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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호의적이던 그녀, 차갑게 변해 공적인 대답만 하네요.

by 무한 2018. 9. 5.

김형, 마침 오늘이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 하는 날이라 분리수거에 관한 예화를 하나 얘기할게. 우리 집은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관계로 분리수거 날 남들이 뭉텅이로 내다 놓은 신문지를 가져다 쓰곤 해. 집안 일을 하다 보면 한 번 쓰고 버릴 신문지가 필요한 필요한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신문을 사다가 쓰긴 좀 그러니까. 분리수거장에 가보면, 채 펴 보지도 않은 채 내다 놓은 신문 뭉텅이들이 있거든.

 

호의적이던 그녀, 차갑게 변해 공적인 대답만 하네요.

 

 

그건 우리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방법을 나도 따라하는 건데,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어. 어머니가 분리수거장에 가서 신문 뭉텅이를 가져오시는데, 옆에서 보고 계시던 한 할아버지가 물으시는 거야.

 

“신문 쓰시게요? 몇 동 몇 호 사세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쪽의 주소를 그대로 알려줄 순 없는 거잖아. 그래서 어머니께선

 

“***동이요. 왜요?”

 

라고 대답하셨지. 그러자 할아버지는

 

“***동 몇 호요?”

 

라고 하셨고, 어머니께선 “몇 호인지는 왜요?”라고 되물으셨지.

 

 

할아버지께선, 당신 댁에서 신문을 몇 종 구독하시는데, 못 읽고 버리게 되는 신문들이 있으니 주시겠다고 하셨어. 뭐, 호의인 거지.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신문을 준다고 해서 호수까지 다 알려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래서 그 날은 “아뇨. 괜찮아요. 이렇게 갖다 쓰면 돼요. 감사합니다.”하는 걸로 마무리 됐지.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동 입구에서, 어머니께선 할아버지를 또 마주치게 되었어. 같은 동에 사는 할아버지셨던 거지. 할아버지께선 어머니에게 1층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신 후에, 집에 올라가서는 신문지 뭉텅이를 가지고 나와 주셨어. 알고 보니 마침 같은 층에 살고 있으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분이라서, 이후 인사와 음식도 나누고, 할아버지께선 우리 집까지 모아 놓은 신문을 배달(응?)까지 해주시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

 

이 이야기는 저렇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김형의 이야기는 그러지 못했잖아? 그건 김형이 마치 위와 같은 상황일 때,

 

“제가 신문을 주겠다는 건 호의인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요?”

“그냥 몇 호인지 말하면, 교류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거잖아요.”

“제 생각이 짧아 부담주게 된 걸, 다른 어떤 방법으로라도 꼭 풀겠습니다.”

 

했으며, 여전히 그러고 있기 때문이야.

 

-김형 딴에는 ‘용기를 내어 물은 것’이겠지만, 상대에겐 그게 전부 공포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것.

-처음엔 상대가 웃으며 답했으니, 분명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상대가 입을 다물어도 계속 더 말하고 물어 부담스럽게 한 것.

-밀어내려는 상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보다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식의 다짐을 내밀어 더욱 두려워지게 만든 것.

 

등이 일을 그르치게 된 원인이라고 적어둘게.

 

끝으로 하나 더. 마음을 과장하지 마. 그러다간, 본인마저 과장한 그 마음에 속아선 까닭없이 절실해질 수 있어. 잘 생각해 봐봐. 저 위에 예로 든 신문지 얘기에서, ‘몇 동 몇 호’를 물었다 대답을 듣지 못한 걸 가지고 혼자 괴로워하며, 어떻게든 답을 듣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대화할 거리’를 찾아 말을 걸면 집착의 병자로 보일 수 있는 거잖아. 상황은 이미 엉망이 되었기에, 거기선 그냥 이웃끼리 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도 상대에겐 공포스러워질 수 있고 말야.

 

그 와중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라고만 내게 물으면, 난 “이게 지금, 단순히 ‘안녕하세요’가 문제가 된 게 아니잖습니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건 차라리 순서가 바뀌어서 진행되었으면 나았을 걸, 김형이 ‘무리수 두기 -> 물러서서 기본적인 안부 물음’의 순서로 다가갔기에 상대가 바리케이트를 친 거고 말이야. 그러니 이게 진짜 이렇게 김형에게 절실한 문제가 맞는지부터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할게.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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