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마침 오늘이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 하는 날이라 분리수거에 관한 예화를 하나 얘기할게. 우리 집은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관계로 분리수거 날 남들이 뭉텅이로 내다 놓은 신문지를 가져다 쓰곤 해. 집안 일을 하다 보면 한 번 쓰고 버릴 신문지가 필요한 필요한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신문을 사다가 쓰긴 좀 그러니까. 분리수거장에 가보면, 채 펴 보지도 않은 채 내다 놓은 신문 뭉텅이들이 있거든.
그건 우리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방법을 나도 따라하는 건데,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어. 어머니가 분리수거장에 가서 신문 뭉텅이를 가져오시는데, 옆에서 보고 계시던 한 할아버지가 물으시는 거야.
“신문 쓰시게요? 몇 동 몇 호 사세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쪽의 주소를 그대로 알려줄 순 없는 거잖아. 그래서 어머니께선
“***동이요. 왜요?”
라고 대답하셨지. 그러자 할아버지는
“***동 몇 호요?”
라고 하셨고, 어머니께선 “몇 호인지는 왜요?”라고 되물으셨지.
할아버지께선, 당신 댁에서 신문을 몇 종 구독하시는데, 못 읽고 버리게 되는 신문들이 있으니 주시겠다고 하셨어. 뭐, 호의인 거지.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신문을 준다고 해서 호수까지 다 알려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래서 그 날은 “아뇨. 괜찮아요. 이렇게 갖다 쓰면 돼요. 감사합니다.”하는 걸로 마무리 됐지.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동 입구에서, 어머니께선 할아버지를 또 마주치게 되었어. 같은 동에 사는 할아버지셨던 거지. 할아버지께선 어머니에게 1층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신 후에, 집에 올라가서는 신문지 뭉텅이를 가지고 나와 주셨어. 알고 보니 마침 같은 층에 살고 있으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분이라서, 이후 인사와 음식도 나누고, 할아버지께선 우리 집까지 모아 놓은 신문을 배달(응?)까지 해주시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
이 이야기는 저렇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김형의 이야기는 그러지 못했잖아? 그건 김형이 마치 위와 같은 상황일 때,
“제가 신문을 주겠다는 건 호의인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요?”
“그냥 몇 호인지 말하면, 교류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거잖아요.”
“제 생각이 짧아 부담주게 된 걸, 다른 어떤 방법으로라도 꼭 풀겠습니다.”
했으며, 여전히 그러고 있기 때문이야.
-김형 딴에는 ‘용기를 내어 물은 것’이겠지만, 상대에겐 그게 전부 공포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것.
-처음엔 상대가 웃으며 답했으니, 분명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상대가 입을 다물어도 계속 더 말하고 물어 부담스럽게 한 것.
-밀어내려는 상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보다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식의 다짐을 내밀어 더욱 두려워지게 만든 것.
등이 일을 그르치게 된 원인이라고 적어둘게.
끝으로 하나 더. 마음을 과장하지 마. 그러다간, 본인마저 과장한 그 마음에 속아선 까닭없이 절실해질 수 있어. 잘 생각해 봐봐. 저 위에 예로 든 신문지 얘기에서, ‘몇 동 몇 호’를 물었다 대답을 듣지 못한 걸 가지고 혼자 괴로워하며, 어떻게든 답을 듣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대화할 거리’를 찾아 말을 걸면 집착의 병자로 보일 수 있는 거잖아. 상황은 이미 엉망이 되었기에, 거기선 그냥 이웃끼리 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도 상대에겐 공포스러워질 수 있고 말야.
그 와중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라고만 내게 물으면, 난 “이게 지금, 단순히 ‘안녕하세요’가 문제가 된 게 아니잖습니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건 차라리 순서가 바뀌어서 진행되었으면 나았을 걸, 김형이 ‘무리수 두기 -> 물러서서 기본적인 안부 물음’의 순서로 다가갔기에 상대가 바리케이트를 친 거고 말이야. 그러니 이게 진짜 이렇게 김형에게 절실한 문제가 맞는지부터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할게.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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