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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썸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 사이에 남이 된 관계

by 무한 2015. 5. 28.

서희씨, 내 지인 A는 은행에 예금도 비교해가며 알아보고 들고, 지출도 혜택이 많은 카드를 이용해 포인트를 받겠다며 계획적으로 해. 물건을 살 때 택배비까지 포함해 가격비교 한 후 오프라인 구매가 더 싸면 오프라인에서 구입하고, 중고로 사도 문제가 없는 물건들은 당연히 중고로 구매해. 이 정도면 누구에게 이 친구를 소개하든 돈에 관한 철저한 사람인 것처럼 보일 거잖아.

 

그런데 딱 하나 위에서 얘기 안 한 게 있는데, A는 엉뚱한 부분에서 과소비를 해. 입 벌어질 정도로 비싼 한정판 폰 케이스를 구매한다거나, 이미 몇 개의 시계가 있으면서도 새로 나온 메이커 시계를 구매한다거나, 차가 있으면서 동네 나들이 용이라며 수입 스쿠터를 구매하는 거야. 비싼 걸 사는 것 외에, 필요가 없는데도 그냥 싸다는 이유만으로 사는 문제도 있어. 여하튼 이렇기 때문에, 악착같이 아끼면서도 이런 과소비로 인해 허덕이게 되고, 앞서 말한 알뜰한 모습들까지 빛을 잃고 말지. 

 

난 위에서 말한 내 지인의 모순된 모습을 서희씨 사연에서 볼 수 있었어. 이 얘기부터 시작해 볼게.

 

 

 

 

1. 진실게임.

 

'통금시간이 있는 여자'라고 하면 어떤 게 떠올라? 대개 저 말은 엄격한 환경에 있으며 이성 관계에서 문란하다거나 가볍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되잖아. 서희씨가 썸남에게 저 말을 할 때, 또 사연 신청서에 저 말을 적을 때에도 그런 의미로 사용했고 말이야.

 

게다가 서희씨는 여보, 자기, 사랑한다 등의 이야기를 이전에 사귀던 남자에겐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썸남에게 말하기도 했고, 더불어 진짜 사랑한단 느낌을 받았던 사람이 없었기에 그랬다는 이야기도 했어. 여기까진 뭐, 좋아.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사연을 보니까 두 번째 만남에서 썸남과 스킨십 진도를, 그것도 남들은 사귀고도 2주 정도 되어야 나갈 만큼 나가네? 그리고 분명 전에 통금시간이 있다고 말했으면서 집에 막 새벽 세 시에 들어가고 그러네? 이게 뭐야?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물론 저 '예외'의 부분들에 서희씨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여하튼 저런 서희씨의 모습을 낯선 사람들은 모순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 그 모순을 보는 순간

 

'이 여자는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상향에 가깝게 묘사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어.

 

종교와 관련해 이야기 한 부분도 그래.

 

"난 무교지만, 그 종교 교리가 내 마인드와 맞기 때문에 그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희씨의 저 말이, '열혈신도'는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그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라는 건 알겠어. 근데 이런 태도들이 거듭되면 상대는 서희씨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는 거거든.

 

이렇게 생각해 봐. 내가 서희씨 썸남인데, 서희씨에게

 

"난 연애를 할 때,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자리를 옮기게 되면 상대에게 알려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술자리가 길어질 땐, 중간에라도 한 번쯤 상대에게 연락을 해 두는 게 맞다고 본다."

 

라는 이야기를 했어. 근데 며칠 후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다 연락두절 되어 놓고는,

 

"어제는 진짜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해. 이러면 서희씨도 내가 말만 '모범답안'처럼 할 뿐, 행동으로 뒷받침을 하진 못 한다고 생각하겠지?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럴듯한 말들만 늘어놓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고 말이야.

 

서희씨는 자신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게 아니며 정말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데, 같은 말이라도 왜 뉘앙스라는 게 있잖아. 위에서 든 예를 다시 한 번 사용할 게.

 

-자리를 옮기게 되면 되도록 연락을 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자리를 옮기면 당연히 연락을 해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을 해도 서희씨는 후자처럼 하는 거야. 그래서 뭔가 바르고 확고한 매력이 있긴 한데, 그 말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순간 상대는 서희씨의 진실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거고 말이야. 이 부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2. 뜬금없는 연애강의와 방어기제.

 

서희씨 무슨 연애학 석사과정 같은 거 밟고 있는 중인가? 아니잖아? 근데 카톡대화를 보니까 서희씨가 썸남에게 연애학 강의를 해주고 있더라고. 서희씨가 썸남에게 한 말을 가져와 볼게.

 

"남자들은 다 저글링 같아서 초반러쉬들만 잘하고…."

 

여자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 수 있지. 그런데 썸남과 대화중에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썸남이 서희씨에게

 

"여자들은 다 이기적이라 받는 것만 좋아하고…."

 

라는 이야기를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줄 뿐이야.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본인의 방어기제로서 독설이나 비꼬는 말을 하곤 하는데, 난 서희씨가 살짝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썸남에게

 

"뭐…, 그게 보통 남자죠. 뭐."

 

라는 말을 하며 시니컬한 척 하는 것도 그렇고, 상대에게서 연락이 줄었을 때 한 번 찔려 보라는 듯 가시 담긴 말을 하는 것도 그래.

 

서희씨가 한 행동들을, 남자가 서희씨에게 했다고 생각해 봐. 바로 차단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일 걸? 썸남이

 

"연락처 물어 보는 여자들이 많거든요. 관심 없는 여자들 전화에 제 번호가 저장되는 것도 싫고, 뭐 그래서 아예 번호 안 줘 버려요."

 

라는 얘기를 했다면 느낌이 어떨 것 같아?

 

이게 그런 거라니까? 하는 본인은 잘 모르지만, 남들이 보기엔 을왕리 갯바위 위에서 포즈 잡고 있는 느낌이 들어. 물론 대놓고 말은 안 하지. 썸남도 서희씨가 연애학 강의 할 때

 

"ㅎㅎㅎ연애책 보는 것 같네요. 멋져요~ ㅎㅎㅎ"

 

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었잖아. 마음속엔 '이 여자 혼자 시니컬한 척 하면서 폼 잡네.'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걸 대놓고 말하진 않지.

 

서희씨는 그간 자신이 뭐라고 말하든, 또 무얼 하든 상대가 다 받아주는 연애를 많이 했던 것 같아. 맹목적으로 다 받아주는 사람과 만나면 객관적인 지적을 당할 일이 없거든. 그래서 모른 채로 계속 살 수 있어. 그러다 나중에 주위의 '다 받아주는 남자'가 멸종하게 되면,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만 그대로 남아 이성을 만나도 계속 부딪히기만 할 수 있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이것도 소제목 1번에서 이야기 한 '모범답안'의 문제와 겹치는 부분일 수 있는데, 아무튼 난 서희씨가 관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걸 좀 줄였으면 좋겠어.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실제로 벌어지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상대에게 칭찬 받지 않아도 좋으니 되도록이면 있는 그대로를 말 해. 사람과 대화하는 거지, 어디에 실릴 인터뷰 하는 거 아니잖아. 서툴러도 되고 어설퍼도 되니까, 서희씨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상대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봐. 서희씨 생각이나 이상향 같은 것에 대해서만 말하는 건 자제하고.

 

 

3. 말로 확인 받으려는 태도.

 

이건 또 소제목 2번에서 말한 '독설'이나 '비꼬기'와 관련이 있어. 서희씨는 상대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상대가 그걸 부정해야 안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든. 상대의 관심이 줄어든 것 같을 때, 서희씨가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꺼낸 말을 봐봐.

 

"내키지 않는 건 아니죠?"

 

상대가 진짜 예의고 뭐고 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

 

"사실 좀 내키지 않네요. 우리 연락 그만 하죠."

 

라고 할 리가 없잖아?

 

스킨십 사건 이후도 그래. 서희씨는 상대에게 아래와 같은 말을 하거든.

 

"내가 좀 쉬웠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저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잖아. 겉은 시니컬하고 도도한데, 그 안에 담긴 속마음은 혹시라도 상대에게 부정적인 말을 들을까봐 덜덜 떨고 있는 소녀의 마음이야. 행여 그런 부정적인 말이 나올까봐 미리 선수 쳐서 '답정너'의 대답을 들으려는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야.

 

저렇게 이쪽의 부정적인 생각을 다시 부정하는 답을 듣고 나면 잠깐 안심이야 되겠지만, 틀어진 건 틀어진 거거든. 또, 서희씨는 '그냥 연애만' 할 나이가 아니라는 식으로 상대에게 이야기를 해 확인을 받으려 한 적도 있는데, 지금 수백 번 '우리는 결혼 전제로 만나는 것'이라는 확답을 상대에게 받아봐야, 헤어지면 남이 되는 게 연애인 거잖아. 그러니 말로 다 확인 받으려 하지 말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간다는 생각으로 좀 만나 봐.

 

 

서희씨는 순수해. 근데 순수한 게 마냥 다 좋은 건 아니잖아. 어떤 순수한 꼬마가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자긴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안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해봐. 물론 꼬마가 그러면 그냥 귀엽게 볼 수 있겠지, 그런데 스물 몇 살, 서른 몇 살 먹은 사람이 저러면 어떨 것 같아? 황당하겠지?

 

난 사실 서희씨의 이전 연애들이 궁금해. 사연 속에 잠깐 등장한 말을 보면 '진짜 사랑을 느낀 사람은 없다'는 게 서희씨의 소감인 것 같은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냥 다 받아주는 사람과 만나 그의 헌신이 바닥날 때까지만 사귄 거라면 앞으로도 그 문제가 계속될 수 있거든. 난 서희씨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와 그와 사귀게 되기까지의 고민만 사연으로 보낼 게 아니라, 이전 연애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본다는 생각으로 사연을 한 번 줬으면 좋겠어.

 

강한 표현에 서희씨가 상처 받을까봐 계속 고쳤는데, 이렇게 고쳐도 서희씨에겐 가슴이 먹먹하고 손발이 떨릴 만한 표현들이 보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악감정이 있거나 서희씨가 미워서 한 얘기들 아니니까, 서희씨 마음을 거울에 비춰본다는 생각으로 읽어줬으면 좋겠어. 자 그럼, 하룻밤 더 자고 불금에 만나기로 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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