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에서 '가랑비'의 정의를 찾으면,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빗줄기는 약하지만 꾸준히 내리는 비. 시간 당 강수량은 0mm 이상 3mm 미만."
어원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전 이상하게 이런 걸 궁금해 하는 타입이라 좀 찾아본 적 있습니다. 내리는 모습이 가루 같아 '가루'라는 말에서 변형되어 가랑비로 불린다는 설, 그리고 안개의 순수 우리말이 '가라(정식 표기는 둘 다 아래아)'인 까닭에 가랑비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연애 사연 보러 들어왔다가 상식이 풍성해지는 느낌, 좋지 않습니까?
매뉴얼을 통해 오래 전 소개한 적 있는 '가랑비 작전'은, 바로 저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도록 상대에게 스며드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첫 사연의 주인공 H양은, 들이부었지요?(응?) 그건 가랑비 보다는 국지성 호우에 해당됩니다.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린 듯, 일주일에 한 번 만날 때 거침없이 나아간 겁니다. 가랑비를 가장한 국지성 호우 작전을 펼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현재 H양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지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자, 출발!
1. 그 남자에게 다가가는 중인데, 반응이 없어요.
그간 자신이 너무 수동적으로 살아온 것 같다며,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나아가 먼저 손 내밀어 심남이를 쟁취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히는 여성 대원들이 종종 있습니다. 전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수동적이고 철벽을 치는 태도의 반대가 결코 '쉬운 여자'는 아닐진대, 그분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인생 막 살기로 작정한 듯 집에 안 들어가거나, 모르는 남자와 불타오르거나 하는 걸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H양의 사연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그간 제가 먼저 좋아서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먼저 좋아해서 연애를 해 본 적도 없고, 남자분이 좋다고 하면 거절 못 해서 사귀거나, 너무 아니다 싶은 경우만 아니라면 일단 만나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저도 제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표현을 하려고 하는데…."
그런 마음가짐까지는 뭐 나쁠 게 없는데, 상대에게 H양이 대시한 걸 보면 너무 극적으로 들이대시는 느낌입니다. 둘은 스킨십이 기본이 되는 동호회에 속해있는데 H양이 먼저 과한 스킨십이 포함된 걸 같이 하자고 하기도 하고, 일부러 귓속말을 하기도 하며, 옆에 앉아서 몸이 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안 피하고 계속 그걸로 관심을 끌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그게 남자의 본능을 자극할 순 있겠습니다만, 서로의 연락처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자극을 앞세워 다가오는 여자를, 남자는 '원래 이런 여자'로 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H양이 동호회에서 그와 스킨십 레벨이 높은 일을 하고 나니, 다른 남자들이 앞다투어 H양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H양은 이걸 두고
"제가 조금 긴장을 풀고 웃기 시작하니까, 다른 남자들이 주변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듭니다. 평소 인사도 안 하던 사람도 몇 명 말을 걸고, 전까지는 교류가 없던 사람들도 제게 요청하는 일이 벌어지고요."
전 그걸, 별로 좋은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까지는 H양에게 함부로 찝쩍대다가 망신을 당할 수 있기에 조심했는데, H양의 태도를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눈이 있으니, 모임 시간 내에 H양이 스킨십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감한 편이라는 걸 확인한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동호회인지를 밝히지 않고 이 얘기를 하기가 참 어렵긴 한데, 여하튼 요청만 하면 대부분 H양과 짝을 이룰 수 있는 모임에서 '과감함'때문에 남자들이 모여드는 건 인기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몸' 말고 '맘'으로 좀 다가가 보셨으면 합니다. H양은 '상대의 헌신을 받는 연애'에 익숙하시기 때문인지 대화를 할 때에도 떡밥만 던지고 맙니다. 인사 한 줄 보내놓곤 상대가 알아서 대화를 리드해 가길 기다리고 계신데, 그러지 말고 좀 더 관심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H양 - 날씨 정말 좋네요~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상대 - 전 남동생네 집에…. 즐거운 하루 보내요~!
현재까지 저런 아무 영양가 없는 대화만 세 번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럴 땐 혼자 종결하는 '끝인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날씨 얘기로 일단 운만 띄우면 되는 겁니다. 그러고는 상대가 동생네 집에 있다고 하면, 동생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는 얘기를 하거나, 동생네 집이 근처냐고 물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H양 가족관계도 살짝 설명하거나, 둘 다 장남 장녀라면 공감대를 찾아가면 됩니다. 옹알이 수준의 대화라고 해도, 이걸 일부러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운이 좋아 둘이 사귀게 된다 하더라도, H양은 일방적으로 상대가 대화나 데이트를 모두 리드하길 바라고만 있을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하는 게 너무 어렵다면, 밥은 먹었냐, 잠은 잘 잤냐, 주말은 잘 보냈냐 등의 기초적인 문답부터 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가 대답을 하면, 관심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작은 아버지 일 도와드리러 회사에 갔다고 하면, 무슨 일인지를 살포시 물어봐도 되는 겁니다. 지금처럼 상대의 저 대답에
"착하시네요~ 무리하지 마시고 쉬엄쉬엄 하세요~ 주말에 뵐게요 ^^"
라고 마무리 해버리면 더는 대화가 이어지기 힘듭니다. 이거 제가 자체종결하지 말라고 지겹도록 이야기 했는데, 이전 매뉴얼들을 열심히 안 보셨나 봅니다. 대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매뉴얼이나 포스트로 다시 한 번 발행하도록 하곘습니다. 이후 상황은 다시 한 번 메일로 알려주시길!
2. 제 심남이도 관심 없는 것 같아요.
안녕 김양.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우리 중학교에서 나만 그 고등학교에 입학했거든. 때문에 걱정이 좀 되기도 했는데, 다행히 나랑 친했던 중학교 선생님들께서 다리를 놔주셨어. 중학교 선생님들인데 고등학교 선생님들과도 친분이 있더라고. 그래서 입학과 동시에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 음악 선생님, 국어 선생님 등이 날 찾아와선 얘기 많이 들었다며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토닥여 주셨지. 이렇게까지 날 신경 써주셨던 선생님들이 많은데 스승의 날에 한 번도 안 찾아간 난 참 나쁜 아이야. 그치?
현장에 있는 김양이 더 잘 알겠지만, 학교라는 곳이 좀 폐쇄적이잖아. 누가 누구와 무슨 일 있었다고 하면 금방 소문이 퍼지기도 하고, 지역 내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훗날 다른 곳에 갈 때 소문이 꼬리표처럼 달려서 가기도 하잖아.
저런 상황이라 상대는 조심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는 김양과 같은 교사긴 하지만, 지난해에 다른 선생님과 썸을 탔다는 소문이 돌았어. 그런데 만약 그런 그가 올해는 비상연락망에서 김양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김양에게 전화를 하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찝쩍이로 소문날 수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김양이 그를 대했던 태도를 봐봐.
상대 - 제가 작년에 XX선생님이랑 썸을 탄다는 소문이 돌아서….
김양 - 선생님이랑 XX선생님 잘 어울려요~ 잘 해보세요.
김양은 상대에게 저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몇 번 했어. 김양 입장에선 딱히 대꾸할 말도 없는데다 저렇게 말했을 때 그가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를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상대 입장에선 저게 선을 긋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반대로 김양이 저런 대답을 들었다고 해봐. 좌절감 때문에 밤에 잠도 잘 못 이룰걸?
또, 김양은 스스로에 대한 안티활동을 너무 많이 해.
"소개팅…. 제가 까였죠. 하하. 상대는 예쁜 여자 찾는 것 같더라고요. 하하."
"좋긴 뭐가 좋아요. 짜증만 나는데."
"전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봐요."
이상하게도 김양은 자꾸 부정적인 얘기를 한 뒤에, 다시 상대의 부정으로 확인 받아 안심하려 한단 말이야. 그런데 역시 이게, 김양의 의도와 달리 상대에겐 그냥 '매력 없음'으로 보일 수 있어. 연애와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자꾸 자폭을 하는 여자, 매력 없거든.
이런 와중에 김양이 하고 있는 질문을 봐봐.
1. 남자 선생님과 썸을 탔다고 소문 난 사람은, 나와 아는 사이임.
2. 그동안 난 관심 없는 척했음.
3. 연락처도 모름.
4. 그러나 남자선생님은 비상연락망에서 내 전화번호를 볼 수 있었음
5. 그런데도 연락이 없는 걸보니 관심이 없는 건가?
상대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아? 함께 지낼 때 김양은 계속 선을 그었는데, 그런 와중에 그가 다가갔다가 김양에게 퇴짜라도 맞으면 상황이 이상해지잖아. 또, 김양과 상대가 나눈 대화는 지극히 공적인 '자료 복사하기', '공구 빌리기' 정도가 전부야. 난 김양이, 상대 계약 기간이 끝나 학교를 나가야 할 때 연락처를 교환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해. 서로 화이팅 하며 지역 교육의 미래를 이끌어가 보자는 식으로 농담 삼아 던졌으면, 지금쯤 두 사람은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겠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연락처를 알아내서 요즘 근황을 물으며 다가가 봐. 그리고 전에 김양이 보답한다며 상대에게 맛있는 거 쏜다고 한 적 있으니, 그것도 쏘겠다는 얘기를 하고 말이야. 둘의 대화만 놓고 말하자면, 상대가 너무 진지한 까닭에 깨알 같은 드립을 할 줄 아는 김양의 센스가 빛이 바래는 느낌이긴 한데, 상대도 아직 안 친해서 점잖은 척 하는 것일 수 있으니 그의 본색을 끌어내 봐. 어쩌다 그가 드립을 한 번 쳤을 때 김양이 빵 터져주면, 그는 새로운 드립들을 하나 둘 꺼내놓을 테니까. 이후 상황은 나도 궁금하니, 혹 연애를 시작해 바쁘더라도 메일로 후기 보내주는 거 잊지 말고!
요즘 우리 집 구피가 새끼를 낳아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도, 집에 돌아와 치어 먹이인 브라인 쉬림프를 걸러 생먹이로 먹이는 걸 보면, 나도 참…. 산모들을 위한 특식으로 상추를 삶아 급여하기도 하고, 뭐 그러고 있다. 오늘 내일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구피가 두 마리 더 있는데, 녀석들까지 출산을 하면 더 바빠질 것 같다. 새로 또 브라인 쉬림프 끓이러 가야 하니, 오늘은 여기서 작별인사를 하자. 다들 편안한 화요일 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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