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심사를 할 때 '금사빠' 영역도 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금사빠 성향의 솔로부대원의 경우, 동성의 50대 이상 현지인만을 가이드로 허용하는 룰 같은 걸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래의 한국인 이성이나 현지 이성 접촉 금지, 뭐 그런 거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금사빠 대원들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그 남자는…."
이라는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제 뇌리를 스칩니다.
1. 여행지에서 만난 남자, 날 좋아하는 걸까?
M양은 이번 여행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남자와 썸을 탔습니다. 사연에서 M양은 제일 마지막에 만난 남자인 C군에게만 마음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 전에 만난 A와도 썸을 탔고, B와도 썸을 탔습니다.
M양은 너무 민감하고, 또 너무 쉽게 상대에게 곁을 줍니다. 그건 금사빠 대원들의 특징 중 하나인데, 그럴 경우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오빠가 저녁에 고기를 구우며 제일 먼저 이쪽에게 고기 몇 점만 덜어줘도 그에게 빠지게 됩니다. 분명 '제일 먼저' 고기를 줬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담긴 듯이 생각 되고, 그 오빠가 고기를 구울 때 보인 팔뚝이 멋져 보이며, 고기 다 굽고 앉아서 먹을 때도 그 오빠가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뭔가를 부탁하거나 떠보게 되는데, 그게 또 그곳이 여행지인 까닭에 대개 상대는 들어주게 됩니다.
"오빠, 내일 다른 곳으로 가기로 한 거 안 가면 안 돼요?
여기서 하루 더 묵으며 사람들이랑 같이 어디어디까지 갔다 돌아가요~"
라고 이쪽에서 한 제안을, 상대가 받아들여주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럼 또 이쪽은 더욱 착각의 늪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같이 구경 간 곳에서 날이 추워 상대가 장갑이라도 벗어주면, 이쪽은 자신의 판타지에 거의 확신을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또 상대는 그냥 그 당시에 이쪽이랑 제일 친하니까 옆에서 걸은 것인데, 그걸 이쪽은 완전히 오해해버리고 말입니다.
물론 이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썸이나 연애를 구성하는 조건 중에는 상대에 대한 '환상'도 끼어있는 탓에, 서로에 대한 판타지가 관계를 싹틔우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M양의 경우엔, 번지수가 좀 틀리지 않았습니까? 상대는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고, 여기서 보기에 여행 중이나 여행 이후 들이댄 쪽은 M양입니다.
M양은 그게 그냥 '좋은 마음'으로 한 행동들이고, 또 여행지에서 가까워진 친구 같은 사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제 말이 불쾌하시더라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M양이 상대의 '여자친구' 입장에 있다면 어떨까요? M양이 그의 여자친구고, M양처럼 행동하는 어떤 여자가 있는 겁니다. 그래도 그게 다 '좋은 마음'으로 한 행동이고 친구처럼 생각해서 한 행동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M양의 남자친구에게 귀국할 때 뭘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그걸 받으려고 만나고, 또 그 이후에도 만나 쇼핑까지 하기로 약속하는 여자를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거 원래 한 꼭지로만 다루려고 했던 사연인데, 짚어가야 할 부분이 많은 까닭에 오늘 매뉴얼 하나를 통째로 다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에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 '답정너'와 '금사빠'가 불러오는 문제.
일단 위에서 하던 얘기를 먼저 결론짓겠습니다.
C군이 M양에게 보인 태도의 9할은, M양의 '답정너'에 대한 리액션 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M양이 바라는 걸 거의 다 들어주지 않았습니까? 더불어 M양이 '사고 싶었는데 못 산 게 있다'고 하자, 그가 M양보다 한국에 늦게 돌아오니 사다주겠다고 한 것이고 말입니다.
A나 B나 C말고, 왜 그 M양을 서운하게 만들었다는 다른 '여행객 오빠(편의상 D로 지칭)'가 또 있지 않습니까? 저는 D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를 좀 나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겁니다. 물론 좀 더 부드럽게 얘기했겠지만, 그 뜻을 아주 직설적으로 풀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너도 네 여행 온 거고 나도 내 여행 온 거잖아. 그러다 숙소에서 알게 된 것뿐이고.
그런데 왜 내가 네 기대대로 움직여야 해?
보고 싶으면 네가 혼자 가서 봐도 되는 거잖아.
왜 네가 바라는 대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지?"
또, M양의 주장대로라면 '썸을 탄 것 같은 사이'였지만, 결국 M양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A군의 반응도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A군이었다면 보였을 반응을, 역시 좀 직설적으로 옮기겠습니다.
"내가 계획했던 다음 행선지를 접고 네 일정에 맞춰 변경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우리 관계는 네가 다 착각한 거고 난 너에게 마음이 없는 걸로 알겠다고?
너는 그러지 못하면서 왜 내게만 요구해?
변경하지 않으면 우리 인연을 여기서 정리하겠다?
정리해. 나도 자신만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아는 사람은 싫어."
일부러 좀 날을 세워 적었습니다. 이걸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썸을 타든 연애를 하든 곤란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M양이 원하는 걸 다 해주겠다고 다가오는 남자와만 만나다 보면 '다른 목적이 있는 남자'나 '급한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M양은 그들의 열정적인 호의와 친절을 보며 '저 사람은 날 위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람은 겪어 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행여 상대가 M양에게 반해 그런 행동을 한 거라 하더라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는 오래 가기가 어려워집니다. 늘 M양의 기분이나 자존심을 앞서 챙겨야 하고 또 M양을 접대하듯 만나야 하는 관계는 상대가 누구라도 오래 버티기 힘든 법입니다.
또, 쉽게 기대하는 까닭에 그만큼 쉽게 실망하게 되고, 금방 사랑에 빠지는 까닭에 그만큼 금방 상대를 증오하게 되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M양 자신이 여리고 쉽게 상처 받기 때문에 하는 수동적이고 상대를 평가하듯 하는 행동들이, 상대에게는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썸남에 대해 '날 그만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희생하지 않는 거다, 나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얼마가 걸리든 왔을 거다' 하는 결론들이 너무 일방적입니다. 그런 태도로만 상대를 평가하면 합격점을 받을 건 M양의 기사나 광대가 되겠다는 사람 밖에는 없을 텐데요? M양은 그 관계를 위해 무슨 노력을 얼마나 하고 계신지도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3. 여친, 또는 구여친 뒷담화 하는 남자들.
이걸 혼동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친구에 대한 불만, 또는 불평을 한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내 여자친구는 이래서 별로지만, 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네가 더 좋다."
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더불어, 여자친구에 대한 뒷담화를 M양 앞에서 늘어놓는 남자들은, 만약 나중에 M양과 연애를 하더라도 다른 여자들에게 똑같이 M양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잊지 마시길 권합니다.
또 상대가 하는 뒷담화 속에는 '여자친구의 속사정'이 생략된 까닭에, 그 뒷담화만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훗날 가슴이 새카맣게 타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대가
"내 여자친구는 집착이 너무 심하다. 이성과 연락하는 걸 정말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난 이렇게 우정을 쌓고 또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뿐인데,
내 여자친구는 이걸 다 이성과의 관계라고만 본다. 이해심이 조금만 있어도 좋을 텐데…."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정하는 김에, 그래서 그는 여자친구를 버리고 M양에게로 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상대의 구여친이 했던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성과 연락을 하다가 결국 그녀를 버리고 M양에게 왔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M양은 상대의 저 '이해심'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전부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는데, 그러면 상대는 그 '이해심'을 악용해 다른 이성들과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또 그보다 더욱 친밀한 수준의 행동들을 할 수 있습니다. 주말에 M양을 그냥 덩그러니 놔두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질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여친이나 구여친의 뒷담화를 할 땐, 그 뒷담화 속의 여친이나 구여친이 어떤 마음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지도 고민해 보시길 권합니다. 아무 필터링 없이 액면가 그대로 믿고 있다간 훗날 바보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제가 그런 상황에 있다면 그 사람 여자친구처럼 하지 않겠다고,
그럼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옆집 아이가 "우리 엄마는 공부를 너무 시켜요. 놀지도 못하게 해요."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아, 나는 아이가 생기면 공부 시키지 말고 놀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올바른 생각일까요? 상대의 뒷담화에 나오는 행동을 역으로만 하면 참이 될 거라고, 그렇게 단순하게만 받아들이진 마시길 권합니다.
제가 매뉴얼을 통해 정말 지겹도록 "상대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세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M양과 C군의 관계는 아주 간단하게 답이 나옵니다. C군은 M양에게 자신의 여자친구 뒷담화를 하고 있지만, 그녀와 같이 여행 다니고 SNS에다 둘의 사이를 자랑하며 잘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4. M양 질문에 대한 답변.
아래는 M양의 질문입니다.
"오빠가 저랑 같은 마음이 아닌 거죠?"
"오빠가 그냥 저를 쉽게 보는 건가요?"
"만약 또 오빠가 만나자고 한다면 만나야 할까요?"
"진심, 남자의 진심은 어디서 볼 수 있는 건가요?"
순서대로 답하자면 "네, 네, 아니요, 행동에서."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보기에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M양이 먼저 다가오니 그걸 막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은 충실히 '답정너'에 대한 리액션만 해줬을 뿐인데, M양은 그걸 호감과 관심으로 받아들이며 그와 썸을 타려 했으니 말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M양에게 다리를 걸칠 생각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와서 나 좀 위로해줘."
"같이 구경 가자. 가서 나 뭐뭐도 좀 골라주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M양이 알면서도 계속 다가오고 있으니, 그걸 보며 M양을 좀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거 얼마 전에도 제가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아래와 같은 대화문까지 곁들여가며 말입니다.
여자 - 오빤 여자친구 있으면서 저랑 왜 그랬던 거예요?
남자 - 넌 나 여자친구 있는 거 알면서 왜 그랬는데?
여자 - 전 오빠가 좋으니까 그랬던 거죠.
남자 - 나도 좋으니까 그랬던 거야. 됐지?
여자 - ….
M양은 억울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밖에서 보기엔 M양의 행동들도 그닥 올바르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가 부리는 수작들에도 M양은 거절 않고 대부분 다 응하지 않았습니까? M양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 그때 지나가는 말로 그러는 줄 알고 알겠다고 한 거였어요.
진짜로 그러자는 의미로 한 말일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주장은 나중에도 M양이 충분히 거절 할 수 있는 상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힘을 잃고 맙니다. 진짜로 그러자는 의미를 충분히 알고 난 뒤에도 M양은 "그럼 올 땐 오빠가 데려다 주시는 거죠?"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 번 아닌 걸 알고도 그 후에 약속까지 다 잡으셨으면서 이제 와서 그런 의미인지 몰랐다고 하시는 건, 그저 구차한 변명으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C군의 여자친구가 C군이 M양에게 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당장 헤어지자고 할 것 같지 않으십니까? 또, M양이 C군의 이야기들에 반응하며 '데이트'처럼 보이는 만남을 약속한 것을 그녀가 보면 당장 전화를 걸어와 따질 것 같지 않으십니까? 이렇듯 떳떳하지 못한 이런 상황을 계속 유지해가는 것은, M양도 C군의 '뒤가 구린 행동'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그걸 C군이 '얘는 내가 여자친구가 있어도 만날 수 있는 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잘잘못만을 따지자면야 당연히 C군의 잘못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M양이 "저는 나오라고 해서 나갔을 뿐이에요."라고 주장한다 해서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M양 자신을, 상대 여자친구 일하는 시간에 몰래 만날 수 있는 여자로 만들진 마시길 권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은 M양의 '수동적이며 상대를 평가하는 행동'이 M양을 지켜주었습니다. 상대는 M양이 그저 쉽기만 한 여자인 줄 알고 "와서 나 좀 위로해줘."따위의 수작을 부렸지만, 그 태도가 M양의 '수동적이며 상대를 평가하는 행동'의 전원을 켰습니다. '나더러 오라고? 말이 돼? 날 보러 오지 않고 나에게 오라고 하는 건 날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지만, 뭐 여하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M양과 C군의 관계에 대해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C군의 입장에서는 M양이 '여자친구 있어도 만나서 데이트 할 수 있는 여자'정도인 까닭에 딱 그만큼의 떡밥만을 뿌릴 것이고, M양은 채점표를 들고 있는 까닭에 그런 C군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이 매뉴얼을 작성한 건, 연애에 대한 M양의 태도 전반과 '좋은 남자'를 걸러내고 '급한 남자'나 '나쁜 남자'만을 만나게 될 수 있는 부분을 돌아보시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매뉴얼이 당장은 입에 쓸지 몰라도 몸에는 좋을 것이라는 걸 약속드리며, 여기서 저는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Hasta la v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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