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일 아침 비행기로 신혼여행을 떠나는데, 당일 새벽 2시가 다 된 지금에서야 현지 예약을 모두 마쳤습니다. ‘남들이 30일 걸려야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3일이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늘 이렇게 간단한 일에도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를 맡고 있는 느낌입니다. 근데 뭐, 한 번 뿐인 인생 꼭 거북이처럼 살 필요 있겠습니까. 어쨌든 결혼식 당일에도 새벽 두 시에 영상을 마무리했고, 신혼여행도 이렇게 출발 당일에 예약을 마무리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느끼는 희열을, 아는 사람을 알겠지요.
2.
비행기, 숙소, 열차 정도만 예약하고 신혼여행을 가봅니다. 이럴 경우 싸움을 필연적이지요. 괜찮습니다. 12년 연애하면 이런 건 기본으로 잘하는 것 아니냐고 하던데, 그것보다는 맷집이 늘지요. 날 쏘고 가라.
3.
결혼식 영상은 1부가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를 담고 있고, 2부가 피끓는 이십대, 지친 삼십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부의 BGM이 <si tu vois ma mère>였고, 2부의 BGM이 <Timber> 였습니다. 1부를 만들며 눈물을 만 갈래로 흘렸습니다. 당연히 결혼식 당일엔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눈만 부었으면 괜찮은데, 만들며 하도 울어서 콧속까지 다 붓고 말았습니다. 축가도 셀프로 하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물 안 마시고 담배를 반 갑쯤 피우고 나니, 전성기 지난 임재범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 나름대로 임재범이 부른 <다행이다>의 느낌을 살렸는데, 하객들은 축가에 대해선 말이 없었습니다. 왜 때문이죠? 거친 바람 속에도 바로 여러분.
4.
“잘 다녀와라. 난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갈 때가 제일 좋더라.”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패키지로 다녀와서 그런 소리들을 하나 봅니다.
5.
아니, 생각해 보면
“신혼여행 어디로 가?”
라는 질문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인천발 취리히착, 로마발 인천착입니다. 다녀와서 사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6.
유부남이 되어 쓰는 첫 글인데 이따위라 죄송합니다. 사실 아직 캐리어도 열지 않아서 짐을 싸고 자야 하는데, 저 없는 동안 또 부재를 아쉬위 하며 ‘에잇, 글 하나도 안 올리고 가다니. 무한 바보.’ 라고 하실 분들이 있을까 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도 무게 잡고는 좀 뭉클한 글이나 하나 쓰고 다녀오고 싶었는데, 물리적으로 그게 어려워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이제 곧 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근데 진짜 한 보름쯤만 더 주고 결혼식 다시 하라고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들은 이후 ‘결혼준비매뉴얼’에 정리해 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7.
직접 구상해서 만들었던 제 청첩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3
영상 때문에 진짜 여럿이 울었는데, 이건 보여 줄 수가 없네….
8.
다녀오겠습니다. 6/13일쯤 한국에 다시 돌아올 것 같은데, 오자마자 폭풍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현지에서도 사진과 짤막한 글 몇 장 올리며 생존신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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