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안락사를 선택하는 꿈을 꿔서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글을 안 올리고 쉬었다. 꿈에서 난 8, 90대의 노인이었는데, 홀로 살아남아 병을 앓고 있었다. 병도 병이지만, 몸은 충분히 늙었는데 마음은 그만큼 늙지 못해 그게 더 힘든 것 같았다.
병실 침대 위였다. 자식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의사는 항암치료를 더 진행하거나 안락사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꿈속에서 '항암치료'는, 척추에 굵은 주사바늘로 약물을 주입하는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며, 이후에도 누워서 대소변을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의 치료였다. 바스라질 것 같은 몸에 그 짓을 더 한다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목숨을 연장한다고 해도 날 반겨줄 이가 더는 세상에 없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생. 자식들의 얼굴에서 부모의 긴 병에 찌든 표정을 보았다. 검은 옷 입고 며칠 우는 것으로 고생은 그만 하는 게 나으리라 생각했다.
약물을 주입하는 걸 직접 보겠냐고 의사가 말했다. 난 피 뽑을 때에도 주사바늘을 보지 않을 정도로 겁쟁이지만, 그 링거 줄에 내 심장을 쉬게 해 줄 약물이 들어가는 건 직접 보겠다고 했다. 내겐 그게 내 인생을 마무리 짓는 일생일대의 커다란 일이었지만, 의사는 기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을 하듯 그렇게 주사를 놓았다.
편안했다. 물에 넣은 설탕이 녹듯, 더는 이 세상에서 힘주고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몸과 마음이 모두 녹는 것 같았다. 자식들이 울기 시작했고, 겨운 날숨과 함께 내 눈도 젖어들었다. 이제 2, 3 분 정도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잠들게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끝으로 담배를 하나 못 피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한 모금이라도 빨고 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 한 거다. 그래서 이거 잠깐 멈추고 담배 하나 피우고 다시 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데, 이미 약효가 돌아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담ㅂ…. 담…."
이라고 말하자, 눈치 없는 내 자식들은
"아버지, 그래요. 다음번에 만나요. 다음 생에 우리 또 만나요."
따위의 이야기를 해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가더라도 담배 하나 피우고 가자는 건데. 다음에 뭘 어쩌자는 게 아니라 담배 하나 달라는 건데….
왜 이런 꿈을 꿨는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인생은 소중하다는 것과 자식들은 센스 있게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좋은 꿈이었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내 꿈 얘기는 이쯤하고,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밤새 통화하던 사이에서 남남으로.
아니 뭐 이런 걸 다…. 사연을 보낸 P군이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다고 해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했더니, 신청서 아랫부분에 기프티콘을 붙여서 보냈다. 8년 째 참 다양한 메일을 받고 있지만 신청서에 기프티콘을 붙여 놓은 메일은 처음 받아봤다. 동네 아이스크림 집은 별로고 옆 동네로 가면 많이 퍼주는 알바생이 근무하고 있는데, 그곳까지 산책할 겸 가서 바꿔 먹어야겠다.
아이스크림을 받았으니 나도 달콤한 매뉴얼로 보답해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좀 씁쓸한 매뉴얼이 될 것 같다. P군에게, 그녀에게서 벗어나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정확한 물품 가격을 제시하지 않고 경매하듯 물건을 팔려는 판매자를 만나면 고생하게 되는 것처럼, 선이 불분명한 여자를 만나면 고생만 할 수 있다.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를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그녀의 흥미를 끌어 잠시 가까워지더라도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면 언제든 내쳐질 수 있다. 특히
"난 남자친구가 있더라도, 남자친구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다른 남자들이 채워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결혼하면 안 그러겠지만, 그 전까지는 그렇게 지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는 여자와 만나면 이십대 초반에도 스트레스성 탈모가 진행될 수 있다. 저 말은 P군의 그녀가 한 말이다. P군은 그녀가 말한 '결혼하면 안 그러겠지만'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는데, 난 솔직히 저 말을 믿기가 어렵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또 같이 놀러 다니며, 아무 일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들과 숙박업소까지 드나드는 건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게다가 그녀가 지금 할 수 없는 '자제'를 미래에는 단박에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말이다.
그녀가 자신이 친구를 소개해 줘서 사귀고 있는 남자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연락을 했던 것 역시 그녀가 '가벼운 여자'가 아닌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위에서 말한 부분까지는 백 번 양보해 '가치관이 달라서'라고 할 수 있지만, 이건 말 그대로 '수작'이 아닌가. P군은 이걸
"습관인지 치기인지, 몇 번을 그랬다고 합니다."
라며 바다 같은 이해심으로 이해하는데, 미안하지만 난 저 부분을 읽으며 그녀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P군은 그녀에게 빠져 있으니 이게 그저 '못된 습관'이라거나 잠시 그녀가 흔들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남의 일이며 성별이 바뀐 상황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여자친구 있는 어떤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그것도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줘 친구와 사귀고 있는 여자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한다. 이 남자에 대한 P군의 생각은 어떤가?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적은 부분에 나온 '친여동생', '베프1', '친구2'의 의견에 난 동의한다. 특히 P군 친여동생이 낸 결론에 적극 동의한다. 그녀는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한 여자다. 게다가 그녀에게선 P군에 대한 1g의 애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P군은,
-내가 자유롭게 살 거라는 식으로 말하면 쩔쩔매는 오빠.
-내가 다른 남자랑 만난다고 하면 이해하는 척 하지만 더욱 집착하는 오빠.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뭔갈 말하면 다 들어줄 오빠.
-내게 예쁘다고 말하고 날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오빠.
정도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난 현재 P군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가도 그녀가 병원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돈을 걸 수 있다. P군에게도 묻고 싶다. 우리끼리니까 정말 툭 터놓고 솔직하게, P군도 내가 돈을 건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지점에 돈을 걸 것 같지 않은가?
P군에게 일부 고지식한 부분이 있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남친과의 만남은 무슨 수목드라마 정도로 여기며, 다른 날엔 또 다른 남자와 밤새 술을 마시며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살아간다면, 그걸 두고도 '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늦게까지 하는 술집이 없으니 숙박업소 잡고 마실 수 있어.'라며 이해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그녀에겐 '진입장벽'이라는 게 아예 없다. 오히려 그녀는 일부러 상대가 진입하게 만든다. A씨든 B씨든, 그녀가 싫어할 말만 골라하는 게 아니라면 그녀와 친해져 술 한 잔 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P군도 그녀와 친해지고 만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을 못 느끼지 않았는가. 예쁘다, 보고 싶다, 따위의 이야기만 늘어놓아도 대화가 되었고, 그녀는 P군의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리 동네로 한 번 놀러와."라며 진입을 유도했다.
보통의 여자라면 분명 부담스러워 할 것 같은 P군의 느끼한 멘트 역시, 그녀는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소심한 남자들이 간을 볼 때 쓰는
"그럼 내가 가서 같이 커플사진 찍으려고 하면 찍어 주나? 내가 앞으로 너 책임지려고. 책임져도 되는 거지?"
류의 '대놓고 떠보기'를 해도 그녀는 받아주었다. 이런 증거들이 의미하는 건, 이게 P군이 뭔가를 잘 하거나 자신의 매력을 보여줘서 잘 된 관계가 아니란 거다. 카톡대화에서도 드러나듯 그녀는 당시에 심심했고, 자신에게 열광하며 미모까지를 찬양해주는 P군이 싫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P군이 느끼하고 오글거리는 말을 해도, 그녀는 "귀엽네요 ㅋㅋ"라며 받아줬던 거다.
P군이 그녀에게 화났을 때 했던 생각들이 맞다. P군은 자신이 그렇게 화를 내면 상대가 손을 털 듯 관계를 정리하고 등을 돌려 버리기에, 결국 아쉬워지는 건 본인이라 어떻게든 '반성할 구실'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들러리나 호구가 된 것 같다는 P군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가 P군에게 아주 작은 애정이나 존중만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반성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건 좋은 태도지만, 남의 잘못까지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괴롭히진 말았으면 한다. 밖에 나가서 사기를 당하고도 '내가 좀 더 신중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반성만 하면, 사기꾼이 고기 먹고 이 쑤실 동안 자신은 자기 학대만 하게 되는 것 아닌가. P군의 감정이야 어떻든 간에 오로지 그녀를 기쁘게 만들어야만 이어질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그건 '연애'가 아니라 '접대'다. P군은 다시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는데, P군이 계속 그녀를 접대하듯 대하면 이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그 접대가 끝나는 순간 그녀는 이 관계를 다시 놓아버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해가야 하는 건지, 역시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2. 타협이 불가능한 남친과의 의사소통.
이 관계에 조율의 가능성이 남아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사연을 보내시려고 했다는 작년 9월에 메일을 주셨으면 그래도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지금은 상대의 입에서
"너랑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네가 원하는 그럼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네가 헤어지자고 해도 난 할 말이 없다."
라는 이야기가 이미 나와 버린 상태라, 아무래도 조율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저런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건, 관계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다 저런 말이 나온 게 아니라 노력하고 있다, 신경 쓰겠다, 라며 셀 수 없이 많은 협의를 하다 나온 말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조율을 한 번 해보겠다고 하신다면, 전 아래와 같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남친에게 말하지 말고 하기.
죄송하지만 S양은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입장에선, S양이 하는 어느 말이 더 무겁고 가벼운 것인지도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말의 요점이 불분명한 까닭에 누군가에겐 그 말이 그저 도로의 차들이 빵빵대는 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상대도 전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전부 다 상대에게 물으려 하거나 확인, 또는 위로 받으려 하는 까닭에 상대를 쉽게 지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신청서에 적힌 사례를 하나 보겠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책을 봐야 하는데, 그 책을 못 봤다. 일주일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라는 S양의 푸념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건 냉정하게 말하자면, '상대에게 털어 놓아 공감과 위로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야식으로 족발을 시켜 먹고 나서 다음 날 남친에게 "나 어제 정신줄 놓고 너무 많이 먹었어. 어떡하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처음에야 누구나 저 말에도 괜찮다고 대답하겠지만, 늘 저런 이야기를 '고민'이라며 털어 놓으면 그냥 한심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친이 S양에게 한 말들을 보았을 때, 이미 남친에게 S양은 일정부분 '한심한 여자'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고 말입니다.
S양이 말한 '공감과 위로의 영역'에 속하려면, S양이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 저런 이야기를 꺼내야 합니다. 예컨대 S양이 진짜 빡세게 공부하며 살고 있다는 걸 상대도 아는 상황에서 "근데 난 열심히 해도 점수가 안 나오네.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가?"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건 상대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제도 놀고, 어제도 놀고, 오늘도 놀고 있으면서 상대에게 '점수가 안 나와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건 자극적인 충고나 날 선 조언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남친이 S양에게 '그걸 다 받아주며 괜찮다고 해주는 건 널 도와주는 게 아니라 널 망치는 거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 건, 바로 저런 의미라고 해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S양은 '힐링'이나 '케어', '멘탈치유' 등의 단어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경중을 따지지 않고 다 아프다고 해버리면 나중엔 양치기 소년과 같은 최후를 맞을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걸 처음엔 상대도 다 받아주려 노력하는 까닭에 '힐링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중엔 그냥 '맨날 아프다고 하는 애'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남친에게 털어 놓지 않고 본인이 움직여 하면 되는 일 정도는, 본인이 해결하시길 권합니다.
ⓑ남친과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거절하기.
약속시간이 5분 남았는데 남친이 이제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오지 마. 나 들어갈게. 내일 보자."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집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단, 늘 얘기하듯 상대가 변명이든 사과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창구는 계속 열어둔 채 말입니다. 따지는 건 다음에 만나서 따져도 됩니다. 당장은 상대가 위기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게 좋습니다.
이걸 그냥 상대가 올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며, 상대가 자신이 늦은 걸 대충 사과하며 맛있는 거 사는 걸로 넘어가려 할 때, 멱살을 잡고 때리듯 상대를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갈구거나 괴롭혀선 안 됩니다. 그럼 상대는
'내가 이렇게까지 사과를 하고 기분 풀어주려 노력하는데, 얘는 그냥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짜증이고 잔소리네. 대체 나더러 더 뭘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또, '연락'과 관련해서도 상대가 연락을 한다고 해 놓고는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올 때까지 S양도 마음을 비우고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그런다고 해서 30분 정도 지나 "연락한다고 해놓고 왜 연락 안 해?"라며 곧바로 따지는 건 좋지 않습니다. 상대는 신경 쓰지 않고 있어도 S양이 알아서 연락을 하는, '오토매틱'이 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간 S양은 상대가 위기감과 긴장감을 느낄 시간도 주지 않고 반격을 개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S양의 남친이 저지르는 일들은 서로가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기가 힘듭니다. 그건 남친이 그 부분에서 아주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고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것까지도 '서로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대하시길 권합니다. 내 시간과 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거지만, 네 시간과 일은 낭비 좀 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함께 가기 어렵습니다.
ⓒ'말' 말고 '행동'으로 남친에게 보여주기.
S양의 남친은, 자신이 약속시간에 늦은데다 연락까지 해주지 않고서도
"내가 늦긴 했지만, 넌 밖에서 기다린 게 아니라 집에 있었잖아. 그럼 너 할 거 하면서 있을 줄 알았지. 내가 사정이 있어서 늦어지면 너도 너 할 거 하고 있을 수 있는 거잖아. 네가 밖에서 기다린 거였으면 내가 당연히 달려 나갔겠지."
라는 변명을 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그저 영혼 없이 던져두곤, 바로 정당화와 합리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S양과 만나서도 S양이 말하는 동안 폰을 들여다보며,
"말 해. 듣고 있으니까. 내가 폰 보면서도 대답 다 하잖아. 뭐가 문제야?"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위에서 말한 대로 '아주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난 멀티가 가능하다. 폰 보면서도 네 얘기 다 듣고 다 대답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웃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이 바빠서 연락을 못 한 거라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난 멀티가 안 된다. 뭔가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너까지 신경 쓸 순 없는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게 '서로가 달라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게 좀 감이 오지 않습니까? 그는 그냥 필요에 따라 자신을 변호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S양이 이 부분을 짚어내면 그가 또 다른 변명으로 자신을 변호할 텐데, 그러지 말고 그냥 그와 똑같이 행동하며 한 번 느껴볼 수 있게도 만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그가 데이트 내내 폰을 붙잡고 있으며 그걸 지적해도 '멀티'가 가능하다는 대답만을 할 뿐이라면, 어느 날 S양도 데이트 내내 폰을 붙잡고 그와 대화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멀티가 가능한지 테스트 해 보는 거라고 말하면서, 대화 상대가 폰을 붙잡은 채 대화를 하며 "말해. 듣고 있으니까."라는 대답을 하면 어떤 기분이 되는지를 한 번 느끼게 해주시길 권합니다. 이게 너무 과한 처방 같다면, 다른 경우에도 그러는지를 한 번 상대에게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학교 선배, 부모님, 또는 내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도 그런 행동을 할 것 같은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과 만났을 때 그러지 않는 건 그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임을 말해주시고, 가까울수록 서로가 더 예의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다 덧붙여, 상대가 폰을 보고 있을 때 S양은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말해주시길 권합니다.
제가 이 관계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위와 같은 연애를 하는 중에도 S양은
"오빠에게 미리 물어보지 그랬냐고요? 오빠는 집에 가면 폰을 잘 안 봅니다."
"늘 그랬기에 그러려니 생각하며 저도 그냥 제 할 일을 했습니다."
"또 싸움 만들기 싫어서, 그냥 지나갔어요."
라며 이걸 '우리 사이에선 당연한 일'이라거나 '오빠는 원래 그런 사람', 또는 '말해봐야 싸움만 되는 일'이라며 대충 넘겨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동안 둘의 관계는 괴상한 모습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이제는 S양이 상대의 '아주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는 모습'을 지적하면, 그게 '바라는 게 많은 모습'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잘못 길들여진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좀 부정적으로 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위의 세 가지 변화를 시도해 보면 둘 사이의 '애정'이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무쪼록 저는 여기서 행운을 빌고 있겠습니다.
아, 2번 사연의 S양에게 하려다가 못 한 이야기가 하나 더 생각났다. S양은 기분이 좋을 땐 연상인 남친에게 '오빠'라고 호칭하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땐 '니가'라며 반말을 한다. '니가'라는 말은 미국 할렘가에서 사용했다간 총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말이니(응?), 기분 나쁘다고 해서 남자친구를 아무렇게나 부르진 말길 권한다.
그리고 먼저 말 꺼내서 '다다다다' 한 다음에 상대가 그 말에 대답을 하려 하면
"알았어. 나 잘래."
라고 말하는 거, 대화의 종말을 부르는 위험한 습관이다. 어떻게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이야기를 꺼내지 말길 권한다. 상대의 계속되는 대답에 S양은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하자."
라며 대충 끊으려 했는데, 그러는 동안 상대는 부모님께 "너 집에 가서 보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러니 말은 되도록 충분히 대화 할 시간이 있을 때 꺼내고, 말을 꺼냈으면 어떻게든 결론을 내길 바란다. 더불어 대화 중
"우리가 참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네."
라는 말 역시 함부로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S양은 그 당시 답답하니까 꺼낸 얘기겠지만, 상대가 같은 얘기를 했을 때 마음이 덜컹 내려앉지 않았는가. 그것과 똑같이 상대도 S양이 하는 그런 말에서 '이별 암시'를 느낄 수 있다. 저 말은 그 자리에 그대로 뿌리를 내려 이별로 자라날 수 있으니, 그 즉시 헤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꺼내지 말자. 저 말은 상대 마음에도 뿌리를 내려, 결국
"그래. 우린 정말 안 맞는 것 같다."
라는 말이 되어 돌아올 뿐이니 말이다. 자신의 연애에 불길한 예언이나 저주를 스스로 하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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