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게, 몸이 아프니 그동안 아득바득 쥐고 있었던 것들이 다 피운 담뱃갑처럼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느낀다. 전 날 핏기가 돌던 횟감 때문인지, 탈까봐 겉만 살짝 익혀먹은 항정살 때문인지, 새벽에 일어나 먹은 음식물들을 차례로 뱉어 확인하며 2010년을 시작했다. 임진각까지 달려가 불꽃놀이도 보고 온 참인데. 젠장.
침대에 누워 신음만 해도 괴로웠다. 뼈들이 모두 분리되는 듯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고 머리 위에 올린 물수건을 미직지근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 열기를 입으로 뿜느라 침도 삼키기 힘들 정도로 바싹 말랐다. 이불의 까끌까끌함이 맨살에 닿는 듯 평소보다 열 배는 예민하게 몸이 반응했으며, 좌로 누워도, 우로 누워도 뇌가 쏟아지는 듯 했다. 아주 우습게도 이 와중에 ‘환골탈태’를 생각했다.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 어느 무술을 계속 연마하다보면 온 몸이 끓으며 뼈가 새로 맞춰지고 핏줄이 다시 자리를 잡아 그 무술의 최적화가 된 몸을 얻게 되는데, 아, 이건 환골탈태가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뇌가 탱탱 불고, 남의 혀를 입속에 집어넣고 있는 느낌만 남았을 때, 겨우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다. 중독이야. 도박중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손을 자르면 발로 놀음을 한다는데, 이건 정신도 차리기 전에 컴퓨터부터 켜니, 나 죽으면 컴퓨터도 같이 묻어줘.
새해 인사를 적어두고 싶었는데, 이런 액땜의 이야기만 적어두게 되다니 죄송스럽다. 아직도 말을 하려면 뇌가 울린다. 이 기회에 다들 손에 쥐고 있었던 것들을 돌아보시라. 몸이 아프니 책이 다 뭐고, 상은 또 뭐냐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죽을 때도 이렇게 아플까. 아들이 괴로워 하니 옆에서 손이며 발을 주무르는 것 밖에는 할 일 없는 어머니를 보듯,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게 될까.
이어령 선생의 <젊음의 탄생>을 읽다가 젊음은 죽고 태어나고의 반복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적어놓더라도, 대체 그것이 허세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몇 달간 고민했다. 지금 이렇게 적는 것도 말이다. 며칠 후, 몇 달 후면, 이런 웃긴 글을 적어놨다고 스스로 비웃을 것 같아 닫아 놓은 글이 수두룩하다. 비웃게 될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워하진 않기로 한다.
난, 장염과 감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나약한 녀석 아니냐.
액땜은, 내가 노멀로그 독자분들을 대표로 ‘신종플루가 아닐까’, ‘회를 먹고 죽었다는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보인걸까.’, ‘아…아직 국제선도 못 타봤는데.’ 이따위 생각을 하며 1박 2일간 침대에서 겪었으니, 여러분들에게는 기쁨의 일들만 가득하시길 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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