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는 ‘아는 동생’이 이 사연을 들고 왔다면, 난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 세 가지’를 말해줬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A. 남친이 그 여자와 연락하는 걸 걸린 게, 벌써 여러 번이라서.
현재 남친은 계속 ‘정말 상대와 다 끝냈으니 믿어달라’고 하는 중이고 J양은 그런 남친을 믿어도 좋은지를 내게 묻고 있는데, 난
-남친이 J양 앞에서 그 여자를 차단하고 연락하지 말라고 메시지 보냄.
-얼마 후 남친이 그 여자와 연락하고 있는 걸 J양에게 들킴.
-답장만 한 것일 뿐이라는 말 믿고 만나던 중, 프사 보고 있던 거 들킴.
-그 여자 카스 들어가니 남친과 찍은 걸로 추정되는 사진 많음. 추궁.
-그 여자 카스에 사진 다 사라짐. 남친이 지우라고 요구했다고 함.
-다 차단하고 삭제하며 정리된 줄 알았는데, 다시 친구 등록되어있음.
등의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까닭에, ‘그를 믿어도 좋은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답을 해줄 수밖에 없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정말 다 끝냈고 정리했다고 말하며 J양의 눈앞에서 삭제한 것까지 확인시켜주긴 하지만, 몰래 다시 폰을 보면 어김없이 그 여자가 친구추가 되어있는 상황. 이게 한두 번도 아닌데, 그렇다면 이건 누가 봐도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앞뒤가 다른 상대의 문제인 것 아닐까?
진짜 자신은 이제 그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다며 의심이 든다면 자기 폰을 봐도 좋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폰을 확인하니 그 여자의 사진이 나온다. 이게 뭐냐고 따져 묻자 ‘봐주기로 한 거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되냐.’고 오히려 상대는 화를 낸다. J양도 바보가 아닌 까닭에 그런 상대와 헤어지겠다는 생각으로 연락을 끊기도 했는데, 얼마 후 또 상대가 찾아와 ‘진짜 이제 다 정리됐다. 믿어달라’는 이야기를 해 다시 만나는 중이다. 이쯤 되면, 못 믿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아무 의심 없이 그 말을 믿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B. 오래 사귀긴 했지만, 둘만 있던 고립된 연애라서.
그러니까 뭐가 너무, 없다. 4년을 사귀었는데, 가족은 물론이고 서로의 친구도 본 적 없으며, 둘 다 이십대 초중반도 아닌데 부모님들께서도 그냥 ‘누군가와 연애중이다’라는 것만 알고 계실 뿐이라는 게 좀 그렇다.
데이트 역시 집데이트가 주를 이루며, 둘의 재회라는 것 역시
-다시 사귀는 사이이니, 집에 놀러도 갈 수 있고 자고 갈 수도 있음.
이라는 걸 제외하고 뭐가 더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대화 또한
-남친이 주로 ‘뭐해? 어디야? 밥 먹었어? 도착했어?’를 묻는 게 8할.
-J양이 뭔가를 얘기하면 남친의 반응은 ‘그래’, ‘그렇구나.’ 정도.
-문답은 자주 하는데, 그게 예의상 단답을 그냥 길게 늘려 답하는 수준.
인 까닭에,
-그것마저 안 하면 너무 건조하며, 둘이 한 마디도 안 하고 지낼 것 같아서.
대화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그렇게라도 누군가 계속 묻고 챙겨주려 하면 챙김받는 느낌이 들긴 하겠지만, 그냥 그 이유 하나로 계속 이 관계를 이어가는 게 정말 맞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J양은 어차피 자신도 지금 당장 결혼을 할 상황이 아니라서 상관없다는 식으로 내게 말했는데, 지금까지 모두 접어두고 유예하기만 한 그것들이, 지금이라도 하려면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거나 현실화하기 어려운 것들인지에 대해서도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봤으면 한다.
C. 상대가 ‘기-승-전-내맘대로’라서.
J양은 남친에 대해
-배려심이 깊고, 감정변화를 잘 캐치해 상황대처를 하는 타입.
이라고 말했는데, 난 그렇게 말하는 J양에게
“그의 그 배려심과 상황대처가, 둘 사이에 갈등이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발휘되던가요?”
라고 묻고 싶다. J양은 다른 문장에서 남친에 대해
-하지만 배려해주는 듯하다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음.
라고도 이야기했는데, 내가 염려하는 게 바로 그 지점이다. 그는 아무 문제 없이 안전한 상황에서는 ‘J양을 접대하는 을인 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자기 선택에 따르며 전에 이별통보를 한 것도 상대였고, J양이 뭔가를 확인하려 할 때 절대 공개하지 않은 채 이별을 감수하고서라도 억지로 넘기고 마는 모습 역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난, 그가 뭘 얼마나 J양을 위해 배려해주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열심히 물어가며 밥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고 하고, J양이 먹고 싶어하는 게 있으면 그가 그냥 대부분 다 따라주는 거? 그런 자잘한 것들에선 아홉 번 양보를 받지만 정작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상대로부터 1mm의 양보도 받을 수 없는 거라면, 그게 과연 정상적인 배려일까?
J양은
“이런 케이스도 좋게 발전한 경우가 있나요? 좋게 발전할 수 있다면 유지하고 싶은데 가능할지 궁금해요.”
라고 내게 물었는데, 이런 사례의 경우 얼마간 유지는 가능하지만 저절로 좋아지는 일은 없으며, 이 사연엔 ‘남친의 다른 여자 문제’를 제외하고서도 다른 문제들이 있는 까닭에 지속 가능한 관계로 보기 힘들다는 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J양은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들었던 지인들도 하나 같이 입을 모아 헤어지길 권하는 중이라 했는데, 열에 아홉이 반대하는 그런 연애는 그만두는 게 맞는 거란 얘기도 해주고 싶다. 당장 헤어지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 묻고 편들어주던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기에 휑한 느낌이 들 수 있는데, 그것 자체가 사실 좀 잘못된 것이었으니 거기에만 모든 의미를 다 부여하진 말았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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