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 죽겠는데 여자친구는 자꾸 자기 감정까지 돌봐 달라며 징징거리고, 주말에 좀 쉬고 싶은데 여자친구는 어디 같이 가길 바라며, 결혼은 좀 나중 얘기 같은데 여자친구는 친구 누구 결혼한다며 ‘우리는 언제쯤 결혼하게 되는 건지?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하는 얘기로 부담을 주는 것 같다면, 그녀를 견디긴 힘드니 헤어지는 게 맞을 수 있다.
그녀와만 헤어질 게 아니라, 연애에 한 2할 정도밖에 할애할 수 없다면 연애 자체를 나중으로 미루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대로 다시 누구를 만난다면 그 사람 역시 이쪽에게 비전이나 믿음, 애정을 확인 할 수 없어 집착할 수 있으며, 어차피 그럴 거면서 초반엔 안 그런 척 열정적으로 구애하곤 이후 방치하는 연애를 하는 건, 서로에게 상처만 만드는 일일 수 있으니 말이다.
Y씨가 나쁜 사람이 아니며, Y씨 역시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렇다고 Y씨가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며, Y씨의 그 노력이라는 게 상대를 점점 더 괴물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무엇이 어떻게 작용했길래 이제 둘에겐 전쟁만 남은 듯한 연애가 되고 말았는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나에게 기대’에서 ‘기대지 마 무거워’까지.
썸을 탈 때와 연애 초반에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얻어내려 호의를 먼저 베풀고 상대가 혹할만한 주제를 꺼내 불러냈으면서, 사귀고 난 후엔 점점 그런 걸 기대하는 여자친구를 부담스럽게만 생각했던 건 아닌지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바라는 게 많은 것 같은 여자친구가 지금은 이기적인 여자로 보이겠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그 ‘바라는 것’들을 다 해줄 것처럼 말하며 기대고 기대하도록 유도했던 건 Y씨다. 그래도 다행히 Y씨는 상대의 대인관계까지 터치하진 않았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여자친구에게 연애에 집중하라며 그녀의 대인관계 다 끊어 놓고는, 나중에 여자친구가 이쪽만 바라보면 ‘다른 사람들도 좀 만나고 그래’라며 밀어냄.
을 시전하는 대원들도 종종 있다.
극명하게 비교되는, 작년 벚꽃놀이와 올해 벚꽃놀이를 보자. 작년에 벚꽃놀이 얘기 꺼내고 같이 가자며 들이댔던 건 분명 Y씨 였는데, 올해는 여자친구가 먼저 알아보고 제안해도 Y씨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응만 보이지 않았는가.
“그건 제가 이직도 했고, 일이 바빠져서….”
난 바빠도 가야한단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건 예전엔 ‘먼저 제안하며 여자친구와 함께 뭔가를 하고 싶어했던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 사정이 이렇다 말하며 여친에게 이해하길 바라는 모습’이 훨씬 크고 많다는 거다. Y씨의 대답에서는 ‘나도 너와 함께 가고 싶은데, 지금 상황이 이래서 못 가는 게 속상하다’는 게 느껴지지 않으며, 그저 ‘여자친구가 자꾸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만들어선, 점점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2. ‘예스맨’이 되는 게 능사는 아니다.
Y씨의 말대로 상대에 대한 Y씨의 마음에 정말 변화가 없는 거라면, Y씨의 문제는 ‘상대를 설득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알아서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똑 같은 거절이라 해도 “나 그 날 시간 안 되는데?”와 “다음 주에는 안 될까? 나 그 날까진 프로젝트라 묶여있어야 할 것 같아.”는 분명 그 온도가 다른 법인데, Y씨는 전자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는 ‘날 만나고 싶어하는 건 맞는가?’란 의문을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고, 때문에 바쁜 거 이해한다며 몇 번 참고 넘어 갔다가도 참기 힘든 수위까지 도달하면 결국 폭발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 또 그걸 Y씨는 ‘바쁘다는 것도 이해 못 해주는 것’으로만 여겼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나 갈등을 얼른 넘기려고 여친의 말에 다 ‘예스’를 하면 안 된다.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솔직한 내 생각’을 말해줘야지, 맹목적으로 알았다고 답하거나 나중에 그러자고 대답해버리면, 상대는 상대 대로 기다리게 되며 이쪽은 이쪽 대로 훗날 감당하기 힘든 채무를 떠안게 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Y씨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 여친의 투정이나 불만에 점점 영혼 없이 기계적인 리액션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여친의 불만족은 ‘미래의 보상’을 약속 받는 걸로 임시 봉합될 뿐이었다. 이것도 나중에, 저것도 나중에, 그리고 그건 좀 시간 나게 되면 하는 걸로 미뤄졌으며, 그렇게 여친의 기대가 커질수록 Y씨는 더욱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만날 때마다 ‘이벤트’처럼 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거나, 그게 또 부담되어 아예 만남 자체를 미루는 일이 늘어났고 말이다.
그렇게 신경 쓸 일을 다 미루는 것이 습관화 된 Y씨가
“미리 얘기하는 건데, 우리 다음 달엔 한 번도 보기 힘들 수도 있어. 나 다음달에….”
라고 이야기 한 건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저건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부탁하는 게 아니라, 그냥 미루기 위해 정당화한 핑계를 대는 것 아닌가. 그리고 연인이 만나는 건 그냥 어느 하루 저녁만 한 끼 같이 해도 되는 건데, Y씨는 나중에 하자며 미뤄둔 일이 많기에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때문에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은 이상, 무작정 핑계를 앞세워 만남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고 말이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무조건 ‘예스’라고 답하거나 나중으로 미뤘던 일들이, 결국 둘을 어떻게 만들었나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3. 생각이 없거나 이상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그런 거다.
문제를 좀, 꺼내 놓고 말하자. 둘은 연애를 하는 거지, 보호자인 오빠가 아무 것도 모르는 여동생을 이끄는 관계가 아니잖은가. 그리고 상대는 서른에 가까운 어른이다. 서른에 가까운 사람이 아무 생각도 없이 진짜 마냥 헤헤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다. 연애 하면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줄 알고 막 헤헤 웅웅 하는 거지, 단언컨대 상대도 Y씨 만큼 사고할 줄 알며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연을 받다 보면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나니까 너 만나지. 넌 나 없으면 어떻게 하냐 진짜.”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는 남자들이 종종 보이는데, 그 말을 들은 여자친구가 그냥 침묵으로 긍정하듯 넘어가는 건 아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뒤에서 내게 털어 놓는 이야기들을 보면, 그녀들은 그 말을 한 남자친구의 근자감과 오만함까지도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니까 그 자리에 있는 거지, 그게 사실이라서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당장은 칼자루가 이쪽에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이 ‘그런 여자친구’를 사귀어 주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잠시 생각을 바꿔
-여자친구가, 지금 내게 있는 문제들이 전혀 없는 남자를 만나 연애하면 어떤 모습일까?
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개 근자감이 넘치는 시기엔 ‘다른 남자’가 여친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쪽과 사귀며 늘 목말라만 하던 여친이 사랑꾼인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쪽의 존재는 떠올리지도 않은 채 사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때문에
‘쟤는 누구를 만나든, 내가 한 마디만 하면 맨발로 내게 달려오겠지.’
라는 생각을 하던 사람은, 이제 상대에게 자신이 ‘똥차’가 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상대에게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거나, 욕을 하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장 상대가 매달리니 이쪽은 심드렁해하며 심술이나 부리는 행동은 하지 말길 권한다. 또, 상대가 매달릴수록 상대를 함부로 대하거나 오늘 저녁에 만날 약속을 해놓고도 “오늘 못 보겠는데? 나중에 봐도 돼?”라며 약올리듯 말하는 일을 벌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골탕먹이고 자극해 놓고는 ‘이게 다 상대의 집착병 때문’이라고 말하진 않았나도 점검해봤으면 한다.
끝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건, 상대에 대한 애정이 고갈되었다거나 더는 만나고 싶지 않은 거라면, 단호하게 이별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거다. 당장은 잔인한 것 같아도 그게 결국 둘 모두를 위하는 방법인 거지, 지금처럼 잡는다고 계속 잡혀주고 그저 이별을 유예해가며 상대의 모든 기대를 부러뜨려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건, 점점 더 막장만을 경험하거나 극단적인 일들까지 벌이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전 아무 것도 안 했는데요? 그냥 여자친구가 자기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한 거지, 전 제가 먼저 다시 연락하지도 않았고 뭘 어떻게 하자고 말하지도 않았는데요?”
그래도 한때 나마 상대가 있어 가슴이 뛰었던 시간을 경험한 거라면, ‘난 수동적으로 반응만 한 것이니 아무 잘못 없다’는 얘기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차단을 해서라도 상대가 체념할 수 있게 돕길 권한다. 상대로서는 자신이 밀면 밀리고 당기면 또 끌려오는 이쪽을 보며 그게 가능성이라 생각할 수 있으며, 이쪽이 모든 걸 상대에게 위임한 채 뒷짐 지고 있는 걸 기회라 착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여친에게 오는 연락 다 받으며 그녀가 폭주할 수 있는 멍석은 다 깔아 놓고 ‘그건 쟤가 그런 거지 내가 그런 게 아님’이란 얘기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인들에게 그렇게 스토킹 운운하며 이야기 할 거리를 만들려 상대를 비참하게 만들진 말았으면 한다. Y씨가 그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걸 ‘상대가 이러는 것. 난 아무 것도 안 했음.’이라며 둔 채 뒷짐지고 있는 게, 상대가 괴물로 변하는 걸 구경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하는 얘기다.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주말이라 좀 상콤한 주제를 다루려 했는데, 오늘내일 하는 사연이 눈에 띄어 먼저 다루게 되었다. 아무튼 그럼,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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