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지인 중 하나가 ‘은사의 노골적인 보답요구’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지인이 사업을 시작하려 할 때 은사는 ‘내 사업장에 공간이 남으니 여기 들어와서 시작해라’라고 제안 했는데, 들어가서 일을 하다 보니 장비를 겹쳐서 사용하게 될 때 문제가 발생했고, 내 것 네 것의 개념이 희박해져 ‘확실하게 선을 긋고 싶지만 크게 보자면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 말도 못 꺼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것보다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문제는, 은사의 일이 밀릴 때면 지인이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도와야 한다는 점이었으며, 나아가 은사는 자신이 지인을 키워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지인의 사업 방법과 방향에 대해서도 간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렇게 몇 달을 버텨오긴 했는데, 이제는 은사가 지인에게 ‘너도 운영비를 같이 감당해야 하지 않겠냐’며 경제적 부담을 지우려 하고 있다. 지인은 그간 사용료라 생각하며 사업에 필요한 재료값 등을 부담하고 몸으로 때우는 거라 생각하며 은사의 일을 도와왔는데, 은사가 보기엔 그건 별 거 아닌지 그 외의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은사는 자신이 ‘도와주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지인에게 함부로 이야기를 하거나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져왔는데, 그것으로 인해 고마움은 퇴색되고 지인은 은사에게 분한마음까지를 갖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걸 은사가 알면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거냐’하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지인 쪽으로 팔이 굽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만, 은혜를 베푼다고 해서 너무 많은 것까지를 시키거나 이용하려 한 것’이란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갈수록 갈등이 심화되고 서로 ‘도움’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문제. 이런 일은 연애 중에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여친을 정말 사랑해서 그런 것이었다’고 말하는 남성대원들의 사연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문제인데,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함께 살펴보자.
1.데이트비용 전액 부담, 큰 선물이나 용돈 주기
그간 내가 받은 사연들 중 ‘데이트 비용 8할 이상 한 쪽이 부담’하는 사연은 빠짐없이 전부 끝이 안 좋았다. 당장이야 경제적으로 힘이 없는 상대를 한 쪽에서 부양하듯 사귀는 까닭에 ‘잘해주고, 도와주기까지 해서 고맙다’는 말 한 번은 듣겠지만, 최후엔 결국
-도와주는 김에 이러이러한 것도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예전엔 큰 것 사주더니 이제는 작은 거네 마음이 변했나.
-일부라도 갚으라니, 내 상황 뻔히 알면서?
-주변 얘기 들어보면, 더 한 것도 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중 하나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참 묘해서, 백 번 넘게 차로 늘 상대의 집 앞까지 데려다 주다가 어느 날부터 단지 앞에서 내려주면 그걸로 빈정이 상할 수 있다. 운전을 배우겠다는 사람에게 기능시험 학원비는 내가 지원해줄 테니까 도로주행 학원비는 직접 알바라도 해서 모은 돈으로 지불하라고 할 경우 ‘이왕 도와주는 거 그냥 다 도와주지 도로주행 학원비 얼마나 한다고’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말이다.
특히 상대가 자신의 힘으로 직접 돈을 벌어 본 적 없을 때, 그리고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는 것에 익숙해져있을 때엔 더욱 그렇다. 내가 받는 사연 중엔, 한 쪽이 데이트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건 물론이고 상대의 생활비, 학원비까지 지원해줬지만 그래도 불평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걸 그냥 ‘그건 도움 받은 그쪽이 뻔뻔하고 좀 덜 된 사람이라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내가 안 해도 연인이 다 알아서 할 일’이 점점 늘어나면 그게 당연한 듯 굳어져 결국은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모습으로 굳어졌다.
위와 같은 태도가 저렇게 상대를 점점 괴물로 만든다는 문제 외에도, 이쪽 역시 혼자 다 쏟아 붓고 부담하느라 애정과 열정이 고갈되며, 실망하는 부분이 늘어난다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상대는 친구랑 놀러가는 게 먼저네?
-내 생일엔 뭐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
-영화표 정도는 상대가 부담할 수 있는 거 아니었을까?
-오늘은 지갑도 안 들고 나왔다고? 음료수 하나 살 돈도 없이?
한 달에 250벌어 100을 연애에 쓰고, 30을 지원해주고, 20은 또 빌려주고 하다보면 저게 바로 자신의 얘기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뒀으면 한다. 그런 연애를 하는 대원들은 ‘정말 상대를 사랑해서, 물질적인 부분으로도 최선을 다하려고’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상대에게 월 30 지원해주다가 이번 달은 이쪽도 빠듯해 10 정도 밖에 지원을 못해준다는 얘기하면, ‘이번 달에 나가야 할 돈 있는데 갑자기 줄이면 어떡하냐’는 황당한 불만을 듣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다. ‘노트북 사준 건 고마운데 센스 있게 받침대랑 가방까지 좀 사주지 그건 왜 빼먹었냐’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고 말이다.
요즘은 혐오의 시대인 까닭에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또 여혐이네 뭐네 할 수 있는데, 이건 ‘사랑을 물질로도 충실히 표현하려던 사람들이 겪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이해해줬으면 한다. ‘혼자서라면 편의점에 가도 2+1 하는 음료수만 사마시지만 연인에겐 이름도 길고 복잡하고 비싼 음료를 사주려고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남녀 구분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다섯 살 이상 차이나는 연상남친’의 입장인 대원들이 가장 많이 보낸 사연이라 대표적인 경우를 적었다.
2.최선을 다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내 말 들으라고 하기.
서두에서 내 지인의 은사가 ‘도움을 주고 있는 입장’이니 지인의 진로와 생활에까지 참견하며 이래라 저래라 했다는 얘기를 한 것처럼,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그 연애에 희생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원들은 상대를 통제하려 들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살게 만들려 하곤 한다.
상대의 학원비를 지원해줬던 사례를 보자. 그 대원의 연인은 학원 프로그램 수료 후 취업을 했는데, 이후 그녀가 버는 돈을 어디다 어떻게 쓰고 얼마를 적금해야 하는지에 대해 남친이 참견하기 시작했다. 과한 지출에 대해 지적하거나, 이제 취업을 했으니 데이트비용도 얼마쯤 부담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고 말이다.
그 경우,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상대를 이끌려 한 것이지만 상대가 따라주지 않고 불평만 하니 한숨을 쉬게 될 수 있고, 여자는 앞서 말했듯 ‘도와준 건 고맙지만 선은 지켜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불만을 가지게 될 수 있다. 남자는 갈피를 못 잡던 상대에게 자신이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까지 해준 거라 생각하지만, 여자는 ‘학원비 좀 내준 것’ 정도로만 여길 수도 있고 말이다.
이것 역시 남녀를 떠나, ‘일자리 못 구하고 있는 남친’을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숙식하게 하며 기죽지 말라고 용돈 주고 취업 자리까지 알아봐 연결해주었더니, 취직 후엔 ‘돈 모아 오토바이 살 생각’만을 하는 사례도 있다. 사연의 여자는 남친에게 이제 돈 버니까 월세랑 생활비에 좀 보태는 게 먼저 아니냐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월세 45만원 중 25만원 내가 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생활비 얘기는 없었고 말이다.
그래놓고는 자신이 그 정도 부담하는 거면 거의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과 같으니 권리도 반반씩 가져야 하는 거란 뉘앙스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여하튼 도움을 준 사람의 생각과 받은 사람의 생각은 전혀 다를 수 있으니, 애초에 그런 일방적인 관계는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그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누군가를 강제로 철들게 만들긴 어렵다. 그런 건 사실 스스로 좌절도 하고 실패도 하고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깨지기도 하며 배우는 건데, 이쪽에서 그럴 수 있는 상황을 전부 커버해주며 말로만 열심히 설명하면 그건 상대에게 그저 잔소리로 여겨질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사연을 보면 대개 관계의 결정권은 오히려 상대에게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의 희생과 배려와 헌신은 ‘조공’에 지나지 않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3.분명 이상한데, 연애 중이란 이유로 마냥 지속하지 말기.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쪽이 연인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그걸 안 연인의 부모님까지 이쪽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면, 그건 분명 잘못된 집안의 잘못된 사람들과 엮여 있는 것일 확률이 높다.
난 사실 이게 무슨 사기단처럼 그렇게 사는 가족들이 있는 건 아니가 싶다는 생각도 한 적 있는데, 내게 도착하는 사연 중
-어플에서 만난 상대에게 도움을 주며 사귐. 상대가 외로워하고 비관하는 일이 많아 그걸 다 물질적으로 해결해줌. 상대 부모님들께선 이쪽을 이미 결혼한 사이처럼 잘 대해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20만원 전후의 선물을 종종 요구하시거나 용돈을 요구하심.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하면, 상대가 감성적인 말이나 행동을 해서 희석시킴.
이라는 패턴의 사연이 종종 보인다. 거기서 좀 더 진행된 경우, 반동거 형식으로 한 쪽의 가족과 같이 지내는 날이 늘어나며 그 집의 월세나 생활비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러면서 상대 부모님 중고차라도 사드리네 뭐네 하는 이야기를 하던 중 그 부모님들께서는 새 차 아니면 안 탄다고 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건 좀 끔찍한 상황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래도 그게 사랑이라 생각하며 무리를 해서 새 차를 사는데 돈을 보탰더니, 상대 부모님이 음주 걸려서는 벌금도 당연히 지원해 줄 거라 여기고 있는 사례가 있었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무작정 철저히 선을 긋고는 ‘네 일은 네가, 내 일은 내가’라는 생각으로 지내란 얘기는 아니다. 다만, 분명 뭔가 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 것 같은데 그걸 한 번 수락하고 나면, 그 다음 번엔 좀 더 이상한 상황, 이후엔 거기서 좀 더 이상한 상황까지 흘러가게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잔 얘기다. 그렇게 바로 앞의 일만 이해하고 희생하겠다며 걷다보니, 정말 먼 곳까지 가서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좀 더 이해하고 내가 좀 더 양보하고 내가 좀 더 희생할 수는 있는 일이지만, 그러다 감당 못할 상황까지 떠안은 채 연애 중이란 이유로 어떻게든 짊어지고 가려고는 하지 말길 권한다. 뭔가 좀 이상하다 싶을 땐, 그게 남의 연애라면 자신은 무슨 얘기를 해줄지, 그리고 그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는 거라면 그 연애에서의 ‘나의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게 존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애틋함과 약간의 동정심으로 시작한 행동이 커져, 결국은 상대와 상대의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뒀으면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과 관련된 사연을 보낸 C씨에겐,
“카톡대화에서 150만원이 몇 번 등장하나 세어보세요.”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C씨는 모든 걸 다 연애에 쏟아 부으며 상대에게 돈 까지 빌려줬는데, 헤어진 후 C씨의 여친은 그 절반만을 갚고는 입을 닦으려 했다. 그것마저도 어차피 못 받을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C씨는 그냥저냥 넘어갔는데, 이후 그녀는 C씨에게 다시 예전처럼 지내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다가왔다. C씨를 잡은 건데, 황당한 건 자신이 갚았던 절반의 돈을 다시 달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 돈을 자신이 용돈처럼 쓴 돈이니 그냥 준 셈 쳐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 돈을 주면 자신이 그 돈만 받고 관계를 끝낼까봐 안 주는 거냐고 묻기도 하며, 당장 자신에게 그 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든 받아내려 하고 있다. 거의 모든 대화가 기-승-전-150이며, C씨가 그것에 대해 대답을 안 하면 ‘왜 못 주는 건지?’에 대해 계속 묻고 있는 중이다.
상대에게는 오로지 C씨에게 돈을 더 뜯어내려는 목적밖에 없는 게 확실하니, 상대가 감성적인 얘기를 하거나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거기에 또 넘어가지 말길 권한다. 단 한 번도 C씨를 만나러 온 적 없으며 늘 C씨가 왕복 3시간을 소요하며 만나러 갔던 그녀는, ‘만나서 현찰로 주겠다’고 말하면 택시라도 타고 C씨를 만나러 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수년 간 데이트비용 전부 다 부담하고 선물에 용돈, 거기다 못 받을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만났으면 수업료는 넘치도록 지불한 것이니, C씨도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읽는 즉시 상대를 차단하길 권한다.
“저도 고민 중입니다. 단호하게 차단하고 완전히 헤어지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여자친구의 상처 및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준 후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맞는 건지요. 그것도 아니면, 재결합을 위해 좀 더 노력을 해야 하는지….”
C씨의 여자친구가 ‘상처 및 마음정리 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락을 이어가는 중 계속해서 하는 얘기가 ‘내가 갚았던 돈 돌려 달라’는 것 아닌가. 그 돈을 안 준다고 못 박으면 그녀는 다시 빌려라도 달라고 애기할 게 분명하니, 더는 거기서 지갑노릇만 하지 말고 그만 C씨의 인생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믿음이 커서 당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당하고 지금 또 당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일 뿐이다. ‘우리 수년간의 연애가 이만큼의 돈도 안 되는 건가’하는 생각에 그냥 줘버리고 끝내려 할 수 있는데, 그 돈으로 가족들 맛있는 거 사주고 가을점퍼라도 하나씩 사주는 게 현명한 일이라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나만 편한 연애만큼, 상대만 편한 연애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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