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M씨의 사연 중 어디서 그 ‘이별조짐’을 찾아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 좋고, 괜찮은데?
최근 그녀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한 것 때문에 M씨는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 사람이 아프면 그럴 수 있다. 비염 때문에 콧물 계속 흐르고 머리도 아프며 눈을 하도 긁어 벌겋게 된 상태라면, 그 상태로 만나 먹고 놀며 돌아다니기보다는 좀 쉬고 싶을 것 아닌가.
오히려 난 그 ‘이별조짐’을, 그녀가 만날 약속을 취소하자 충격과 공포에 빠진 M씨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M씨는 그녀가 아파서 오늘 못 만날 것 같다고 하자, 급격히 위축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기며 짧은 대답만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괜찮은 척 한다며
“보고 싶지만, **이 아프니까 욕심 안 부릴게.”
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난 차라리 저 멘트 대신 얼마나 아픈 건지, 밥은 먹은 건지 등을 물어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M씨의 사연을 보며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소개팅 이전부터 썸 탈 때까지는 그래도 사람이 참 여유도 있고 괜찮은데, 사귀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빨리 뭘 더 확인하고 얼른 더 많이 만나려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못 줘서 안달이 난 남자’처럼 계속 뭔가를 주거나 해주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이 관계는 점점 연애보단 접대에 더 가까운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M씨가 한 일을 그대로 말하면 너무 특정되는 까닭에 ‘성별이 반대인 경우’를 예로 들자면,
-사귄 지 일주일이 된 남친에게, 네 자취방에 가서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요리도 해줄 거라 하며, 갓김치 좋아한다니 우리 집에서 한 통 가져다 주려하는데 어떠냐고 묻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뭐 연애는 케바케니 저럴 수도 있는 것이긴 한데, 자꾸 저런 것만 빨리 전부 해주려 하며 그러기 위해 너희 집 화장실에 청소용 솔 있냐는 식의 질문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M씨가 있어야 할 남친의 자리에 M씨 대신 헌신만 잔뜩 쌓느라 바빠 상대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사귀기 전 M씨에겐 ‘상대에 대해 궁금해 하던 모습’이 컸지만, 사귄 후엔 ‘상대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인하려는 모습’이 훨씬 더 커졌다. 때문에 자꾸 이것저것 확인하려 들며 뭘 주거나 준다고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눈치를 보게 되었고, 아파서 오늘 좀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상대의 반응에 실망해선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밤에 통화하자고 말하긴 했지만, 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연락은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선 연락은 없더군요. 하루 지났는데, 이따가 ‘쉬는 데 방해될까봐 연락을 안 했다’면서 연락해 볼 생각입니다. 많이 불안하네요.”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미리 혼자 겁먹곤 쭈구리가 될 필요 없다. 그래버리는 순간 매력이 있던 자리엔 찌질함이 들어차게 되고, 만남이 어려울 경우 통화나 카톡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전부 날려버리게 된다. 그런 모습이 상대에겐 무신경이나 무관심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고 말이다.
또, 지금 누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간에 어쨌든 둘은 연애를 시작해 6일을 사귀었는데, 상대가 날 덜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해서 자꾸 자신이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생각하거나 뭔가를 더 해줘서 상대의 호감을 더 이끌어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떤 남자가
<아침>
잘 잤어? 컨디션 괜찮아? 머리 아프면 좀 더 자. 내가 약 사 갈까?
<점심>
배 안 고파? 뭐 먹을 거야? 어플로 주문해볼래? 아픈 건 괜찮아?
<저녁>
내일 컨디션 괜찮으면 영화 볼래? 전에 먹고 싶다고 했던 거 먹을까?
라는 식의 대화를 5일 내내 한다면, 저건 그가 ‘착한 남자’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챙겨주지 못해 안달이 나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상대를 모시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건데, M씨는 너무 상대를 높은 곳에 올려둔 채 혼자 아래서 ‘나한테 뭐 시킬 거 없어? 내가 뭐 해줄까?’라며 자꾸 확인만 받으려는 것 같다.
“그녀가 그런 말은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너무 잘하려고 노력하고, 너무 자길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한다고.”
난 주말에 아울렛 다녀왔는데, 거기서 한 직원에게 제품 사이즈를 물어보자 그녀가 그것보다 큰 것, 작은 것을 모두 가져와 입어보라고 하고, 나아가 다른 컬러의 제품까지 사이즈별로 챙겨와 들고 옆에 서 있고, 그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 입어보라며 급하게 다른 쪽에 있는 옷들을 가지고 오려 해 좀 부담스러웠다. 난 그냥 1이 필요해서 1을 이야기 한 건데, 그녀는 막 3~4를 내게 주려 하니-그것도 내가 원치 않는 것들까지 막무가내로 주려하니- 그래놓고도 안 사면 내가 나쁜 사람 될 것 같아 됐다고 하곤 나왔다. 날 그냥 뒀으면 알아서 다른 쪽 코너 여유롭게 보며 골랐을 텐데, 옆에 딱 붙어선 내가 제품에 눈길만 줘도 그녀의 손은 이미 그 제품을 꺼내니, 난 얼른 나가고 싶은 마음만 커졌던 것이다.
M씨가 현재 그녀를 대하는 모습이, 밀착 전담 마크를 하려는 저 직원과 비슷하지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M씨는 그 부분을 ‘자상하고 세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과하면 상대로서는 맹목적으로 좋은 반응만 보여야 할 것 같으며 진짜 불편한 점에 대해서는 말도 못 꺼낼 것 같아 부담이 될 수 있다. M씨의 옆집 사람이 매일 음식이나 과일을 나눠주려 하며 자꾸 자신이 뭐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 M씨 역시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호의와 친절에 거부감이 들지 않겠는가.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질 방법을 자꾸 외부의 다른 어떤 것에서 찾지 말고, 썸 탈 때처럼 두 사람의 관계 내부에서 찾자. 썸 탈 때까진 각자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 잘 했으면서, 왜 연애 시작하자마자 무릎부터 꿇은 채 “저한테 뭐 시키실 일….” 하고 있는가. ‘그녀 남친’이란 자리가 M씨를 위해 주어져 있는데도, 거기 앉지 못한 채 자꾸 거기다 헌신 같은 것만 올려놓곤 아래로 내려가 그녀를 모시려 들지 말자. 아랫자리 말고 옆자리에 앉아서 함께 웃고 즐겨도 괜찮다. 얼른 무릎 털고 일어나 자리에 앉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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