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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 정말 나이 때문에 밀어내는 걸까?

by 무한 2017. 5. 27.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가 정훈씨를 밀어낸 건 ‘나이 때문’이 10%, ‘노잼이기 때문’이 90%를 차지한다. 연애를 꼭 재미있고 재치있고 유쾌한 사람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인공지능 어플과 대화를 할 때보다 재미가 없다면 상대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긴 아무래도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정훈씨가 노잼인 건,

 

- 틀린 부분은 없지만 재미도 없는, 교과서식 대화법 사용.

- 자신이 먼저 부담을 갖고 대하며, 겁이 많아 조심만 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훈씨의 어떤 부분에서 저런 문제들이 드러나는지, 함께 살펴보자.

 

 

1. 틀린 부분은 없지만 재미도 없는, 교과서식 대화법.

 

정훈씨와 상대의 대화를 하나 보자.

 

상대 - 저 오랜만에 친구 보러 가요.

정훈 - 친구랑 동네에서 보는 거예요?

상대 - 아뇨 친구는 대전 살아서 대전에 가요.

정훈 - 친한 친군가 보네요. 대전까지 보러 가고.

상대 - 전에 같은 직장에 있던 친구예요. ㅎㅎ

정훈 - 대전엔 버스타고 가는 거예요?

상대 -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기차타고 가려고요. ㅎㅎ

정훈 -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즐겁게 놀다 와요.

 

무색, 무미, 무취의 느낌이랄까. 자리 뜨고 나면 방금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으며 왜 대화를 했던 것인지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단순한 대화다.

 

정훈씨는 이걸 두고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질 않아요. 마음이 없어서 일까요? 상대가 답을 잘 안 하거나 단답으로 보내면 알아서 제가 포기할 텐데, 그런 건 또 아니고….”

 

라고 말했는데, 둘의 대화가 사막화 되어가는 건 8할이 정훈씨의 탓이다.

 

정훈씨는

 

“~는 ~한 거예요? / 그렇군요 ~잘하세요.”

 

라는 패턴의 화법을 사용하는데, 그래버리면 상대 입장에선 받아주기가 어려워진다. 만약 정훈씨와 내가 대화를 한다면, 역시나

 

정훈 - 하루 전이긴 하지만, 내일 만나자고 해봐도 될까요?

무한 - 상대가 쉬는 날이고 약속 없다는 건 대화를 통해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될 것 같아요.

정훈 - 네, 그럼 연락 한 번 해보겠습니다.

(잠시 후)

정훈 - 내일 강원도로 결혼식 간다네요. 결혼식 끝나고 볼 수 있냐고 말해볼까요?

무한 - 강원도 다녀오면 늦을 테니, 그건 좀 별로일 것 같아요.

정훈 - 아무래도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정도의 대화로 그치고 말 것 같다. ‘용건만 간단히’의 대화이며, 어떻게 보면 ‘답정너’의 형태의 질문만 반복되는 까닭에 정훈씨의 질문을 받는 사람은 정해진 대답만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화를 하나 더 보자.

 

정훈 - 회사 도착은 잘 했어요?

상대 - 네 ㅎ 아침 안 먹고 와서 김밥 먹는 중이에요.

정훈 - 곧 일 시작하겠네요. 다치지 않게 일 조심히 하세요.

 

이건 배드민턴에 비유하자면, 연달아서 3~40회 셔틀콕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한두 번 셔틀콕을 주고받은 뒤 손으로 붙잡는 것과 같다. 이쪽이 엉뚱한 곳으로 셔틀콕을 치든 상대가 친 셔틀콕을 이쪽이 못 받든 그냥 좀 치면서 웃고 즐기면 되는 건데, 정훈씨는 정자세로 쳐서 셔틀콕을 한 번 주고받은 후 ‘좋았어. 일단 여기까진 실수 없었어. 분위기 괜찮았어.’라는 느낌으로 셔틀콕을 잡는 것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어찌 그 게임이 재미있을 수 있으며, 또 누가 계속 정훈씨와 게임을 하려 하겠는가. 대화가 매끄럽지 않으며 짧게 끝나고 만다고 속상해하지만 말고, 입장을 바꿔 상대가 정훈씨처럼 묻고 대답한다면 정훈씨는 과연 대화를 더 이어갈 수 있을지 차분히 돌아보길 권한다.

 

 

2. 자신이 먼저 부담을 갖고 대하며, 겁이 많아 조심만 함.

 

내가 정훈씨의 사연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던 건,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딱 한 마디로 받고 마는 경우도 있다는 거였다.

 

상대 - 점심시간이네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정훈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씨도 맛있게 드세요~ ^^

 

소개팅 한 사이라고 해서 뭐 서로 하루 종일 수다를 떨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건 없지만, 하루에 그냥 저 대화 딱 하나 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게 내겐 살짝 컬쳐쇼크였다. ‘상대에게 마음이 있고 연애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면서, 대체 왜 고작 저렇게만?’이라는 궁금증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상대에게 정훈씨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정훈씨의 말과 행동을 통한 표현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기억하자.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정훈씨는 ‘소개팅을 통해 만난 연상남’이란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 그걸 넘어 ‘의미 있는 사람’이 되려면 정훈씨에 대해 알리고 정훈씨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정훈씨는 자신이 먼저 부담을 가진 채 상대를 대하며 앞선 걱정들로 조심만 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초반, 상대가

 

“미세먼지 따윗.. ㅎㅎ”

 

이라는 반응을 보인 건, 긴장 풀고 좀 편하게 대화하자는 마음으로 귀여운 모습으로 보인 거다. 그런데 상대의 저 반응을 정훈씨는

 

“그래도 ~해서 다행이네!”

 

라며 다큐로 받고 말았다. 그냥 좀 긴장 푼 채 농담도 해갈 수 있는 걸, 정훈씨는 너무 진지하게, 정석대로만 받고 만 것이다.

 

이렇게까지 조심하고 자기검열하면, 뭘 할 수가 없다. 어머니 친구 분 딸을 소개 받아 두 사람의 얘기가 양쪽 어머니들께 전달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상황도 아닌데, 조심한답시고 진부한 안부인사와 대여섯 마디로 끝나는 카톡만 주고받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장래희망이 ‘안부머신’인 게 아니라면, 자꾸 “~하셨어요? 네 ~하세요.”라는 말을 하기 위해 말을 건 사람처럼 굴 필요는 없다.

 

정훈씨가 일하는 날 상대는 쉬며 동네 구경을 간다고 하면, 어디서 뭘 하는 중인지 물어본 뒤 자연스레 상대가 먹거나 다닌 곳에 대해 리액션을 해줄 수도 있는 거고, 같이 갈 사람 없어서 혼자 갔다고 상대가 푸념을 하면 다음에 어디어디 같이 가자고 슬쩍 던져볼 수도 있는 거다. 지금처럼 그냥 “잘 보고 조심히 들어가~ ^^”정도로 끝낼 게 아니라, 두 발짝 정도는 더 훅 들어가서 이끌도록 하자.

 

 

3.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정훈씨는 한 두어 달 정도 이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다 그때쯤 고백을 해 볼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상대의 원 안으로 더 다가서지 못한다면 지금이나 그때나 변하는 건 없을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앞으로 곧 더워질 테니 미리 냉면 얘기 꺼내 기호를 물어본 뒤 조만간 뼛속까지 시원한 물냉면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해도 되고, 상대가 닭갈비 좋아한다고 하면 둘이 ‘닭갈비 원정대’를 조직해 ‘절대 닭갈비’를 찾아보기로 해도 된다.

 

사연엔 두 사람이 각각 다녀왔지만 같은 곳을 여행 다녀온 적 있다고 적혀 있는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한 장 보여주거나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건 상대와 썸을 타려는 사람으로서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을 주고받으며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수십 가지는 될 텐데, 이 아까운 걸 왜 그냥 ‘그래요? 그렇군요’정도로 넘기고 마는가.

 

정훈씨는 잘 만든 영화 한 편을 보고는 영화에 반해 그 감독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 보거나, 웹에서 좋은 글을 읽고는 그 글쓴이가 쓴 다른 글을 검색해 보거나, TV에서 본 어느 프로그램이 흥미로워 다음 방송을 기다린 적 없는가? 바로 그런 ‘계기’가 되는 게, 위에서 말한 ‘여행사진 주고받으며 여행 이야기 나누기’이다. 매일 안부 묻고 행운과 행복을 빌어주는 걸 세 달 동안 하는 것보다, 삼십 분을 대화하더라도 그 대화 속에서 정훈씨라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있게 만드는 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울림을 상대에게 남긴다는 걸 기억하자.

 

내가 정훈씨라면 자꾸 상대에게 뭘 묻기 보다는 내가 먼저 앞장서서 상대에게 제안을 할 것 같다. 정훈씨도 제안을 하긴 하지만

 

“차주 주말에 시간 되세요?”

 

라는 식으로 너무 루즈하게 물으며, 제안을 한 뒤에도 자꾸 뭔가를 물어 또 확인을 하려 한다. 늘 얘기하지만, 리드란 상대가 하고 싶다는 거 물어가며 해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생각도 못했던 것(멋지고 비싸고의 의미가 아니라, 관심 없었는데 관심이 생길 정도로 괜찮은 것이란 의미)을 앞에 펼치는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둔 채 만나보길 권한다.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해주고 싶은 건, 자꾸 둘 이외의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그들의 도움을 받아 관계를 진행시킬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다. 정훈씨가 스스로 뭔가를 하기도 전에 상대의 결정이 어떤 것인지를 주선자를 통해 두 번이나 알아봤던 것, 그리고 상대를 아는 지인에게 상대에 대해 묻고 같이 평가를 한 것 등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까여도 내가 해보고 까이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스텝을 좀 밟아야지, 링 구석에 기댄 채 코치진에게 조언만 구하고 자꾸 심판과 대화하려고만 들어선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상대가 바쁠 것 같아서 연락을 하려다 안 하고, 상대가 피곤할 것 같아서 만나자고 하려다 말 안 꺼내고,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할까 하다가 말면, 상대와의 거리를 좁힐 방법은 없다. 그리고 바쁘고 피곤하고 부담스럽고 뭐 그런 건, 이 관계가 설레거나 즐겁거나 재미있어지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감정들이다. 그러니 나무에 올라가 보지도 않은 채 ‘못 오를 것 같은데?’하며 바라만 보고 있지 말고, 일단 시도라도 해보길 바란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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