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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연인처럼 지내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썸남 외 2편

by 무한 2015. 5. 6.

내 여동생이 자취를 시작한다고 해보자. 그러면서 내게

 

"오빠가 말하는 거 딱 하나는 내가 반드시 지킬게.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이런 거 말고, 정말 내가 지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 하나만 말해봐. 그럼 내가 그건 어떻게든 지킬게."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럼 난 뭐라고 대답할까?

 

딱 하나만 얘길해야 한다면, 난

 

"남자를 현관문 안으로 들이지 마."

 

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저것만 지켜도 시작부터 언제든 츄리닝 바람에 슬리퍼 끌고 가도 되는 '편의점 같은 여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다. 환희에 찬 순간을 만들 새도 없이 두 사람이 지박령처럼 자취방에 달라붙어 화석처럼 굳어가는 연애를 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고 말이다.

 

물론 성인인 여동생을 언제까지 밖으로만 나다니게 할 수 없으니, '남자가 현관문 안으로 들어와도 되는 시점'도 말해줄 것이다. 그건

 

-그가 우리 부모님을 뵙고 인사드렸으며, 너도 그의 부모님을 뵙고 인사드렸을 때.

 

가 될 것 같다.

 

 

1. 연인처럼 지내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썸남.

 

이 사연은, A양 친구들과 지인들이 냈다는 결론이 꼭 맞는 것 같다.

 

"심심할 때 부르면 만날 수 있고 또 이쪽에서 호감을 보여 오니 만나지만, 자기 갖기엔 아닌 것 같은 그런 심보 같다. 가지고 노는 것 같으니 그냥 연락하지 마라."

 

굳이 내가 들추지 않아도 정리될 사연인 것 같지만, 난 사연에 나타난 A양의 태도가 안타까워 이 글을 적게 되었다. 그 태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다음 사람을 만나도 비슷한 결과를 마주하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이 그의 물건을 훔쳐 가지 않으리라 확신했지만, 갈고릿대와 작살을 배에다 놔두는 것은 쓸데없는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수고스럽지만 집으로 가져갔다.)

 

A양이 이번 썸에서 한 실수가, 바로 저 '쓸데없는 유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A양은 그에게 늦은 시간 자취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그 얘기를 들은 상대가 온다고 하자 막지 않았으며, 함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필름이 끊긴 그 와중에는 상대에게 먼저 스킨십도 시도했고 말이다. 그 날은 둘 다 술에 많이 취한 까닭에 별 일이 없었지만, 이후 비슷한 상황이 또 생겼을 때엔 진도를 모두 나가 버렸다. 이걸 두고 A양이 한 말을 보자.

 

"그게 목적이었다면 그걸로 끝이겠구나 싶었는데, 예상 외로 우리의 관계는 예상 외로 오래 갔습니다."

 

난 좀 생각이 다르다. 둘의 관계는 저걸로 끝난 게 맞다. A양은 자꾸 '그가 바빠져서 만나지 못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쨌든 이후 두 사람은 거의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로 지내오지 않았는가. 위의 일이 있었던 날엔 돌아갈 차가 끊기는 건 걱정하지도 않고 한달음에 달려온 그는, 이후엔 A양이 보낸 카톡에 억지로 성의 없이 대답했을 뿐이다. 

 

그리고 둘이 나눴다는 '대화'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상대의

 

"웅웅."

"네넹."

"ㅋㅋㅋㅋㅋ"

"아직."

 

따위의 대답을 받아가며 겨우겨우 말을 이어가는 건 대화라고 할 수 없다. A양이 보낸 카톡대화를 다시 한 번 보며, 상대가 열 자 이상으로 대답을 한 것이 몇 번인지를 세어보길 바란다. 저건 누가 봐도 A양과 대화를 하고 싶은 의지나 생각이 없는 사람의 태도다. 그런데 그가 '응답'은 해줬다고 해서 A양이 저걸 대화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깝다.

 

그가 말한 '생각할 시간'은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떡밥'일 뿐이다. 그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해 놓고는 만났을 때 스킨십을 계속 했으며, A양이 그 단답에 대해 투정을 섞어 말하자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난 원래 단답을 한다. 내게서 단답이 와도 계속 대화할 수 있는 팁을 주자면, 그냥 계속 얘기하는 거다. 그럼 읽다가 내가 또 관심이 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대답할 것이다."

 

그가 A양을 그저 장난감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에게 A양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저런 말을 못 했을 것이다. 저건 의역하자면,

 

"징징거리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계속 떠들기나 해라. 그렇게 오토매틱으로 떠들어 대면 어쩌다 한 번씩 은혜를 베풀어 대답해 주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A양은 자꾸 이렇게 흐지부지 되는 것은 싫다며 그의 확답을 듣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숙식제공에 팬클럽활동까지 하고 있는 A양을 그는 쉽게 놓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그가 던지는 떡밥으로 연명하며 희망고문을 당하는 시간만 더 늘이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길 권한다.

 

 

2. 무슨 일 있을 때만 연락하는 친구들, 어떻게 하죠?

 

안녕 K양. 내가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외국물건 직구'의 총대를 자주 매는 분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직구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물건 하나 사려고 비싼 배송비까지 다 물기가 아까워서 못 사고 있을 때, 그 분이 앞에 나서선 지인을 통해 물건을 들여오고, 물건 값에 국내 택배비 정도만 더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눠줘. 예컨대 개인이 알아서 주문했을 시 14만원이 나온다면, 그 분을 통해 주문하면 11만원 정도만 내면 되는 거야.

 

그러다 보니 그 커뮤니티에서 그 분은 거의 신처럼 모셔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분에게 받은 호의에 감사하는 글을 올리고, 무보수 봉사활동을 하듯 총대를 메는 그 분을 칭송하는 글을 올리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 분을 움직이는 힘은 공명심이야.

 

-공을 세워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려는 마음.

 

그 분은 자신이 계속 그 일을 하며 얼마나 자신의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힘이 드는지, 그리고 개념 없이 요청하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등을 토로해. 그 분에게 부탁하는 사람 중엔 '합배송'을 요청하며 물건을 잠시 보관했다가 다른 물건과 함께 보내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은 자신의 집이 창고가 아니라며 도와주는 것에 감사하는 것도 모자라 택배비 아끼려고 그런 부탁까지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힘과 시간을 빼앗기며 개념 없는 부탁들 때문에 힘들면, 안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 나서서 본인을 힘들게 하는 거야. 게다가 얼마 전부터 그는 택배를 부치러 오갈 때 드는 기름 값이 너무 많이 든다며 기름 값 정도를 기부 받겠다는 말을 했어. 그런데 그렇게 기부 받은 금액이 만육백원이야. 그를 통해 물건을 산 사람, 그리고 사려는 사람이 어림잡아 수백 명이 될 텐데, 이만원도 안 되는 돈이 기부금으로 모인 거야. 그러자 그는 사람들에게 실망했다며 또 장문의 글을 올렸지.

 

아니, 실망을 했으면 같은 실망을 하는 일이 없도록 그것에서 뭔가를 배우고 본인의 태도를 수정해야지,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길게 적어봐야 바뀌는 건 없는 거잖아. 그간 사람들이 한 감사와 칭찬이 입에 발린 소리라는 걸 알았으면 때려치워야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놓아도 보따리 내 놓으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건데, 무슨 겨우 배송대행 같은 걸 해주면서 공명심을 가져.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는 그냥 '삼만원 아낄 수 있게 오지랖 펼쳐가며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야. 그가 없어지면 그냥 삼만원 더 내고 업체 이용하면 해결되는 거잖아. 있으면 어쨌든 이득이 되니 좋지만, 없으면 그냥 마는 그런 존재인 거야.

 

내가 노멀로그에서 소개한 적도 있는, '핫바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셔. 12년간 네이버에서 '지식인'으로 활동하신 분인데, 2014년에 은퇴하셨다는 기사가 있더라고. 그 분은 12년간 2만 건의 지식인 댓글을 다셨는데, 십원짜리 하나 얻은 게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 해피빈인가 하는 걸 받았는데 쓸모도 없다고 글을 쓰신 적도 있고 말이야. 그 분이 은퇴하시며 하신 말씀이

 

"2002년경부터 지식인 답글 다는 일을 시작했고, 특히 만 4년 간 마누라 간병하면서도 지식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답변을 해 왔다."

"요즘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 과외비는 막대한 돈을 쓰면서 거저 남의 지식을 배우는데 예의가 없다."

 

라는 거야.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저건 좋게 보자면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하는 좋은 일인 동시에 나쁘게 보자면 오지랖이잖아. 자기 밥그릇이 비어 먹을 게 없는 와중에 남의 밥그릇 채워주고 있는 일이 현명한 걸까? 그 사람들이 감사인사를 하고 칭송한다고 해서 "내가 굶어가면서까지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은 정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까? 아니면 수저를 들고 자기 밥그릇에 담긴 걸 먹기 시작할까?

 

무슨 일 있을 때만 연락하는, 그것도 심란한 일 있을 때만 연락해 고민만 쏟아내는 친구. 그리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금전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친구들을 계속 두고 있으면 K양은 피폐해지고 말 거야. K양 스스로는 자신이 친구를 그렇게 대하면 친구도 K양을 그렇게 대해주리라 생각하며 호의를 베풀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상대는 그게 자신의 권리인 줄 안다는 걸 이미 수차례 경험해 K양도 알고 있잖아.

 

보통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인간관계가 정제되어가곤 해. 거듭되는 실망으로 인해 누군가를 내 반경에서 멀리 두기도 하고,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점점 명확하게 보이는 상대의 인간성을 확인하며 관계를 끊기도 해. 이게 이상하거나 잘못된 건 아니야. 우정은 함께 돌보아야 할 나무 같은 건데, 한 쪽이 게으름을 피우며 열매만 탐한다면 그에게 경고를 하거나, 그래도 안 되면 그가 다가오지 못 하게 울타리를 쳐두는 게 당연한 거지.

 

"본래 인간이란, 자기에게만 관심 있지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딱히 신경도 안 쓴 다는 거 압니다. 제가 한 얘기를 제대로 기억해주는 사람도, 정말 저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얼마 없다는 것도 압니다. (중략) 그런데 저는 모쏠임에도 불구하고 연애사를 늘어놓는 친구들 때문에 짜증나기도 하고, 지들 연애가 힘들 때만 저를 찾아 하소연하기에 지치기도 하고, 이게 노처녀 히스테리의 증상이 시작된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쯤 되니 저도 연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솔직히 또 저는 아직까지 남자나 연애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하고요."

 

K양도 알다시피 난 연애중인데, K양이 말한 '내가 한 얘기를 제대로 기억해주는 사람'이 내겐 바로 공쥬님(여자친구)이야. 아니, 겨우 얘기를 기억해 주는 것 정도가 아니지. 여기다 길게 적으면 또 내 연애 이야기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길게는 못 적겠는데, 소원을 하나만 빌라고 하면 나보다 먼저 죽지 않게 해달라고 빌 거야. 물론 우리가 약속한 게 있어서 내가 나중에 죽어야 하긴 하는데(응?), 아무튼 그래. K양이 바라는 '진짜배기 우정'이라는 게, 연애에선 그 기반에 깔려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연인 수준의 끈끈함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를 찾으려 그렇게 애쓰기 보다는, 연애를 한 번 해보길 권할게.

 

 

3. 고3, 장거리 연애 중인데요.

 

일단 고3인 Y양이 '공대남 사로잡는 법'이라며 공유한 노하우를 적어둘까 한다.

 

-뭔가를 핑계로 자꾸 물어보며 연락을 자주 한다.

-학교 구경시켜달라는 핑계로 데이트를 한다.

-박물관이나 전시회장에 가서 MP빌린 후 이어폰 하나로 같이 듣는다.

-유리 가까이로 가서 예쁘게 서 있어라. 남자가 뚫어지게 훔쳐본다.

-까페에 가서 같이 나노레고를 맞춰라. 공대남들이 환장한다.

(단, 차례로 번갈아가며 끼우기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남친이 다 만들어 버린다.)

(이거 맞추다 보면 머리카락 서로 닿고, 코도 닿는다. 남자가 다 만들면 폭풍칭찬 해줘라.)

 

Y양이 조언해주고 싶은 이야기라며 사연에 적은 내용이니, 필요하신 분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이미 눈치 채신 분도 계실 텐데, Y양은 사연신청서를 적을 때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으며 혼자 북과 장구, 꽹과리와 징까지 치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내가 할 이야기가 많진 않다. Y양의 요청대로 노파심 같은 건 접어두고, Y양 질문에 대한 다분히 현실적인 대답을 적어둘까 한다.

 

Y양은 연애하면서 공부도 잘 하고 있으니 선입견을 가지지 말라고 신청서에 적어두었지만,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만나고, 또 열 몇 시간씩 데이트를 하며, 미주알고주알 연락을 해가며 공부를 잘 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과연 Y양이 연애하면서 공부도 잘 하고 있는지는 중간, 기말고사 성적이나 모의고사 성적 등으로 알 수 있을 테니,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에는 절대 합리화 하지 말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길 권한다.

 

남친에게 아픈 거, 힘든 거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전 매뉴얼에서 왜 '짐이 되는 여자'가 되는지를 길게 설명해 두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연애 초반 상대가 보이는 호의와 헌신을 보인다고 해서 정신줄 놓고 기대버리면, 부담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남친의 경제관념에 대해선, 글쎄, 아직 두 사람 다 정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뭐라고 말하기가 좀 어렵다. Y양은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저축을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았지만 남친은 용돈 받는 대로 다 써서 돈이 없다고 했는데, 그건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청서를 보니 남친은 정해진 용돈을 다 쓰면 집에 돈을 더 달라고 말해서 받아쓴다고 했는데, 돈 떨어졌을 때 부모님께 용돈 좀 더 달라고 해서 문제없이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면, 그가 딱히 저축을 하거나 알바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동심을 파괴하는 얘기 같아서 꺼내기 좀 그렇긴 한데, 남친은 이미 사회적 성공이 절반정도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벌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잖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학벌로 망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또, 전문직 종사를 희망할 경우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Y양은 아직 사회에 첫 발을 디디지 않은 관계로

 

"그가 알바를 하거나 해서 돈을 더 모으지 않으면 우린 계속 '가난한 대학생커플'로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고…. 저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 해보려고 차곡차곡 모으고 있거든요. 근데 남친은 저축을 하고 있지 않으니 돈 없어서 같이 못 하겠다는 소리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친이 모든 과정을 다 마쳤을 때엔 알바해가며 저축한 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벌어들이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행정고시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 당장 맛있는 거 먹고 놀러 다녀야 하니 시험도 시험이지만 알바라도 해서 얼른 돈을 벌라고 말하는 게 현명한 것일까, 아니면 그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조촐하게나마 주어진 상황 내에서 데이트를 하는 게 현명한 것일까?

 

"제가 얘기를 하니까 남친도 알바자리를 구하려고 하긴 하는데, 해봤자 과외알바나 학원알바 같은 것 밖에 할 생각을 안 해요."

 

남친 학교를 밝히지 말라고 해서 밝힐 수 없는 게 참 안타까운데, 과외알바나 학원알바는 자신이 하고 싶어도 어느 정도의 학벌을 갖춘 게 아니면 써주는 사람이 없기에 못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더불어 전문직을 꿈꾸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남친이 연애에, 알바에, 시험 준비까지 하긴 벅찰 거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Y양이 TV나 드라마, 영화에서 봐 온 대학생활은 자유롭고 낭만이 가득한 것일 수 있겠지만, 어느 대학 어느 과에선 고3 생활보다 더욱 밀도 높은 학업성취를 요구하기도 한다.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면 Y양의 학교에서 작년에 남친이 다니는 학교로 몇 명이 합격했는지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학점을 잘 받는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지도 한 번 생각해 보자.

 

대학생되면 해외여행 뭐 그런 건 대학생 되고 나서 생각하고, 그 이전까지는 남자친구가 짜줬다는 계획표에 맞춰 공부하길 권한다. 남친이 연락을 자제하며 Y양의 공부에 참견할 때 Y양은 땡깡도 부리고 기분에 따라 어기기도 한다고 했는데, 그러지 말고 둘의 2015년 목표를 'Y양 대학교 입학'으로 잡고 공부하자. 지금처럼 Y양이 남친에게 알바라도 하라며 찔러대고, 또 Y양은 Y양 대로 입시스트레스를 푼다며 자꾸 연애로 도피해 버리면 두 사람은 올 연말에 두 사람의 꿈과 희망이 모두 사라졌다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제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에서 소고기를 주웠다. 나도 길에서 소고기를 주웠다는 게 잘 믿겨지지 않는데, 진공포장 된 채로 길가에 놓여 있는 소고기가 있길래 일단 주워왔다.

 

현재 우리 집에서는

 

"소고기를 이렇게 진공 포장하는 경우는 없다."

"이건 말고기나 양고기일 수 있다."

"대체 이런 걸 왜 주워왔는가?"

 

등의 의견들이 분분한데, 주워 온 소고기를 잘 삶아 까치도 좀 주고, 오늘 저녁엔 너구리를 만나러 가 볼 생각이다. 난 블로그에 너구리 이야기를 올린 게 작년이나 재작년 일인 줄 알았는데, 날짜를 확인해 보니 그게 벌써 2012년의 일이다. 당시 첫 이야기를 올린 뒤 너구리들이 겨울잠에 들어가는 관계로 접어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 테니 찾아가 봐야겠다.

 

아, 그리고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는 어제 치마가 생겨 암컷스럽게(응?) 치마를 입고 생활하고 있다. 어항 속 가재는 수명이 다 되어 모두 요단강을 건넜으며, 현재 어항에는 달팽이와 새우, 그리고 친구에게서 잠시 맡아뒀다가 계속 키우게 된 시클리드가 있다. 시클리드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땐 새끼손가락 만했는데, 지금은 회를 떠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커졌다. 어항청소도 좀 하고, 근처 하천으로 탐어도 다녀와야겠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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