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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확신이 없다며 결혼이 부담스럽다는 남친, 외 2편

by 무한 2015. 2. 4.

최근 밀린 사연들을 가지고 요점만 짚고 넘어가는 매뉴얼을 발행하고 있는 까닭에, 독자 분들께서는 지겨우실 수도 있다. 한 사연에 대한 튜토리얼이 아닌 Q&A나 FAQ식의 글인 까닭에, 당장 자신에게 와 닿는 사연이 아니면 "외장하드에 접속이 안 될 때는 장치관리자에 들어가서 어쩌고저쩌고…"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외장하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당장 장치관리자가 뭔지 알 필요가 없을 때에는 저 말이 그저 남의 나라 말처럼 느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언젠가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때는 '나랑 상관도 없고, 알 필요도 못 느끼는 얘기'라며 넘겼던 부분들이, 절실해 질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 역시 새로 입히려는 블로그 스킨의 '상단메뉴 고정 방법'같은 건 얼마 전까지는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곧 적용해야 하니 열심히 찾아서 메모해 두는 중이다. 누군가가 처한 상황에선 당장 튜토리얼보다 Q&A나 FAQ가 필요할 수 있으니, 그 점을 조금만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그럼, 출발해 보자.



1. 확신이 없다며 결혼이 부담스럽다는 남친.


일부 골드미스 대원들의 사연을 읽을 때 느꼈던 답답함을, 난 J양의 사연을 읽으면서도 느꼈다. 자신의 외모와 능력 정도면 더 괜찮은 남자도 얼마든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더불어 과거에 더 조건이 좋은 남자를 만난 적도 있는데 그 남자에 비하면 지금 만나는 남자의 조건은 그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일부 골드미스 대원들에게 난,


"그럼 이 관계는 접어두고 갈 길 가세요. 가실 수 있으면 가셔도 돼요.

아무도 말리는 사람 없고 이 관계 강요하는 사람도 없잖아요. 가세요."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J양이 남친에게 했다는 말들을 보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끔찍하다.


- 내 전 남친들은 다 잘생겼었다. 오빠보다 잘 생겼다.

- 오빠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정착하고 싶어서 만난 거다.

- 오빠랑 헤어지고 딴 남자 만나고 싶다.

- 난 오빠에게 마음이 떴다. 사실 난 오빠를 처음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저 말 중에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남친에게 주장하고자 한 말도 있고, 헤어질 생각을 하곤 어차피 끝날 사이라 여기며 담아두었던 것을 쏟는 과정에서 한 말도 있다. 이처럼 J양은 남친을 동네 마트에서 파는 수면바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대체 어떻게 J양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사기>에 나오는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여자는 자신을 예뻐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라는 글까지 인용해가며 지겹도록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예쁘고, 잘 나고, 조건이 좋은 여자라고 해도 그 여자는, "난 오빠가 있어서 든든해."라고 말 할 수 있는 여자를 이기지 못 한다. 전자는 남자에게 '본능을 자극하는 사냥감' 정도의 의미지만, 후자는 '내가 지켜줘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 오빠에게 비타민 등 영양제도 챙겨줬고,

또 애교도 많이 부리고 데이트 비용도 많이 부담했는데요?"


J양이 매일 남친에게 수액을 놔주거나 보약을 끓여 먹였다 하더라도, "오빠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정착하고 싶어서 만난 거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이 관계는 산산조각 난 거다. 현재 J양은 뒤늦게 '이 오빠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뒤 그를 잡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 J양이 상대에게 제안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만나되 서로에게 터치하지 않는 것이, 여기서 보기엔 '엔조이 승인' 정도로 보여 걱정된다.


남친도 J양에게서는 진작 마음을 접은 뒤 지금은 수동적인 태도로, 꾸며낸 호의만 베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화타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관계이니, 여기서 정리하고 다음 번 연애에서 변화를 기약하길 권한다. 연애 중 J양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 결과 상대가 "이젠 나도 모르겠다. 결혼전제 없이 만나는 거면 만나는 거고…."라는 반응으로 나온다면, 거기서 참회하여 연애봉사활동 120시간 하고 있어선 안 되는 거다. 반성과 참회는 분명 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엄한 곳에다 그 죗값을 치르진 말길 바란다.  



2. 다툰 이후로 남친이 의무적으로 변했어요.


내가 연락을 끊게 된 지인 중에 A양이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에 다 밝혀 적긴 좀 그렇고, 난 A양의 '받을 줄은 아는데 줄 줄은 모르는 모습' 때문에 그녀와 연락하지 않았다고만 적어두겠다. 난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생일선물을 챙겨주기도 했는데, 내 생일에 A양은 흔한 생일축하 메시지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내게 말을 걸어 부탁을 했지만, 내가 당시 사람들의 한 표가 아쉬운 공모전에 참가하고 있을 때 그녀는 내가 준 링크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연을 끊었고, 십 년 쯤 지나 그녀가 결혼소식을 알려왔을 때에도 축하만 해줬을 뿐 가지 않았다.


A양이 언젠가 '우리는 왜 멀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물어온 적이 있다. 그것에 대한 솔직한 내 심정을 다 얘기하자면 할 수 있었겠지만, 얘기해 봐야 어차피 그녀에게 의무감만 심어줄 뿐더러 나 역시 '모르는 사이'로 지내는 것이 피곤함을 덜 수 있는 거라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스물 몇 살 때 내가 쓴 글 중 어느 부분이 기억난다며 말을 걸어오기도 했는데, 난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정도로만 그 말을 받아주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좀 비뚤어진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돌봐야 할 때 돌보지 않아 시들고 만 관계를 훗날 그녀가 그저 낭만적인 회상으로 퉁 치려 한다는 게 달갑지 않았다. '하객'이 필요한 까닭에 그제야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고 말이다.


Y양의 사연을 읽으며 내가 A양을 떠올린 것은, Y양 역시 '받을 줄은 아는데 줄 줄은 모르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Y양이 한 말을 보자.


"난 보고 싶은데 늦었다는 이유로 날 보러 오지 않음." 


"그동안 항상 내가 화내면 받아주던 사람이 그날부터 본인 의사를 피력하기 시작함."


"그날 당연히 만나리라 기대하고 있던 나를 실망시킴."


"남친이 일어나면 정각에 칼톡을 보내던 것이 10분, 17분씩 늦어짐.

그렇게 일어나선 본인 할 일 한 뒤에나 연락함."


"내 헤어지잔 말에 남친이 한 번 수긍했다는 게 은근 빈정도 상하고

이전과 같은 신뢰가 안 생김."


이정도면 사실 좀, 심각한 수준이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Y양의 얘기를 좀 더 들어봤더니, Y양은


"남친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나이도 내가 훨씬 어린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면서 만나야 하나, 매달려도 이 사람이 나한테 매달려야지,

하는 생각이 듦. 이럴 필요 없다는 걸 나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음.

근데 나한테 정말 잘 하던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화가 나고 서운함.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는 건지…. 지금 나는 너무 힘듦."


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 '내가 아깝다'는 생각은 결국 말이나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 그걸 확인한 상대가 Y양을 향한 헌신과 호의를 거두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충 상황을 봉합한 지금도 Y양은 "남친에게 밥 먹는다고 했더니 밥 맛있게 먹으라는 이야기를 한 후 아직까지 답장 없음."이라는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밥 맛있게 먹으라는 얘기가 답장인 것인데, 그 이후 남친이 다시 선톡하지 않았다고 Y양은 '어쭈, 이것 봐라?'하며 심술을 부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Y양은 머리와 마음 모두에서 이 관계를 놓은 것 같고, 그저 당장 상대가 전처럼 헌신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만 '참아주는 척' 하며 그를 성실하게 만들려는 것 같은데, 그래봐야 다 부질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번엔 '누가 더 아깝다는 걸 따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연애하길 권한다.



3. 재작년에 왔던 L양의 재방문.


반갑습니다. 재작년에 제가 L양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여기서 더 이해하고 노력하겠다는 건, 목줄을 하고 사귀겠다는 겁니까?"


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댓글로 어느 독자 분께 '목줄이라는 표현이 불쾌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 그때 L양 역시 제 표현이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저 위의 두 분과는 정반대로, L양은


'내가 남친에게 욕을 먹거나 무시를 당한 건, 내가 뭔갈 잘못했기 때문이겠지.'


하며 오히려 남친에게 사과를 하시는데, 거기서 더 이해하고 노력하시겠다고 해서 저 역시 순간 욱하는 마음에 저런 표현을 썼던 것 같습니다. 구구남친이나 구남친으로 부터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받고서도, 그 미련할 정도의 희생정신을 발휘하시는 게 정말 안타깝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 이후로 L양은 매뉴얼에 대한 소감을 적은 메일 하나 주시고 연락이 없기에, 전 '무소식이 희소식이지.'하며 잘 살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L양은 '새로운 남자'를 만나, '새로운 순교'를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허락된 지면이 많지 않으니 짧게 요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L양이 누군가를 만났을 땐 L양이 상대의 '여자친구'인 것이지, '가사도우미'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런 표현을 하면 기분이 상하실지도 모르겠는데, L양은 너무 빨리 상대의 '시녀'가 되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섬길 수 있다면 그건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L양의 경우는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그게 L양 나름의 '사랑의 표현'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 모습이 상대의 오만을 살찌우고 L양을 하찮게 여기도록 만들고 맙니다. 우렁각시가 되려는 L양을 상대는 우렁이 정도로 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넌 어떻게 남친 방 청소 한 번을 안 해주냐. 반찬 싸오는 적도 없고."


라는 이야기를 하면, L양은 곧바로 "미안해. 내가 거기까진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아. 뭐 먹고 싶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가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음식까지 만들어 주며 말입니다. 전 L양이 저 따위 남자의 말에는


"오빠,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오빤 내 방 청소해 준 적 있어?"


정도로 받을 줄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들이, L양의 '끔찍한 내 경험담'에 하나 더 수록될 이야기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L양이 이십대 중반만 되었어도 전 "네, 뭐 피와 살이 되는 경험들이 될 수 있으니 바닥까지 가 보신 뒤 바닥 치고 올라오세요."라고 하겠지만, 이미 손바닥 부르틀 때까지 여러 번 치신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젠 나이도 곧 계란 한 판이고 말입니다. 이런 와중에 상대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닥 치러 내려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입니다. 상대에게 존중과 책임감이 있는지를 보라고 제가 지겹도록 말했는데, 그걸 다 잊으시고


"넌 생각이 없냐."

"넌 센스가 없다."

"게임 중인데 왜 자꾸 전화하냐."

"넌 제정신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와 이렇게 오래 만나선 안 되는 겁니다. 이런 경험들로 나중에 <나 이런 막장의 남자까지 만나봤다>하며 어디다 사연 보내서 우승하려는 거 아니잖습니까. 아닌 걸 알았으면 빨리 나와야지, 이별이 무서워 주종관계를 형성해가며 붙잡고 있으면 이러다 청춘 다 흘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상대에게 헌신하고 상대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보상으로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걸, 폰 메인화면에 적어서라도 매일 보시며 외우시길 권합니다. 저 위의 두 사연에서처럼 '나만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만, '나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필수인 것이니, 잊지 말고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사연을 좀 더 다룰 생각이었는데, 컴퓨터가 아무래도 이상한 까닭에 한 번 밀어야 할 것 같다. 어제 창 몇 개 띄웠더니 자동으로 웹브라우저가 종료되고 그러던데, 지금은 아예 부분 부분만 표시되는 까닭에 이 글을 쓰면서도 글이 날아갈까 봐 가슴 졸이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쇼핑몰 들어갔다가 뭐 설치하라고 해서 설치한 이후로, 중간 중간 뜬금없이 광고도 뜨고 설치된 걸 지워도 재부팅하면 다시 살아나 있다. 잘 되던 인터넷 뱅킹이 다른 브라우저로 해야만 되기도 하고….


아, 그리고 혹시 궁금해 하는 독자 분이 계실지도 몰라서 적어두는 건데, 터미널로 하드복구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들어가서 설정하는 것까지 다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먹통이다. 물리적인 손상이 간 것 같다. 그리고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 안부를 물어 오신 분이 계셨는데, 잘 지내고 있다. 슬개골 탈구가 진행되어 잠시 다리를 좀 절었는데, 관절 영양제를 먹이니 예전처럼 잘 걷는다. 간디 옷이 내 옷보다 더 많은 것만 봐도, 분명 사랑 받으며 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자 그럼, 오늘 싹 포맷하고 우린 내일 다시 만나는 걸로…. 후련한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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