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민상씨라도 그녀에게 확신을 가지긴 어려울 것 같다. 아니, 확신을 갖고 못 갖고의 문제가 아니라 ‘날 정말 좋아하긴 하는 건가?’라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울 것 같다. 분명 그녀가 먼저 고백했고, 민상씨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에도 그녀가 한 번 잡았지만, 연애가 진행되는 걸 보면 그녀는 이쪽을 ‘물주’나 ‘지갑’ 정도로 생각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기 돈 아까운 건 알면서 남의 돈 아까운 건 모르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 게 좋다. 소고기 얻어먹을 생각은 하면서 치킨 한 번 살 생각은 안 한다든지, 어딜 같이 놀러 가자고 했더니 거기 가서 쓸 뭐가 없다고-선물해달라는 뉘앙스로- 말한다든지, 뭐 하나 빌려줬더니 그걸 쓸 때 필요한 다른 것도 같이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남친이 해주는 것들을 보며 날 그만큼 사랑한다는 걸 느끼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꺼냈던 얘기들이었고, 뭐 제가 엄청나게 과한 걸 요구했나요? 연인이라면 충분히 해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한 건데요?”
라는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바라는 것들을 반대로 요구했을 때
‘어떻게 감히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지?’
하게 된다면 그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거다.
-너는 나를 위해 뭐든 다 해야 하지만, 네가 내게 뭘 해달라고 하면 정떨어진다.
라는 관계는 일방적이며 불공평한 관계 아닌가.
민상씨도 여자친구의 저런 모습이 분명 정상적이진 않다는 걸 눈치 채긴 했는데, 그걸 좀 긍정적으로 해석해선
“여친은 마치 저에게 ‘넌 이런 사람이어야 해’라는 결과를 내놓고 연애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가 너무 맹목적으로 처음부터 헌신해서 여친의 기대치를 높여둔 건가?’
하는 생각까지를 하고 있고 말이다.
난 민상씨가, 지금처럼 이런 의심과 염려를 애먼 곳으로 돌려서는
“근데 우리 사귀는 거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어?”
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 대답을 듣고 안심하려 하지 말고, 과연 상대가 민상씨에게 벌어진 일을 손톱만큼이라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지를 차분히 살펴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여기서 보기에 그녀는 민상씨가 자기 얘기를 좀 늘어놓으려 하면 그게 지루해서 화제를 돌려버리고, 민상씨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나를 위해 이걸 해줄 수 있나, 저것도 해줄 수 있나’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내가 경악했던 건 민상씨가 뭔가를 사려고 했을 때 그녀가 그거 사지 말고 그냥 맛있는 거나 사먹자고 한 부분, 그리고 민상씨가 뭐 먹고 싶다며 일부러 그녀에게 사달라고 하자 그녀가 ‘나도 먹고 싶다. 오빠가 사줘’라고 한 부분이다. 민상씨는 그런 그녀를 떠보기 위해서 일부러 ‘나 뭐뭐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는 거기에 1g의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가볍게 넘기거나 다른 얘기를 해버리고 만다.
난 이 관계가, 하루만 민상씨가 지갑을 안 가지고 나가도 끝날 관계라고 생각한다. 아니, 한 번 정도야 그녀가 살 수 있겠는데, 만약 그녀가 그 날 5만원을 썼다면 그 보상으로 그녀는 민상씨에게 호텔뷔페를 예약하라고 말할 것 같다. 이게 내가 막 그녀를 일부러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둘 사이에 벌어진 적 있기에 하는 얘기다.
그녀가 5만원 썼으면 민상씨가 그 다섯 배, 여섯 배는 써야 유지될 수 있는 연애. 그 흔한 연인끼리의 일상적 공감이나 공유도 없는 이 연애를 왜 계속 지속해야 하는지, 차분히 세 번 정도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민상씨가 헤어지자고 할 경우 그녀는 또 ‘너무 성급하게 판단한다. 난 우리가 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라고 할 가능성이 높은데, 딱 그 순간에만 그러는 그녀에게 넘어가 관계를 계속 지속할 경우, 영혼까지 털리게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잊지 말길 바란다.
놀러가는 돈 민상씨가 다 내고 가서 밥도 민상씨가 살 거고 운전도 민상씨가 할 건데, 거기 가서 신을 신발이 없다며 사달라는 뉘앙스를 보이는 사람과는 인연을 끊는 게 맞는 거다. 이미 과할 정도로 그녀에게 많이 사주고 베풀고 공유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피자 한 조각 얻어먹을 수 없는 관계를 과연 ‘연애’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그녀가 ‘오빠는 섬세하게 챙길 줄 안다’는 칭찬을 했다고 또 신나선 고래와 함께 춤추며 ‘더욱 섬세하게 챙기는 걸 보여줘야지’하고 있다간, 2017 국가대표 호구 선발전에서 순위권에 들 수 있다는 것 역시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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