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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글모음/노멀로그다이어리

2009 다음뷰 블로거 대상 <노멀로그> 수상소감

by 무한 2009. 12. 22.

1.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쌍용아파트 앞에 있는 정선희미용실 원장님, 십년 넘게 미용실을 다니고 있지만 남성커트 가격을 변함없이 오천원으로 동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를 깎는 내내 동안이라며 칭찬해 주셨던 디자이너 누나, 실제 나이를 밝히니 가위를 떨어뜨리셨지만 괜찮아요. 초등학교 2학년 때 KFC 볼풀장에서 동생이랑 노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보호자는 들어가시면 안 되거든요.” 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으니까요.

백석역 이마트 뒤편의 욕심없는마을 닭갈비뷔페 사장님, 저한테 유승준 닮았다고 해 주신 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얘기를 해 준 사람은 엄마 밖에 없었거든요.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름다우세요. 김희선 닮았다고 말씀드린 거, 농담이 아니에요.

일산 최고의 김말이를 파시던 마두역의 파란포장마차 사장님, 잘 계신지 모르겠네요. 친척이라며 다른 분이 장사를 하시던데 계속 물어보니까 인수인계 받았다고 털어 놓네요. 맛이 예전 같지 않아요. 새로 맡으신 분은 치킨볼에 머스타드 소스를 너무 적게 뿌려요. 케챱과 같은 비율로 뿌려야 하는데 말이에요. 크리스마스가 아주머니 생일이잖아요. 몇 년 전에 제가 야광팬티 사드리라고 했는데, 효과는 좀 있었나요? 두 분 다 보고 싶네요.

밤가시마을 BGM노래방 사장님, 제가 학생 때엔 수학여행 갔다 오면서 기념품도 사다 드리고 군대에 있을 땐 건빵이랑 연초랑 몰래 휴가 때마다 가지고 나와서 드리기도 했었는데, 그만 두셔서 안타까워요. 새로 바뀐 사장님은 어른요금 받고 시간도 칼같이 줘서 더 이상 안가요. 아저씨 저한테는 평생 학생요금 받기로 했었잖아요. 마늘 빻는 통에 부어주시던 새우깡이 그립네요.

너무 떨려서 감사드릴 분들이 다 생각이 안 나는데, 아, 주엽의 M타운노래방 사장님, 음료수가 무료라는 서비스는 정말 획기적이에요. 지쳐 쓰러질 때 까지 넣어주시는 시간도 너무 매력적이고요. 아주머니하고 격일로 운영하시기 힘드시더라도 오래오래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책 나왔는데 조만간 들고 갈게요.

중산 넘버원플러스치킨 사장님, 거 봐요. 제가 피자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그랬잖아요. 인사도 못 드렸는데 가게를 접으셔서 마음이 아파요. 다음에 가게를 하시더라도 너무 무리해서 확장하지는 마세요. 아주머니가 매번 아저씨 미국에 치킨연수 받으러 갔다고 했는데, 뻥인 거 알아요. 우린 거기 닭이 제일 맛있기도 했지만, 현금으로 내면 천 원씩 빼 주시고 늘 콜라를 공짜로 주셔서 간 거예요. 이제 우리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행복하세요. 아주머니하고 자동차극장 가셔서 연애하실 때의 마음 꼭 다시 찾으시고요.


2.

아빠는 블로거였다.

뜬금없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블로그를 하고 있었다. 뜬금없는 일들은 처음에만 충격일 뿐,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쉽게 적응된다. 포니테일, 담배연기를 지독히 싫어하던 대학교 조교누나가 어느 날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본다든지, 종교의 길을 걷겠다던 친구가 사실 금요일마다 클럽에 간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든지 한, 그 이후의 일처럼 곧 어색함이 사라진다. 아빠가 언제부터 블로그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컴퓨터를 점령하고 있었으며, 두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는 일에도 꽤 익숙해진 듯 보였다. 아. 이쯤에서 잠시 아빠가 컴퓨터를 잘 하게 되었을 때, 모든 아들들이 느낄 기분을 위하여 묵념.

“네 홈페이지보다 사람 많이 들어오지?”

내 홈페이지보다 딱 열 배쯤 많은 방문객이 들어오는 아빠의 블로그를 따라잡아야 했다. 군대에 있을 때 호스팅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모든 글이 미아가 되었고, 도메인은 연장하지 못해 미국의 어느 CD굽는 노인(내 추측이다)에게 넘어가 버렸지만 나름 인터넷작가가 아니었던가. 추천 사이트로 내 홈페이지를 소개해주었던 포털은, 홈페이지가 없어지자 흔적도 없이 모든 링크를 지웠지만 아직 희망은 있었다. 새 계정을 만들고 다른 도메인을 구입해 홈페이지를 꾸려나갔다. 수집가가 되기보다는 창작가가 되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날마다 글을 써 나갔다. 그렇게 한 달쯤 글을 올렸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터넷작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라고 쓴다면 가슴속에 뭉클, 하는 감정이 좀 들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들러주는 것은 수집을 위해 찾아온 검색로봇들 뿐이었다. 검색로봇이라도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빠는 하루 열 몇 명 정도는 내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의지로 매달렸다. 예전에 사장님이 직접 밥까지 사주며 책을 꼭 그 출판사에서 내자고 했던 곳에 연락을 했다. 군대에서 짬밥을 먹고 사는 ‘호랑이만한 고양이’와 날개를 펴면 ‘마티즈보다 큰 독수리’를 본 얘기가 있으니 책을 내자고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에 말 그대로 ‘소정의 고료’를 받으며 연재하던 곳들에 연락을 했다. 그 중 한 곳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나를 스카웃했고 난 복귀에 성공했다, 라고 쓴다면 인생역전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아쉽게도 날 찾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이건 뭐 피기도 전에 지는 꽃처럼, 귀가 잘 안 들릴 때 쯤 되어서야 “나도 한때는 문학소년 이었지.” 라며 먼 산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는 표정을 짓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초조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은 있는 건가’하는 원초적인 의심이 들었다. 아빠의 블로그는 나날이 번창했고, 난 내 홈페이지에서 댓글로 혼자 쿵쿵따를 하고 놀았다. 괜찮아 쿵쿵따, 아무튼 쿵쿵따, 튼……젠장, 이런 식이었다.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바다건너의 고흐와 하이든이었다.

만약 마음속에서 “나는 재능이 없는 걸”이라는 음성이 들려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소리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잠잠해진다.

-고흐


자신이 천재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타고난 것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곳은 바로 신이 내게 부여한 최선의 자리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그 이상의 것은 얻을 수 없다.
그 사람의 그릇이 크다면 큰 일을 부여받을 것이며,
그릇이 작다면 작은 일을 부여받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어쨌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초조해하면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 하이든



특별해 지고 싶어 하던, 한 순간을 계기로 스타덤에 들고 싶어 하던, 헛된 희망을 거세했다. 블로그를 만들었고, 이름을 ‘노멀로그’라고 지었다. 평범한 블로그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 난 힘을 빼고 내 친구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아빠의 블로그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8개월, 2009 view 블로거대상에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아빠가 없다. 천지장 열탕에서 상문고등학교 첫찌가다였다는 이야기를 하며 등을 밀어주던 아빠가, 군대 갈 때 겁먹는 건 쪼다들이나 하는 거라고 306보충대에서 담배를 피우며 괜찮다고, 담배연기가 눈에 들어가서 그런 거라고, 안 우는 척 했던 아빠가, 첫 월급으로 내가 사 준 내복을 병원에 실려가면서 까지 입고 있던 아빠가, 내가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그동안 미워서 아빠랑 얘기를 많이 안한 게 아니라고 얘기해도 눈 감고 듣고만 있던 아빠가, 없다.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는 기횐데.

확인 할 기약이 없는 메신저, 오프라인의 아빠에게 쪽지를 보냈다.

아빠 나야. 내 블로그 봐? 거기도 인터넷 같은 거 되나? 아빠 블로그 이때까지 방문자 다 합친 게 십만 명 좀 넘더라? 내 블로그엔 하루에 이십만 명 넘게 온 적도 있어. 이제 내가 아빠 이긴 거지? 나 다음에서 블로거 대상도 받아. 아, 로뎀이 전역했어. 알아? 이런 거 다 보고 있나? 아빠, 엄마 꿈에 나왔었다며? 내 꿈에도 좀 나와. 집은 걱정 하지 말고. 내가 잘 지키고 있어. 그러니까 아빤 그냥 편하게 쉬고 있어. 알았지? 괜찮아. 아, 내가 확실히 이긴 거다? 아빠 안녕.



아빠는 블로거였다. 


3.

저는 작가지망생입니다. 한국에 온지는 27년 되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신생아로 왔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직업은 오른손잡이입니다. 파지(破紙)줍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파지가 많이 나오는데, 그 파지를 많이 낼수록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혹시, 만날 신경이 곤두서도록 밤낮없이 피아노를 치던 103호 누나십니까?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레슨도 받고, 세상에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겠노라며 음대에 갔던 그 누나는 아니십니까? 유학을 가야 한다, 더 나은 교수에게 배워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결국 피아노와 전혀 상관없는 시험을 준비하던 103호 누나십니까?

아니면, 필름의 색감을 이야기 하던 Y형이십니까? ‘남자는 니콘’이라는 치기어린 이야기도 종종 던지긴 했지만, 그냥 사진이 너무 좋다던 Y형 아니십니까? 베이비스튜디오 보조 월급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지만 열정 하나로 채우며 일하던, 그러나 만년(萬年) 보조에 지쳐 사진은 취미로나 하겠다고 말하고 만, Y형 아니십니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열네 살 때부터 주변에 글을 쓴다는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게 되었습니다. 백일장을 몰려다니며 까불기도 했고, 잔디밭에 모여앉아 즉흥시를 써 발표하는 유치한 일도 했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달랐지만, 모두 문학소년, 소녀들이었습니다. 그리곤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시집 내봐야 몇 천원인데 인세 받아서 어떻게 먹고 사냐며 방송국으로 간 친구도 있고, 생활이 나아지면 쓰겠다고 자동차를 팔러 간 친구도 있었으며, 소질이 없는 것 같다며 AS기사가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라 군대에서 익힌 사진과 포토샵에 의지해 취직을 했습니다. 우리는 다 떠나고 글만 혼자 남았습니다.

내년에는 월급을 좀 올려줄 건지, 설날에는 보너스로 얼마를 줄 건지, 신상품을 기획하면 인센티브는 몇 프로나 줄 건지, 를 생각하며 TV를 보던 일요일이었습니다. 영화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에서 디카프리오 주연의 <비치> 몇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본 영화라 별 감흥 없이 시선만 두고 있었는데, 디카프리오가 폭포에서 몸을 던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때 팍, 마음에 와서 박히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젊음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저 폭포에서 몸을 던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그 아래 파라다이스도 못 보게 될 것 이고, 그저 그 폭포에 가 본 적이 있다는 얘기만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벌떡 일어나 방으로 돌아왔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워드프로세서를 실행시키자 흰 백지가 나타났고, 거기엔 혼자 남겨졌던 글이 있었습니다.

쓰지 않고 읽기만 해 걸려버린 생각의 비만(肥滿)과는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호흡이 불편할 정도로 비대해진 까닭에, 피카소를 비웃으며 스스로는 지렁이를 그리고 있기도 합니다. 공(空)으로 먹은 나이처럼 많아진 오만(傲慢)은 두려움이라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비워가다 보면 훌륭한 작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작가, 좋은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작가, 괜찮은 작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작가는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 103호 누나의 피아노소리와 Y형의 사진을 보고싶어요.

0.

모난 부분까지 이해하며 읽어주시는 고마운 독자님들, 투표가 귀찮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멀로그에 한 표 더해주신 감사한 독자님들, 변방의 블로그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늘 수고해주시는 다음뷰 관계자 분들, 최종심사에서 노멀로그를 대상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분들, 흔적은 안 남겨도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보면 블로그를 모니터링 하고 있는 친구들, 사랑하는 가족과 내 공주님, 모두 감사합니다.

행복합시다. 우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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