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몇 년 동안 그냥 ‘업무와 관련해서만 얘기 나누던 동료’로 지내던 사람이, 뜬금없이
“그간 A씨를 보며 호감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A씨를 이성적으로 보게 되었는데, 행여 제가 이런 호감을 가진 걸 A씨가 불쾌하게 생각하신다면 여기서 깨끗하게 그만두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했다고 해서,
“어머 그래요? 그러면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건가요?”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같지 않아? 뭔가 자꾸 눈도 마주치고 일부러 더 접점을 만들려는 제스쳐 같은 게 있었으면 몰라도, 사적인 톡 한 번 보낸 적 없는 사이인데 다짜고짜 “고 해도 되는지, 아님 스톱인지 말해줘요.”라고 하는 건 상대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잖아?
1. 약속을 잡고도 연락을 안 해….
김형, 봐봐. 김형은 상대에 대해 호감을 품고 그걸 키워왔으니 상대가 가깝게 느껴질 수 있어. 그리고 김형 마음은 김형 것이니 굳이 그걸 말이나 글로 다시 풀어내지 않아도 잘 알잖아?
그런데 상대에게 김형은 그냥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치는 동료일 뿐이고, 그간 아무런 시그널도 없었으며, 사적인 연락 역시 한 번도 없었으니 김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어. 김형에 대해서도, 상대는 단둘이 밥 한번 먹어 본 적 없으니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는 거고 말이야.
그런 와중에, 김형은 98%를 혼자 속으로 다 생각한 채 2%만 표현을 해. 이번에 김형이 큰맘 먹고는 고백하겠다며 약속을 잡았을 때도 봐봐. 용기를 내 겨우 약속을 잡아놓고는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그 모습에 답답한 상대가 뭐라고 했어?
“저희 토요일에 만나는 거 맞나요?”
아니 이렇게 대화도 안 할 것 같으면 상대랑 왜 사귀려고 하는 거야? 사귀기 시작하면 그제야 ‘자, 이제 사귀기 시작했으니 맘껏 대화해도 되겠지!’하며 대화하려고? 아니면, 사귀어도 “자기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요!” 하고는 새로운 용건이 생겼을 때야 비로소 다시 연락할 거야?
그러니까 이게, 혼자 막 몇 달간 열심히 준비해서는 메달 따러 나가는 것처럼 하면 안 돼. 혼자 애쓰며 여러 상상만 하다가 고백으로 들이대는 게 아니야. 그것보다는, 같이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둘 맞춰보는 느낌으로 하는 거거든. 어딜 가고 싶은지, 어떤 형태의 여행을 좋아하는지, 여행 가면 주로 뭘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여행 갈래요?’라고 말하는 게 고백인 거지, 그냥 혼자 열심히 바라고만 있다가 ‘같이 여행 갈 마음 없으면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단념할게요.’라고 하는 게 고백은 아니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2. 냉담한 분위기? 간결한 답장? 실망?
김형, 김형이 지금까지 이 관계를 위해 한 게 뭐야? 아무것도, 없어. 고백을 위해 약속 한 번 잡은 것 말고는, 뭐 없잖아. 일주일 넘게 지나서 업무 핑계로 카톡 하나 보낸 거? 그건 김형이 혼자 다 말하고 끝인사까지 한 까닭에, 상대로서도
“네~ 그 부분은 참 저도 어떠어떠하네요. **씨도 ~하세요”
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메시지였잖아.
그래놓고는 저 답장이 바로 온 것도 아니며 간결해서 실망이라니. 그런 식이라면, 김형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상대에게 바라기만 하는 거잖아. 여리고 예민하고를 떠나서, 이게 너무 심하면 ‘내게 120%의 호의를 보이며 알아서 대화를 이끌어 가는 상대’와 연결되지 않는 한 실망할 것투성일 수밖에 없어. 기대만 잔뜩 한 채로, 저절로 다 쉽게 되지 않으면 실망해버리니까.
이거 내가 예전에, 롯데월드에서 어느 농구 대표팀 온 거 보며 농구공 받고 싶어하던 때의 예를 들며 말한 적 있잖아. 무대에 있는 선수들이 던져주는 농구공을 받고 싶으면, 손을 들고 내 쪽으로 던져 달라고 어필을 해야지, 그냥 가만히 앉아서는 마음으로만 간절히 바라며 눈빛만 마주치려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말이야. ‘되는 방향’으로 내가 좀 나서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실망하든 해야 하는 거지, 선톡 하나 했다고 저절로 다 풀려나가길 바라선 안 돼.
상대가 ‘지금은 연애할 상황이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현재 두 사람의 관계가 나쁜 건 전혀 아니거든? 그 얘기를 하고 나서 상대가 김형에게,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한다는 얘기도 했고, 자신도 좀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김형이 그간 곁을 전혀 안 줬다는 얘기도 했잖아. 그러면 그건 ‘일단 어떤 사람인지 좀 보여달라’는 건데, 김형은 상대가 그렇게 멍석을 다 깔아줘도 아직까지 밥 한번 먹자는 말 안 했잖아. 그러면서 빙빙 돌려 업무 얘기를 해놓고는 그 답변이 너무 간결하다며 실망했다는 얘기만 하고 말이야. 난 김형이 실망은 좀 나중에 하고, 일단 상대와 만나서 밥도 먹고 톡도 좀 했으면 좋겠어.
3. 관심사를 ‘연애’에서 ‘사람’으로 좀….
김형은 너무 급했고, 순서도 없었고, 상대를 부담스럽게 할 수 있는 멘트들로 김형이 원하는 대답만을 들으려 했어. 김형이 상대에게 고백을 하기 전 내게 사연을 보냈다면, 난
-상대와 약속을 잡으신 후, 상대에게서 매력을 느꼈던 부분에 대해 칭찬하세요. 그러면서 사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으며, 끝나고 같이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사이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세요.
라는 이야기를 했을 거야. 왜? 둘은 서로에 대해 이름과 나이 빼고는 아는 게 전혀 없으니까.
둘이 한 거라고는 통성명 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 이심전심 염화미소 뭐 그런 것만 바라고 있으면 잘 될 수가 없는 거야. 이것도 내가 전에 얘기했잖아. 남들 다 모인 자리에서 혼자 겉돌다 밖에 나갔을 때, 상대가 따라 나와 주길 바라며 밖에서 속으로 숫자 세고 있지 말라고. 상대가 있는 자리에서 어필을 해. 거기서 말 몇 마디만 해도 훨씬 더 친해질 수 있으며 많이 알게 될 수 있는 걸, 혼자 속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상대가 내 기대대로 움직여 내게 자신감을 주길 기다리지 말고.
김형. 어려울 거 없어. 이거 그냥 오늘 같은 날은 비도 오고 하니 ‘해물파전’ 아이템 쓰면, 김형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답 안 나오던 문제가 절반은 풀리는 거야.
“그렇게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승낙받으면, 전 무슨 얘기를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상대와 빨리 사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야. 그러니까 사귀고 싶다는 김형의 바람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가 외국인이라 생각하며 이것저것 묻고는 김형 얘기도 해봐. 남들하고 친해질 때처럼 똑같이 친해지면 돼. 상대가 김형 연락에 호의적으로 대답해주며 나중에 밥 같이 먹자는 얘기도 한 적 있는데 김형은 지금 그냥 멍하니 있을 뿐이잖아. 그러니까 이걸 두고 ‘상대의 저 말은 거절입니까, 아닙니까?’만 묻지 말고, 당장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며 좀 친해지자고. 상대를 ‘여자’로만 보지 말고 ‘사람’으로 보면서 말이야.
김형, 끝으로 다시 한번 말하자면,
-상대가 내게 친절한 건 성격 탓인가, 호감이 있어선가?
-호의적으로 말을 한 건, 그냥 예의상 그런 것 아닌가?
-차차 알아가려고 밥 먹자 한 건가, 아니면 그냥 친해지려 한 건가?
라는 생각은 접어둬. 인연이라는 건 써나가고 만들어가고 가꿔갈 때 의미가 있는 거지, 그냥 알게 되고 호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결말이 어떨지에만 모든 초점을 맞춘 채 점 보듯 임하지 말고, 차근차근 한 장 한 장 써 내려가길 권할게. 알았지?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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