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도 잘 맞고 매너도 좋은 남자, 그와 사귀고 싶어요.
- 2018. 9. 18. 03:50
- Written by 무한™
그러니까 이게 사람 성격이고 취향이고 뭐 그런 건데, 소영씨는 좀 긴장 푼 모습으로 편하게 대하기가 살짝 어려운 타입입니다. 같이 영화를 봐도 킬링타임용 액션영화는 질색할 것 같고, 유행가 얘기를 했다가는 수준 낮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으며, 와인 마시자고 해야지 소주 마시자고 했다간 미개하게 여겨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특이하고 흥미롭기는 한데, 편하지가 않습니다. 보통 소영씨 타입의 대원들이 보낸 사연을 보면 독백하듯 써내려가는 ‘사연신청서’엔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이 보이더라도 카톡에선 사람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소영씨의 경우는 사연신청서와 카톡대화 둘 다 잘 다려진 옷 같습니다. 각이 잘 잡혀있는 건 좋은데, 그래서야 어디 좀 철퍼덕 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영씨도, 상대와 대화하려면 막 ‘지식과 정보의 교환’이나 ‘수준급 안목의 표현’ 등을 해야 해서 좀 힘들지 않으십니까? 뭐, 그러면서도 둘 다 재미를 느끼고 그런 지적인 드립을 칠 때마다 통하는 느낌이 든다면 괜찮습니다만, 그러느라 보통의 가벼운 안부인사나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못 하는 게 좀 안타깝습니다.
예컨대 그냥 커피 한잔하자는 얘기를 해서 약속 잡으면 될 걸, 상대가 막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기원과 함께 지역별 커피의 특징, 현 프랜차이즈 커피의 맹점, 기후와 로스팅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상대가 그런다면, 저는 정말 흥미로울 것 같은데요?”
네, 그래서 뭐라 말씀드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소영씨 자체가 좀 특별하고 심도 깊은 것에 관심을 두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에 분명 즐거움을 느낄 거라 여기니 말입니다.
하지만 관심사가 비슷해 서로 간단한 얘기를 나누거나 몇 번 정도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매번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신기하게도 A, B, C라는 세 가지 관심사가 같다 해도 D, E, F, G… V, W, X, Y, Z라는 관심사는 전혀 다를 수도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더불어 ‘내가 아는 주제’가 나왔다고 해서, 아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영씨와 제가 아는 사이인데, 소영씨가 제주도를 다녀왔을 때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소영씨의 말을 중간중간 제가 다 끊고 들어가서 ‘내가 아는 제주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면, 맥이 좀 뚝뚝 끊기지 않겠습니까? 달변은 은이요 경청은 금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막 상대의 말을 중간중간 정리해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내가 알고 있는 걸로 받아치려고 하지 않으셔도 좋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모든 학문 이전에 사람이 먼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문학이나 영화도 결국은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자르고 붙여서 만든 것이라는 걸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그것의 화자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캐릭터’에 가까우며, 인간 사이에서의 일을 관찰해 문장이나 장면으로 재구성한 것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내가 온전히 그런 존재가 되려 한다거나 누군가가 그런 존재이길 바라는 것은, 만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나 역시 그런 상대를 대하는 하나의 캐릭터로서 상대를 대하다 보면, 자꾸 대화가 아닌 대사를 치려 하며 일상적인 문답을 이어가기보다 산으로 가는 대화를 하게 될 수 있고 말입니다.
소영씨는 현재 얼마든지 상대에게 연락할 수 있으며, 둘이 만날 약속을 잡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뜨문뜨문 연락을 이어가며 겨우 한두 달에 한 번 보는 것부터 그 빈도를 좀 늘려가시길 권합니다. 소영씨가 말을 꺼낼 때 상대 역시 “아 저도 같이 먹자는 얘기하려고 했어요!”라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일 때에는, 더 자주 만나서 대화하고 노는 게 중요한 거지, 폐관하고 들어가 내공을 더 쌓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고뇌와 명상의 시간은 충분히 가졌으니, 이제 거리로 나가 상대를 만나시길 권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 공감과 좋아요,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연애매뉴얼(연재중) > 천오백자연애상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지만, 준비가 안 되었단 생각이 듭니다. (29) | 2018.10.06 |
---|---|
장기 미취업자인 남친과의 연애, 너무 힘든데 어쩌죠? (14) | 2018.10.04 |
취향도 잘 맞고 매너도 좋은 남자, 그와 사귀고 싶어요. (25) | 2018.09.18 |
호의적이던 그녀, 차갑게 변해 공적인 대답만 하네요. (16) | 2018.09.05 |
온라인 게임 하다 만난 그녀, 잘 되는 방법 없나요? (26) | 2018.08.21 |
회사 띠동갑 여직원을 6개월째 짝사랑하는 중입니다. (117) | 2018.08.17 |
부산나비2018.09.18 06:39
수정/삭제 답글달기
부산나비 2018.09.18 07:04
수정/삭제 답글달기
나이를 들면서 느끼는 건데 예의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만날수 있는 사람이
최고인것 같아요.
レイラ2018.09.18 08:27
수정/삭제 답글달기
レイラ2018.09.18 10:39
수정/삭제 답글달기
Rimani2018.09.18 10:13
수정/삭제 답글달기
쿠로체2018.09.18 12:21
수정/삭제 답글달기
fw2018.09.18 13:28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진성2018.09.18 13:55
수정/삭제 답글달기
이건2018.09.18 15:48
수정/삭제 답글달기
Tone and Manner2018.09.18 16:02
수정/삭제 답글달기
인연2018.09.18 17:58
수정/삭제 답글달기
RushHour2018.09.19 00:20
수정/삭제 답글달기
AtoZ2018.09.19 00:38
수정/삭제 답글달기
혹시 누군가를 만나서 꼭 의미 있는 내용을 공유해야(자신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어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무언가 의미 있는 주제 없이 그냥 말을 거는 게 상대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을 거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조금은 마음의 부담을 내려 놓으시는 게 어떨까 해요. 내가 그렇게 긴장해 있으면 상대도 긴장감을 느끼고 거북해지게 되니까요.
대화의 화제는 나 자신과 그 사람이 만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고, 순간적으로 그냥 튀어나오는 말들이 아니라 계획된 말을 꺼내려 하면 어딘가 어색하고 지루해지지요. 언제나 의미있는 주제가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런 게 생활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연륜을 갖추기까지는, 존재 자체가 의미가 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 그 시간은 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채워야 하는 거니까, 항상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 상대를 만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냥 지금 내가 사는 이야기,, 어떤 것들을 느끼고 있는지.. 어느 지역의 커피는 시고, 어느 지역의 커피는 쓰다는 정보만는 사실, 지루해요. '나는 쓴 커피보다는 약간 신 커피가 좋아.'라는 이야기가 들어가면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지요.
어느 고전에 대한 인문학 강연자의 해설을 읊는 것은 아무리 강연 내용이 좋아도 남의 이야기 옮기는 거라 지루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에 이런 악역이 나오는데, 나는 왠지 그 사람이 불쌍했어. 라는 이야기는 조금 더 흥미가 갈 수 있고요. 흠.. 저라면 거기에 대해서 "응 이미 그런 해설을 한 사람이 있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했었지만 반대의 해석도 많지."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이라면 저라면 정말 김 빠지고 더 얘기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아요. 나와 너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보의 교환장처럼 느껴지니까요.
내용을 너무 미리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과 만나면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어색해질 때를 대비해서 몇 가지 주제를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얘기를 너무 강하게 염두에 두고 있으면 오히려 무거워져서 상대와의 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히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제 얘기였어요. ㅎㅎ 글을 읽는데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Tone and Manner2018.09.19 12:44
수정/삭제 답글달기
희서니2018.09.19 03:48
수정/삭제 답글달기
아롱이2018.09.19 05:10
수정/삭제 답글달기
bananaplant2018.09.19 17:43
수정/삭제 답글달기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고
아는 건 다 말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내가 이걸 모른다 못한다 생각할까봐
압박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Ace2018.09.19 21:22
수정/삭제 답글달기
힝2018.09.20 00:25
수정/삭제 답글달기
뭔가 말해야한다는 부담감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ㅠ
저조차도 제가 말하면서 즐겁지 않더라고요
고쳐봐야겠어요!!!
오만과 편견2018.09.20 01:00
수정/삭제 답글달기
잉여토기2018.09.20 09:11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피안2018.09.20 18:16
수정/삭제 답글달기
요즘 시간은 많은데 게을러지네요 ㅎㅎ 분발하겠습니다.
하이2018.10.14 05:07
수정/삭제 답글달기
사람끼리의 대화는 핑퐁입니다. 지식을 자랑히고 싶다면 책 원고를 쓰거나 블로그로 푸시고 사람을 만날땐 접어두세요. 그러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하고도 지식을 기반으로한 수준높은 조크를 하고 유쾌하게 보내실수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