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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맞이 '무한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놀이

by 무한 2013. 10. 19.
생일맞이 '무한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놀이
어쩌다 보니 요즘, 할머니 분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 경로당에서 다른 할매에게 찝쩍거리는 우리 영감, 어떡해?
- 콜라텍에서 만난 백발의 남자, 다가가는 방법은?
- 만구천 일 만나다 헤어진 커플, 그들의 문제는?



이라는 제목의 매뉴얼을 발행하기 위한 사전작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일맞이 놀이글인데 특별히 전할 이야기도 없고 해서, 제가 관심을 두고 관찰 중인 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적어둘까 합니다.


ⓐ G할머니


G할머니는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매사에 호전적이시며, 지하철 내 소음보다 큰 80데시벨 이상의 목소리를 지니고 계십니다. 매뉴얼을 통해 소개한 적 있는 '고슴도치녀''진상녀'의 모습을 H할머니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경로당 선풍기 사건'을 말씀드리면, 독자 분들께서도 G할머니의 성격을 금방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올 여름이었습니다. 경로당에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있는데, G할머니께서 선풍기 앞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혼자 독차지 하고 계셨습니다. 선풍기가 회전하고 있긴 했습니다만, 누가 봐도 H할머니 본인이 바람을 가장 많이 쐬기 위해 각도를 조절해 놨다는 걸 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대편에 앉아 계시던 다른 할머니께서, 바람이 본인에게 오지 않자 선풍기를 조금 돌렸을 때였습니다.

"그걸 왜 돌려! 있던 대로 놔둬야지 왜 돌려!"


G할머니께서 사자후를 내지르셨습니다. 선풍기를 돌리려던 다른 할머니께서는 당황하셨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께서 "바람이 안 오니까 돌리지. (선풍기)옆으로 좀 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G할머니께서는 그 할머니에게까지 소리를 지르며, '선풍기는 원래 저렇게 돌고 있었고, 난 그 자리에 맞춰 앉은 거다. 고로 선풍기 바람은 누가 뺏어갈 수 없는 나의 트로피 같은 거다.'라는 의미의 말을 하셨습니다. 더는 아무도 '선풍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경로당에서 관광을 갔을 때의 일화도 있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면 버스 뒷좌석부터 앉습니다만, 어르신들이 여행을 가실 땐 버스 앞좌석부터 앉으십니다. 당시, G할머니는 버스 탑승이 늦은 까닭에 중간 이후에 앉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난 멀미를 하니 앞에 앉아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셨고, 여행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에게 거칠게 항의하여 결국 앞쪽 좌석을 얻어내셨습니다. 먼저 앉아계셨던 어르신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양보하며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셨는데, G할머니는 "내가 앞에 앉고 싶어서 앉나? 멀미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여기 앉아야 하는 거지."라며 뻔뻔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멘트를 하셨습니다.

이정도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할머니는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겠는데?",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러다 왕따 당하지."라는 이야기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세계에선 좀 그 원칙이 통하지 않습니다. 소란스러움의 주인공이 되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는 어르신들이 있기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정신으로 본인이 한 발 물러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동시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가 통하는 곳이라, 본인이 잘못을 해도 소리만 크게 지를 줄 알면 이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소외당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G할머니의 편을 들거나 비위를 맞추며 '같은 편'이 되려는 분들도 몇 분 계십니다. 또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괜히 G할머니를 건드려 소위 '개망신'이라는 걸 당하지 않기 위해 참는 분들도 계십니다.(경로당에서의 싸움은 논리적인 싸움이 아니라 바로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부터 시작되는 일이 많기에, 시비가 붙는다는 건 곧 폭탄을 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섣불리 승부를 걸었다간 이기더라도 잃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G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마치 갱스터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갱스터에서 'G'라는 글자를 따와 'G할머니'라는 닉네임을 지어드렸습니다.


경어체로 적다보니 보고서가 되는 것 같아서, 아래의 이야기는 평어체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 Q할머니 VS P할머니


미리 밝히자면 난 경로당 파벌에서 Q할머니 세력에 속해있다. Q할머니는 P할머니가 오기 전까지 경로당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할머니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할머니라고 할 수 있다.

저 위에서 소개한 G할머니가 '힘'으로 세력을 형성한 반면, Q할머니는 '부와 명예'로 세력을 형성했다. 우선 Q할머니는 그냥 봐도 부티가 난다. 다른 할머니들이 모두 동네에서 이만오천원짜리 '할머니 전용 파마'를 하시는 반면, Q할머니는 디자이너가 여러 명 있는 미용실에 가서 오만원짜리 파마를 하신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존재하는 까닭에 어디서 머리를 했는지는 크게 티나지 않지만, 경로당에선 '모두 똑같은 머리를 한 가운데 홀로 다른 머리를 한 할머니'가 군계일학처럼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Q할머니는 풍족하게 사시는 까닭에 반지와 팔찌, 그리고 의상 등에 늘 신경을 쓰신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면 '저 할머니는 뭘 저렇게 주렁주렁 하고 계신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경로당에서는 그게 연예인이 드레스 입고 있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곳에서는 별 필터링 없이 '보이는 게 전부'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금반지와 금팔지를 하고 가면, 그게 그냥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여져 '그 사람=금반지, 금팔찌'가 되어 버린다.

물론 꾸미기만 한다고 여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왕이 아니라도 옷 잘 입는 할머니들은 많으니까. 여왕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십과 더불어 '빼어난 것'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빼어난 것'의 범위는 노래를 잘한다든가, 학력이 높다든가, 외국어를 할 줄 안다든가 정도로 보면 된다. 리더십은 "자, 이제 차 마시러 갑시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신을 따르는 여러 명의 할머니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다과를 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다.(Q할머니와 한때 라이벌이었던 J할머니도 있는데, J할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까닭에 '우리 집에 갑시다'라는 리드를 할 수 없어 밀려나고 말았다.)

여하튼 이렇게 Q할머니의 세상으로 평정된 줄 알았던 경로당에 바람이 분 건, P할머니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P할머니는 Q할머니보다 젊다. 그것도 열두 살 씩이나.(Q할머니 82세, P할머니 70세)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경로당에 가면 '나이순'으로 힘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경로당에서는 한 살이라도 젊은 게 '힘'이다.(이 대목에서 화투를 쳐도 구박만 당하며 늘 핀잔을 받는 90세의 Y할머니가 떠올라 코끝이 찡하다. 경로당의 사람들은 본인도 노인이면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정말 '노인취급'한다. Y할머니는 오늘도 새벽부터 혼자 운동기구 있는 곳에 나와 다른 할머니들 나오기를 기다리시던데, 할머니 건강하세요.)

다시 P할머니 얘기를 이어나가 보자. P할머니는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중간단계인 '할주머니(응?)'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P할머니는 거실로 나와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리지 않고, 경로당에서 밥을 하는 주최 측 사람들과 어울린다. 뭔가 특별한 게 있는지 주최 측 사람들도 P할머니를 각별하게 챙기는 눈치다. P할머니는 경로당 나이로 치자면 '아가씨'에 속하는 까닭에, P할머니에게 커피를 뽑아다 주는 할아버지들도 많다.

+ 여기서 잠깐!
경로당에서 커피를 뽑아다 주는 건, 이성으로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다.
그것 말고는 다른 걸로 마음을 표시할 수 없기에 할아버지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할머니들에게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다 준다. 만약 자신이 훗날 노인정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할머니가 된다면, 할아버지들이 주는 커피를 다 마시진 말길 권해주고 싶다. 인기 있던 어느 할머니가 매일 몇 잔씩 커피를 받아 드시다가, 결국 당뇨에 걸리셨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대세가 P할머니 쪽으로 기울었다는 걸 보여준 가장 결정적인 사건으로, <금요노래교실>사건을 꼽을 수 있다. 경로당에는 한 달에 두 번, 노래강사가 찾아와 노래를 가르쳐 준다. 어르신들은 그 강사가 가르쳐주는 노래보다는, 강의가 끝난 후 노래방 기계를 틀어 놓고 '자유곡'을 부르는 걸 더 좋아하신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어르신들께는 그 시간이 곧 "누가 경로당의 여왕인가?"를 가리는 숨 막히는 경쟁의 시간이다. 혹자는 "점수로 여왕을 뽑고 뭐 그런 건가요?"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는데, 겨우 점수 따위로 여왕을 가릴 만큼 경로당의 인기투표가 허술하지 않다. 여왕임을 증명하는 건 바로,

- 앵콜의 횟수.

이다. 여왕은 기본적으로 3회 이상의 앵콜을 받아낸다. 노래를 잘 불러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여왕인 당신의 노래를 더 듣고 싶습니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앞서 말한 대로 여왕인 Q할머니는, 지금까지 3회 미만의 앵콜을 받은 적이 없다. 일본어도 잘 하시는 까닭에 일본노래도 종종 부르시는데,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다들 Q할머니에게 앵콜을 요청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P할머니가 등장한지 3주 만에, Q할머니는 치욕을 경험해야 했다. P할머니가 '5회 앵콜'을 받았던 것이다. Q할머니는 추종자들 덕분에 2회 앵콜을 받긴 했으나, 저건 Q할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P는 노래를 못한다. 춤추니까 사람들이 앵콜한 것뿐이다."
"P는 옷을 너무 야스럽게(야하게)입는다."
"P가 추는 춤은 경박하다. 홀리려고 추는 것 같다."



위의 멘트는 멘붕을 경험한 Q할머니께서 '정신승리'를 하시고자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다. 옆에 있던 추종자들은 겉으로는 동의했지만, 속으론 그들도 경로당의 여왕이 바뀌었음을 알아챘다.

여왕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보다 결정적 사건은, 얼마 전 있었던 '경로당 단풍놀이'에서 벌어졌다. 사회를 맡은 주최 측 사람이

"우리 경로당의 가수, P할머니를 소개합니다!"


라는 멘트를 했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P할머니는 수도 없이 앵콜을 받아 분위기를 달구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과거의 여왕 Q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노래하라고 권해도 여왕답게 거절했다. 대개 이런 경우 '마지못해' 나가는 것처럼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게 Q할머니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P할머니가 분위기를 달군 까닭에, Q할머니에게 다시 노래를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Q할머니의 추종자들조차 춤추기 바빴다.

"앞으로 이런 여행 다신 안 올 거야."
"재미도 없고 볼 것도 없고, 왜 왔는지 모르겠네."
"여긴 (내가 가봤던) **산에 댈(비교할) 것도 아니야. 시시하지 이게 뭐야."



휴게소에 내릴 때마다 Q할머니가 하셨던 얘기들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Q할머니는, 극도로 신경을 쓰셨기 때문인지 이틀을 앓아 누우셨다. 이후 Q할머니가 '여왕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사건이 더 진행된 후 소개하도록 하겠다.


생일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놀이를 위해 아침부터 새로고침을 하고 계신 분도 있는 것 같고, 카톡으로 '글 언제 올릴 건가요?'라고 묻는 분들도 계신데 바로 지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시스템이 개편된 까닭에 이젠 많은 댓글이 달려도 페이지 로딩에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 경험으로 미뤄보았을 때, 수백 개에 달하는 댓글에 답글을 달다가는 24시간이 모자랄 것이 분명하기에

'선착순 100개의 질문'

에 답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양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남겨주실 댓글에 미리 감사인사를 드리며,

자 이제, 여러분의 센스를 댓글로 보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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