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반 동안 수입이 없던 남친과의 이별, 진짜 끝낼까요?
- 2017. 12. 12. 19:50
- Written by 무한™
그에겐 이 관계가, 일종의 진통제였던 것 같다.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현실에서 눈 돌릴 수 있게 해주는 관계라고 할까. 공부 막 시작하려고 책 폈는데 친구들이 나오라는 얘기하면
‘그래. 오늘까지만 애들 만나서 놀고, 내일부터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나갈 수 있듯, 그런 느낌으로 나가 P양과 데이트를 즐겼던 것 같다.
P양 역시 외로움을 느끼던 상황에서, 일주일에 5일을 만날 수 있으며 언제든 연락이 닿는 남친이 생겼으니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PC방에서 게임하는 데이트가 주를 이뤄도 불만을 품지 않았고, 식사를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해도 그땐 그저 좋았을 수 있다.
그런 소비적인 연애의 종말을 난 200일 정도로 본다. 첫 3개월, 그러니까 한 100일까지는 그냥 얼굴만 봐도 즐거운데다 연애를 하고 있다는 설렘에 들떠 아무 고민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을 더 만나 200일 정도 되면, 만나서 매번 하는 것도 똑같으며 한정적인데다, 둘 중 한 쪽만 계속 이해하고 참는 걸 도맡아 하는 것에 대한 피로를 느끼며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관계의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하니, 그 연애는 더 이상 ‘도피처’로서의 기능을 못하게 된다. 도피한 쪽의 입장에선 답답한 생활을 잊고 싶어 접어두고는 연애로 눈을 돌렸던 건데, 연인이 자꾸 현실을 마주보게 하려들거나 이제 더는 ‘우쭈쭈쭈’ 대신 ‘진지한 미래 고민’같은 걸 꺼내니 연애에서도 도피할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이런 커플들의 경우 사귄 지 200일 이후 급격하게 관계가 멀어지거나, 연애로부터도 도피하려는 쪽이 친구나 취미나 또 다른 이성 등의 ‘다른 도피처’를 만들며 갈등이 깊어지곤 한다. 그런 상대를 마주하고 있는 쪽에서는 ‘연애는 요 정도면 합격, 이제 다른 부분에서도 합격할 것’을 바라는 건데, 사실 그게 상대로서는 ‘다른 부분’을 다 접어두고 연애에만 매달리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인 까닭에 둘 다를 잘할 자신이나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P양의 경우를 보자. 상대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공부하는 사람이 일주일에 5일을 데이트 하며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다면 대체 공부는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놀랐던 건 P양이 상대에게 ‘15분 이상 톡을 하기 힘든 상황이면 꼭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부분인데, 이게 무슨 보고자와 감시자의 관계도 아닌데 이런 규칙까지 정했다는 게 좀 당황스럽다. 데이트 역시 상대가 P양 쪽으로 와서 법 먹고, 커피 마시고, 대화하다 들어가는 걸로 굳어졌다는 것도 안타깝고 말이다.
여하튼 위와 같은 이유로 이런 연애는 1년이 되기 전에 끝나기 마련인데, 헤어지자는 얘기가 몇 번 나오고 서로를 차단하는 일까지 이어져도 계속 매달릴 정도의 미련력(응?)을 가지고 있을 경우 좀 더 길어지기도 한다. 그 기간이 평균 6개월 정도 되는데, 그때는 좀 더 자극적이고 강한 걸로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동물욕이나 숫자욕, 심지어 가족욕이 등장하기도 한다.
밖에서 보면 이건 연애라기보다는 서로를 학대하는 것에 가까우며 애정 대신 악만 가득 들어찬 관계지만, 그것도 또 그것 나름의 정이 드는 까닭에
‘이렇게 서로의 막장까지 확인하고도 계속 연락하는 우리가, 진짜 사랑. 진짜 인연.’
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래버리면 각자 알아서 살다가도 다시 혼자가 된 날 상대에게 연락하곤 하는데, 대부분 ‘이제 나도 몰라. 될 대로 되라’의 심정으로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정물을 들이키고 만 기분이 되기도 한다.
P양의 ‘끝내느냐, 마느냐’란 질문에, 난 끝내는 게 맞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이젠 P양이 무슨 얘기를 하든 상대는 잔소리나 시비 거는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조율이 불가능하며 늘 얘기하는 ‘존중과 책임감’도 그 관계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저렇게 짧게 대답해도 될 걸 구구절절 써둔 건, 이번 연애를 오답노트 삼아 다음 연애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길 바라는 내 바람이며, 혹 이후에도 헤어지지 못해 계속 이어가거나 ‘악연이든 뭐든 이런 게 인연’이라는 생각에 몇 년을 허송세월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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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2017.12.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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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2017.12.1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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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017.12.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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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2017.12.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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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Z2017.12.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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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Z2017.12.1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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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에게 똑같이 아름답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는 연애는 어떤 연애일까요..
어떤 시간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은 적어도 함께한 시간 속에서의 상대와 나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아름답고 절실한 무언가가 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걸 얼마나 지켜왔는가,
진성2017.12.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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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오링2017.12.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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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2017.12.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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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본인이 하는거 겠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만 놓아주세요
꼬마2017.12.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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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2017.12.1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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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하늘2017.12.13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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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7.12.1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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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가 적힌 성적표를 보냈던 구남친이 떠오르네요...ㅎㅎ;
AtoZ2017.12.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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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밤2017.12.1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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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7.12.1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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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불’ 택배였다는 겁니다 ㅋㅋㅋ
꾸준맨2017.12.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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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2017.12.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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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잘 접으시고 새로운 인연 만나시길
연2017.12.1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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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의 글을 조언삼아 사연자님이 좋은 방향으로 결정을 잘 하시길 빌어요.
연애라는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만남을 좋은 방향, 즉 서로 윈윈할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그 반대 방향의 길로 가고 있다면 아무리 좋아해도 놓을줄 아는 것이 현명함이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를 꽃길로 데리고 가야지 놓을 수 없다고 한쪽을 -그게 사연자님이든, 상대방이든- 진창으로 끌고갈순 없잖아요...
용감한벌레2017.12.1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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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든다는게 참 무섭다는 말을 참 실감합니다.
이 안에 갇혀있다보니, 객관적인 판단력도 흐려지고, 이 관계를 이어가야 할지 말아야할지에 대한 고민만 늘어납니다.
사랑...이라고 거창하게 까지 말을 할수있을까도 싶고요.
같이 있어서 행복하고, 의지할수잇고,서로를 배려하는 관계...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나이가 있어서그런지, 한쪽이 불안정한 상태를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상대는 또 상대나름대로 너무 힘들다고 하니, 힘들다고 말도 못하고 참게되죠..
결정을 한다는것자체가.참 힘드네요..
도롱2017.12.1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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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봤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