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의 배 부분이 접히면 비만, 또는 아저씨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곤 내 팬티를 확인한 뒤 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 싶어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다. 몇 주 전 H돈가스에서 왕돈가스를 꾸역꾸역 다 먹고 커피까지 마시던 과거의 내게,
“이게 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왜 그걸 다 먹었어? 왜? 왜?”
라며 멱살잡이를 하고 싶어진다. 과거의 내가 한 일들을 때문에 오늘의 나는 곤란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어쨌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는 게 정석이니 내일의 나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내일의 난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의 난 일단 라면 먹고 생각해야지.
평소와 달리 서두에서 ‘팬티’와 ‘다이어트’ 얘기를 하니 급격하게 몰입하는 몇몇 독자 분들의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데, 그런 독자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오늘 매뉴얼은 짧고 굵게 짚어가며 살펴보자. 출발.
1. 전형적인 3할남.
결혼 적령기라 할 수 있는 나이에 진입했지만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고, 그냥 연애는 하고 싶으니 사귀고 있는 남자들 때문에 나도 참 힘들다. 이런 남자와 만난 여성대원들은
“사귀긴 분명 사귀는 사이인데 상대는 아쉬워하지도 않고, 섭섭해 하지도 않고, 사귀면 사귀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란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요. 애정이 느껴지지 않아요.”
라며 내게 하소연을 하는데, 나 역시 카톡대화를 보며 처음엔 그가
“제가 지금 미소씨 바쁜데 방해하는 건 아니죠?”
라는 이야기를 하다, 연애 시작 몇 주 후
“나 원래 이래. 사람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지금은 연애보다 내 일에 더 집중해야 할 때야.”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너 원래 그런 거 아니잖아. 초반에 들이댈 때 계속 연락하고, 이거 아냐 저거 아냐 물어대고, 어디 가봤냐면서 같이 가자고 했던 건 뭐야. 벨 누르면 문 열어주는 게 재미있어서 벨 누르고 튀는 거야 뭐야.”
라고 묻고 싶어진다. 그들은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연애보다 본인의 생활을 더 중요하고 생각하며 자기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둘 뿐인데, 가만히 보면 연애를 시작한 이유 역시 ‘누군가를 공략하는 내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남자들은 상대의 마음이 커지는 것과 관계의 진도를 나가는 것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서로의 지인에게 서로를 소개하는 것, 기념일을 챙기는 것, 커플템을 마련하거나 둘의 미래계획을 세우는 것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연애나 연인이 너무 좋아 푹 빠진 채 같이 사진도 찍고, 폰에 연인을 애칭으로 저장하고, 단축번호 1번으로 설정하는 등의 일엔 별 생각이 없는 듯 보이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상대가 옆구리를 찔러댈 때 한 번 팬서비스 하듯 데이트를 베풀어줄 뿐이다.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할 경우 늘 관심과 애정에 허덕이며 을의 입장이 되어 아쉬운 소리밖에 할 수 없는데, 난 당연히 그런 대원들을 모두 도와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상대의 마음이
- 계속 사귀면 사귀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이런 연애라도 좋다면 계속 가는 거고, 아니면 헤어지는 거지. 헤어져도 별 상관은 없어.
인 까닭에 딱히 방법이 없다. 상대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아쉬움을 손톱만큼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뭘 해볼 수 있는 건데, 상대 마음은
-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는 안 해야지. 이렇게 지내도 난 손해 보거나 아쉬울 것 없으니 그냥 이렇게 지내다가, 상대가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지는 거지 뭐.
라는 것에 가까우니 조율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참견하지 말고 내버려둬라. 네가 헤어지자고 해도 난 아무렇지 않다’의 단계까지 진행된 관계에선 로그아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연의 주인공인 M양 역시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이야기까지 들은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라면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침묵, 로그아웃, 고백 셋 중 하나인데 침묵과 로그아웃은 말 안 해도 알 거라 생각하며, ‘고백’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2. 어떻게 대처했어야 하며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위에서 말한 3할남과 연애를 할 경우, 연인이니까 당연히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가고, 하트를 날려가며 달달한 분위기도 형성하긴 하는데, 그냥 그게 전부인 사례가 대부분이다. 연애를 위한 연애, 또는 아주 잠깐 달아오르는 고립된 연애를 하는 거라고 할까. 심지어 어떤 커플은, 여자가 연락을 끊을 경우 남친이 그녀를 찾을 방법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둘은 나름 열심히 사랑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연애’를 제외하면 둘이 연결된 지점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3할남과 연애한 여성대원의 입장에서는 분명 처음엔 좋았으니까 ‘좋음->싫음’으로 변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여기서 보기엔
- 상대의 ‘내 즐거움 충족하기’란 동력으로 굴러가고 있었던 관계.
에 더 가까운 듯 보인다. 두세 달 간 상대가 이쪽을 접대하듯 대했기에 유지된 관계와 크게 다를 게 없단 얘기다. 때문에 간과 쓸개까지 빼줄 것 같던 영업사원과의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곧바로 남남이 되는 것처럼, 상대가 ‘접대해야 할 이유’를 잃게 되는 순간 이쪽은 짐짝 취급을 당할 수 있다.
M양과 상대의 카톡대화를 보면, 상대가 M양에게 인터뷰를 하는 듯한 부분이 8할이며, 나머지는 M양이 상대에게 건네는 일상보고와 먹는 얘기, 아픈 얘기, 회사 얘기가 거의 전부다. 난 둘의 카톡대화만 보고도 M양의 동선이 어느 정도 그려졌으며 M양의 호불호도 알 수 있었는데, 남자의 그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왜? 물은 적도 없고 꺼낸 적도 없으니까.
꼭 상대가 3할남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대시와 들이댐, 그리고 연애에서의 접대를 즐기기만 할 경우 훗날 갈등이 생길 경우 둘은 ‘헤어지잔 말 한 마디로도 관계의 뿌리까지 뽑히는 사이’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상대가 접대를 그만하기로 할 경우 이쪽에서는 불만족한 부분들을 쏟아 내고, 그럼 상대는 그것에 부담을 느껴 ‘뭘 더 어쩌라고. 그럼 헤어지든가’의 마음이 될 수 있고 말이다.
M양이 보낸 카톡대화의 40페이지와 140페이지를 비교해 보길 바란다. 그러면 사귀기 전인 40페이지에서는 서로 존대를 해가며 긴 대화를 나누지만, 140페이지에선 말을 놓은 채 거의 한두 단어만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가까워진 채 부담 없이 대화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내용으로 따지면 A4 한 페이지에 ‘푹 자고 일어나 출근해선 밥 먹는다’는 주제만 담겨 있을 뿐이다.
물론 카톡으로는 그럴 수 있다. 대개 카톡은 실시간 일상보고와 수다의 용도로 사용되니 그럴 수 있긴 한데, M양 커플의 경우 만나서도 ‘어디 가서 놀까’를 지우면 별로 남는 게 없는 데이트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나서 노는 게 즐거웠기에 M양은 그저 그 관계가 쭉 유지되며 남친이 슬슬 결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길 바랐던 것 같은데, 난 가까워지긴 했지만 친밀해지진 못했던 그 관계에 대해 남친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고자 난 매뉴얼을 통해 서로를 이어주는 ‘링크’를 많이 걸길 권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현 상황에서 M양이 할 수 있는 건, 지금이라도 이 관계가 M양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상대에 대해 M양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고백해 보는 것이다. M양은 분노와 불만족을 축적하다 이젠 ‘남친은 원래부터 날 사랑하지 않았는데 일부러 사랑하는 척 했던 것’이라는 생각까지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저주하며 이별하는 수밖에 없으니, 정말 그가 M양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면 M양의 마음을 고백해 보길 바란다. 지금까지 돌려 까거나, 일부러 핀잔주듯 이야기 하거나, 울면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 쏟아냈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3. ‘남친이 날 완전히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3할남을 만날 경우, 서서히 이기심을 드러내며 관계를 팽개쳐두는 그의 태도에 실망하고 불만족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연락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서운함과 불만족을 충전시키고 있다가 연락이 닿으면 터트리게 되는데, 이러한 태도는 이쪽을
- 24시간, 연중무휴 불만족. 밥 먹고 드라이브하고 영화봐도 불만족.
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불만족을 두 번이나 연속해서 쓰고 나니 저녁으로 불족발을 먹고 싶어지는데 지금 불족발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남친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족으로 인해, 연락하는 거의 모든 순간에 불평불만만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를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심한 경우, 정말 남친에게 무슨 일이 생겨 연락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든가 또는 남친이 그다지 긴 텀 없이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쌓인 분노와 불만족으로 인해 무조건 폭발하는 사례도 있다. 그럴 때 남친이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라 화냤냐고 물어보면,
“화 안 났어. 그리고 화났냐고 물어보지 말고 서운한 게 있냐고 물어봐야지.”
라며 쏘아대는 일도 벌어지곤 하는데, 만날 때마다 이래버리면 계속 만나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어디까지 참다가 그렇게 폭발하고 마는 건지 나도 모르는 건 아닌데,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때 폭발하거나 매번 폭발만 하는 건 최악의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그리고 M양의 경우, 위에서 말한 문제와 함께
- 남친이 날 완전히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음.
- 남친에게 결혼에 대한 열망이 없어 보임.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문제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M양은
“남친이 결혼 얘기를 하지 않는 건 신중해서 그러는 건가요, 아니면 저는 열외대상으로 놓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요?”
라고 내게 물었는데, 둘이 사귄 지는 이제 고작 두 달 되었으며 만난 건 열 번 밖에 안 되지 않는가. 물론 남친에게 3할남의 성향이 짙고 또 둘이 결혼을 전제로 한 선자리에서 만난 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M양의 그런 생각은 아주 보통의 연애에서도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리고 M양 역시 아직 상대의 신발사이즈도 모르면서 ‘완전히 좋아하는 것’만을 바라진 않았으면 한다. 상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가? 상대와 친한 친구 셋의 이름을 댈 수 있는가? 상대의 가정사가 어떤지 알고 있는가? 두 사람은 서로의 친구들도 다 알만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는 사이인데, 그런 와중에 ‘완전히 좋아하는 것’, ‘완전한 사랑’같은 걸 바라는 건 욕심이라 할 수 있다.
M양은 연애 중 ‘상대는 결국 날 떠날 것. 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만들곤 그걸 증명하기 위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런 생각은 둘 모두를 괴롭게 만들 뿐이며 ‘미래에 대한 보장’을 추구하다 현재에 있는 ‘연애의 즐거움’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싸워서 약속과 맹세를 받아낼 수 있고 그게 영원토록 변치 않는 거라면 나도 ‘목숨 걸고 약속 받아내는 방법’같은 매뉴얼을 작성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얘기하듯 한 번의 전투에서 이긴다고 해도 전쟁에서 지면 그 승리는 의미가 없어질 수 있으니, 찰나의 승자가 되려 하지 말고 넓게 멀리까지 보며 관계를 꾸려갔으면 한다.
좋은 목요일이다. 까망이(7개월, 고등어태비) 모래가 다 떨어져서 마트 문닫기 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으니, 오늘 배웅글은 생략하도록 하자. 오늘부터 한파가 물러간다고 하던데, 다들 끝나가는 겨울밤 즐겁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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