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씨, 연애 중 한쪽에서 거의 모든 걸 다 부담할 경우엔 반드시 문제가 생겨.
“하지만 현재 제 남친은 시험 준비 중이라서, 사정이 뻔하기에….”
남친이 정말 너무 쪼들려서 폰까지 끊긴 상황이라면 인정. 근데 그게 아니라면, 지영씨가 다 부담해선 안 돼.
그래버리면 남친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해도 전부 다 이해받는 게 당연한 듯 여겨질 수 있고, 자기 의견 못 내며 지영씨 눈치만 보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것까지도 지영씨에게 의존하려 할 수 있어. 그렇게 한두 번 지영씨 덕으로 위기를 넘기고 나면, 스스로 헤쳐나가야한다는 절박감을 갖기보단 다음번에 또 기대려 들 수 있고 말이야.
“근데 정말 남친 본인도 힘든 상황인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 와중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현 상황이 그렇다면, ‘그래서 당장 즐기기엔 무리가 있는 것’임을 둘 다 받아들이는 게 나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영씨가 이해하며 그 처지를 함께 겪는 것.
이 되어야지,
-그래서 일단 지영씨가 다 부담하며 할 거 다 하는 것.
이 되어선 안 돼. 지영씨는 그러다 보니 힘들어져선, 이제 일부러라도 만나는 걸 줄이는 중이라며. 상대에게는 이런 속사정을 자세히 말도 안 한 채 말이야.
그 속사정을 얘기 해. 그런 얘기 하면 남친이 자존심 상해하지 않겠냐고? 괜찮아. 자존심 지켜주느라 이 관계가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걸 못 본 채만 해선 안 되는 거잖아. 반드시 얘기를 해야 해. 내가 보기에 지영씨 남친은 지금 뭣이 중헌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거든. 그가 과소비나 사치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하고 싶은 건 무난하게 거의 다 해. 근데 그게, 내 친구들이랑은 편의점 도시락 먹더라도 내 여자 치킨 사주는 게 맞는 거지, 그걸 반대로 내 여자 김밥 먹이면서 친구들이랑 치킨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나아가 친구들이랑은 치킨 더치페이 하면서, 내 여자와 먹는 치킨은 여친이 계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골 때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고 말이야.
현재 지영씨가 하는 그 이해와 희생이, 의도와는 전혀 달리 ‘여친에겐 그래도 되는 것’인 상황을 만들 수 있어. 게다가 사람 심리라는 게, 그간 내가 안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나중에 떠맡게 되면, 그걸 대신 해주고 있던 사람의 노력과 고마움을 깨닫기 보다는 당장 내가 맡게 된 것에 대한 짜증과 부담이 먼저 느껴지는 법이거든. 예컨대 내가 커피숍하는데 올 한해 지영씨에게 커피 공짜로 줬다고 해봐. 근데 내년부터는 돈 내라고 했어. 그럼 돈 내고 커피 마시기 시작하면서 ‘작년 한 해 정말 나에게 많이 베풀어준 거구나’하는 생각보다는, ‘커피 값으로 지출 너무 나가네.’가 먼저 느껴질 거거든.
“남친이 그럴 사람은 아니에요. 저한테 고맙고 미안하다는 얘기도 한 적 있고요.”
아냐, 이미 있어. 여기다 적으면 너무 특정되는 까닭에 적을 순 없는데, 돈 문제로 둘이 한 번 큰 갈등을 겪은 적도 있잖아. 그게 이미 그걸 당연한 듯 생각하기도 했다는 증거고, 자신이 헤쳐 나가고 책임지기보다는 의존을 먼저 생각했었다는 증거야.
또, 남친이 좌절하든 무너지든 자극받든 자신이 한 번 겪어야 하는 건 겪어봐야 하는 거거든. 내가 내 여자 스파게티 한 번 못 사주는 상황이라는 걸 그가 느껴봐야, 눈물이 짠 걸 알거나, 자극 받아 이 악 물고 뭔가를 하거나, 게으름 나태함 그런 걸 털고 일어날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그런 기회를, 지영씨가 스파게티 먹으러 가자고 제안해 알아서 계산하는 걸로 막아버리진 마. 그럼 지영씨는 지영씨대로 카드 결제일마다 고통 받을 수 있고, 남친은 남친 대로 별 긴장감 없이 나가서 사주는 거 먹으며 ‘말 잘 들어주는 것’, ‘갈등이 생기면 맹목적으로 사과하는 것’, ‘여친이 불평을 말하면 고치겠다고 일단 대답하는 것’ 으로 갚은 셈 칠 수 있어.
둘 사이에선 저 부분도 이미 진행됐어. 슬슬 남친도 자신이 다 맞춰주고 눈치 보는 것에 피곤함을 느꼈는지, 자기 할 말 조금씩 날카롭게 하잖아. 보통의 관계였으면 이미 그런 모습이 몇 번 나오며 둘 사이에 조율의 과정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겪어보다가 아니다 싶어서는 헤어졌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건 마치 지영씨 연애에 남친이 얹혀 가는 모습이었기에, 남친은 눈칫밥 먹어가며 자기 색깔 최대한 안 드러내려 노력하기도 했을 거거든.
그래서 이게 위험한 거야. 이런 식으로는 사계절을 함께 지내봐도, 상대의 맹목적인 맞춰줌만 경험할 뿐 진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어. 지영씨도 자신이 전부 부담하고 있는 것에 대해 피곤함을 느끼며 그걸 다른 형태로 화풀이 하거나, ‘난 지금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남친은 더 잘 할 생각 안 하나?’하며 불만을 축적할 수도 있고 말이야. 봐봐. 돈도 내가 다 썼는데 관계는 관계대로 엉망이 돼. 이러면 곤란한 거잖아.
보통 지영씨와 같은 여성대원들이
“보상을 바라고 베푸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어떻게 되든 후회하진 않을 거예요.”
뭐 그러는데, 좋아. 다 좋은데, 그런 연애가장의 모습이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오히려 둘의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왜, 아이를 마마보이로 만드는 가정에서 엄마에게 아빠들이 “지가 하게 둬. 그걸 왜 다 해줘? 왜 애를 바보로 만들려고 그래?”라는 이야기를 하곤 하잖아. 바로 그것처럼, 이쪽은 자신이 상대를 보살피며 앞바라지 뒷바라지 다 한다고 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상대를 점점 바보로 만들거나 느슨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고. 또, 그러다간 지영씨도 마마보이를 둔 극성엄마처럼 상대를 혼내며 쥐락펴락 하려 들 수 있으니, 오늘부턴 상대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 주려 하지 말고, 옆에서 같이 겪는 것 정도만 해보자고. 알았지?
▼그래 차라리 눈 더 오고, 더 오고, 더 와서, 물낚시 접고 얼음낚시하자!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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