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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몇 년째, 매번 짝사랑만 하는 여자들을 위한 연애매뉴얼

by 무한 2017. 9. 19.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6, 7년씩, 매번 내게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겼어요. 이번엔 진짜 잘해보고 싶어요.”라는 메일만 보내는 대원들이 있다. 물론 난 아홉 번 실패하고 열 번째 다시 짝사랑을 시작하는 대원이 있어도 다시 응원할 테지만, 사연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이번 역시 짝사랑으로 끝날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기에 이렇게 매뉴얼을 발행하게 되었다.

 

지난 주 내가 첫 바다낚시를 갔을 때, 난 바늘이 자꾸 줄에 엉키는 일을 경험했다. 옆에서 내가 던지는 걸 보고 있던 김프로님께서

 

“그렇게 던지면 엉킬 수밖에 없지. 원투낚시 할 때처럼 던지면 안 돼. 이거 그냥 힘으로 멀리 던지려고 하지 말고, 옆으로 던져. 그리고 찌가 수면에 닿을 정도 되었을 때 낚싯대를 살짝 당겨. 그러면 찌가 떨어지고 그 다음에 바늘이 떨어지겠지? 그러면 엉키지 않아. 넌 있는 힘껏 머리 위에서 곧장 던지기만 하니까 뒤따라가던 바늘이 찌나 줄에 걸리는 거야.”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난 저 간단한 말 한 마디를 들은 후 엉킴 없이 제대로 낚시를 할 수 있었다. 이 매뉴얼이, 짝사랑만을 반복하는 대원들에게 바로 그런 꿀팁이 되었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당분간 연락을 안 해보기로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돌직구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 복근에 먼저 힘을 꽉 주길 바란다. 여럿이 어울려서만 봤을 뿐 아직 단둘이 만난 적도 없고 매일 안부를 물어가며 대화를 한 것도 아닌데 ‘당분간 연락을 안 해보기로 했다’고 말하는 거, 그거 혼자 섀도복싱 하는 거다. 앞에 상대도 없는데 혼자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췻췻- 하고 있는 거란 얘기다.

 

둘 사이에 분명 미묘한 기운이 흘렀다거나, 아니면 확실하게 각인될 수 있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게 아니라면, 상대에게 이쪽은 ‘모임의 여자1’이나 ‘손님2’ 정도의 느낌일 뿐이다. 이쪽이야 온 신경을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으니 상대와 닿는 접점마다 역사로 느껴지겠지만, 상대에겐 ‘아까 정류장에서 잠깐 스친 사람’이나 ‘샷 추가 했던 고객’정도로만 느껴질 수 있다. 이건 당연한 일이기에, 실망할 것도 아니고 서운해 할 일도 아니다.

 

“제게 마음이 있었다면 혼자 차타고 가버리진 않았겠죠. 저라면 그래도 모임에서 대화 나누다 가까운 곳에 산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태워준다고 했을 것 같은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넓은 오지랖을 지닌 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모든 호의를 베풀며 사는 건 아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보자면 둘은 모임에서 12초 대화한 게 전부이며, 다른 여러 사람들과도 대화하지 않았는가.

 

또,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라는 건 ‘상대에게 120%의 호감을 가진 채 상대만을 보고 있는 나’를 기준으로 한 것일 뿐이며, 상대는 현재 이쪽을 ‘모임에서 스친 사람 중 하나’로 여기고 있기에 당연한 행동을 한 것이다. 게다가 달리 보자면, 처음 본 여자에게 자기 차 타고 같이 가자고 하고 연락처를 묻는 건 작업을 거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만약 그가 모임의 다른 여자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이쪽도 ‘쟤는 원래 저렇게 작업 거는 애’ 정도로 생각할 것이고 말이다.

 

아직 뭐 이렇다 할 관계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거기서부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훑어가려 하면 한 발자국 가는 데 며칠씩 걸릴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매번 저 지점에서 혼자 수 만 가지 생각과 염려와 상상과 짐작을 하다가 제 풀에 지쳐버리는 대원들이 꽤 있기에, 난 그들에게

 

“일단 발이라도 밟으세요. 아님 다리라도 걸든가. 뭐라도 좀 벌이고 나서 고민을 하든 탐구를 하든 합시다. 지금 이건 그냥 뭐, 실외에 표기된 메뉴판 보고는 식당 내부 상상하며 거기서 벌어질 일들을 짐작해보는 것과 같아요. 아직 식당 문 열고 들어서지도 않은 채 말예요.”

 

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실수나 실례를 해도 좋으니, 뭐라도 저지르자. 은행 창구에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채 한 달에 한두 번 은행갈 때마다 늘 상상하고 상대를 살피기만 하면, 그냥 상상력만 차고 넘치도록 풍부해질 수 있다. “제가 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너무 뜬금없이 묻는 것처럼 여겨질까요?”라며 내게 상상 조력자가 되길 바라지만 말고, 쪼꼬렛(응?)이라도 하나 건네며 일단 사적인 창구를 좀 열어보자.

 

 

2.상대가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 같아서 실망스럽다?

 

호감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이성관계에도 철저히 선을 긋고 살고, 인간성 좋고,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온라인 게임 같은 건 안 하며 늘 자기계발에 열심일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버리진 말자.

 

“그분이 폰으로 게임하는 걸 얼핏 봤습니다. 남자가 게임을 안 하기란 힘들다지만,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조금 걸리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할 정도라면, 이미 김칫국 두 사발 정도 들이킨 거다. 상대에게 호감을 느꼈으면 상대라는 사람이 무슨 삶을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 봐야지, 내 머릿속 이상형과 비교하며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찾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이건 직접 만나고 경험하며 깨져야 하는 판타지와 연관이 있는 부분인데, 상대도 사람이며 현재 주변에 있는 이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난 좀 해주고 싶다. 사람이니 당연히 바보 같은 짓을 좀 할 수도 있는 거고 시간낭비도 좀 할 수 있는 것이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 때도 있는 건데, ‘상대는 내 이상형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온 특별한 존재일 거라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그 큰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전부 실망으로 치환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연애라는 것 역시, 살짝 퍽퍽하고 지루했던 내 삶을 연애가 영원히 달라지게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홀로였다가 둘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위안과 기쁨은 있겠지만, 결국 스스로가 책임져할 것들은 여전히 앞에 남아 있으며 감당해야 할 외로움 역시 그대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상대의 인생에 얹혀 가는 게 아니라, 상대와 같이 가는 것이니 말이다.

 

또, 연애 이외의 관계에서 누군가와 밤새 수다를 떨 정도로, 아니면 한 시간 넘도록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본 적 없다면, 연인과도 단번에 그렇게 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 역시 해주고 싶다. 그런 이유로 인해 ‘사귀기로 하긴 했는데 아직 만나면 서먹서먹하고 전화해도 할 얘기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면 그걸 두고 또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사람이 아닌갑네 뭐네 하곤 하는데, 관계란 잎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며 나이테를 하나씩 더 그어가듯 그렇게 자라나는 거란 걸 잊지 말자. 관심과 애정을 갖고 관계를 가꿔나간다는 생각으로 만나다 보면 서로에게 그만큼의 의미가 되는 거지, 금방 만나선 눈에 불똥 튀어가며 앞으로 영원히 사랑하겠단 약속했다고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홀로인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사람은 같이 밥을 먹어도 먹어보란 얘기를 잘 못하거나 남의 수저에 반찬 하나 올려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상대와 내 이상형의 싱크로율을 맞춰보는 작업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 대한 작업을 해보도록 하자. 밥은 먹었는지, 컨디션은 괜찮은지, 잠은 잘 잤는지 그런 지점부터 챙겨 가면 된다. 이런 과정 전혀 없이 혼자 여러 상상을 하며 꿍해 있다가 나중에 뜬금없이 말을 걸어 결판을 내려는 행위는 이제 그만 하자.

 

 

3.경직된 채 아무것도 안 하면, 매력을 보여줄 길이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안전한 방법이긴 하다. 실수할 일 없으며, 괜히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해 실망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그건 바로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었으며,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것

 

이다. 한 대원의 사례를 보자

 

원래 털털한 성격임 -> 상대가 좋아하지 않을까봐 가만히 있었음

자연스럽게 터치하곤 함 -> 오해할까봐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했음

이성과 카톡 잘함 -> 간단한 안부 묻는 것 정도로만 이끌어 감

사람 눈 잘 쳐다봄 -> 눈이 마주칠까봐 일부러 쳐다도 안 봄

대화를 어려워하지 않음 -> 연기하며 아무 재미도 감동도 없는 질문을 함

 

내가 보장할 테니, 봉인에 봉인을 거듭해서 꽁꽁 숨겨둔 평소의 모습과 상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8할 이상 쏟아내자.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도 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 한다.

 

누군가와 만나 상대의 얘기를 들을 때, 그가 그냥 ‘여행 다녀왔어요’라고 한 것과 ‘펜션 전기가 나가서 어쩌다 배선공사까지 돕고 왔어요’라고 한 것은 와닿는 것과 남는 것이 다르지 않은가. 후자의 방식으로 최소한 무릎정도는 들어가서 대화하다 허리까지도 들어가 주고 그래야지, 이쪽이 아닌 한국말 할 줄 아는 누군가를 데려다 놔도 다 할 정도의 발목 깊이에서 머물면 교과서 지문 같은 대화만 반복하게 될 뿐이다.

 

사이가 먼 이모부나 고모부, 또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 삼촌 같은 분들과 발목정도에서 대화하는 걸 심남이와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그분들은 명절이나 경조사가 있을 때 뵙는 분들이니 그 정도의 거리를 둬도 괜찮지만, 심남이와는 연인이 되고 싶은 것 아닌가. 그러면 최소한 요즘 뭐 보는지, 무슨 음악 듣는지,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정도는 대화에 등장해야 한다. 이런 게 전부한 채 굳모닝, 잘자요, 뭐 그런 인사만 하면 안부머신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자.

 

절대 민폐가 아니며, 상대는 이쪽을 귀찮아하지도 않는다. 그런 거라면 먼저 말을 걸거나 이쪽에서 말을 걸었을 때 성실하게 대답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요? 그럼 연락의 빈도는 어느 정도로 하는 게 좋나요?”

 

매일 해도 되며, 하루에 몇 번씩 생각날 때마다 말을 걸어도 된다. 내가 매뉴얼을 통해 상대가 잘 시간인지 등을 파악해가며 연락하라고 얘기한 건 맞지만, 이런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즉각즉각 답장이 오며 수다의 장이 열리는 분위기인데, 여기서 굳이 ‘아, 시간이 너무 늦었군. 자라고 해야지’하며 자를 필요 없다.

 

막 그렇게 불이 붙기 시작하는 관계일 땐 졸린 것도 잊고 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붙잡은 채 수다를 떨기 마련인 건데, 그렇게 잘 흘러가고 있는 대화를 의식적으로 끊진 말자. 그렇게 끊어 놓고는 다음 날 다시 형식적인 안부인사만 거듭하게 되면, 막 끓기 시작하려 할 때 불을 끄곤 다시 다음 날 처음부터 끓이기 시작하는 모습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다음 주에 다시 연락을 해볼까요?”, “3주 정도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이드를 좀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지금 필요한 건 순발력과 집중력이지 4주 장기계획 같은 게 아니니 그때그때 ‘말하며 내가 즐거운 이야기’를 꺼내놓길 바란다. 보통의 경우 말하며 내가 즐거운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나도 잘 말할 수 있으며 상대도 그것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단, 나 홀로 신나서 마이크 독점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상대가 즐거운 이야기’도 꺼내놓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배분을 잘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끝으로 하나 더 적어두고 싶은 건,

 

-나 자신은 과잉분석하고 과잉반응할 때가 있으니, ‘내 느낌’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진 말자.

 

라는 것이다. 나도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까닭에, 하룻밤만 지나도 별 것 아닌 일을 두곤 그 당시에 엄청나게 신경 쓰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홀로 삭히며 종종 그냥 얼른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낼 때가 있다. 때문에 지금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내 마음에 불안의 바람이 불 때면, 나를 벗어나 옆자리에서, 옆자리로 해결이 안 되면 집 바깥에서, 집 바깥에서 안 되면 먼 지역에서, 먼 지녁에서 안 되면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라도 그때의 나와 내 감정을 살펴보곤 한다. 그런 것으로 안 되면 물리적으로라도 자극을 주려 샤워를 하거나, 안 가 본 길로 살짝 걸어갔다 오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쓰지 않으면 십중팔구 악수에 악수를 거듭해서 두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또는 벌어졌다 해도 아직 결과까진 나오지 않은 일로 침전하거나 방황하게 될 때면 자신을 먼저 추킬 수 있도록 도와보길 바란다. 그러고 나면, 내가 했던 걱정이 괜한 염려였다거나,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홀로 심술이 나서 잠시 쭈구리가 되었던 것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걱정과 염려가 너무 많으면 책 한 장을 넘기기도 너무 무거워질 수 있으니, 다음 이야기를 보려 책 한 장 넘기는 심정으로 자연스레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보자.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내가 바랐던 만큼 상대와 친해져 있을 것이다. 성향 분석, 연락 가이드, 호감 유발법 그런 거 생각하느라 연구실에서 밤새지 말고, 상대와 연락하며 만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는 지금 연구실 밖으로 나와 ‘지금 이 순간의 기회’를 붙잡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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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신전에 모셔둔 채, 무릎꿇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시작하면 망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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