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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인 남친, 수동공격적인 여친.

by 무한 2017. 2. 11.

이 사연은 ‘장거리’가 문제였던 것 같다며 내게 도착한 이별사연인데, 여기서 보기엔 두 사람이 멀리 떨어져있었다는 것은 나중 문제인 것 같다. 그것보다 큰 문제는 남친이 권위적이며 신경질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사연의 주인공인 A양이 수동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것 외에 이 관계가 끝나는 것을 훨씬 더 많이 아쉬워하는 쪽이 A양이었다는 문제, A양과의 연애를 지속할 경우 상대는 추후 이민생활을 해야 한다는 문제 등도 있다. 난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야 좋을지 몰라 난 어제 하루 종일 고민했는데, ‘누구누구의 문제’로 나눠서 작성하기엔 너무나 복잡하니

 

- 왜 이렇게 되었는지

-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

-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로 나눠서 살펴보도록 하자. 출발!

 

 

1. 왜 이렇게 되었나?

 

내가 관계를 맺고 지내는 사람 중엔, 어쩌다 서로 한 번씩 서로의 호출에 미지근하게 응답한 뒤부터 아주 얕은 관계만을 유지하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아마 내가 먼저 그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자 그는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이후 똑같이 내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서너 번 하다 보니, 서로 꿍하게 품고 있던 감정이 딱딱하게 굳어 무덤덤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언젠가 매뉴얼을 통해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듯, 내 친구가

 

“예전에 네가 학교 친구들은 안 챙기고 학원 친구들만 챙겨서 좀 섭섭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나는 또 거기에 화답하며 딱딱하게 굳었던 감정을 녹이는 작업을 했던 것처럼 그런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좀 풀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살짝 괘씸한 감정을 느낀 적도 있는데다 나 역시 내가 아쉬운 듯 먼저 손을 내밀고 싶진 않기에 그냥저냥 두고 있는 중이다.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내는 거라면 나와 저 사람의 관계처럼 지내도 된다. 그런데 연인이라면, 반드시 무엇 때문에 어떻게 감정이 상했는지, 또 어느 부분이 서운했으며 당시 난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건지를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위에서 말한 나와 지인의 관계처럼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며 겉으로는 그저 장기판의 말을 놓듯 ‘승부’라는 생각으로 공방만을 하게 되니 말이다.

 

A양 커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저래왔던 것 같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이를 갈고 있는 부분이나 언제 한 번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카톡대화를 읽는 내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누가 먼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첨부된 카톡대화엔 가장 최근의 대화만 있으며, 거기엔 이미 지긋지긋해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사람의 모습만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A양 – 내가 보낸 거 안 보여? ㅋㅋㅋㅋㅋ

남친 – 보여.

A양 – 작아서 잘 안 보였나 보네.

남친 – 보인다고.

A양 –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

남친 –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 아니라 기분 나빠서 한 말이겠지.

A양 – 나 웃으면서 말했잖아.

남친 – 그래.

 

이렇게만 잘라놓고 보면 남친의 신경질적이며 비뚤어진 태도만 너무 부각될 수 있는데, A양 역시 ‘알면서 일부러 물어보는 듯한 모습’을 좀 보이며 남친을 도발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려 들며 그 중 하나를 남친이 틀릴 경우, 분명 A양은 웃는 표정을 짓곤 있지만 말에 뼈를 담아 상대를 탓하는 듯 이야기하는 거라고 할까.

 

이 매뉴얼을 읽을 사람은 남친이 아닌 A양이니 A양의 잘못을 좀 더 말하자면, A양은 분명 진심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진심인 듯 말하며, 단순히 분위기를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과하는 척을 할 때가 좀 많다. 자신의 생각을 돌려서 말하며, 그것에 상대가 화를 좀 내려고 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는 척’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A양은 ‘장거리’라는 것이 둘에게 이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물론 영향을 전혀 안 끼친 건 아니지만 난 차라리 두 사람이 ‘장거리 연애 커플’인 까닭에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거라 생각을 한다. 아예 확 감정을 다 드러내며 싸웠으면 진작 다 풀리든가 헤어지든가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채 둘 다 한 발 물러나 의무적으로 다정하게 마무리를 하거나 대충 참고 넘기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관계가 되고 말았다.

 

역시나 또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A양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남친에게 연락을 할 것 같으니, 이 얘기도 해야 할 것 같다. 남친이 보인 속좁음과 치졸함, 그리고 A양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은 내가 받아 본 사연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게 A양에게 있는 문제로 그가 서서히 그렇게 변한 것이든 아니든, 여친을 그렇게 쥐 잡듯 잡으며 숨 쉴 구멍도 만들어주지 않는 사람과 계속 만나면 신경쇠약은 필연적인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는 이제 A양을 굴복시키는 것, 그리고 약점이라도 보이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학대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일부러 A양에게 신경질을 부리기 위해 밑밥을 까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대충 말해놓고는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을 내는 모습까지 보인다. 본인 기분 좋을 때에는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하긴 하지만, 평소 A양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어 보이는 남자. 난 A양이 연인이기 때문에 헤어지면 안 되며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건 잠시 내려놓고, 과연 이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가 행복할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2. 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위에서 이야기 한 것 외에 가장 큰 문제는, 남친이 A양과 계속 만날 경우 이민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친은 연애 초 그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으니 그러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이민생활을 하긴 좀 어려운 상황이고, 굳이 꼭 그래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며,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서라면 A양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는 게 그에게 나은 일일 수 있다.

 

A양은 이 지점에 대해

 

- 정말 사랑하는 거라면, 여친을 위해 맞춰줄 수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A양이야 한국에서의 삶을 대부분 정리하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은 채 욕심 없는 마음으로 사는 것일 수 있지만, 남친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의 입장에선 한국에 사이좋은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또 자리를 잡는 것 역시 전혀 문제될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A양이 원한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곳에 이민을 갈 필요는 없을 수 있다.

 

이런 굵직한 문제들에 ‘사랑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아 상대를 평가하려면,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식이라면, 남친이 한국에서 사는 걸 원할 경우 A양이 한국에 들어와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A양 역시 남친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런 협의 같은 건 아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한 관계가 성립되고 만 까닭에, 남친은 계속 자신만 손해를 보며 A양에 모두 맞추기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을 수 있다.

 

A양은

 

“남친이 이곳에 와서 몇 달 머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선 저랑 항상 붙어있으니까, 한국말로만 대화를 해서 언어가 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마치 제가 자기 미래에 방해가 된다는 듯이….”

 

라는 이야기를 신청서에 적었는데, 그건 사실일 수 있다. 그가 A양이 살고 있는 곳에 갔을 때의 상황을 보면, 마치 A양에게 입양된 애완동물처럼 있어야 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거기에 가보니 자신은 그저 A양의 정서적 공백을 채워주는 사람일 뿐인데다, 자신이 뭔가를 하려 하면 A양이 자꾸 불평하고 막아버리니 한계가 느껴졌을 수 있다. 내가 뉴욕에서 유학중인 친구네 집에 갈 경우, 친구는 학교도 다니고 자기 삶을 살지만, 난 그저 관광객의 신분 정도로 내 본 생활을 일시정지 해두고 그곳의 이방인으로 지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불평하고 막아버리는 것’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그건 A양이 가지고 있는

 

- 오로지 ‘우리’로 고립되려는 문제.

 

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내가 A양의 남친이라면, 난 내가 좋아하는 것도 A양이 싫어하면 싫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A양이 날 의심해 몇 번이나 내 폰을 몰래 본다는 것, 또 내게 좋은 사람들이라 함께 만난 건데 A양이 싫어하는 기색을 보여 중간에서 난감한 입장에 처한다는 게 좀 싫을 것 같다. 난 맞추기만 해야 할 뿐 인정을 받을 일도, 칭찬을 받을 일도, 또 내 주장에 A양이 진심으로 동의하며 따라줄 일도 많지 않다는 게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고 말이다.

 

역시나 이 매뉴얼은 남친이 아닌 A양에게 보내는 매뉴얼이니 짧게 정리하자면, A양이 ‘나의 행복’을 위한 고민과 시도와 계획은 많이 해보고 또 짜봤지만, ‘남친의 행복’이란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무감각하고 별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A양은 분명 ‘우리’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걸 냉정하게 뜯어 놓고 보면 결국 A양의 입장에서 A양의 사정과 감정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했던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보길 권한다.

 

 

3.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닌 걸 알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억지로 붙여 왔던 관계인 것 같다. A양은 상대가 이별을 말할 때면 패닉에 빠져 모든 걸 걸고 붙잡으려 하는데, 그러면 또 그런 모습에 상대는 마음 약해져 일단 다시 간판은 걸어두기로 하고,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렇다 할 영업도 안하는 그 가게의 간판만 달린 채 두 사람은 출퇴근만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A양 역시 이별 후 외롭고 슬프고 막막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마음정리를 한 감정도 드는 것이고 말이다.

 

난 A양에게,

 

“2017년 2월에 발을 딛고 생각하세요. 한국을 떠나기 전 남친과 함께, 그리고 남친을 포함해서 계획을 세웠던 것의 연정선이 아닌, 오늘날 이 시점으로 와서 새롭게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우고 지금을 살아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A양이 그렸던 이민의 그림은 남친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기에 남친을 잃은 지금 표류하고 있는데, 그래버리면 계속 또 헤어진 후에도 매달려 남친을 돌리려 하거나 지금 시점에서 그린 남친과의 미래가 캄캄하더라도 당장이나마 의지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면 이별의 유예기간만을 늘이는 일의 반복이 될 수 있으며, ‘연애’ 때문에 A양의 삶까지도 뒤로 미뤄둔 채 그것만을 유지하는 것에 목숨을 걸게 될 수 있다.

 

또, A양은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경우 정말 사소한 것까지 다 남친에게 묻고 의지하며 그의 마음을 붙잡아두려 하는데, 그런 모습은 상대에게 A양을 안고 가달라는 부탁처럼 느껴지고 만다. 카톡대화를 보면 사실 A양이 더 잘 알고 A양이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까지도 A양은 남친에게 일부러 더 묻고 의지하던데, 당장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려 한 그럼 모습들이 축적되어 상대에겐 A양이 ‘남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뒀으면 한다.

 

 

끝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난 A양이

 

- 연애를 하지 않으면, 남친이 없으면 난 어떤 사람인가?

 

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A양의 이민에는 애초부터 남친이 훗날 합류하는 걸로 계획된 까닭에 이별한 지금 패닉에 빠질 수 있긴 한데, 그런 패닉 때문에 임시로 수습해 당장 그럴듯하게 붙이기만 한 적은 이미 많다. 그런 처치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같은 문제를 발생시킬 뿐이었으니, 이제는 ‘우리’에만 목숨 건 채 상대에게 뭘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상대가 뭘 해주길 기다리지만 말고, 혼자가 된 지금 ‘지금 난 왜 여기 있으며, 당장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도 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조급해하면 안 된다. 당장 상대와 혼인신고를 해서 상대가 이민을 오기로 해 얼마쯤 같이 사는 걸로 문제가 해결되는 거라면 난 A양이 상대가 혹할 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겠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이제 다시 만나 상대만큼 가까워지기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이유로, 또는 원래 계획이 그러했으므로 어떻게든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만나는 건, 이후에 더 큰 절망과 어려움을 부를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A양의 상황이라면 몇 번은 더 찐한 연애를 해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으니, 지금 그 자리가 새로운 출발선이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내디뎌 보길 권한다. A양에겐 청춘이 아직 이만큼씩이나 남아있는데 뭘 그리 걱정하는가.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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