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여전히 상대가 좋으며, 잊히지 않고, 이렇게 날카롭게 산산조각 난 관계를 매일 맨손으로 쓰다듬는 까닭에 손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좋을 정도로 사랑하는 거라 하겠지만, 여기서 보기에 그건 그저 ‘사서 하는 개고생’으로 보일 뿐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시시각각 들어도 겨우 버터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찾아가도 만나지 못할 걸 알면서도 여섯 시간을 기다린,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내려앉은 가슴을 집에 돌아와 홀로 울며 돌보곤, 겨우 살만해졌을 때 다시 한 번 힘을 내 눈물로 애원한, 이 모든 간절함을 그저 ‘개고생’이라는 천박하고 가벼운 표현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다니요.”
그걸 그렇게 혼자 미화하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시밭길로 걸어가니, 계속 발바닥이 아프며 어디 앉을 곳도 없는 거다. 오늘 추석이라 개통업무를 하는 폰 영업점이 없으며 금요일까지 쉰다는 안내가 붙어 있으면 금요일에 다시 찾아가야지, 수요일인 오늘부터 매장 앞에 서선 그것도 반팔만 입고 나온 채로 2박 하며 기다린다면 그건 어이없는 짓일 뿐이지 않은가. 금요일까지 영업을 안 한다고 분명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수요일부터 밖에서 떨며 기다렸다고 그 보상을 상대가 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별 후 반 년 이상, 상대와 연락할 때마다 매번 막장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대원들의 경우
-상대가 몇 번이나 거듭해 마음 없음을 확인해줬지만, 그래도 그게 100%의 마음은 아닐 것.
이라는 믿음으로 계속 ‘다시 확인하기’에 도전하는 사례가 많다. 오지 말라고, 연락하기 싫다고, 안 나갈 거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전부 무시한 채 마음대로 찾아가거나, 연락하거나,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에 거절당한 것에 한 번 상처를 받고 이후 확인사살까지 당해가며 두 번 상처를 받는다.
또, 이별 후 지금까지 상대에게 들은 말을 종합해 보면
“넌 이상하다. 너랑 더 만날 자신이 없다. 그만 연락해라. 그렇게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어라. 날 나쁜 놈이라 말해도 좋다. 괴롭히지 마라. 소설 쓰냐. 넌 뭘 잘했냐. 그건 너희 부모님이 이상한 거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꺼져라. 미쳤냐. 신고한다.”
라는 게 99.9%로 그건 분명 재활용이 불가능한 관계라는 게 확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0.1% 정도는
-지금의 내 마음 속에 상대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듯, 상대에게도 나를 향해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한 그 마음.
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욕을 먹고 저주를 받아도 또 다시 연락하고 만다.
내가, 영혼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밟혀가면서도 놓지 않는 그 희망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다. 노력한다고 하는데도 결국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 것에 절망을 느끼면서도, 그 시절 우리가 서로를 생각했던 때의 그 스위치만 한 번 켤 수 있으면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은 다 거짓말이었고 억지로 정 떼기 위해 그런 거였어, 사실 난 아직도 너를 사랑해.
라는 상황이 만들어 질 것 같아 매달리게 되는 것이며, ‘쟤가 지금 저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분명 전부 다 그런 건 아닐 텐데’라는 기대를 품게 되는 거라는 거 안다.
아는데, 현 상황은 이미 싸우다 집이 불타는 거 무섭지 않다며 둘 다 불을 질러 집을 태워버린 후라, 애틋함 하나로 화해한다고 다시 둘이 들어가 맛있는 거 먹으며 쉴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그걸 기대하며 계속 다시 ‘이번엔 진짜 결판을 내자’며 재도전만 하면, 후회와 실망이 가득한 결과에 또 한 번 상처 받으며 다시 멘탈 겨우 붙잡곤 버티다 현실부정으로 정신승리 한 후 또 재도전해서 상처 받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이런 상황이 참 무서운 두 가지 이유 중 첫 번째는, 누군가와 한 번 이렇게 서로의 막장을 경험하고 피가 날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 관계를 ‘더는 없을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오랜 싸움에 지치고 이제는 서로 싸울 힘도 없을 와중에 ‘새로운 좋은 사람’과 연이 닿을 경우, 자극적이던 옛 관계만큼 열정적이고 뜨겁지 않다고 생각해 시작도 못 하는 일이 벌어진다.
단순비교만 해봐도 이전의 상대보다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 분명한데, 그 인연을 그저 옛 상대에게 연락해 ‘나 다른 남자 만난다’는 자극제로만 사용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상대가 이쪽을 잃게 될 것에 덜컥 겁을 먹고는 다시 잡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열에 아홉은 ‘네가 누굴 만나든 내가 한 마디 하면 맨발로라도 달려올 거잖아’라는 생각하는 상대에게 희롱만 당하고 만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두 번째 이유는, 막장을 경험해가던 중 약 오르고 분하고 괘씸하고 억울해서 신문에 날 정도의 일을 저지르거나, ‘사랑 때문에 난 이런 미친 짓까지 해봤다’는 역사를 쓰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벌일 수 있다는 거다. 상대를 미행하거나 SNS를 실시간 추적하며 스토킹 하는 건 귀여운 수준이고, 경찰이 출동하거나 구급차가 오는 정도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상대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상대에겐 그게 경계심을 한 층 높이며 이쪽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위와 같은 징조가 보이는 대원들이 있다 하더라도, 대개는 친한 친구들의 만류나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 또는 거리나 상황 등 물리적 한계의 도움을 받아 겨우 벗어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이며 거기다 상대가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나에 대해 남들이 모르는 걸 다 아는 관계였다면,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빠져들어 점점 더 무모한 선택을 하거나 극단적인 일들을 저지르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런 대원들을 위해 노멀로그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으로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을 땐 망설이지 말고 사연을 보내길 바란다. 자신이 해결하겠다며 친구에게 부탁해 모르는 번호로 상대에게 연락해 보곤 그걸 또 상대에게 말해 너 진짜 무섭다는 소리까지 들은 후에야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렇게 혼자 해보겠다며 더 엉키게 만들고 다 망친 뒤에야 사연을 보내지 말고, 서운함과 외로움과 약오름으로 마음이 꽉 차 뭔가를 저지르고 싶어질 때 그때 바로 그 심정을 사연신청서에 고스란히 빽빽하게 적어 보내주길 바란다.
▼그런 노멀로그를 추천과 공감, 댓글로 응원해주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애매뉴얼(연재중) > 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없다는 이유로 차인 적도 있는 남자, 달라질 방법은? (48) | 2017.10.25 |
---|---|
썸인 듯 스킨십 하다가, 연락두절 되는 남자만 만나요. (53) | 2017.10.16 |
좋은 오빠 하나 생긴 것 같다는 그녀, 어장관리일까? (34) | 2017.10.03 |
편지나 장문의 카톡으로 고백하기 전 체크해야 할 세 가지 (32) | 2017.09.29 |
상대에 대한 호감보다 동정심이 앞서는 남자들의 문제 (40) | 2017.09.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