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글모음/노멀로그다이어리

생일맞이 <무한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놀이

by 무한 2012. 10. 19.
생일맞이 <무한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놀이
사실 이 제목으로 어제 글을 쓰다가, 오늘 이어서 쓰려고 임시저장을 해 두었다. 그 글은 닭가슴살 얘기와 보라카이 얘기가 나오는, 꽤 발랄한 글이었다. 그런데 맙소사. 이 망할 오른손이

임시저장본이 있습니다. 불러오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라는 창이 뜨자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저절로 '아니오' 버튼을 눌러버렸다.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뭔가를 한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군대 훈련소에 막 입소했을 때, 오늘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훈련소에 가면 '팔 벌려 뛰기'라는 체조를 시킨다. 다들 알겠지만, 차렷자세에서 발을 어깨넓이만큼 벌림과 동시에 팔을 어깨까지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뒤 한 번 더 발을 벌리며 팔을 머리 위로 드는 체조다. 그렇게 세 동작을 하는 것이 1세트인데, 세트마다 숫자를 외쳐 구령을 붙인다. 동작마다 조교가 호루라기를 불면 훈련병들이 소리치는 -'삑삑삑-', '하나!', '삑삑삑-', '둘!'-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훈련소에선 '팔 벌려 뛰기'의 마지막 구령을 붙이지 않는 것이 관습이다. 스무 개를 한다면, 열아홉 개까지에만 구령을 넣고 스무 개 째에선 동작만 한 채 구령을 생략하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실수할 일이 별로 없긴 한데, 안타깝게도 그날 그 자리에서 난 평소보다 좀 센치해져 있었다. 아마

닭갈비를 생각했던 것 같다.

삑삑삑- 열넷!

그쯤에서였다. 닭갈비가 익기 전 골라먹던 떡과 고구마가 떠올랐다. 그 맛을 다시 보려면 5주간의 훈련과 100일 휴가 전까지의 자대생활을 견뎌야 한다는 까마득함도 몰려왔다.

삑삑삑- 열다섯!

윤동주가 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라는 문장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닭갈비에 이어 순대볶음이 떠올랐고, 순대볶음에 이어 짜장면이 떠올랐다. 대개 군대에 가면 단 음식이 생각난다고 하는데, 난 그냥 다 생각났다.

삑삑삑- 열여섯!

심훈이 왜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라는 문장을 썼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휴가를 나가면 꼭 우유에 콘푸로스트를 가득 부어 와작와작 씹어 먹겠다고 다짐했다.

왜 먹을 것만 그렇게 떠올랐냐고 묻는다면, 입대하던 날 밥을 못 먹고 들어가서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난 의정부에서 입대를 했는데, 입대하던 날 부모님, 친구들과 함께 일산에서 차를 타고 왔다. 의정부 부대찌개가 유명하다고 하니 좀 일찍 도착해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하는 인원들이 많은 까닭에 차가 밀렸고, 우리가 근처 부대찌개 식당에 도착했을 땐 입대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부대찌개 메뉴판을 구경만 한 뒤 입대했다.

삑삑삑- 열일곱!

담배를 피지 못해서 나타나는 금단증상과 배고픔, 거기다 언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골이 울리고 철모가 정수리를 때리는 까닭에 내 숨소리가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그 소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삑삑삑 - 열여덟!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우표를 가져오지 않아 군사우편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원래 군대에서 사회로 보내는 모든 편지는 군사우편으로 보내야 하지만, 우표가 있으면 일요일 종교행사 시간에 민간인에게 부탁해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군사우편이 보안상 늦게 가는 것과 달리 일반우편은 빨랐으므로 다들 그런 식으로 편지를 보냈다. 군사우편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레 부모님의 연애시절 얘기를 떠올리게 했다.

부모님은 연애를 길게 하셨는데, 그 중엔 아빠의 군복무 기간도 포함되어 있다. 아빠가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편지를 썼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편지지가 작아 다 적을 수 없다는 의미로 엄마는 편지지 가득 말줄임표를 찍어서 보냈다. 뭔가 낭만적인 것 같지만, 아빠는 그 '말줄임표 편지'로 인해 며칠간 고생을 했다. 당시엔 부대에서 편지를 전해주기 전 모두 검사했다고 하는데, 엄마가 보낸 그 편지가 보안검열에 걸리고 만 것이다. 아빠를 불러 조사하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이거 암호지? 무슨 암호야? 누구랑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 거야?" 그 당시는 북한의 땅굴이 발견된 일도 있고 해서 보안에 민감하던 시기라고 한다.

삑삑삑- 열아홉!

훈련만 한 몇 년 받은 것 같은데, 아직 1주도 지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오늘의 오전훈련도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국방부 시계의 위엄인가.' 정도의 느낌으로. 눈이 온다는 소식이 돌았는데, 폭설이 내려 이쯤에서 훈련이 모두 취소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눈이 내리면, 그걸 다 군인이 치워야 한다는 개념이 서기 전이었다.)

그러다가 또, 이왕 군대에 왔으니 훈련을 즐겨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제대를 했고, 난 늦게 입대한 까닭에 동생뻘 동기들과 함께 있지만, 내 인생에 딱 2년으로 존재할 '군인 놀이'를 좀 더 밀착해서 해 보자고 생각했다. 니체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삑삑삑-

혼자 마음속으로 저런 다짐을 하며 불타오르고 있을 때, 내 입이 외쳤다.

"스물!"

.
.
.


잡아먹을 듯이 날 쳐다보고 있는 동기들을 보며 당황하고 있을 때, 조교가 소리쳤다.

조교 - 정신 안 차리지! 다시 삼십 개! 몇 개?
 
훈련병일동 - 삼십 개!

조교 -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는다. 실시!


이것도 이제 옛날 얘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일도 옛날 얘기가 될 것이다. 이런 생일맞이 글을 앞으로 서른 몇 번 더 쓰면 지하철도 공짜로 탈 수 있는 나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 매일 지하철 공짜로 타고 돌아다니면서 <지하철 나들이>를 연재해야겠다. 아, 몇 년 뒤부터는 게이트볼도 연습해, 일흔 쯤 되면 전국에서 따라올 노인이 없을 정도로 게이트볼을 칠 예정이다. 전국 게이트볼장을 돌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하는 <게이트볼 베가본드>도 연재할 생각이니, 그때까지 쭈욱, 우리 함께 했으면 좋겠다.


서론이 너무 길었고,

본론은 일 년 만에 다시 돌아온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놀이!

마음 같아선 오늘 하루 종일 댓글에 답글을 달며 함께하고 싶지만, 댓글이 많이 달리면 페이지 로딩이 느려지고, 그 상태에서 답글을 달면 '실패 하였습니다.'라는 창이 뜬다. 해당 페이지가 혼수상태에 접어드는 물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선착순 100개의 질문'

에만 답을 달기로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를 좀 부탁드린다. 남겨주실 댓글에 미리 감사인사를 드리며,

자 이제, 여러분의 센스를 댓글로 보여주시길!



▲ 추천 버튼이 없으면 글이 왠지 썰렁하기에 달아둡니다. 무료니까 누르셔도 좋습니다. ^^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