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명이 <천오백자연애상담>인데, 늘 삼천 자를 넘게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며칠간 말을 놓고 쓴 매뉴얼을 발행하기도 했고 해서- 높임말로, 천오백 자에 딱 맞춰볼까 합니다. 매뉴얼 분량이 적다고 해서 정성이 덜 들어간 건 결코 아닙니다. 특히 임형의 이 사연이야 말로 제가 네 번째 다시 쓰고 있는 매뉴얼이니, 쓰다 쓰다 이것만 붙잡고 있는 것에 지쳐 요점만 정리하는 거라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임형이 연락하고 있는 상대는, 진입장벽을 50cm밖에 안 쌓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임형은 사연에
-다른 여성유저들은 번호 절대 안 주며 알려줘도 가짜번호 줌. 그런데 상대는 진짜 자기 번호를 알려줬음.
이라고 적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상대 주변엔 남녀불문 사람들이 가득하며, 약속은 거의 매일 있다시피 하다고 했고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1m 20cm 정도의 진입장벽을 두는 까닭에 서로 얼굴을 볼 순 있어도 막 넘어가서 곁에 서기 힘든 반면, 상대의 그것은 50cm밖에 안 되기에 마음만 먹으면 넘어 들어가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임형이 상대와 친해진 것만큼 친해지기 위해선
-전화 오면 받고 수다 떠는 거 들어주기.
-농담에 리액션 해주고 같이 장난치기.
-상대가 될 때 같이 게임하고, 안 될 때 혼자 하기.
정도만 하면 됩니다. 그냥 상대가 좀 심심할 때 연락하면 열심히 응대해주고, 그렇지 않을 땐 조용히 기다리는 정도만 하면, 누구라도 이만큼 친해질 수 있는 거라고 할까요. 모태솔로인 임형은
‘그래도 이성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이며 자주 나와 연락하는 건….’
이라며 기대를 좀 품어볼 수 있겠습니다만,
-상대가 심심하지 않을 땐, 임형이 상대 삶에 1mm도 끼어들 수 없음.
이라는 걸 반드시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이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현재 둘의 관계가
-얼굴 안 본 사이라 아무 말이나 막 하고, 능청스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관계.
라는 점입니다. 임형은 드립 잘 치는 남자를 연기하려 하며, 상대 역시 주제가 뭐든 다 농담으로 받아 쳐내지 않습니까? 뭐 그런 관계라 해도 서로의 그런 드립들이 잘 먹히고 코드가 맞는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하든 임형이 어떻게든 다 받아내려 하며, 상대 역시 임형이 진부한 얘기를 해도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분위기가 싸해지니 그냥 대충 받고는 또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임형은 현 상황을 두고 제게 ‘서서히 친해지며 천천히 물드는 가랑비 작전 중’이라고 하셨는데, 이건 그냥 ‘위험할 것 같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상대가 심심해서 나와 대화하고 싶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전화도 카톡도 다 줄고 있는 건, 어느 모로 보나 비가 그치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굳이 이 관계가 죽이 되나 밥이 되나 뚜껑을 열어 확인해 보시겠다면, 전 일단 상대와 약속을 잡고 오프라인에서 만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현실에 뿌리 내리곤 싹이라도 틔워볼 수 있는 거지, 지금처럼 이름도 얼굴도 정확히 모르는 사이로 상대 심심할 때 말벗이 되어주기만 하면 상대가 게임 접을 때 둘의 관계까지 같이 정리될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까지 공백 포함 1,699자. 임형에게 도움이 되는 1,699자 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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