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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이상한 여자라는 말을 듣고 헤어졌는데, 제가 이상한가요?

by 무한 2018. 4. 24.

대시하던 모든 남자들 밀어내고 택한 첫 연애 상대가 이런 남자라니! 남친에게 이렇게 무시와 멸시를 받으며 사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며, 그것도 오랜 연애 끝에 악만 남아 점점 막장으로 접어든 게 아니라 한 달 내외로 이정도까지 들어간 건 분명 특이한 사례다.

 

이건 연애를 했다기보다는, 상대의 수작에 말려들어 세뇌와 학대를 당하다 유기당한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C양이 이걸 ‘첫 연애’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을 쏟아가며 맞춰가려 한 것과 달리 상대는 ‘목적 달성을 위해 연애인 척 하기’로 사용했으며, 그러다 보니 조율해보려는 C양의 노력은 전부 상대가 ‘어차피 버릴 거라 생각하며 마음대로 구는 것’에 이용당하고 말았다.

 

연애 중 그가 무슨 말을 했든, 그걸 곱씹으며 지금까지 ‘진짜 내가 이상한 여자인 건가?’하는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이 이별을 통해 배워야 할 건 ‘이런 남자와는 만나서는 안 된다’인 것이며, ‘연애 중 이런 행동이나 변화를 보이는 남자와는 즉각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 지점들이 어떤 것인지, 오늘 함께 알아보자.

 

이상한 여자라는 말을 듣고 헤어졌는데, 제가 이상한가요?

 

1. 남자가 걸었던 괴상한 조건들.

 

여친을 더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까닭에 ‘좀 더 같이 있자’거나 ‘그 날엔 하루종일 같이 놀자’는 이야기를 할 순 있다. 그럴 순 있는데, 그게 일방적으로 ‘그러니까 네가 와라’라는 식이거나 ‘오늘 만나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거다’가 된다면 거기서부턴 분명 많이 이상한 거다.

 

C양의 남친이 요구했던 것들은, 전부 후자였다. 그는

 

-내가 너 있는 곳까지 갈 테니, 오늘 우리 집에서 자는 거다.

-나 보고 싶냐. 보고 싶으면 지금 보러 우리 집에 와라.

-난 너에게 다 맞춰주는데, 넌 부모님 핑계 대면서 안 오냐.

 

등의 이야기를 할 뿐이었는데, 멀리 떨어젼 여기에서 보기엔 저게 딱 봐도 개수작이라는 게 보이지만, 그게 ‘첫 연애’이며 그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맞춰보려 노력하던 C양은 ‘진짜 그래야 하는 건가? 내가 양보하고 맞춰야 하는 순간인가?’하며 갈팡질팡하고 말았다.

 

내가 이걸 이렇게 확고하게 ‘개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그는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C양을 보러 오기보다는 자기 집으로 오라는 얘기만 했으며, C양이 그를 만나러 간다 해도 ‘자기 집으로 와서 보는 것’이 아니면 심술을 부릴 뿐이었다. 특히

 

-지금 꼭 너에게 급히 해야 할 말이 있으니, 우리 집으로 좀 와 달라.

 

고 한 건 역대급 개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C양은 무슨 일인가 싶어 한달음에 그의 집까지 갔는데, 그는 ‘지금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며 그 떡밥을 허무하게 거둘 뿐이었다.

 

둘째, 그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할 때 보이던 집중력과 열정이, C양이 그의 집에 도착한 이후로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된 점이다. 그가 안달복달을 해서 C양이 찾아가면, 그는 목적을 달성한 후 C양이 집에 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매번 그러는 것에 지쳐 C양이 집에 가겠다고 하면, 놀랍게도 그는 ‘넌 너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냐’며 그게 전부 C양이 이기적이며 이상한 여자라 벌어지는 일인 듯 만들었고 말이다.

 

저런 순간에 한 발짝 물러서선 ‘이게 제대로 된 연애가 맞는가? 상대가 원하는 걸 내가 안 해주면 내가 나쁜 여자이며 이상한 여자인 건가?’를 생각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C양은 ‘원래 연애하면 남친이 말하는 대로 하는 게 맞는 건가?’하며 판단을 보류한 채 한 발짝 한 발짝씩 그의 수작에 말려들고 말았다.

 

 

2. 존중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그냥 막 대했던 거다.

 

잘 판단해야 한다. 상대가 누구든, 그가 C양에게 뭐 그런 걸 처먹냐느니, 지금까지 처잔거냐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건, ‘존중이 부족한’ 것 정도의 레벨이 아니다. 그건 그냥 막 대하는 것일 뿐이며, 그런 말이 연애 중 등장했다는 건 앞으로 숫자욕과 동물욕이 튀어나올 거라는 예고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애정표현 할 때는, 남자친구가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절 보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게, 상대가 자기 놀고 싶거나 하고 싶을 게 있을 때에만 C양을 그렇게 대하며,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막말을 하고 밀쳐대는 건 아닌지 반드시 비교해봐야 한다. 다행히 C양의 이번 연애에 큰 폭력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때리는 남친’의 사연을 보면 그들 역시 자기 기분 좋을 때에는 로맨티스트인 듯 보이기도 하며 사과를 할 때 무릎 꿇고 우는 등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과를 안 받아주는 거냐’며 폭언과 폭력을 사용하지만 말이다.

 

막말과 장난을 빙자한 폭력적인 성향 외에도, 그에겐 화풀이를 위한 인신공격과 계속해서 C양을 ‘이상한 여자’로 몰아가는 잔인한 정서적 학대의 문제가 있다. 이건 자존감이 부족하거나 연애에 대해 잘 모르는 대원들이 ‘상대가 말하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며 세뇌되는 지점인데, 한두 번 휘둘리다 넘어가 버리면 점점 더 그 수위가 높아지며 삶의 모든 측면을 상대로부터 부정당한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등장하는 멘트로는

 

-넌 그냥 온실 속 화초로 어려움 없이 그렇게 사는 거다.

-넌 사회성이 부족하며 사람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 줄 모른다.

-네가 싫다는 애들이 너의 그런 단점들 때문에 떠나간 거다.

-지금도 넌 나에게 뭔가를 요구한다. 네가 먼저 뭘 할지를 생각해라.

-사랑한다면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 넌 그러지 못한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거다.

-다른 남자들은 널 이러이러하게 생각할 것이다. 비웃을 것이다.

 

등이 있으며, 저런 말들로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내려 하며, 자신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점점 더 감추려든다. 그렇게 빠져들다 보면, 이쪽은 상대의 꼭두각시가 되어 조종당하는 것이고 말이다.

 

저런 상대와 연애를 한 뒤 유기된 대원들을 보면, 이별 후에도 끊임없이 상대의 저주를 곱씹으며 자기학대를 하거나, 진짜 자신이 너무 부족해서 이제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 하는 중인 경우가 많다. 연애 중 상대가 자신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이쪽을 바보로 만든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해 자신이 진짜 바보라고 생각해 버리거나, 싸울 때마다 상대가 한 인신공격과 자존감 짓밟기에 하도 당해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는 날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불안에 떨게 되는 것이다.

 

한 달 남짓 상대와 만난 C양 역시 연애 중 상대가 한 말들로 혼란스러워하는 중인데, 상대가 한 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얼른 거기서 나오길 권한다. 그 무책임하며 궤변만 늘어놓을 줄 알던 상대는 C양을 그렇게 유기하고도 오늘 나가 웃으며 놀 텐데, 폐허가 된 곳에서 C양 혼자 남아 파편만 만지고 있는 건 억울한 일 아니겠는가. 그가 연애를 위해 한 거라고는 지적질과 위협, 그리고 지가 놀고 싶을 때 달콤한 말들을 늘어놓았다가 흥미를 잃으면 C양이 가든 말든 상관도 안 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C양을 ‘이상한 여자’로 만들었던 것들에, 여전히 아파하며 시간을 보내진 말자.

 

 

3. 제가 결혼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아서 떠나간 걸까요?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를 생각하다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정신 차리자. 상대가 C양에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건

 

-나에게 얼마만큼 빠졌나 떠보기. 결혼 얘기 꺼내서 더 빠져들게 하기.

 

를 위한 거였다. “난 너랑 결혼하고 싶은데, 넌 아닌 거냐.”라는 이야기를 해서 C양을 흔들려고 한 것이며, 그런 얘기들에 C양이 긍정적인 대답을 하면 그는 ‘이만큼 내게 빠졌군.’하며 자신감 충전소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가 진지하게 물으며 C양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과 맞춰보려고 했던 건 결코 아니다. C양이 그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후 ‘그럼 우리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거?’라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농담으로 이어가며 그냥 넘기지 않았는가. 친구와 지인들에겐 C양과 사귀는 걸 비밀로 했고 말이다.

 

백번 양보해 그게 진심이었다고 해도, 그는 그냥 달달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 평소에는 C양에게 와라가라 하며 올 때 이것저것 사오라고 주문만 했다는 걸 잊지 말자. 사귄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는 집에 와서 밥 차려라, 아프니까 뭐 사와라, 날 위해 이것저것 챙겨줘라 하지 않았는가. 이런 지점들은 분명 정상적인 연애와 거리가 먼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양은 그걸,

 

-남친이 외로움도 많이 타고,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하나보다.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채 전부 베풀고 말았다. 분명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남친이 ‘날 위해 넌 뭘 할 수 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니 ‘원래 이래야 하는 게 연애인가보다’ 하며 나중엔 심부름에 가까운 일들까지 했으며, 그는 C양이 마음을 더 써서 사간 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태도까지 보이기도 했다.

 

상대가, 자기 마음대로 C양이 움직이지 않을 때마다 내팽개쳤던 건 또 어떤가. 그는 “네 마음대로 해.”, “됐으니까 가.”, “날 위해 네가 뭘 얼마나 했냐?”라는 이야기를 하며 C양을 관계에서 쫓아내는 듯한 말들을 하지 않았는가. 그런 상대를 다 겪고도 ‘내가 결혼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아서 헤어진 건가?’하다간 정말 큰일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다시 결혼 얘기해서 붙잡아볼까 하는 끔찍한 생각은 하지 말길 권한다. 다시 만나도 결코 결혼까지 가진 않겠지만, 만에 하나 결혼하게 되면 그땐 상대의 노예로 사는 삶만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사실 이건 고민할 가치도 없는 관계다. C양이 ‘후회된다’고 말하는 지점은 인간으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킨 것이며, 그것마저 내려 놓고 상대를 만났다면 장난감에 가까워졌을 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 사기꾼에게 더 헌신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기로 했었다면, 더 크게 당하는 일 말고 뭐가 남았겠는가.

 

내가 걱정되는 건, C양이 내디딘 첫걸음에 지뢰를 밟은 것과 같기에, C양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연인에 대한 불신과 베풂에 대한 트라우마다. 그래서 마음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대원이 있는 반면 ‘내가 더 잘하지 못해서 헤어졌다’고 생각하며 다음 연애는 무릎부터 꿇고 시작하려는 대원들도 있는데, C양은 그러지 말고, 그냥 이걸 뭐 밟았던 거라 생각하며 무탈하게 흘려보냈으면 한다. C양의 잘못이라고는 상대가 짖어대는 것에도 경청해주려는 모습을 보인 것 밖에 없으니 후회나 미련 같은 건 내려놓고, 다음번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상대가 짖는 걸 계속 듣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내 갈길 가야하는 거라는 교훈 하나 들고 다시 걸어보자.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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