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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삼십 대도 꺾인 모태솔로 남잡니다. 호감 가는 여자가 생겼어요.

by 무한 2019. 11. 27.

김형, 이건 굉장히 어려운 거야. 당장은 서비스직인 그녀가 자기 생활이나 가족관계, 그리고 키우는 강아지 얘기까지 하니 뭔가 막 금방 될 것 같겠지만, 그걸 듣고 줄 서 있는 그녀의 단골 고객들을 모으면 못해도 관광버스 하나는 채울 거야.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 남자들 많냐고 직접 물어본 적도 있고요. 제가 바라는 건, 그녀에게 제가 그 수많은 작업남들 중 하나가 아닌, 믿을 수 있는 남자이고 특별한 남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김형이 나한테 그렇게 말하니까 난 더 어려운 거야. 당장 구구단을 다 못 외우는데 이공계 수석 하고 싶어 하잖아. 4 곱하기 9를 헷갈리면서, 수석 하면 장학금도 나오는 거 아니냐며 김칫국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어. 그러면서 동시에 “역시 지금 저에게 수석은 꿈 같은 얘기겠죠.” 하며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말야.

 

난 현 상황에서 김형에겐 ‘믿을 수 있는 남자이고 특별한 남자가 되는 방법’ 따위의 무림비급 <구음진경> 같은 얘기 말고, 이런 널뛰기와 더불어 김형이 돌직구랍시고 던지는 폭투를 더는 안 하려면 필요한 초식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초식을 같이 살펴보다 보면 김형이 1초식부터 이상하게 발을 내딛는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보자고.

 

삼십 대도 꺾인 모태솔로 남잡니다. 호감 가는 여자가 생겼어요.

 

일단 김형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의미부여’를 줄이는 일이야. 이건 현재 서비스직인 상대가 김형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한 의미부여를 안 해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김형이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김형이 그간 이성들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의미부여를 안 해야 한다는 뜻이 더 커.

 

-난 내가 먼저 찾고 관심을 가진 여자만 좋아한다.

-아무리 괜찮아도 소개 받은 여자에겐 관심이 없다.

-상대도 원래 내가 여자로 봤던 건 아니다.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에게 관심을 보였다가 완전 망신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고백했다가 차인 적 있어서 내 삶에 연애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김형 스스로에 대해 ‘난 특이하다’고 생각한다든지, ‘트라우마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는 식의 핑계를 대지 말자는 거야. 뭔가를 저질러 놓고는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고만 한다든지,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고는 ‘원래는 호감이 없었는데, 이렇게 호감을 갖게 된 걸 보니….’ 등의 이야기를 한다든지 해선 안 돼. 그거 김형이 지금까지 참 많이 해왔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됐잖아.

 

그러는 순간 상대와의 관계는 이미 현실을 넘어선 판타지가 되는 거고, 김형은 상대 보다 낮은 곳에서 상대를 올려다보게 되는 것이며, 행운을 바라거나 상대에게 작은 확인이라도 받아 만족하고 싶은 마음만 늘어날 뿐이야. 보통의 관계를 시작하는 게 그냥 맥도널드 들어가서 주문하는 거라면, 저런 김형의 태도는 맥도널드 가선 지금 영업하냐고 물어보고, 언제까지 영업하는 거냐고 물어보며, 햄버거 주문해도 실례가 아닌지 물어보는 것이 되어버리거든. 빙빙 돌아가며 괜히 어려워하는, 그래서 그 자체로 상대에게 부담까지 줄 수도 있는 거라 할 수 있어.

 

김형이 특이하든 특별하든 뭐 그간 어떻게 살았고 무슨 기억이 있든, 그냥 누군가를 알게 되어 그 사람과 대화하며 친해지는 건 아주 보통의 일인 거야. 난 이걸 ‘구구단’ 정도라 생각해서 서두의 저 얘기를 한 거고 말이야. 그런데 김형은 이 지점부터 고비라고 여기며,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다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놓거나, 난 내가 먼저 좋아해야 좋아할 수 있는 특이한 성격이라는 식의 방어막을 쳐놨잖아. 이래 버리면 남들의 출발선은 ‘상대와 만나는 그 현장’이지만, 김형의 출발선은 ‘내 마음속’일 수 있어. 그 현장에서 시작해도 한참 걸릴 수 있는 건데, 마음속에서부터 시작이라니 갈 길에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해지잖아.

 

의미부여를 내려놓고 출발선을 그렇게 현실적으로 조정했다면, 거기선 막 기를 모으거나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질문 하나’같은 걸 하지 않아도 돼. 그럴 경우 김형의 사례처럼, ‘언제 밥 한번 먹어요~/네 그래요~’정도로만 그냥 혼자 기뻐하거나 다음에 또 기를 모아 물어봐야 할 수 있거든. 그러다 보면 맨날 기를 모으기도 혼자 지쳐선, ‘돌직구로 그냥 승부를 내야겠다’하며 무리수를 둘 수도 있고.

 

김형이 잘하는 것, 또는 김형이 좋아하는 것, 아니면 김형이 맛있게 먹은 것 같은 걸 활용해. 김형이 하는 일이 누군가를 초대해 보여줄 수 있는 거라면 초대장을 줘도 되고, 밥 먹잔 얘기를 할 거라면 동네에 생긴 곱창집 얘기를 해도 되며, 대화 중 상대가 중국요리 얘기하면 기막힌 찹쌀탕수육 파는 곳 얘기를 하면서 약속을 잡아도 돼. 늘 얘기하지만 제안은 꼭 한 날이 아닌 ‘주중/주말’ 두 날 정도로 선택지를 내미는 게 좋으며,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처음 제안은 상대 ‘혼자’ 할 수 있는 걸 말해주는 것도 좋아.

 

 

내가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김형은

 

“그러니까 무한님, 상대에게 믿을 수 있는 남자이고 특별한 남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고, 그렇게 차근차근 가는 방법뿐이라는 거죠?”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결정적인 순간’이 따로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김형의 문제이기도 해. 사실 ‘특별함’이라는 건 첫눈에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개 저렇게 친해지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거고, ‘믿음’이라는 것 역시 만남의 과정 중 행동으로 증명되며 쌓이는 거거든.

 

김형도 처음엔 상대가 그냥 그곳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상대가 사적인 얘기도 하고 오래 알아온 것처럼 자연스레 대하니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했잖아. 그렇게 멍석이 깔렸으면 김형도 쿵짝을 맞춰서 김형의 사적인 이야기들도 털어놓고, 한 5년 전부터 알던 사이인 것처럼 대하면 돼. 상대의 그런 태도를 그저 ‘사귈 수 있는 기회’라거나 ‘고백할 수 있는 기회’라고만 생각한 채, 혼자 꼭 새로 뭘 준비해 시도하려 하지 말고 말이야.

 

의식적으로 막 뭔가를 하려 하거나, 김형이 생각하는 멋있는 사람을 연기할 필요도 없어. 그냥 상대 얘기를 잘 들어주며 되묻기만 해도, 또는 상대가 말하는 것에서 감정을 읽고는 그것을 공감해주기만 해도, 아니면 상대가 자신만 느낀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걸 김형이 구체적으로 말하기만 해도, 김형은 상대에게 특별해 보일 수 있거든.

 

더불어

 

-뭔가 잘 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또는 사귈 게 확실하면 그때 전력질주 하겠다.

 

같은 마음만 먹지 말고, 그냥 지금부터 상대와 친해졌다 생각하며 잘해주는 것도 좋아. 예컨대 ‘회사에서 간식으로 나왔던 건데 먹어보니 놀랄만큼 맛있길래 공유하고 싶어서 오는 길에 하나 사왔다며 먹거리 나눠주기’라고 할 경우, 진짜 그러고 싶은 마음을 실행하는 거라면 이것 하나만 막 궁리해서 떠올릴 필요도 없는 거거든. 이렇듯 방향을 먼저 정해두면 어디로 발을 내딛든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거니, 발을 어떻게 내딛을지만 생각하지 말고 방향을 먼저 정해봐. 그렇게 가는 중에 상대가 함께 가고 싶어 한다면, 그게 바로 함께 가게 된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야.

 

끝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상대에게 뭔가를 제시했는데 거절당했다고 해서 곧장 시무룩해진 채 패닉에 빠지면 안 돼. 그러고 나서 며칠을 스스로에게 용기 주며 겨우 회복된 채 다시 돌직구를 던지겠다 하지 말고, 그것까지를 다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먼저 대비를 하거나 맷집을 좀 키워봐. 또, 상대가 인기 많고 친한 남자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거든? 그러니 그 사실만 가지고 혼자 표류하거나 자신감을 잃지 말고, 김형은 그냥 김형 나름의 매력과 호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도록 노력해봐. 자 그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초식을 밟아가 보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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