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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가정사도, 개인문제도 복잡하니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남친

by 무한 2017. 4. 21.

어쩌면 이미 둘은 헤어졌을 것 같은데, 사연을 보면 두 사람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가 등장한다. 이유 중 두 가지는 남자의 문제, 한 가지는 N양의 문제다. 오늘은 오랜만에 하나하나 번호를 붙여 디테일하게 살펴보자.

 

 

 

1. 정확하게 말하고 설명하지 않을 때 벌어지는 문제. 

 

연인이라고 하면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정말 중요한 건 모른 채 그런 사이가 되기만을 기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 나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것.

- 내 가치관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것.

- 만나며 서로를 겪는 과정을 통해 나의 패턴과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상대의 그것을 경험하는 긴 시간을 가질 것.

 

등이 필요한데, 열에 아홉은 ‘우리가 지금 연인이며 서로 사랑하니까 그냥 저절로 알아서 그렇게 되길’ 바라기만 하는 것이다.

 

내가 N양의 남자친구라고 가정해 보자. 난 내 친구 J군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 만사를 제쳐두고 J군을 도울 것인데, 이건 내가 의리를 중요시하는 뭐 그런 타입이라서가 아니라, J군이 내게 친구이자 은인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J군이 나를 위해 자신의 무엇까지 내줄 수 있는지를 난 경험했고, 돌아보면 난 그러지 못했기에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J군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N양에게 하지 않는다면, N양은 J군에 대한 내 태도를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든가 ‘친구일 뿐인데 뭐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냥 먹고 마시고 노는 데이트를 할 때에야 서로 크게 생각하는 바가 다를 일 없으니 별 문제 없지만, 다른 사람에 관련되었다거나, 가정에 관련되었다거나, 자신이 고민하는 바에 관련된 문제들에선 의미가 다를 수 있으니 갈등과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N양의 남친은 말을 너무 안 했다.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을 안 한 건 물론이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N양이 사과를 하려해도 그는

 

“우리 사이에 사과는 무슨….”

 

하며 그냥 알아서 기분 푸는 것으로 넘기기도 했는데, 이래버리면 둘의 초점조정이 어려워진다. 한 쪽은 계속 빨갛게만 보고, 다른 한 쪽은 파랗게만 보면서 참고 넘어가는 일만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속에 쌓아둔 채 말 안 하고 넘어가기’만을 하는 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서로의 한계를 설정하고, 실망을 축적하며, 참다가 폭발해 짜증을 내거나 잠수를 타버리는 일을 하게 되면, 그간 둘의 ‘사랑’이라 믿어왔던 감정은 뭘 몰라서 잠깐 착각하고 오해하거나 사람 잘못 봐서 생긴 감정으로 여겨지게 된다.

 

 

2. 호의와 배려의 잘못된 방향.

 

‘우린 데이트 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이런 거 저런 거 한다, 남친이 이런 것까지 다 해준다.’ 같은 건 그냥 외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누군가 강남에 있는 50평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밖에서 봤을 땐 그가 별 고민 없이 룰루랄라 사는 것 같겠지만, 그 집에 사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대화도 안 하고 각자 방에 들어가 할 일만 하며 하루 종일 얼굴도 마주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 그건 수감생활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차 탈 때 문 안 열어줘도 된다. 차 문 열어주는 것보다,

 

“나 오늘 한 잔 해요~ 먼저 자요~”

 

라고 말한 뒤 연락두절 되고 마는 걸 안 하는 게 더 중요한 거다.

 

더불어 의식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상대를 접대하듯 모시는 그런 행동을 다 해놓고는, 다른 부분에서

 

- 내가 그렇게까지 배려를 해줬는데도 불평불만이 있나.

- 잘해줘도 모르는 게 정말 싫다.

- 배려와 헌신을 받았으면 이해도 하고 양보도 해야지.

 

라며 퉁치려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건 마치 ‘하루에 100ml씩 물 주면 되는 나무에 2리터를 줬으니, 앞으로 20일은 물 안 줘도 되겠지?’, ‘화분을 열 배 비싼 걸로 바꿔줬으니 분갈이는 안 해줘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연애엔 관계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돌봄, 그리고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거지,

 

- 내가 비싼 밥 사고 차 탈 때마다 문 열어줬으며 집에까지 데려다줬으니, 앞으로 한 며칠 내 할 일만 해도 상대는 고마워하며 조용조용 내조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그 방향이 잘못된 호의와 배려와 헌신을 베풀면, 그건 모두 애먼 노력이 될 수 있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난 사연 속 N양 남친의 태도를 보며, 이 사람이 정말 N양을 반려자로서 존중하며 만나고 싶어 하는 건지, 아니면 마치 반려동물을 막 입양했을 때처럼 일단 예뻐해 주고 아낌없이 베풀다가 시들해지고 만 건지 확실히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결혼에 관한 부분 역시 그는 말 나왔을 때 후딱 해치워버리려고 하는 듯이 급하게 진행하려 했는데, 어쩌면 ‘당장 N양이 나 좋다고 하고 이렇다 할 문제가 없으니, 얼른 결혼 해버려도 문제없을 듯’이란 생각에 급하게 추진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여름 오기 전에 얼른 결혼해야 해서 시간이 없으니 친지들 모셔서 인사하고 혼인신고 먼저 하자’며 쫓기듯 하는 결혼은, 이후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결혼이 대체 얼마나 급하길래 얼른 막 서로의 부모님께도 출첵하듯 얼굴도장 찍고 서둘러 일단 친지들까지 불러 인사한 뒤 혼인신고부터 하려 했던 건지, 시간이 많은 지금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3. 결혼식장에만 들어가면 다 해결되는 걸까?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들이 N양 남친의 문제라면 이건 N양의 문제인데,

 

- 결혼식 전까지 잘 보여 아무 문제없이 결혼하는 것.

 

을 목표로 삼고 있다간

 

‘어쩌지? 결혼이 끝판 왕인 줄 알았는데 첫 판 왕이었네? 끝판까지 다 깬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었어.’

 

라는 생각을 반드시 하게 될 거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카톡대화만 볼 경우 N양에겐 별 문제가 없다. 긍정적이고, 리액션 괜찮고, 예쁘게 말하고 다 좋은데, 충격과 공포의 반전은 그게 N양의 100% 진심이 아니라는 거다. 노멀로그의 매뉴얼에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로 다시 말하면,

 

- 연애를 잘하는 게 아니라, 연애 역할극을 잘 하는 것.

 

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의 연애라면 그냥 구경하고 있어도 상관없지만, 이건 N양의 연애이며 둘은 갈등이 없었다면 이미 혼인신고까지 했을 수 있는 관계 아닌가. 그런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둘이 나누는 대화가 고작

 

-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싫어하는지?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한 거다. 저런 질문은 썸을 탈 때나 연애 극초반에 오가곤 하는 것인데, N양은 혼인신고 하기로 한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저런 걸 묻고 있다. 정말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남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 상황에서 계속 물어보면 분위기도 어색해지고 좋지 않을 것 같아 깊이 있는 대화는 안 했습니다.”

 

라며 건너뛴 채 말이다.

 

N양은 결혼하면 남은 반평생을 앞으로 상대와 함께 살아야 할 텐데, 그런 상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며 대부분 짐작만 하는 정도거나 상대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생각하며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다. 말을 꺼내지 않으니 당연히 마찰이 생길일도 만들어지지 않긴 하는데, 딱 그 만큼의 거리에서 더 친밀해지지도 못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이게 과연, 어찌되었든 결혼까지만 잘 버티면 이후에 전부 알아서 해결되는 것일까?

 

상대가 베푸는 대로 받고 하자는 대로 하며 별 생각 없이 예쁜 모습만을 보여주며 따라가다간, 나중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상대가 ‘넌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아’라는 말만 남긴 채 등을 돌리고 가버릴 수 있다. 결혼이 여행이라면, 누가 뭘 준비하고 뭘 맡을지 아무 대화도 안 한 채 ‘상대가 가자는 여행 따라가기’의 태도로 따라갔다가 여행지에서 나 먼저 집에 가네 마네 할 수 있는 거고 말이다.

 

N양은 신청서에도

 

“남자가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다면 저는 어떻게 액션을 취해야 할까요? 또, 만약 잘해보자고 하면 그땐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질문을 적었는데, 그렇게 무슨 ‘액션’을 취해야 하는 건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가깝지 않은 거라면 상대와 계속 사귀거나 결혼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하는 게 맞는 거다. 난 N양이 그렇게 어떤 모습을 연출해야 할지 고민하거나, 진심과는 차이가 있는 ‘상대 듣기 좋은 대답’ 같은 걸 해야 하는 연애 말고, 그냥 편하게 N양의 모습을 보여주며 만나고 진심을 말해도 유지가 되는, 그런 연애를 하다 결혼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매뉴얼을 길게 쓰고 나니까 속 시원하게 쓴 느낌이 든다. ‘천오백자연애상담’이란 코너를 만들어 짧게 쓰기 시작한 이유가 ‘그렇게 쓰면 하루에 두세 편도 발행이 가능할 것 같아서’ 였는데, 예상과 달리 짧게 써도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하루 한 편 밖에 발행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굳이 짧게 쓰려 노력하지 말고, 사연에 따라 분량을 조절하며 써야할 것 같다.

 

다 내려놓고 어디 가서 아무 것도 안 하며 그냥 누워 뒹굴뒹굴 하고 싶은 주말이다. 바닷가 근처에 숙소를 잡고 저녁에 나가 조개구이 먹고 밤바다 좀 보다가 들어오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올해는 봄 꽃게 풍년이라고 하니, 조개구이 대신 꽃게 사다가 쪄 먹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다들 편안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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