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매뉴얼에선, 둘의 관계가 썸이 아닌 '일시적인 친분 쌓기'의 과정이었는데 그걸 썸으로 착각했다거나, 상대가 그저 집에 와서 라면 먹고 가게 할 생각으로 들이대다가 안 통하자 접었다거나 하는 사연들을 논외로 하자. 그런 경우들 말고, 진짜 좀 뭔가 되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썸남이 '갑자기 연락없는 남자'가 되었다거나, 이쪽의 잘못으로 인해 썸남의 마음이 식을 수 있는 사례들만 추려봤다. 갈 길이 머니 바로 출발해 보자.
1. 인터뷰 하듯 물어야만 답하며, 'And you?'가 없어서.
이건 아마, 10년 넘게 연애매뉴얼을 작성하며 가장 많이 얘기한 지점인 것 같다.
-본인처럼 그렇게 리액션 하는 사람을 만나면, 본인도 더는 대화하기 싫을 수 있습니다.
낯을 가려서든, 소심해서든, 상대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져서든,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며 절대 되물어 볼 줄 모른다면, 나에게 그냥 무조건적인 애정을 가지고 대시하거나, 나와 사귀고 싶어 안달이 난 상대 외에는 가까워지기가 어려울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맹목적으로 들이대는 사람들과도 당장은 가깝게 지낼지 모르겠지만, 결국 길게는 보금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얼마간 머물다만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보게 될 수 있다.
상대에 대한 관심이라는 걸, 혼자 속으로 생각할 때만 별 상상을 다해가며 키워가지만 말고, 상대가 안부 묻고 밥 먹었냐고 물었으면 상대에게도 밥 먹었냐고 물어가며 아주 작게라도 표현해 보자. 오늘은 일 많이 해서 피곤한 하루일 것 같다고 상대가 말하면, 피곤해서 오자마자 누웠다고 대답만 하고 끝내지 말고, 상대 컨디션은 어떤지도 물어보자. 이렇게 좀 뭐가 오가야 서로 챙겨주고 챙김을 받는다 생각하며 그 사이에서 뭐라도 싹트는 거지, 관심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제야 좀 떠들다가 잘 자라고 빠빠이 하고 다음 날 일어나서 안부인사 받고 뭐 어쩌고 하다 또 만나자는 말만 기다리다간, 챙김을 받을 줄만 알고 줄 줄은 모르는 사람으로 굳어져 버릴 수 있다.
2. 느린 답장과 긴 부재에 마음 이탈.
카톡을 꼭 실시간 대화를 위한 메신저가 아닌, 이메일 주고 받듯 사용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며 각자의 스타일인 것 아니냐고 하는 항변이 있었다. 있었는데, 그렇게 실시간 대화는 절대 꿈꿀 수 없으며 심지어 카톡 확인을 하고도 아주 한가하게 시간이 많이 남을 때에만 대답을 한다면, 그걸 다 이해하며 똑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과 밖에 만날 수 없을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난 이것에 대해 물을 한 1분 끓이다가, 49분 쉬고 다시 또 1분 끓이다가, 129분 쉬고 또 1분 끓이다가 하는 것과 같아서 절대 팔팔 끓을 수 없을 거라 말한 적 있는데, 보통은 정말 마음이 가고 호감이 크면 자꾸 기다리게 되고 확인하게 되기에 그렇지 않은 건 '딱 그 정도의 호감과 관심'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해두겠다.
덧붙여 자기 할 거 다 하느라 생기는 '긴 부재' 역시, 상대에게는 '이 관계는 그것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일할 땐 일에 집중하는 타입이라 연락을 못 하고, 퇴근하고는 자기관리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하니 연락을 못 하고, 그 이후엔 씻고 할 게 있어서 또 그걸 해야 하니 연락을 못 하고, 연락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그 사이사이의 아주 짧은 순간, 또는 주말에 몇 시간 정도 내서 만나거나 대화하는 게 전부인 상황. 이렇듯 '짬날 때' 정도만 연애에 할애할 거라면, 거기에 과연 어떤 상대가 자신의 소중한 시간들을 다 쏟아가며 만나려고 할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또, 상대가 급한 일이 있다며 한 시간 반 동안 답장을 안 했다고, 거기에 맞춰 똑같이 한 시간 반 일부러 답장을 안 하는 것 역시 바보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제 친구와 만난다고 했던 상대가 저녁 내내 연락 없다가, 오늘 아침에야 연락을 했다고 해서 느린 답장과 단답으로 복수를 하는 사례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쪽도 사정이 있을 때 거기에 몰두하느라 연락을 생략할 때도 있으면서, 내가 하는 건 그럴만해서 그런 거고 상대가 하는 건 일부러 날 약올리거나 관계에 소홀하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하진 말았으면 한다.
3.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몇 번 밀어냈다.
놀랍게도, '상대가 만나자고 몇 번 말했음에도 이쪽에서 거절했기에 식어버린 관계'가 존재한다. 보통, 호감 가는 사람이 내일 만나자고 말을 꺼냈는데 이쪽의 선약이 있어서 못 만날 경우, 아쉬움을 듬뿍 담아 표현하며 양해를 구해 다른 날을 잡거나 하기 마련인데,
-선약이 있는데 상대가 그 날 만나자고 해 못 만난 건, 내 잘못 아님.
이라고만 생각하고 마는 대원들이 있어 나는 가끔 할 말을 잃곤 한다.
내 잘못이든 아니든 두어 번 그렇게 거절해서 못 만났으면, 그 다음번에도 또 상대가 길일을 택해 만나자고 하길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이쪽도 무슨 초딩이 아니니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엇때문인지 약속을 잡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게 '거절'인지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두어 번 거절한 후 상대의 연락이 줄고 마음이 식은 것 같다며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이 있다.
내게 실망일 수 있는 건, 상대에게도 실망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반대로 이쪽이 용기를 내서 내일 시간 어떠냐고 물었는데 상대가 내일 선약 있다고만 답하고 별 말 없으면 이쪽은 절망까지 할 수 있으면서, 그건 생각하지 않고 상대가 계속해서 들이대고 노력하는 것만을 '호감'으로 평가하며 기대만 하진 말자. 더불어 저 위의 소제목 2번에서 말했던 것처럼, '상대와의 대화나 만남'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들에 대해, '상대가 그런다고 해도 난 실망하지 않겠는가?'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상대가 늘 운동 간다고 대화를 단절하거나, 일 때문에 연락 못한다고 하거나, 넷플릭스 시리즈 보느라 답장 못 했다고 해도 이쪽은 과연 다 이해하며 유쾌할 수 있는지를.
4. 대화의 8할이, 일상의 스트레스 공유.
썸남이 생겼으니 썸남과 일상을 공유하며 친해지는 건 좋다. 좋은데, 자신이 공유하는 일상이라는 게 대부분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는 아닌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쪽이 불안해하거나 불만을 가지는 것들에 대해 썸남이 챙겨주고 조언해주니 당장은 좋겠지만,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줄 알았던 이쪽이
-알고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징징징징.
인 걸 계속 느끼게 되는 순간 썸남의 마음은 식을 수 있다. 일상 속 짜증이나 재수 없는 회사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웬만하면 1절 정도만 해야지, 이거 완전 짜증 나지 않겠냐며 구구절절 다 설명하며 계속 실시간 보고하듯 말해버리면, 이전에 이쪽에 대해 상대가 가졌던 이미지는 좀 많이 깨질 수 있다.
꽤 많은 대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에 대해 겁쟁이나 어린애처럼 묘사하거나, 부정적인 사건에만 꽂혀 그것만 공유하려 하거나, 상대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 상대가 그걸 부정해주길 바라곤 한다. 그렇게 자꾸 상대에게만 모든 걸 맡기고 해결해주길 바라다 보면 "아 근데 내일 눈 올까요? 눈 오면 운전 어떻게 하지 ㅠㅠ" 따위의 의미도 재미도 감동도 없는 말만 거듭하게 될 수 있으니,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슬픔도 묻어놓고.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댓글에 답글을 좀 달려고 했더니 메인 페이지에서는 로그인이 풀려 관리자 아이디로 댓글을 달 수 없다. 심지어 관리자로 로그인된 상황에서도 해당 페이지에서 비밀 댓글을 볼 수 없던데, 주말쯤 스킨도 좀 바꾸며 손을 봐야 할 것 같다. 먼지 털고, 녹도 좀 닦고, 기름 치고 하다 보면 다시 또 화성(경기도 화성 아님ㅋ)까지 쏘아 올릴만한 준비가 될 테니, 그때까지 슬슬 예열하며 궤도를 잡아 볼까 한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면 또 저녁에 <돌싱포맨>볼 수 있는 화요일이니, 조금만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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