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냐는 질문은, 이렇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대화가
(1)
남자 – 밥 먹었어?
여자 – 네 좀 전에 먹었어요.
남자 – 그래. 잘 했네.
(2)
남자 – 점심 먹었어?
여자 – 아뇨. 이따 먹으려고요.
남자 – 잘 챙겨 먹어야지….
(3)
남자 – 밥 먹었나?
여자 – 생각 없어요. 몸이 안 좋아서….
남자 – 에구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라는 패턴의 반복일 경우, ‘노잼’인 것은 당연하며 상대에겐 그 대화가 의무적으로 대답해줘야 하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밥 먹었냐고만 물은 건 아닌데요. 출근도 묻고, 데려다준다고도 했는데….”
그러니까 그게, 전부 다 그렇다는 겁니다. 결국 그 세 가지 질문으로 돌려막기만 했으며, 한 달 전이나 한 달 후나 5km 밖에서 묻는 것 같은 안부 물음엔 아무 변화도 없지 않았습니까? 이렇듯 거리를 좁혀보려는 별다른 시도 없이 그냥 루즈하게 간 것이, A씨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보시면 맞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보는 A씨의 말과 행동들은, 책의 ‘서문’만 39페이지 이상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꽤 읽었는데도 아직 본문은 시작도 안 한 채 ‘책 머리에’ 같은 말만 이어지는 것 같다 할까요. 어쩌면 A씨는
“그건 상대와 저의 나이 차이도 있기에, 조심스럽기도 하고 생각도 많아져서….”
라고 하실 수 있는데, 그건 그럴듯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 생각합니다. 우리끼리니까 밑장 안 빼고 솔직히 말하기로 한다면, 사실 A씨는 ‘나를 보여주며 다가가고, 자연스레 친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이번에도 그간 해오던 ‘소극적인 짝사랑’의 태도로만 상대를 대하고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A씨가 제 친구였다면, 전 A씨에게
“차라리, 걔를 여자라고 생각하지 마. 너는 상대를 여자로 생각하는 순간, 막 갑자기 뒤에서 바라만 보며 맹목적으로 잘해주려고만 하는 버릇이 있잖아. 여자로 생각하기 전에는 드립도 치고 재치있는 모습도 잘 보여주는데, 상대를 여자로 보기 시작하면 넌 급격하게 노잼이 되고, 가능성만 혼자 점쳐보려 하며, ‘내가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면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하느라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아.
지금도 봐봐. 한 달 전 너는 상대에게 ‘궁금한 오빠, 인생 경험도 많은 것 같은 오빠, 부러운 오빠, 또 연락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은 오빠’였는데, 지금은 자꾸 거절해야 하고, 확인해줘야 하고, 달래줘야 하는 오빠처럼 되어가는 중이잖아. 거기서 벗어나려면 자꾸 확인받으려 하거나 말로만 뭔가를 하려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어. 옆에서 같이 걸으면 되는 건데, 일부러 뒤로 가서는 슬픈 예감을 품은 채 상대 뒤통수만 보는 느낌이야.
친구랑 친해질 때에도 ‘우리 우정 정말 오래가자, 편하게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자, 우리는 더더 좋은 친구가 되도록 하자’ 이런 얘기하며 친해지는 게 아닌데, 넌 상대에게 그러고 있잖아. 친구 100번 집에 차로 태워다 준다고 갈수록 우정이 견고해지나? 그냥 한 번 같이 시간낭비든 바보짓이든 함께하며 놀면 되는 걸, 넌 어려운 방법으로 108배의 정성을 들이려 하거든. 그러니까 그냥, 친구랑 놀며 친해지듯 그렇게 친해져 봐.”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습니다. 현재 진짜 문제는 A씨가 고민하는 ‘더 친해질 가능성이 있는지?’가 아니라, ‘경직되어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되고, 능동적으로 뭘 제안하거나 벌이지 못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나중에 운 좋게 연애 시작하면 근사한 곳에서 뭐 어쩌고 하는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지금 상대를 내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줄 수 있을 때 같이 닭꼬치라도 먹으란 얘깁니다. 밥 먹는 것 역시 ‘언제 시간 되면 맛있는 거 먹자고 해서….’ 라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소고기 뺨 때리는 이베리코 얘기를 꺼내며 바로 약속 잡으면 되는 겁니다. 상대가 해산물을 좋아하면 13kg 짜리 대방어를 잡아주는 횟집 얘기로 시작해 돌 멍게와 비단 멍게, 거기다가 산낙지까지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면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깃털같이 많은 날들이 있는 건 맞지만, 깃털 다 뽑히도록 ‘나중’만 생각하고 있으면 이루어지는 건 하나도 없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A씨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으로는 ‘친구들의 간섭 문제’가 있는데, A씨의 경우 연애로 가는 과정까지는 최대한 비밀리에 해야 하며 상대에 대한 어떤 말도 친구들에게 전해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A씨가 이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며 상대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이 절대 아님을 저는 신청서를 통해 알지만, 상대는 저보다도 훨씬 A씨에 대해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자주 마주하게 되는 A씨 친구들이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아는 듯한 뉘앙스로 상대에게 말하면, 상대로서는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얘기들로 장난이나 치려는 그들의 태도에 불쾌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이미 상대가 한 차례 불쾌함을 표시한 적 있는데, 그때 A씨의 해명이 너무 뭉뚱그려져 있었으며 단순히 ‘그런 거 아니니 기분 풀어’라는 식이었기에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시를 적극적으로 못하는 건 이해한다 쳐도, 이렇게 오해가 생겼을 때에는 지금보다 3.7배 정도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이해나 설득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달리 들으면 A씨의 해명은 ‘걔들이 장난이 심해서’라는 ‘친구들 변호’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니, 이런 상황에선 반드시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먼저 생각하며 대처하셨으면 합니다. 애초에 호사가들의 가십거리가 되도록 내 썸이나 연애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를 흘리지도 마시고 말입니다.
늘 비슷한 방법으로, 그저 상대만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보는 건, 역시나 전과 같은 결과만을 받아들게 할 뿐입니다. 이번 매뉴얼을 통해 A씨는 인생 최초로
‘아, 내가 늘 이 타이밍에 상대 뒤만 쫓고 있었구나. 간절히 바라고 뭐하고 할 게 아니라, 리드도 하고 그냥 옆에서 함께했어도 되는 건데….’
라는 걸 알게 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마침 내일부터 2020년이 새로 시작하니 새 마음, 새 뜻,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가 보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 공감과 좋아요,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에겐 2020년 행복한 일이 그득그득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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