 여성대원들이 그런 풍요를 누리는 동안, 마땅히 내로라 할 게 없는 남성대원들은 새벽부터 연애인력시장에 나온 듯
“목소리 좋은 분 두 분 타세요.”
하면 “저요! 저요!” 하며 중저음 내보려 노력해야 하니 말이다. 비하하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고, 나 역시 그 인력시장에서 군불을 쬐며 고등학생 때 떠들썩한 연애를 해봤다는 고참의 얘기를 경청할 때가 있었기에 하는 얘기다. 그때 그 고참은 이제 연애 같은 거 지겹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자신의 연애사를 무용담처럼 풀어 놓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세 살짜리가 그러고 있었단 것에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구인을 외치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일단 손부터 들 수 있는데, 당장 뽑아줄 것 같다는 이유로만 손 들 게 아니라 정말 ‘상대’라서 좋은 건지, 아니면 연애가 하고 싶은데 마침 상대가 옆에 있고 사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돼 그러는 건지를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후자라면 그저 헌신을 앞세워 구애만을 전달하는 모양이 될 수 있으며, 다른 많은 남성대원들처럼 손들고 줄 서기에 급급해 ‘남자 4호’ 정도의 한계를 지니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순위에 목매며 ‘남자 1호’가 되는 걸 목표로 하지 말고, ‘바로 이 남자’가 되는 걸 목표로 하자. 상대가 남친과 헤어졌으니 이제 내 차례가 될 거라 생각한다거나, 아니면 경쟁자 중 같이 알바 하는 형이나 동생보다는 그래도 내가 더 나은 것 같으니 나랑 사귀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간, 보기 좋게 지붕 쳐다보게 될 수 있다.
2. 그대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력적이다.
외모나 기럭지는 어쨌든 타고 나는 것이며, 센스나 유머감각 역시 그게 길러질 환경에 꾸준히 노출되어 있었다거나 긍정적인 리액션이 주변에 가득할 때 자라날 수 있다. 때문에 이런 부분들과 거리가 멀다면, 그대에겐 ‘당장 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상대에게 어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저런 것들은 ‘단번에 자신을 어필하는 것’과 관련된 부분이고,
- 여러 가지 일들로 증명되는 사람 됨됨이.
-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좋은 인간성.
- ‘친해짐’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면 경험하는 따뜻함.
등은 오랜 기간 알고 지내거나, 또는 가까이에서 마주할 기회가 많을 때 드러나는 매력들이다. 특히 ‘표현과 대화에 익숙하지 않아 속으로 생각하는 일이 더 많은 타입’인 경우에는 십중팔구 후자 쪽에 더 가까운데, 그렇게 아직 별 매력도 보여주지 않은 와중에 밥 사고 영화 보여주며 당장 고백해 사귀려 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가능성이 높다.
또,
- 남들이 웃어야 좋은 거라 생각하며 과한 드립을 치는 것에 몰두하게 됨.
이라는 함정에 빠질 경우, 이쪽이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간에 외부에 보여 지는 모습은 광대와 다를 바 없기에, ‘웃기는 사람’정도의 이미지만을 가질 뿐이라는 것도 기억해뒀으면 한다. 이걸 두고
“저는 가끔 제 드립에 취해 아무 거나 막 던질 때도 있지만, 재미없는 드립도 웃기게 하는 편입니다.”
라고 자부하는 대원들도 있는데, 본인은 그렇게 스트라이크로 들어간 드립을 생각하며 뿌듯하겠지만, 그걸 받는 남들에겐 폭투가 되어버린 공들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못 견딜 것 같아 뭐라도 하겠다며 분위기 메이커를 너무 자처하지만 말고, 노멀로그 사연 신청서를 쓸 때만큼이라도 진지하고 사려 깊은 모습을 평소에도 좀 보이길 권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대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력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분명 높다. 아직 어릴 때는 자신의 매력이 뭔지 자신도 몰라 그걸 드러내지 못하거나, 또는 빨리 연애하고 싶은 마음에 남을 비슷하게 따라해 사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이상한 모습만을 보여주게 될 수 있다. 이건 의식적으로라도 여유로운 마음을 만든 뒤 ‘내가 나를 만난다면, 어떤 점에 관심이 갈까? 또는, 어떤 점이 싫을까?’를 생각하다보면 답을 구해볼 수 있는 것이니, 사냥꾼의 마음으로 사냥감만을 뒤쫓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리고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그냥 참 운 없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까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대원은
“사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 남친이랑 헤어지면서, 여기서 알바 하는 다른 누구랑도 다시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다네요. 그가 그건 예의니 꼭 지켜달라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네요.”
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참 운이 없는 거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라면 ‘전쟁이 끝났는데, 참호에 남아 있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며 그 참호 안에서 세월 다 보낼 셈인가?’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구남친과의 약속을 지킬 필요 없는 36가지 이유>라는 글을 A4 80매 정도로 작성해 전달할 것이다. 인연이나 기회가 떠나가는 걸 보고만 있지 않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 보는 건데, 이 방법이 끌린다면 얼마든지 사용해도 괜찮다.
3. 미필이라서 일까? 군대 가도 상대가 기다려 줄까?
아무래도 ‘군대’라는 문제를 앞둔 대원들이 보낸 사연이라 그런지 이 질문이 자주 중복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필’이라서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니까 이게, 관계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그 기반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기반이
- 이쪽의 헌신(또는 호의 베풂)
일 경우엔 ‘곧 군대에 갈 사람’이라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건 상대를 접대하는 동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관계와 같기에, 상대를 모시는 사람이 없어지면 지속될 힘을 잃기 때문이다.
반면 그 관계의 기반이
- 둘의 친밀함
에 있는 경우엔, 한 쪽의 군입대도 어쨌든 ‘우리가 겪어야 하는 경험’이 되는 까닭에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호감과 관심과 애정이 있지만 ‘미필’이라는 이유로 절대 만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국의 역대 수능만점자보다 그 수가 적을 수 있으니, 상대가 그 핑계로 거절할 땐 ‘친밀함’의 측면에서 좀 부족했다고 해석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군대 가도 상대가 기다려줄지 안 기다려줄지까지를 걱정하진 말았으면 한다. 그대가 그걸 두고 아무리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가며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라 핑계를 대도, 그게 김칫국 드링킹이라는 것엔 변함이 없다.
물론 ‘군 입대’라는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완전히 여유로우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상대가 기다리고 안 기다리고는 그대가 얼마나 믿을만한 모습과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줬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거지, 그게 오로지 상대의 결정이나 믿음에 달려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혹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상대를 떠보려 하거나 어찌어찌 해달라고 조르지 말고, 그냥 당연한 일을 당연히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힘쓰길 권한다.
여기까지 다 쓰고 나서야 ‘재고백할 기회만을 노리진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안 적은 게 생각났는데, 그건 상대가 더 찍어봐야 할 나무가 아니라 올라야 할 나무일 가능성이 높으며, 또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상황에서 그저 시간만 좀 더 지났다고 잘 되기 힘들고, 나아가 ‘긍정적인 것 같은 대답인데 결론은 거절’이라는 대답은 희망고문이나 어장관리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백 실패 후 어쨌든 상대와는 계속 마주쳐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어떡하죠?”
라고 묻는 대원들도 많았는데, 그럴 땐 상대에게 고백한 적 없는 사람처럼 이쪽에서 먼저 태연하게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매뉴얼로도 몇 번 소개했지만
“(상대를 떠본 후)그래. 네가 뭐라고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냐.”
“그냥 좋아만 할게. 티 안 내고 좋아만 하는 건 해도 되잖아.”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답은 같은 건가? 여전히 난 그냥 좋은 사람일 뿐인가?”
라는 이야기는 안하느니만 못할 수 있다. 그러니 딱 상대가 다가오는 선까지만 이쪽도 나가 맞아주며, 슬픈 조연이 되어 상대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듯한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하자. 까였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아봐야 그들에겐 그냥 뒷담화거리가 되거나 소문의 소스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그래도 마음에 담는 꿈을 꾸었던 사람에 대해 너무 가볍게 말하거나 감정을 실어 나쁘게 말하진 말았으면 한다. 요 정도만 주의하면 군입대 전 짝사랑 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를 피해갈 수 있을 테니, 잊지 말고 기억해 잘 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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