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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늘 남친에게 사과하게 되는 이상한 연애 외 2편

by 무한 2015. 2. 5.

어제 예고한대로 포맷을 완료했다. 한 번 밀고 나니, 확실히 빠르고 안정적이다. 포맷하기 전 이전 하드에 있던 문서와 사진을 내가 계속 들여다보고 있길래, 외장하드에 폴더를 하나 만들어 우선 다 밀어 넣어 버렸다. 그거 하나하나 분류하는 걸 멈추지 않았으면 이번 주말까지 계속 그 작업만 했을 것 같다. 가끔 이렇게, 짐처럼 느껴지는 것들에서 당장은 손을 떼고, 나중에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지 않은 소식 하나는, 포맷으로 인해 PC카톡에 저장되어 있던 대화들이 모두 날아갔다는 것이다. PC카톡을 사용한 이후 처음 한 포맷이었는데, 그 기록들이 컴퓨터에 저장된다는 걸 어제 깜빡하고 말았다. 이전의 경험들로 난 잊지 않고 '내문서'도 챙기고, '즐겨찾기'도 챙기며, 또 로밍 폴더의 메일저장 데이터까지 챙기는데, PC카톡 대화내용을 따로 저장하는 건 깜빡하고 말았다. 혹 내게 톡을 보내셨는데 내가 답을 드리지 않은 경우, 다시 한 번 카톡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그럼, 말끔해진 컴퓨터로 쓰는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늘 남친에게 사과하게 되는 이상한 연애.

 

안녕 예진씨. 예진씨의 사연을 처음 받은 게 벌써 3년 전이네. 그때나 지금이나 예진씨는 소녀감성이 충만하구나. 내가 <소녀상>이라는 제목으로 기억하는 글이 하나 있어. 내가 꼬꼬마였을 때 읽었던 글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대략

 

"순수하지만 바보스럽지 않고

항상 웃지만 천하지 않으며

명랑하지만 수줍어 할 줄도 알고

자존심은 강해도 용서를 빌 줄 알며…."

 

정도의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해. 당시 저런 글귀들을 다이어리에 적어 놓는 게 유행이었는데, 감성이 풍부한 여자사람 친구들은 꼭 저 글을 적어두곤 했어. 저런 소녀가 되고 싶어 하면서 말이야. 그때 내가 내 다이어리에 시를 써 두면 여자애들이 가져가서 형광펜으로 장식해 주거나 그림그려주곤 했었는데…, 아 추억 돋네.

 

나쁘지 않아. 난 저런 감성을 지닌 채 불혹을 넘긴 여교수님을 한 분 알고 있는데, 그 분은 시인이야. 양초 같아서 계속 들여다보게 되고, 대화를 할 땐 내 입김에도 파르르 흔들리며 반응해 주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시는 분이지. 저 '흔들린다'는 게 줏대가 없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예민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이 살아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데, 내 표현력이 미천한 까닭에 이렇게밖에 설명을 못 하겠네.

 

예진씨에 대한 내 느낌이 그래. 예진씨가 보내는 사연의 글자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에서 감성이 묻어나거든. 난 공쥬님(여자친구)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공쥬님은 가을쯤에 회사 발코니 쪽에 떨어진 낙엽이 쌓여 있으니 '가을이 초대장을 보내왔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거든. 난 IBM(이미 버린 몸)이라 저런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 '군인아저씨들 이제 한참 또 낙엽 줍겠구만.'하는 생각을 할 뿐이지. 여하튼 그래도 난 그런 감성에 관심을 갖게 되고, 끌리며, 아름다운 보석을 바라보듯 보게 돼.

 

근데 예진씨 남친은 나랑은 좀 다른 부류의 사람이거든. 그는 가부장적인 마초의 성향이 짙어. 그래서 만약 예진씨가 공쥬님처럼 낙엽 사진을 찍어 "가을이 초대장을 보내왔어!"라고 톡을 보내면,

 

"또 뭔 소리 하는 거야? 빨리 일이나 해.

내가 쓸데없이 이런 카톡 보내지 말라고 했지?"

 

따위의 반응을 할 수 있지. 이거 내가 그냥 일부러 예진씨 남친을 나쁘게 말하려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예진씨에게

 

"서운 한 거 참 많네. 난 그런 사소한 거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풀든가 말든가 해."

 

"또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너 잔소리 심해. 맨날 똑같은 말."

 

등의 반응을 보였던 것들을 토대로 한 말이야. 그리고 내가 전에 예진씨에게 이별을 권했던 것도, 저 정도 수위의 이야기는 정서적 폭력에 해당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런 감정적 발길질에 당하지 말고 어서 나오라고 했던 거고. 하지만 예진씨는 '제가 이런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소녀가 되게 하소서….'하며 마더 예레사가 되려 하는 까닭에 열심히 버티며 지내왔고, 이젠 남친으로 하여금

 

"내가 너한테 연락 왔을 때 왜 폰 보기가 싫었는지 이제 알겠다.

너랑 통화만 해도 이렇게 피곤해진다. 전화 하려다가도 그 생각이 사라진다."

 

라는 말을 들으며 '정서적 학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우를 받고 있지. 이런 와중에도 예진씨는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해보려고 해요. 부담을 주지 않는 거요.

종요한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고, 평소엔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거.

잘 모르겠어요. 이게 옳은 것일지. 그래도 한 번 더 해보려고 해요."

 

라는 얘기를 하고 있고 말이야.

 

내가 뭐라고 얘기하든 예진씨가 당장 이별을 택하진 않을 거란 걸 나도 알아. 예진씨는 '헤어지지 못 하는 여자'거든. 어쩌면 남친이 이렇게까지 마음 놓고 괴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어떻게 하든 예진씨의 입에선 헤어지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러면서 그는 예진씨의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자극하고자 "이런 내가 싫으면 헤어져라. 날 버려라."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돼. 도박에 미친 남자가 하나 있다고 해봐. 그는 연애중인데, 도박에 탐닉하고 있느라 연애는 거의 방치해둔 상태야. 여자친구가 전화를 하면 "네가 전화를 거는 바람에 부정 타서 게임 망쳤다." 따위의 이야기만 하는 남자지. 그래서 그의 여자친구는 헤어질 생각을 하는데, 그럴 때면 그는 "그래 미래도 없는 날 버리는 게 잘 하는 선택이겠지.", "너를 위해서 날 떠나가라." 라는 이야기를 해. 그래서 그 여자는 죄책감과 동정심을 느끼며 계속 사귀고 있어. 예진씨라면 그 여자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줄 것 같아?

 

'우리는 왜 사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 난 예진씨 남친이 하는 얘기들을 보며 웃겼던 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연인의 의무'인 듯 포장해 예진씨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게 밖에서 보면 '그럴 거면 왜 사귀는 거지?'라는 생각부터 들게 하는 말들이거든. 내 집을 좀 예쁘게 꾸미려고 인테리어를 하는 건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집을 팔아서라도 인테리어 비용을 더 들여야 하는 것과 같아. 집을 잃어야 하는 거라면 인테리어를 뭐하러 해? 그런데 순종적이고 상대의 궤변까지도 존중해주려 하는 예진씨는 지금 그의 말대로 집을 팔아서 인테리어를 하려 하는 중인 거야. 난 예진씨가, 순간의 다급함 때문에 뭐가 더 중요한지를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2. 자발적 솔로라 믿고 살아왔는데….(응?)

 

유림씨와 친한 친구 세 명을 떠올려봐. 그리고 그 친구들과 이만큼 가까워지기 위해서, 유림씨는 그들을 만나기 전부터 '난 앞으로 이 사람들과 진짜 친구, 평생 친구가 될 거야.'라고 다짐을 한 적 있는지도 돌아봐 봐. 그런 적 없지? 그냥 가깝게 지내고 서로가 서로와의 관계에 성실히 임하다 보니 이만큼 친해진 거잖아. 연애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왕자님이 백마 타고 나타나 꽃다발 바치며 시작되지 않아. 현실에서의 연애는, 오히려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와 더 가깝지.

 

난 유림씨가

 

"완곡한 거절 같은 답장이 왔어요. 그래서 전 다섯 시까지 우느라 잠을 못 잤어요."

 

라고 말한 부분을 이해하기가 힘들어. 내가 보기엔 카톡대화 어디에도 '완곡한 거절'이라는 부분이 안 보이거든.

 

"그래 다음에 보면 대화 많이 하자."

"그쪽에 있을 거니까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푹 쉬고, 조만간 또 보자!"

 

라는 문장 중 어디에 '완곡한 거절'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이거든. 그가 유림씨에게 반해서 마구 들이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게 '완곡한 거절'로 보였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런 필터링을 거쳐야 한다면 보통의 남자들을 다 걸러낸 후 '유림씨에게 관심 있는 남자' 중 한 사람과 연애를 해야겠지.

 

또, 유림씨는 '이만큼이나 표현을 했다'고 하는데, 그게 여기서 보기엔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만났을 때에도 해줄 수 있는 립서비스야. 유림씨가 상대에게 했다는 '표현'은, 내가 유림씨를 만나서 "착하신 것 같아요."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거랑 별반 다를 거 없거든. 유림씨가 상대에게 말한 건

 

"오늘 대화 많이 못 나눠서 아쉬워요~ 담에는 많이 나눠요!"

 

라는 거잖아. 이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열이면 열 절대 저걸 '고백'으로 보지 않아. 저 말과 상대의 대답 사이에서 '고백과 완곡한 거절'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림씨의 초능력 같은 거야. 근데 그 초능력은 아무리 봐도 삶이나 연애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이제 그만 넣어뒀으면 해.

 

내 생각에 이건 아무래도 유림씨가, '첫 고백의 실패'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꼬꼬마시절 유림씨가 처음으로 이성에게 고백을 했을 때, 상대는 받아주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했잖아.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이후로는 유림씨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유림씨와 친해지는 남자가 있어도 절대 연애를 하지 않았고 말이야.

 

난 그러는 동안 유림씨의 센서는 이상할 정도로 예민해지고, '자발적 솔로'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상대에게 보상을 받으려 하며, 나아가 이성과 대화를 하는 감이 현저히 떨어져 버렸다고 생각해. 센서가 예민해 진 건 위에서 '초능력'과 관련해 설명했으니 접어두고, '자발적 솔로'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심리를 봐봐. 유림씨는

 

"썸 비슷한 걸 타다가도 제가 여태껏 기다려온 남자가 이 사람이라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지속할 수 있는 연애일까를 고민하다

'좀 더 나은 사람'을 만날 거라 생각하며 기다리기도 하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 그런데 저렇게 '자발적 솔로'의 길을 걷다 보니, 이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도 '친구 얘기'나 '아는 오빠 얘기' 같은 걸 하면서 수다만 떨게 되었어. 이성과 대화를 하는 감이 완전히 떨어져 버리고 만 거야. 어느 오빠가 어떻더라 하는 얘기 같은 건 동성친구랑 나누면야 재미있겠지. 근데 남자 입장에서 그런 얘기를 들어주고 싶을까? 반대로 생각해 봐. 상대가 말을 걸어선 '아는 여자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유림씨 기분도 별로 유쾌하진 않을 것 같지 않아? '우리 둘'에 대한 이야기는 10%밖에 안 되고, 나머지 90%가 그저 대화를 위한 대화이거나 '남의 얘기'라면 좀 지겹지 않겠어?

 

잔뜩 들고 있는 기대를 좀 내려놓고 만나봐. 난 이 관계가 마라톤이라면, 42Km 중에 이제 5m 정도 달린 관계라고 생각하거든. 5Km가 아니라 5m야. 뒤 돌면 바로 앞에 출발선 있는 거지. 그런데 유림씨는 상처 받았다며 포기한대. 그래서 난 그게 한 번 놀랍고, 그런 마음을 먹곤 상대에게 그저 행운을 빌어주며 관계를 마무리 지으려 하는 유림씨의 태도를 보면서 또 한 번 놀라워. 아직 숨이 찰 시간도 오지 않았는데 무슨 경기를 벌써 포기해?

 

"그럼 무한님은 이 관계가 잘 될 거라고 보시는 거예요?

사귀게 될 수 있다고요?"

 

난 유림씨의 그런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해. 유림씨는 될 거면 올인하고, 안 될 것 같으면 아무 것도 걸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거든. 될지 안 될지는 일단 시작을 해봐야 전망할 수 있는 건데, 유림씨는 시작도 하기 전에 먼저 판단을 한단 말이야. 그렇게 판단하며 아무 것도 걸지 않은 지금까지의 연애사를 '자발적 솔로'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렇게 지내다 '백퍼센트의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건, '팔십퍼센트의 남자'를 만나서도 채워 나가며 '백퍼센트'로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내가 매번 인용하는 말 있잖아. 인생은 탐구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며 탐구하는 거라고. 될 거면 올인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두고, 조금이라도 걸어봐. 알았지?

 

 

3. 180일의 연애.

 

우선, 축하드립니다. 철벽녀일 때 노멀로그를 알게 되신 뒤 이제 180일의 연애까지 하게 되셨다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던 겁니다. 이제 180년의 연애를 하는 일만 남았으니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진 마시길 바랍니다. 처음 했는데 이 정도면 정말 잘 하신 겁니다.(응?)

 

허락된 지면이 많지 않으니 요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딱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다투지 않는 연애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 확인을 받으려고 할수록 확신은 줄어든다.

ⓒ '너 대화법'은 이별의 지름길이다.

 

다투지 않는 연애는, 한 쪽이 그냥 맹목적으로 이해해주기만 해도 할 수 있고, 아니면 서로 '본론'을 이야기 하지 않고 연인을 연기해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K양의 남자친구인데 예스맨이 되기로 했다면, 우리는 다툴 일 없는 연애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뭘 하든 전부 K양에게 맞추고, K양의 뜻대로 따를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바람직한 연애일까요? 열 번 둬서 열 번 다 내가 이기는, 백 번을 둬도 백 번 다 내가 이길 장기라면, 결국 그게 참 권태로운 짓이며 시간낭비일 거라고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저 밥 맛있게 먹어라, 추우니 옷 따뜻하게 입어라, 출근 잘 해라, 잘 자라, 오늘 재미있었다, 같은 이야기만 하는 연인이라면, 그렇게 100년을 만나도 서로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무슨 고민을 하며 사는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요즘 가장 하고 싶은 건 뭔지에 대한 밀도 높은 대화를 할 수 없는 사이는, 연인이라는 간판만 걸린 관계와 같습니다. K양이

 

"저도 집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걸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건 어떤 마음에서 하신 이야긴지 잘 알겠습니다만, 그런 대화 없이 그저 불금에 닭갈비 정도 먹으며 데이트 하는 연애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그것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내 가족이나 나의 허물을 고해성사 하듯 다 털어 놓을 필요는 없지만, 그 중 어떤 것이 현재의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걸 연인에게 말하곤 함께 답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확인을 받으려고 할수록 확신은 줄어든다는 말은, 혹 K양에게 '확인'받으려는 친구가 있는지를 떠올려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K양의 그런 친구로서 K양에게 "내가 이거 공부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그거 사러갈 건데 바가지 쓰진 않을까?", "나 거기 갈 건데 잘 찾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K양은 점점 제가 귀찮아지고 K양이 '갑'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연애를 하며 "만약 다른 여자가 마음에 들어오거나 그런다면, 그땐 나에게 꼭 말해줘." 같은 말은 연애 중 할 일도, 할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 상대의 부정을 '확인'으로 삼아 안심하려 하지 마시고, 이쪽에 대한 확신을 갉아 먹을 그런 '확인 받으려는 행동'은 그만 두시길 권합니다.

 

'너 대화법'이라는 건, "너는 이런 게 안 서운한가봐?"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난 이러이러해서 서운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아가 애초에 함정수사 하듯 '서운할 거리'를 낚으려는 시도는 안 하는 게 좋고 말입니다. K양이 그랬던 것과 반대로, 남친이 "나 오늘 저녁에 친구들 만나서 한 잔 하고 들어갈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넌 내가 친구들 만난다고 해도 서운하지 않나봐?"라는 이야기를 하면 좀 숨막힐 것 같지 않으십니까? 애초에 '서운할 거리'를 만들려 저런 이야기를 한 것 자체도 좀 짜증날 수 있고 말입니다. 저 위에서 말한 '다투지 않는 연애'를 위해 참고 참다가, 이렇게 돌려서 표현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전 K양에게, "이번에 헤어진 남자친구보다 괜찮은 남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정말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그건 네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라고 말하는 남자보다 괜찮은 남자는 많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렇게까지 오만한 모습을 보이며 떠나간 이 상황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사람이 남자친구라는 걸 말하고 붙잡고 싶어요."라며 매달리시면, 그의 오만 만을 더 살찌우게 될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 이별로 인해 훗날 후회를 하게 될 쪽은 남자친구입니다. 그는 앞으로 누군가와 새로 만나 연애를 하더라도 삐걱임이 발생하는 순간 그게 '상대의 한계'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쌍방과실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냉철한 판단자' 역할을 하려는 그가 저는 오히려 가엾습니다. 그렇게 패배의 책임을 모두 선수들에게 물으려는 감독처럼 구는 사람과는, 결국 아무도 함께하려 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오늘은 우연히도, 다루게 된 사연 세 편의 주인공 분들이 모두 따뜻한 말 한 마디씩을 해주셔서 힘이 났다. 대개 사연을 보내시는 분들은 신청서와 카톡대화만 덩그러니 첨부한 후 별다른 멘트 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사연의 주인공 분들은 전부 애정이 느껴지는 짤막한 편지들을 덧붙여 주셨다. 그래서 배고픔도 잊은 채 빠져들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드린다.

 

난 그럼 서둘러 아점을 먹고, 어제 못 다 설치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하러 가야할 것 같다. 점심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목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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