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양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연락처를 물어 온 그 남자가 한 명이며 그와의 관계가 뭔가 운명적으로 시작된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에겐 그 관계가
-헌팅해서 만든 많은 관계 중 하나이며, 어쨌든 번호 받고 연락까지 튼 사이.
일 수 있다. 이미 B양도 상대의 SNS를 보다가 다른 이성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같은데, 그들 역시 B양처럼 상대가 자신에게만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연락처를 묻고, 또 현재 자신과만 연락하거나 썸을 타고 지낸다고 착각할 수 있다.
난 언젠가 발행했던 매뉴얼에서 ‘모 대학교 앞에서 차비가 없다며 1,000원 빌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그의 경우 헌팅을 일종의 게임이라 생각하며 경험치를 늘리기 위해 여자들에게 1,000원을 빌리고 갚는다는 핑계로 번호를 받는다. 여기서 보면 참 그게 무슨 짓이냐 할 수 있지만, 그에게 돈을 빌려준 여자 중에는 그게 운명처럼 다가온 인연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난 이 관계가, ‘상대의 속마음’까지를 추측해보며 고민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러고 다니는 상대의 행위에서 무슨 ‘변한 이유’나 ‘진짜 생각’같은 걸 찾으려는 건, 중고나라에서 판매자가 대화를 좀 하다가 잠수를 탄 거에 대해 심층분석을 하려는 것과 같다. 판매자는 십중팔구 그냥 나보다 거리가 가깝고 물건 값을 더 쳐주겠다는 사람에게 물건을 넘긴 걸 텐데, 거기에 대해 ‘왜 내게 팔려고 하지 않으며, 대화를 하다가 더는 답장을 하지 않는가?’를 고민하면 스트레스성 탈모만 찾아올 뿐이다.
B양은 내게
“처음엔 분명 얘가 먼저 저한테 연락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왔던 건데, 이제는 제가 더 얘의 연락 없음에 신경을 쓰며 고민하고 있어요. 얘가 제 머리 위에 있는 것 같고, 주변에서는 저더러 정신 차리라는데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비슷한 감정을 나도 며칠 전에 느꼈다. 난 영상촬영을 위해 스마트폰 공기계가 필요했기에 중고나라에 잠복하다 판매자를 발견했는데, 왕십리에 사는 그 판매자는 분명 나와 직거래를 하기로 해놓고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뚜렷하게 답하지 않은 채 희망고문을 했다.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을 땐 분명 그 가격에 올렸던 거면서, 다른 구매희망자들이 생기니 그의 마음이 바뀐 것 같았다.
이거 생각하니까 또 빡치는데, 아니 내가 공기계를 사서 개통을 안 하고 영상촬영용으로 사용하든 말든 판매자와는 관련이 없는 것 아닌가. 폰이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분양 받으신 후 꼭 잘 보살펴주세요’ 할 필요는 분명 없는 건데, 그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구매희망자가 나타나자 내게
“먼저 연락주시긴 했지만, 저는 폰을 개통해서 쓰실 분에서 우선 판매하고 싶네요. 제 입장에선 아무래도 공기계로 사용하실 분보다는, 폰 본연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분에게 판매하고 싶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만 원 더 주겠다니까 바로 태도를 바꾸던데, 그게 괘씸해서 나도 이후의 연락을 모두 무시해버렸다.
요는, 이렇듯 그냥 ‘좀 더 높은 가능성’이라든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마음을 휙휙 바꿔버리며 약속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B양이 진지하게 생각하며 큰 의미를 두었다고 해서 상대도 반드시 그럴 거라고만은 생각하지 말자는 거다. 바빠서 B양과는 연락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상대가, 다른 여자랑은 SNS에서 수다를 떨며 치킨 먹으러 갈 약속을 잡은 걸 확인했다면, 깊게 고민할 것 없이 로그아웃 하는 게 답이다.
그리고 정말 상대가 너무 좋거나 큰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당장 사람 기다리게 하고 말과 행동이 달라 고민하게 만드니 집중하게 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상대의 연락 없음에 B양이 기다리게 된다고 해서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단순해석해선 곤란하다. 나도 저 판매자의 연락 기다리며 수시로 답장 왔나 확인하고 확답 받으려 두 번씩 문자 보내고 그랬다. 내 평온하던 하루가 저 일 때문에 요동쳤고 말이다. 아 공기계가 뭐라고 참….
당장 상대의 연락 없음과 줄어듦으로 인해 받는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해 보면, 사실 B양이 상대에게 그렇게까지 매달려야 할 이유도 없다. B양의 말을 보자.
-대화가 재미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아직 알아가는 단계고, 원래 초반에는 공통된 주제가 없으니 대화가 재미있을리 없다고 생각해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습니다.
-대화가 잘 통한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냥 통화하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일단 시작되었으니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진행된 거지, B양이 상대에 대한 열정적인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매일 쉴 새 없이 연락하던 상대가 일순간에 빠져나가고 나니, B양은 그것에 대한 허전함을 느끼며 상대가 다시 예전처럼 그래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상대가 두 번이나 SNS에 접속했다고 기록이 뜨는데, 제게는 메시지 한 통 없네요…. 이런 상황들 때문에 제 자존심마저 무너지는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의 가벼운 행동을 모두 B양의 기준으로 무겁게 해석하면, B양 마음 무너질 일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 그런 식이라면, 앞서 말한 ‘모 대학교 앞에서 1,000원 빌리며 헌팅 하는 사람’을 만날 경우, 그가 자기 동네에 사는 여자를 만나 연락하느라 앞서 헌팅 한 B양을 팽개칠 경우 B양은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딱 봐서 아닌 것 같으면 얼른 털어내고 갈 길 가야지,
‘그래도 상대가 쉴 새 없이 연락하고 웃게 해주고 할 때 정말 좋았는데….’
하며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그러는 동안 해가 져 훗날 밤길을 혼자 걸어가야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이건 털어내고 가야하는 관계가 맞으니, 상대의 SNS만 하루종일 들여다 보는 건 그만하고 이쯤에서 정리하자.
▼그냥 폰을 바꾸고 그 폰으로 촬영할까, 아 선택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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