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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성급하게 들이대다 망친 관계, 어떡해? 외 3편

by 무한 2015. 2. 3.

내 메일함 속 밀린 사연을 볼 때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2분 남았는데 난 아직 강변북로를 벗어나지 못 했을 때의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최대한 많은 사연을 다룰 수 있도록, 별다른 마중글 없이 곧바로 매뉴얼을 시작해 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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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지금까지 내가 세 편의 사연을 다 작성하고 네 번째 사연에 대해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단에 노란 경고창이 뜨더니 써 놓은 글들이 다 날아갔다.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동임시저장'을 해두었으니 당연히 거기 있으리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딱 저 위의 한 문단만 저장이 되어 있다. 로그인이 풀려 저기까지만 저장되었던 것 같다. 다른 브라우저로 로그인을 해 다시 한 번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저 위의 한 문장이 전부다.


나 혼자 있고 싶으니 다 나가 달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지금까지 기록했던 내용들을 다시 떠올리며 적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글을 쓰다가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글을 작성하는 동안에 모니터의 화면이 녹화되는 '블랙박스'같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그럼 그 블랙박스를 돌려보며 다시 타자만 치면 될 테니까. 오늘 할 일도 많은데 이건 진짜 참…. 여하튼 출발해 보자.



1. 성급하게 들이대다 망친 관계, 어떡해?


이 사연에 대해서는 내가,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 없이 연애만을 목적으로 들이대면,

조급하고 초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는 결론을 냈었다. 대화문 예시도 하나 들었었는데,


남자 - 금요일 저녁에 시간 괜찮아?

남자 - 전에 말한 운전연습 시켜줄까 해서.

여자 - 아, 안녕하세요. 저 근데 금요일에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여자 - 운전연습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남자 - 다음이란 건 없지 ㅎㅎㅎ


라고 적었던 것 같다. 저 대화에 대한 소감으로 나는


"이건 뭐, 내신도 좋지 않은데 수능성적도 좋지 않고,

게다가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특기생을 노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라고 적었었다. 사연을 보낸 K군은 상대와 썸을 탈 때 보인 '빠른 실망'과 '자신감 없음'의 태도를 사연에서도 보였는데, 그는


"그녀와 친하지 않아서 다가가기가 어렵고,

또 나이차이도 있는 까닭에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라고 말했다. 난 그것에 대해


"좋은 결론입니다.(응?)

그런데 친하지 않아서 다가가기가 어렵다면,

다음 번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떻게 친해질 수가 있는 걸까요?

그 사람 역시 친하지 않아서 다가가기가 어려울 텐데요?"


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뒤쫓지 말고 앞에서 이끌라고 제가 지겹게 말하지 않았습니까?"라는 문장도 적었었다. K군이 저런 '소심한 복수'로 상대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 뒤, 며칠이 지나 "우리, 운전연습 어떻게 하지?"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운전연습에 대한 구상은 K군이 미리 다 마치고, 상대에게는 '초대'를 하듯 무겁지 않게 제안하길 권했다. 더불어 얼른 친해져서 자주 만나게 되길 바라지만 말고, 그냥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길 권했다.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오늘만 날인 것처럼 상대에게 매달리진 말자는 얘기와 함께.



2.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들이 다 이상해요.


이건 내가 사연을 보낸 J양에게


"소개팅으로 만나지 마세요. J양은 소개팅으로 이성을 만날 타입이 아닙니다.

그냥 일상생활 중에 만나는 이성과 친해지며 관계를 키워가 보세요."


라는 결론을 냈었다. J양이


"소개팅을 하고 나면 남자가 계속 연락을 해오는데,

난 그게 전화를 받으면

그 사람이랑 계속 대화를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것 같아서 싫다."


"만나서 밥 먹을 때 자기 것도 먹어 보라며 먹여주려고 하는데,

그게 싫어서 내 포크로 내가 집어 먹었다."


"상대가 내게 전화해서는 사랑니 났다는 얘기 하는데,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징징대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나는 쉬고 싶은데 상대가 계속 전화를 걸었다."


라는, 어매이징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지만, 저런 행동들을 괴상하게 생각하며 거부감을 느끼면, J양은 대체 앞으로 연애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도 물었다. 남자의 관심이나 호의가 그냥 귀찮고, 만나거나 전화를 해서 '쓸 데 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하느니 그냥 쉬고 싶은 뿐이라면, 굳이 소개팅을 할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었다.


J양이 바라는 속도로 이성과 친해지는 것은, 소개팅의 속도와 맞지 않는다. 소개팅은 연애를 전제로 만나게 되는 것인데, J양은 상대와 조별과제를 하며 과제와 관련된 연락을 하게 되는 것 정도의 속도를 원하기 때문이다. 소개팅에 나가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애프터까지 잡아 놓고는, "그 사람은 왜 자꾸 연락하죠? 난 통화하고 싶지 않고 그냥 쉬고 싶은데?"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J양의 문제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남들이 주선해 준다고 무작정 나가지 말고, 나가더라도 상대와 다음번에 또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되도록이면 연애가 전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주변의 이성과 친해져보길 권한다.



3. 그녀가 절 어떻게 생각하나요? 전 어쩌죠?


이건 내가 A군에게,


"심부름을 잘 해주는 친구는 착한 걸까요?

무슨 얘기를 하든 다 긍정해주는 친구는 착한 걸까요?

내 기분대로 아무렇게나 대해도 다 받아주는 친구는 착한 걸까요?"


라는 질문을 하며 시작했었다. 뭐 그렇게 토이의 <좋은 사람>에 나오는 가사 대로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하며 '그녀 바라기'를 하는 것도 하나의 '연애에 임하는 방식'일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렇게 정서적 조공을 바치며 '예스맨'처럼 그녀의 옆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상대의 '편'이 되는 것과 '팬'이 되는 것은 다르다. 사람에 따라서는 비슷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저 둘을 '일방적인 관계는 아닌가? 상대는 이쪽을 존중하는가?'라는 기준으로 가른다. 내 기준에 따라 나누자면, A군은 상대의 '편'보다는 '팬'인 사람에 가깝다.


A군은 그녀를 너무나 큰 존재로 생각한 나머지, 자신이 그녀에게는 민폐가 되는 사람일 뿐이며, 그녀가 이렇게 A군과 대화를 해주고 있는 것마저도 큰 은혜라고만 여기고 있다. 반면 그녀는 여기다 옮겨 적기도 민망할 정도의 말들로 A군에게 핀잔을 주거나, A군이 한심한 듯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군은 자신이 그녀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듯 스스로를 놀림감처럼 이야기 해 핀잔을 받곤 안심하기도 하는, 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대해


"전 착합니다. 제가 실제로 착한 것 이상으로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좀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까지 곁들여가며 말이다.


닮고 싶은 남자, 갖고 싶은 남자, 존경스러운 남자를 다 놔두고 그녀가 과연 '맹목적으로 박수만 치는 방청객 같은 남자'인 A군을 선택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착하다'는 건, 충분히 그러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의와 친절을 베풀 때 착한 거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상대가 놀리고 구박을 해도 어쩔 수 없이 호의와 친절을 베풀 수밖에 없는 건 '노예'에 가깝다.


"운전면허 학원에서 나보고, 처음 운전하는 여자보다 운전 못 한대 ㅎㅎㅎ"


그녀가 웃으면 그저 좋다며 스스로를 개그소재로 삼고 있는 A군을 보고 있자니 내 눈에 습기가 찬다. 면허 따면 동해 해안도로 드라이브 할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쇠고랑 차는 것도 아닌데, 그걸 굳이 저런 식으로 이야기해 그녀를 웃겨야 하는 걸까? 그 이야기에 그녀는 정말 재미있어서 웃는 걸까? 저런 이야기를 계속 하며 A군 말대로 1년을 지내다보면, 정말 어느 순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착해.'라며 그녀가 A군의 여자친구가 되겠다고 할까? '웃기는 사람'과 '우스운 사람'은 다르다는 걸, A군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4. 잡고 싶은데,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못 온다는 남친.


파스칼의 책을 읽다가 봤던 문장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하진 않은데, 아무리 현명하고 반짝반짝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낭떠러지 바로 위 널빤지에 올려두면 그가 당장 두려워하는 것 외에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냐는 내용의 문장이었습니다.


K양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K양에겐 남친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저 덮어둔 채 지내온 고민들이 너무 많습니다. K양은 그 고민들에 대해 연애 중 남친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가, 그가 그런 K양의 태도에 지쳐 떠나려고 짐을 다 싸면 그제야 털어 놓습니다. K양은 늦게라도 털어 놓았으니 이제 된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너무 늦은 다음입니다. 사후약방문인 것입니다.


단지 시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는 건 아닙니다. 더 일찍 털어 놓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K양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 중 대부분은, K양이 결단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결단을 내리고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 결단과 정리의 방법은 도피일 수 있고, 용서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며, 포기하는 것일 수 있고, 포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을 받치고 서있는 아틀라스가 될 것인지, 울며 마속의 목을 베는 제갈량이 될 것인지는 K양이 택해야 합니다.


이걸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K양은 거대한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일 수 있고, 그저 방어적인 자세로 날 선 말만 상대에게 던질 수 있습니다. 또, 그저 자신이 힘든 까닭에 상대에게 짜증만 부릴 수 있고, 어차피 이 관계는 K양이 고민하는 부분들로 인해 길게 가지 못 할 거라 생각하며 절망했다가, 반대로 또 그만큼 간절히 원했다가 하며 변덕을 부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저는 위의 이야기와 별개로, K양이 어떤 고민으로 얼마나 괴로운 상황에 처해있든, 그게 연애 중 상대에게 엉망으로 굴게 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K양의 사연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언젠가 웹에 떠돌던 미드 짤방 중


"You don't get a 'bitch pass' just because you're old."


라는 대사가 포함된 짤방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대사의 뉘앙스와 비슷하게, K양이 남친에게 털어 놓을 수 없는 고민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게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저는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연애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 심술을 부린 것,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것 등은 K양의 사정과 관계없이 K양이 잘못한 부분입니다.


하나 더.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으로 상대의 목을 조르는 건 정말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K양에게 수동 공격적 행동의 모습이 있는 건 아닌지도 한 번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그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받게 되는 영향은 분노와 좌절감이며, 장기적으로는 관계의 단절을 부르고 그 정도가 심한 경우 상대로 하여금 복수심을 유발하게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K양의 남친은 이별을 말하는 메일에서 그간 자신이 K양으로 인해 무너졌던 지점들을 하나하나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에 대해 "난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로 봉합만 하려 하지 마시고, 상대가 K양처럼 행동했다면 K양은 어땠을지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이 관계가 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K양이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그것에 대한 K양의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를 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고 어떻게든 재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위에서 말한 부분들에 대한 답을 K양이 스스로 낸 후, 그 답을 가지고 상대와 이야기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다음 달에 보기로 했다며 기다리고만 있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원래 여섯 편의 사연을 다루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썼던 글을 다시 쓰게 되는 일이 벌어져 네 편으로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아, 그리고 블로그 리뉴얼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적용하려고 했던 스킨의 새 버전이 나왔는데, 정식 배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박한 기능들이 더 포함되었다고 하니, 바꾸는 김에 새 버전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도 밥 먹으러 가야겠다. 점심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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