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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대인관계 서툰 남자, 사람도 사랑도 어렵다는데.

by 무한 2015. 5. 13.

수호씨의 사연을 읽으면서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생각나더라. 사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긴 했는데, 그 말을 그대로 쓸 순 없잖아. 머리 좋은 애들만 모인다는 학교에서 천재소리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에도 조기입학을 했던 수호씨가, 훗날 오랜 방황과 백수생활을 하다가 고시를 봐야겠다고 생각해 준비하자마자 붙는 걸 보면서,

 

'똑똑한 머리나 남다른 집중력이라는 게, 이렇게 또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게 인생역전을 시켜줄 만큼 문턱 높은 시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은 2~3년 공부해도 합격 못 하는 경우가 있는 시험이잖아.

 

그런데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영화 <샤이닝>에서 작가인 잭 니콜슨이 타자기로 반복해서 치는 문장이거든. 저 문장에 나오는 'dull boy'가, 미안하지만 현재 수호씨의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그러니 한강 이북에서 'All play and no work'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내가, S대 다니는 마마보이 친구에게 담배 가르쳐 주는 심정으로(응?)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놔 볼게.

 

 

1. 도자기 빚듯 살면, 주변에 파편만 가득해.

 

결함 없는, 실수 하지 않는 인간이 어딨어? 가족이든 친구든 지인이든 다들 실수 할 수 있는 인간이야. 그런데 수호씨는 도자기 장인처럼, 상대에게서 약간의 결함이라도 발견되면 장인이 망치로 도자기를 깨부수듯 그 관계를 부숴버려. 이러면 어떻게 될까? 도자기 파편만 가득한 곳에서 홀로 서 있게 되는 거지.

 

물론 수호씨가 남에게만 엄격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하긴 해. 10년 만에 함께하게 된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카톡방에서, 수호씨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며 지금 그것 가지고 엄청 고민을 하고 있잖아. 난 수호씨가 말실수를 했다고 해서, 누군가의 우스꽝스러운 과거를 공개했다거나 남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한 건줄 알았어. 그런데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더라?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좋은 노래라며 권한 것에, 제가 그 가수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는 원곡이 아니라 편곡된 것이었고, 제가 말한 가수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리메이크해서 부른 가수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원곡을 부른 가수 얘기를 했으니, 이건 분명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꼭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호씨, 이런 식이면 세상 살기 정말 피곤해져. 내가 예전 매뉴얼에서 보통 사람들이 '1, 2, 3, 4….' 이렇게 사는 반면, '1, 1.5, 2, 2.5, 3….' 이렇게 사시는 분들이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수호씨는 소수점 한 자리 더 내려 가는 거야. '1.01, 1.02, 1.03, 1.04….' 이렇게. 때문에 남들이 7km인 일산 호수공원 한 바퀴 돌 동안, 수호씨는 1mm씩 전부 살피며 가느라 몇 걸음 못 가는 거지.

 

수호씨 피아노 칠 줄 알아? 난 바이엘 하권까지 치다가 더 배우면 음악계에 큰 파장이 일 것 같아서 학원 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피아노 처음 배우면 당연히 박자 못 맞추고 건반 틀리게 짚고 그렇잖아. 남들은 그렇게 틀려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치거나, 그냥 이어서 쳐. 틀려도 그렇게 계속 해봐야 느는 거고. 그런데 수호씨는 바이엘 배우고 있으면서 건반 한 번 잘못 짚으면 패닉상태에 빠진단 말이야.

 

'피아노 선생님이 나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이렇게 쉬운 곡에서 틀렸으니 이제 선생님은 나를 비웃게 될 거야.'

'몇 번을 틀렸던 부분에서 또 틀렸어. 이건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증거야. 나는 실패했어. 더 연습해 봐야 이건 또 틀리게 될 거야. 피아노 말고 다른 걸 배워야겠어.'

 

이러면 어떻게 될까? 남들 체르니나 하농으로 올라갈 때, 이쪽은 피아노와 담 쌓는 거지.

 

 

2. 나랑 만나도 우린 결국 멀어질 거야.

 

수호씨는 내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게 사연을 보냈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만나서 친해진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다시 멀어지게 될 거야. 왜? 내게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수호씨는 도자기 깨듯 우리 관계를 깰 수 있으니까. 우리가 같이 별을 보러 갔다고 해봐. 그런데 가서는, 내가 은하수 사진을 찍는 것에 몰두하고 있어. 그럼 수호씨는 실망하겠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우리 관계가 1순위인 것처럼 서로를 챙길 줄 알았는데, 난 사진에 더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래서 더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날 피하게 될 수 있어.

 

나랑은 멀어져도 돼. 그런데 수호씨와 유년기, 청소년기를 함께한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심지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가족들과는 멀어지면 안 된단 말이야. 아니, 어떠한 계기로 인해 멀어질 수는 있겠지만 버리면 안 돼. 버리지 마. 검은 친구는 검은 친구 카테고리에, 노란 친구는 노란 친구 카테고리에, 빨간 친구는 빨간 친구 카테고리에 두고, 그렇게 이어가봐. 그 중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지닌 친구에겐 그만큼 관심을 덜 쏟으면 되는 거잖아.

 

또, 사람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마. 수호씨가 누구와 친해지든 그 사람과 온전히 생각이 똑같거나 가치관이 완벽하게 일치할 순 없어. 똑같이 축구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도 상대는 독일팀을, 수호씨는 브라질팀을 좋아할 수 있지. 그럼 거기서 또 실망하곤 그 관계를 깨부술 거야? 그러다간 결국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돼. 그리고 결혼 앞두고 수호씨를 하객으로 부르려 연락한 친구라고 해도, 그 친구가 나중에 수호씨 결혼식에 올 수 있는 거잖아. 다들 이렇게 살아.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날 믿어줄 친구 셋만 있어도 성공한 사람이다."

 

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 수호씨는 모든 친구가 저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잘라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서로 밤을 새워 대화하거나 친구를 위해 울어 본 적 없으면서 내게 그래주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라.

 

그리고 타인에 대해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려고도 노력해봐.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나쁜 점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나쁜 점에만 엄청난 의미를 부여해 판결하지 말고, 좋은 점도 살펴봐 봐. 봄에야 당연히 벚꽃이 예쁘지. 봄에 보면, 밤나무 같은 건 뭐하러 심어놨나 싶을 정도로 흉측하잖아.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밤나무를 다 뽑고 벚나무를 심으면, 벚꽃이 피는 봄의 2주간을 제외하곤 나머지 46주간 앙상한 가지만 바라보게 되는 거야. 

 

단풍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그리고 느티나무나 밤나무도 있어야 하는 거야. 그게 '어울려 사는 것'이기도 하고, 또 그들의 장점은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올 때 나타나기도 하거든. 지금 수호씨는 스스로 나무를 전부 다 뽑은 산에 꼭 맞는 나무 한 종을 택해 전부 그것만 심으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3. 인사부터 하고, 궁금한 것들도 물어봐.

 

수호씨는 그간 내가 접한 사연 제보자 중 '최악의 무뚝뚝함'을 지닌 남자라 할 수 있어. 첨부된 대화들만 보자면, 수호씨는 남들에게 별 관심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남들과 대화도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대화를 하지 않고 오랜 시간 알아오다 보니 대화하는 법도 잊은 것 같아. 수호씨가 친구와 나눈 대화를 하나 가져와 볼게. 어느 친구에게 수호씨의 연락처를 받은 다른 친구가 연락한 상황이야.

 

친구 - 수호냐?

친구 - 나 일국이야. 2학년 때 3반. 기억나?

수호 - 수호는 맞는데,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친구 - 아, 고운이가 번호 알려주더라고.

(이후 대화 단절)

 

수호씨가 아직 중2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등학생이라면 저런 식으로 대화하는 걸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고등학생 신분을 벗어난 지 10년도 더 지났잖아. 물론 수호씨가 모든 사람들과 저런 식으로 대화하는 건지 첨부된 카톡대화만으로는 알 수 없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해. 수호씨는 저 위에서 말한 대로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톺아보는 버릇이 있는 까닭에

 

"일국이의 연락이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그래서 의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친구를 사칭한 누군가가 연락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라는 얘기를 했거든. 근데, 만약 그게 '친구 사칭'의 연락이라 해도 인사를 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 그렇게 대화를 좀 하며 알아가다 그게 친구 사칭인 것 같으면 차단하면 되는 건데, 수호씨는 아예 처음부터 말을 안 해버려.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저렇게 말을 걸어오는 게 사칭일 가능성은 정말 적은 거잖아. 내 경우라고 생각해봐. 노멀로그가 디도스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분명 있긴 해. 해커들이 국가기관 홈페이지 털고, 또 은행권 전산망 마비시키고 막 그러잖아.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털어서 얻을 것도 하나 없는 노멀로그를 디도스 공격 해가며 털 가능성이 몇 프로겠어? 또, 내가 그런 디도스 공격을 겁내며 털리지 않기 위해 노멀로그에 새 글을 올리지 않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 거겠어?

 

나중에 해도 되는 걱정은 좀 나중에 하고, 일단은 인사부터 해. 저 친구에게 반갑다, 얼마 만에 대화하는 거냐, 어떻게 지내냐, 어디 사냐, 결혼은 했냐, 무슨 일 하냐, 친구 누구누구랑도 연락하냐, 너랑 예전에 뭐뭐 했던 거 기억난다, 주말엔 쉬냐, 밥 한 끼 먹자, 뭐 이러면 되는 거야. 이런 거 없이

 

"반갑긴 한데, 나한테 연락을 한 목적이 무엇인지?"

 

하고 있으면 방법이 없는 거지.

 

친구 결혼식에도 가.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당연히 수호씨가 낸 결론처럼 '갈 필요 없다'라는 답이 나오겠지. 그런데 결혼식에 결혼하는 친구 하나 보러 가는 게 아니잖아. 수호씨가 다시 한 번 어울리고 싶어 하는 고교시절 친구들이 그 결혼식장에 와선 오랜만에 인사도 하고 어울리는데, 수호씨만

 

'나는 그들과 10년 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고, 또 그들이 그동안 자기들끼리 구성해 놓은 우정의 세계에 편입될 수 없다. 내가 그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에 대해 '쟤는 왜 왔지?'라는 의문을 가지는 친구도 있을 거고, 행여 내가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난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과 만나 다시 한 번 관계를 복원시키고 싶긴 하지만,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다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안 갔잖아. 이게 위에서 말한 '피아노 학원 결석'이랑 똑같은 거야.

 

수호씨가 그러고 있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또 다음 코스로 넘어가겠지. 그럼 그때는 또 '이젠 그들과 나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이 받아준다고 해도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하며 한 차원 높은 겁만 먹고 있을 거야? 수호씨 백수로 지낼 때랑 고시 합격 후 직장을 다닐 때랑 마음가짐이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잖아. 대인관계도 똑같아. 가서 부딪히면 마음가짐과 생각이 또 달라지는 거고, 그러면 수호씨가 생각지도 못했던 수호씨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며 정말 쉽게 풀릴 수도 있어. 그러니 걱정은 그만 하고, 일단 부딪혀 봐.

 

 

위에서 이야기 한 것들 외에 걱정되는 한 가지는, 수호씨가 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려는 집단이 '동창생'집단 이라는 거야. 친구라는 게 나이도 같고, 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경험들이 비슷비슷하며, 또 이미 알고 지냈던 적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하거나 수월할 수 있어.

 

그런데 그런 장점이 있는 반면,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금방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거든. 수호씨의 사연만 봐도, 한 친구에 대해

 

"그런데 그 친구는 저와 같은 직종에 있지만, 허비한 시간 없이 바로 취직해 저보다 5년 빨리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경력차이 만큼의 연봉차이도 나며 이미 가정도 꾸린 것으로…."

 

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나와. 그 친구와 만나기 전만 해도 수호씨는 취직해서 고시 동기들과 잘 살며 관계복원을 꿈꿨는데, 그 친구를 보는 순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 거거든.

 

때문에 난 고교시절 친구들과의 관계복원이 수호씨에게 무조건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진 않을 거라 생각해. 복원 과정 중엔 우리가 왜 멀어졌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거고,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을 잃은 친구에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며, 돈과 직업 등으로 인해 친구 사이에서도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보며 회의감이 들 수도 있겠지.

 

그러니 친구들과 만나서 다시 어울리기만 하면 우정이 알아서 만들어 질 거라 기대하진 말고, 앞서 말한 걸림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둔 채 만나봐. 그럼 걸림돌 하나 맞닥뜨렸다고 해서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진 않을 테니까. 내가 뒤에 있으니까 쫄지 말고,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친구들을 만나봐. 만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또 날 찾아오면 되는 거니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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