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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진짜 괜찮은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연애할 생각 없대요

by 무한 2017. 7. 4.

우선, 난 소영씨에게

 

-그 남자에 대해 내가 뭘 얼마나 아는지?

 

를 돌아보길 권해주고 싶다. 차분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소영씨는 그를 딱 한 번 봤고, 이후에도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주제로 삼아 몇 차례 대화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를 두고 ‘진짜 괜찮은 남자’라고 평할 만큼 그를 겪어본 적은 분명 없단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영씨가 그에 대해 그런 평가를 하는 건, 그가 ‘엄마 친구 아들’이며 그에게 소영씨는 ‘엄마 친구 딸’이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그런 관계는, 모든 말과 행동이 결국 서로를 통해 ‘엄마 친구’에게 전해질 수 있으니, 예의바르고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말고는 사실 선택지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소영씨가 우리 엄마 친구 딸이라면, 나 역시 소영씨에게 일단 칭찬부터 늘어놓을 것이며, 소영씨가 계속 연락하는 게 민폐처럼 느껴져도 최대한 웃는 낯으로 대답을 해줄 것이다. 나도 이십대 초반에 ‘엄마 친구 딸’을 밥 먹는 자리에서 본 적 있는데, 사람들이 그녀에게

 

“코가 어쩜 그렇게 오똑해? 진짜 연예인 해도 되겠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열심히 끄덕끄덕 해줄 뿐이었다.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면 난 ‘자네, 유도 해볼 생각 없나?’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소영씨는 내게

 

“제 남자사람친구에게 그와의 얘기를 했더니, 그가 당장은 연애할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 건 ‘넌 내 스타일이 아니니 저리 가’라는 말을 돌려 한 거라네요. 진짜 연애할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친절하게 거절한 거라던데, 정말인가요?”

 

라고 물었는데, 난 그 남자사람친구의 평가가 98.72% 정도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상대는 소영씨가 만날 약속을 잡으려 한 걸 세 번 거절했고, 이후 소영씨가 ‘나도 연애할 생각은 없다. 다만 좋은 사람 같으니 친구로 지내려고 했던 건데….’라며 훼이크를 쓰며 보낸 카톡에도 읽고는 한참동안 대답을 안 했는데, 그런 건 ‘거절’의 의미가 짙은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걸 두고 또 소영씨는

 

“저한테 관심 1도 없는 거라면 매몰차게 거절하지 왜 대답은 뜨문뜨문이지만 잘 해줬던 거죠? 답장을 하질 말든가…. 그리고 늦게라도 답장 하면서 늦게 답장한 이유를 구구절절 다 설명해주는 건 또 왜죠?”

 

라고 말하는데, 그것도 사실 소영씨가 그에겐 ‘엄마 친구 딸’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도 우리 엄마 친구 딸이 연락해서는 카메라 살 건데 좀 도와달라고 하거나, 컴퓨터 조립 어떻게 하냐고 묻거나, 폰 바꿀 건데 요즘 어디서 사야 싸게 잘 살 수 있냐고 물어보면, 귀찮아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불친절하거나 무성의한 모습을 보일 경우 나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떠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상대가 내게 바라는 것도 많아지고 좀 무리한 부탁들까지 하면, 다른 핑계를 대 대화를 피하거나 점점 늦게 대답하며 내가 선 긋는 걸 눈치 채주길 바라는 것 정도로 대처할 것이다.

 

 

소영씨는 현재 자신이 ‘매력이 부족한 여자’라 ‘진짜 괜찮은 남자’에게서 거절을 당한 거라 생각하며 시무룩해 있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니 너무 혼자 땅 깊게 파고들어가 고립되진 말길 권한다. 단순히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상대는 소영씨와 사귈 경우 장거리연애를 해야 하는데다, 소영씨와의 일이 ‘엄마’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

 

또, 상대는 ‘난 지금 진짜 중요한 시기라 친구들도 안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난 그 말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가 취득하려는 전문직은, 이십대 절반을 담보로 잡힌 채 피 튀기게 매달려야 이후의 탄탄대로가 보장된다. 현재 그의 관심사는 온통 그곳에 가있기에, 소영씨가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애 자체에 관심이 없어 소영씨를 밀어낼 수 있다. 내 경우 얼마 전 지인이 음악생활을 정리하며 비싸게 주고 샀던 키보드를 주겠다고 했는데, 난 피아노도 칠 줄 모르는데다 내 방에 둘 곳도 없어 사양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리니 순식간에 연락이 와서 팔렸다고 하던데, 이처럼 키보드가 별로라서 그런 게 아니라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인연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상황 때문이라면 전 당장은 친구로라도 지내다 나중에라도 인연이 닿았으면 하는데, 갈수록 답장 오는 속도도 느려지니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아요. 이건, 친구로도 싫다는 의미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소영씨에겐 살짝 ‘금사빠’와 ‘조급증’의 모습이 있다. 소영씨가 ‘친구사이’로 간판을 걸고 지내려 할 때 상대에게 한 말을 보면

 

“나 오늘 이러이러해. 아, 오늘은 너 ‘바쁘다’는 말 빼고 말해봐 봐 ㅎㅎ”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매뉴얼을 쓰는 와중에 누군가 내게 저런 말을 한다면 난 무척 부담스러울 것 같다. 난 글을 다 쓰고 시간이 날 때 답장을 하는 건데, 그것에 대해 상대가 ‘답장속도가 느린 것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거나 ‘오늘도 바쁘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 알고 지낼수록 내가 자꾸 나쁜 사람 되는 것 같고 잘못한 것도 없이 사과할 일들만 많아지기에, 인연을 놓을 생각도 할 것 같고 말이다.

 

소영씨는 일단 친구로라도 시작하겠다지만, 이렇게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마음으로 있으면 계속해서 서운함과 불만만 축적될 수 있으니, 너무 상대에게만 꽂혀서는 상대바라기 하진 말길 권한다. 상대 없어도 충분히 풍성해질 수 있는 소영씨 인생인데, 상대 생각만 하며 ‘내가 매력이 없나?’, ‘안 읽는 거 보면 내게 관심 1도 없는 거겠지’하며 우울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한 시간 뒤에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게 인생이니, 설레는 마음으로 그 좋은 일 맞이할 준비를 해보자. 그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건 내가 보장할 테니, 속는 셈 치고라도 침울의 늪에서 나와 준비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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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빠진 것 같아서 생각해보니, 오늘 밥을 안 먹었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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