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담벼락에 쓰는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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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맘 때,
누릿 누릿 짬내나는 상병을 막 벗어나 병장을 달았을 때 
전 날 밤새 근무를 서고 잠을 자다 오후 세시쯤 일어나 
아직 멍한 머리로 쓰레빠를 질질 끌며 나와 
등나무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 때 햇살이 얼마나 포근했던지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은 채 
등나무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그 느낌을 오래오래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라던 사회에 나왔지만
친구들을 예전만큼 만나기 힘들어졌고
어리광을 피울수 있는 시간은 저만치 가 버렸다
다들 머리 하나 들어갈 정도로 벌어져 버린 이 공백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무엇으로
채울 수나 있었을까

웹에 올려놓은 발자국을 따라다니다가
막대사탕이나 물고 다니던 후배녀석이
벌써 아이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된다
아무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 어른이 되어간다

나는 아직 스물 세살 어디쯤 같은데

기다리지 않아도 내일이 오고
좀 더 있고 싶어도 오늘이 간다


장래희망을 적는 것이 우스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치열하게, 혹은 벅차게 꿈꾸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생활을 쫓는 일에 몰두한다
우렁차게 삶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지금 다시 돌아보니 늙은 사자가 되어 있었다

고기반찬 먹으려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해
서른이 가까워지자 나는 아무 카드도 없이
어른들의 게임에 밀어넣어졌다
엄마에게 투정부릴 틈도 없이 의자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자와
간사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자와
뭐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는 듯 다리를 꼬고 앉은 자와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자와
친한척 하지만 어느새 내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자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넌 맨발로 나가게 될거야


몇 년 전 이맘 때,
누릿 누릿 짬내나는 상병을 막 벗어나 병장을 달고 
전 날 밤새 근무를 서고 잠을 자다 오후 세시쯤 일어나 
아직 멍한 머리로 쓰레빠를 질질 끌며 
등나무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을때,

그 때 햇살이 얼마나 포근했던지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은 채 
등나무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그 느낌을 오래오래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무한, 200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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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맨2009.06.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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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화이팅!!!

오늘은 이말만? ^^;

레나2009.06.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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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시간에 주무시지 않고 글을 남기셨네요..
저도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지난날들을 뒤돌아보고 그때는 그게 옳았던건가
그때 그 선택을 안했더라면
지금 내 인생을 어떻게 변했을까.. 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성인이니까 내의지대로 친구들도 만나고
제힘으로 돈도 벌고(지금생각하면-ㅁ-..ㄷㄷ;;)
모든게 다이뤄질 거 같더군요.
20대 후반쯤에는 회사생활한지 몇년이니까
적금도 이~만큼 붓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사고싶은 것도 맘껏사고ㅋ

제일중요한건.. !!!
여고생들에게 부모님은 말씀하시죠;
지금 몸매걱정할필요없다; 대학가면 다빠진다-ㅁ-;
이게웬걸..술먹고.. 돌아다니고..
대학때도 하루종일 앉아있었는데; 회사와도 하루종일앉아있으니원..ㅋㅋ
ㅜㅜ 눈물이 나네요..ㅎ

여튼.;;
이나이쯤에는 제가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고 있을줄 알았어요..ㅎ
뭔가 인생에 대해 깨닳고 성장한 어른이 돼어있을줄..
하지만 저는 아직도 어리고.
제인생에 대해 확신은..
어렵군요..힘내세요^^

11X13R2009.06.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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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꺼내든 추억록의 한켠에서 24살의 군인에게 23살의 여자친구가 발송했던 1983년 소인의 편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화동리 사서함 제15호 5중대 상병.....

터무니없이 맑고 푸르던 그날.
위병소 앞으로 눈부시게 흩날리던 아카시아 꽃..을 떠올려봅니다...

그날...쓸쓸히 뒤돌아 갔던 우리들의 청춘은 지금 어디쯤에서 우리를 돌아보고 있을까요....

9사백마2009.06.2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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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뭔가 오늘 아침부터 울적한 기억이 든다 했드만,,,
육.이.오 이군요,,,,ㅋ
10여년전 이 날!! 기말고사 마친 이틀 후인 이 날..!!
전, 홀로 논산행 기차를 타고 난생 처음 충청권으로 이동을 했었드랬죠,,ㅜㅜ
비도 많이 왔었구,기차안에서 다들 걸프렌드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전 홀로 창밖을 바라보며,,,ㅜㅜ
창가쪽으로 자리 내어준 어떤 할아버지, 정말 고마웠습니다,,, ㅜㅜ(머리 짧게 자르고 논산행 기차에 혼자, 달걀 한줄과 맥주들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그 당시 자리도 없어서 입석 표였는데, 곧 내릴거라고 당신 내리면 여기 꼭 앉아가라고 얘기 해주셨드랬죠,이런 기억은 참 지워지지도 않네요 ㅠㅠ,여자친구랑 헤어진 일은 그때 왜 헤어졌지?라고 잘 기억도 안나는데 말이죠,,ㅜㅜ)

주기적인 열병처럼 또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네요,,,ㅜㅜ

khey2009.06.2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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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냅시다 ^-^
---------------------------------------
저도 영 우울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는지라

또 흘러가버릴 것을 알지만

점점점 우울해져가네요.ㅋㅋ

그러니 무한님도 저도 힘냅시다.

힘내서 또 화창한 나날 보내야지요.ㅋㅋ

악랄가츠2009.06.2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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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나의 마음을 그대로 적어놓은거 같애....
무한님은 독심술사?

으하하2009.06.2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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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자라는 속도가 달라서 힘든걸까요
그래도 무한님 아직 꿈을 꾸기에 너무 늙지 않았습니다 ^.^

cezanne7202009.06.2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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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추적추적 그저께부터 비가 오는데...딱 걸맞는 글을 올리셨네요.

그래도 어딘가 한 구석에는 조그만 희망,
행복이란 녀석이 숨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그렇게 슬픈건 아니라 믿고 있습니다.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ㅋㅋ

**한 뇨자2009.06.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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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넣은 것도 뺏어먹는 자가 있지만

달콤 쌉사름한 차 한잔 주는 이도 있더이다 ^^

우직하니 걷다보니 온 몸엔 상처와 굳은살이............

그래도 이만큼 열심히 했다고..

열번 싸워 열번을 져도.. 그래도 난 해봤다고...

ㅎㅎ

그렇게 위안을 삼아요.

거친날개2009.06.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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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힘겹게 걸어 다니던 넓디 넓던 등교길이
다 자란 뒤에 보니 너무나도 좁은 골목길이었단 걸 깨달은 순간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었죠.

아... 이게 세월의 힘?

지금까지 난 뭘 해 왔고, 내가 이룬 건 뭘까?
다 자라 버린 몸 속에 담긴 아직도 자라지 않은, 자라고 싶지 않은 날개는 오늘도 몸부림 칩니다.

뭐...피터팬증후군인가봐요 ㅠ_ㅠ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무한님 글 싸랑해욧!

2009.06.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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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츈이2009.06.2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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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되게 감성적인데용?
남자의 고뇌..
무한님 홧띵 ^ㅅ^

미도리2009.06.2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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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그러네요
그러네요..^^;
장래희망이라는걸 적기가 참 우습게 느껴지는 것이 흐흠 ㅋ^^


힘내세요.

당신의 식지 않는 글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fayefaye2009.06.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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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나이세는 걸 멈추게 된다고들 하잖아요
나이먹는 걸 생각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그 숫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언제부턴가 나이를 만으로 세다가
요즘은 자꾸 헷갈리더라구요 ㅋㅋ
그치만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뭐가 있나 돌아보는 날에는
가슴이 참 먹먹합니다

Sonagi™2009.08.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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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몰래 댓글다는 기분도 좋습니다.
잘보고 가요!!

비오는날의레몬사탕2009.09.08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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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에 쉬는날 초저녁 즈음 잠이 들어버렸다가..
한밤중에 깨어 잠이 들지도, 무얼 하지도 못한채 서성이다가-
노멀로그를 찾게 되었네요.

새벽 3시가 다가오는 이 시간에,
오후 3시에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을 느낄 수 있다니-
그 공감이 얼마나 반가운지요.

오랜만이군요, 이런 느낌.
그리웠습니다, 이런 소통이.

비오는날의레몬사탕2009.09.08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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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스물세살의 감성이란..
눈물나도록 여리네요.

그 스물셋이란 나이에,
'여린마음'을 만나서 가슴 속 깊이 파고든 이후로-
그 느낌을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부분도 생기고..
냉정하게 얼어 버린 부분도 자리 잡았지만..
다행히 '여린마음'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어요.

마음은 스물셋이지만-
머리는 더이상 스물셋이 아닌 지금,
오랜시간 친구처럼 함께 하는 '여린마음'과-
새롭게 발견해가는 아직은 낯선 그 마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한님의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더불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

ROBIN2009.10.3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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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나면 내가 그 게임의 주인공인냥 게임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죠. 미션 한 개를 끝내고 나면 레벨이 업되면서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집니다. 다음 미션은 뭘까 궁금해하면서 때론 지치고 때론 넘쳐나는 흥분감에 부르르 떨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햇살의 느낌은..잊지 말아야되겠죠~

눈탱2010.03.1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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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첨 사이트에 들어와 구경하고가요 사회생활 동감입니다. ㅠ,ㅠ

보랏빛 시간2010.05.1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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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음이 짠... 하네요.

그렇게 살다가
30대에 들어서고 보니
지나간 20대는 왜 그렇게 허무하게 느껴지는지...
나 뭐하고 살았나 싶더군요. ㅋ

30대 중반인 요즘도...
20대에 그랬듯... 아니 피가 좀 굳었다고 그 때보다 한 층 더
갈 길 못 찾고 떠도는 '나'를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르고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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