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을 보내고 나면 아마
“남친과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이런 집이 정상인가요?”
“저희 어머니와 여친이 싸웠습니다.”
등의 사연이 밀려들 것 같다. 손님으로 간 건데 취조를 당해서 불쾌했다는 사연부터 물건을 던지거나 발로 차는 일이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사연들까지, ‘명절인사’라는 키워드가 담긴 사연들은 대개 늘 그랬다.
그런데 설 전날이 바로 까치들의 설날인 것처럼, 명절인사 이후에 싸우는 커플들 말고 명절인사 이전에, ‘인사를 가네 안 가네’로 싸운 커플들의 사연은 내게 미리 도착해 있다. 그 대원들은 왜 싸우게 되었으며 싸우고 난 지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1. ‘명절인사’의 의미가 달라서 벌어지는 갈등.
언젠가 결혼정보회사의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 있다. 거기엔 ‘명절인사 타이밍’에 대한 남녀의 생각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남자의 절반 정도가 명절인사에 대해
- 사귀기 시작했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의 8할은
- 결혼 약속 이후.
에나 명절인사를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난 명절인사에 대한 매뉴얼을 썼다가 여성 독자 분들로부터 귓방망이를 맞을 뻔 한 적 있는데, 그게 바로 저런 차이를 생각하지 않은 채 남자입장에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것 말고도 또 갈등이 생길 소지가 다분한 게, ‘명절인사’를 아예
- 결혼 이후
에나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남자도 17%나 있다는 점이다. 여자들의 경우 겨우 3% 정도만이 결혼 이후에 명절인사를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런 지점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하지 않으면 ‘상대는 왜 명절인사를 오지 않거나 거부하는가?’라는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 있고, 그저 속으로만 ‘그래서 그러는 것인 것 같다’는 오해를 키워가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난 상대에게 ‘명절인사를 올 것인가?’를 묻기 전에, ‘명절에 인사드리러 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묻길 권하고 있다. 명절인사에 대한 의미가 서로에게 어떤지를 좀 알고 난 후에 올 건지 안 올 건지를 물어야지, 그저 자신의 의미대로만 해석해
명절인사를 안 온다. -> 결혼까지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 그렇다면 이 연애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 그러지 부질없이 이 관계를 붙잡고 있지 않겠다.
라는 결론에 이르면 이별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오해는 커질 대로 커지고 감정은 상할 대로 다 상한 뒤에야 ‘내 속 생각’을 말하지 말고, 미리미리 충분한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 평소 “밥 먹었어?”, “언제 끝나?”, “잘 거야?” 같은 것만 묻지 말고, 서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자.
2. 명절인사를 처음 소개하는 자리로 삼는 건 적절치 않다.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부모님과 연인의 첫 만남은 딱 ‘부모님과 상대’만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게 좋다. 사람이 많아지면 오해가 늘어날 수 있으며, 거기에 장난기나 샘이 많은 친척이라도 하나 끼어있을 경우 상대가 저평가를 받거나 서로를 오해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 친척들과 ‘남친 학벌배틀’이 벌어져 내상을 입은 경우.
- 사 온 선물로 비교를 당해 자존심이 상한 경우.
- 푼수 같은 친척이 헛소리를 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경우.
- 샘 많은 친척이 상대를 짓눌러 분위기가 나빠지는 경우.
- 속물적인 질문들을 하고 그걸로 그 자리에서 평가하는 경우.
등으로 헤어지게 된 사례가 꽤 많다. 명절인사를 드리러 온 상대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 했는데, ‘대신 뭔가 물어봐주겠다’며 나선 친척이
“(상대 부모님에 대한 질문 중)그럼 뭐 도매 하시는 건가? 아, 도매 말고 소매? 그럼 그냥 시장에서 그거 파시는 거지? 그게 요즘도 수요가 있나?”
따위의 질문을 하기도 하고, 이후 다른 친척들에게 ‘걔가 만나는 여자애네 집안이 별로’라는 소문을 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엎질러지고 나면 수습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연인이 저런 상황에 처하도록 만드는 일은 피했으면 한다.
그리고 ‘상대가 명절인사를 오나, 안 오나’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상대가 명절인사를 드리러 올 경우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 확실한지’부터 꼭 살펴봤으면 한다. ‘친척이라는 복병’의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원래 부모님과 대화도 별로 없고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아 상대가 불편한 상황에 놓이고 마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으시고, 어머니는 몇 마디 나누다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계실 뿐이면 상대는 분명 당황할 수 있다. 이게 자신에게는 익숙한 일이며 두 분 모두 ‘내 부모님’인 까닭에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상대는 처음 뵙는 분들이 그러시는 걸 냉대라 생각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와중에 연인이
“이제 가자. -(부모님께)저 나갔다 올게요.- 아냐 됐어 놔두고 일어나. 그냥 가도 돼.”
라는 이야기를 하면 뭘 어쩌라는 건지 몰라 답답할 수 있다. 연인의 저런 리드를 따라 움직였을 뿐인데, 부모님께는 괜히 미운털이 박히게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이런 명절인사는 안 드리는 것만 못하니, 이걸 그저 친구 불러서 집에서 밥 한 끼 먹고 나오는 것 정도로 너무 가볍게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3.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게,
- 연인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오면 확인하게 되는 것.
- 연인이 보면 실망할까봐 걱정되는 것.
- 연인이 보고 나서 태도가 바뀔까봐 불안한 것.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명절인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냥 딱 둘만 밖에서 만나 데이트하며 돌아다닐 땐 아무렇지 않지만 ‘집’이나 ‘집안’과 관련되어 위축되는 부분이 있다든지, 아니면 ‘상대가 환영받지 못할 것’이 걱정되어 그렇다든지, 또는 ‘상대에게 착한 거짓말을 했는데 오게 되면 들키고 마는 것’이 있다든지 하는 이유로 명절인사를 거부하는 걸 말한다.
연인이라고 해도 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또 이야기는 했더라도 속으로 지울 수 없는 자격지심이나 불안 등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며, 말 할 타이밍을 놓쳐 못 말했는데 지금 당장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집에 데려와 확인시킬 수 없는 것들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네가 오는 게 아직 아닌 것 같다고 해서 그럼 나라도 간다고 한 건데, 왜 그것도 못 하게 하냐.”
라고 따져선 안 된다는 걸 기억하자. 꼭 저런 말을 안 하더라도 ‘오지도 않으면서 가는 것도 못 하게 한다’며 속으로만 꿍할 필요도 없다.
난 평소 매뉴얼을 통해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미래엔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꼭 공유하세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게 된다면 이런 ‘아직 말하지 못한 것’ 때문에 고민하거나 오해하게 될 일은 좀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의 지금을 즐기는 것’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무슨 삶을 살아온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꼭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권한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내겐 내 부모님이라 익숙하고 편한 반면 상대에겐 분명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부모님들께서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 상대는 상대 나름대로 옷차림, 첫인상, 선물, 예의, 나눌 이야기 등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고, 부모님들도 낯선데 거기다 친척들까지 모인자리라고 하면 그게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니
-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너는 왜?
라며 상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상대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거나 그럴만한 부담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자. 그게 “아 괜찮아. 그냥 가도 돼. 부담 가질 필요 없어.”라는 말 한 마디 한다고 쉽게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 갈등을 둘이 좀 더 가까워지며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로, 또 상대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는 반성의 계기로, 또 속깊은 이야기들을 하며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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