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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담벼락에 쓰는 낙서

by 무한 2009. 6. 25.

몇 년 전 이맘 때,
누릿 누릿 짬내나는 상병을 막 벗어나 병장을 달았을 때 
전 날 밤새 근무를 서고 잠을 자다 오후 세시쯤 일어나 
아직 멍한 머리로 쓰레빠를 질질 끌며 나와 
등나무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 때 햇살이 얼마나 포근했던지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은 채 
등나무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그 느낌을 오래오래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라던 사회에 나왔지만
친구들을 예전만큼 만나기 힘들어졌고
어리광을 피울수 있는 시간은 저만치 가 버렸다
다들 머리 하나 들어갈 정도로 벌어져 버린 이 공백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무엇으로
채울 수나 있었을까

웹에 올려놓은 발자국을 따라다니다가
막대사탕이나 물고 다니던 후배녀석이
벌써 아이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된다
아무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 어른이 되어간다

나는 아직 스물 세살 어디쯤 같은데

기다리지 않아도 내일이 오고
좀 더 있고 싶어도 오늘이 간다


장래희망을 적는 것이 우스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치열하게, 혹은 벅차게 꿈꾸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생활을 쫓는 일에 몰두한다
우렁차게 삶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지금 다시 돌아보니 늙은 사자가 되어 있었다

고기반찬 먹으려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해
서른이 가까워지자 나는 아무 카드도 없이
어른들의 게임에 밀어넣어졌다
엄마에게 투정부릴 틈도 없이 의자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자와
간사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자와
뭐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는 듯 다리를 꼬고 앉은 자와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자와
친한척 하지만 어느새 내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자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넌 맨발로 나가게 될거야


몇 년 전 이맘 때,
누릿 누릿 짬내나는 상병을 막 벗어나 병장을 달고 
전 날 밤새 근무를 서고 잠을 자다 오후 세시쯤 일어나 
아직 멍한 머리로 쓰레빠를 질질 끌며 
등나무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을때,

그 때 햇살이 얼마나 포근했던지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은 채 
등나무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그 느낌을 오래오래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무한, 200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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