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라는 물고기는 한 달에 한 번 새끼를 낳는다. 난 EMB라는 구피를 네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네 마리였던 구피가 지금은 80마리로 늘어났다. 3일 내로 출산할 것 같은 구피 암컷이 한 마리 더 있는데, 녀석은 지난 번 47마리를 낳았으니, 이번엔 50마리 이상 낳을 것 같다. 그럼 130마리가 된다.
그 녀석들을 먹이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치어들은 입이 작은 까닭에 작은 먹이를 줘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브라인 쉬림프'라는 바다새우를 부화시켜 먹이는 게 제일 좋다고 해서 그걸 또 부화시키고 있다. 천일염을 사다가 물에 타 염도를 31%정도로 맞추고, 24시간 에어레이션을 해주면 물벼룩 같은 치비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거기엔 녀석들이 벗어 놓은 알껍질이 함께 있으니, 그걸 밀도 차이를 이용해서 걸러준 다음 새우들만 노방천으로 걸러낸다. 걸러낸 새우들을 수돗물로 세척하고, 바늘 없는 주사기로 뽑아낸 뒤 급여하고 있다. 한꺼번에 많이 해서 얼려두어도 되지만, 그러면 영양가가 떨어진다고 하기에 할 때마다 저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브라인 부화통만 네 개를 마련해 시간차를 두며 부화시키는 중이다.
구피와 함께 수초도 키우고 있는데, 수초어항에는 또 조명과 비료를 공급하고 있기에 금방 이끼가 낀다. 청소 한 다음 날 어항을 보면 녹색 이끼가 어항벽면을 뒤덮기 시작하는데, 삼 일에 한 번씩 그걸 매직블럭으로 다 닦아 내곤 다시 물갈이를 해준다. 남들이 웹에 올려놓은 어항을 보면 깨끗하기에 대체 어떻게 그렇게 관리 하냐고 몇 번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닥치고 청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에 내가 매뉴얼을 통해 힐링을 위한 수초어항을 마련해보길 권한 적 있는데, 그 말을 취소하고 싶다. 정신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치어를 보거나 수초가 자라는 거 보면 흐뭇하지 않냐고 물을지 모르겠는데, 흐뭇함이 힘듦을 넘어서지 못할 때가 많다. 이 글을 올리곤 또 어항 청소하러 가야하니, 바로 출발해 보자.
1. 뒷바라지 하면 남자가 떠나고 마는 트라우마?
서로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연애는 바람직하다. 그런데 H양의 연애는, H양은 이미 완생이고 상대만 아직 미생인 듯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자리를 잡은 H양이, '취준생'인 상대를 만나 이해하고, 배려하고, 뒷바라지 해가며 사귀는 듯한 느낌이다.
"저는 남친의 상황을 아니까 선물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말하고, 만나도 데이트 비용은 거의 다 제가 부담하고, 또 남친이 밥 산다고 해도 제가 진짜 먹고 싶은 것보단 남친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거 말했는데…. 이런 제 배려들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나 싶기도 해요."
내 지인 중 하나는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용돈을 받는데, 월 200만 원의 용돈도 부족하다고 투정을 한다. 부모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나 밖에 나가서 대화를 할 때 직업 얘기가 나오면 할 말이 없다는 것, 그리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저걸로 또 자신이 사고 싶은 비싼 물건은 지를 수가 없다는 얘기를 한다. 자신이 번 돈을 모아 지르는 거면 눈치 안 보고 지르겠지만, 용돈을 받는 상황인 만큼 또 눈치를 봐야 하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말한다.
지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렇듯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 저 상황은 누가 봐도 지인 몫의 책임을 지인 부모님이 대신 지고 계신 건데, 지인의 입장에선 또 나름의 불만과 고충이 생기는 것이다. H양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H양은 저게 배려이며 남친의 상황을 고려해 당장은 H양이 부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만, 남친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냥 그게 당연한 것인 양 굳어질 수 있으며, H양이 다 알아서 하니 그건 H양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H양의 남친은 준비하던 시험을 접고 취직을 했는데, 취업 후 월급을 받았을 때 어땠는가? 데이트를 할 때 남이 이제 좀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은 차이만 있을 뿐, 나머지는 친구들이랑 만나서 노는데 쓰거나 자신의 가족을 먼저 챙기지 않는가? 그에게 H양과의 연애는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계속 그래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H양은 현재 자신이 조강지처 노릇을 하면 훗날 남친이 성공해 보상해 줄 거라 기대하고 있을 수 있는데, 남친은 H양이 부담하는 대신 자신이 '을'의 입장을 담당하는 것으로 지금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라 여길 수 있다. 그러니 '일방적인 이해와 배려'는 당장 그만두길 권한다.
2. 결혼 얘기가 없는 이유와 멋대로인 결정.
남친 입장에서 보자면, 1~2년 내로 결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취직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결혼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탄탄한 직업이 있으며, 모아 놓은 돈도 있고,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한다고 하면 집에서 지원 받는 것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H양과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내 이런 얘기에 H양은
"그럼 그렇다고 말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시간이 좀 걸리는 건 저도 이해할 수 있어요. 1~2년 내로 안 될 것 같으면 언제까지로 계획을 세워 어떻게 하자, 뭐 그렇게 말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불만인 건, 그런 얘기가 아예 없다는 거예요. 다음 번 월급 타면 커플티 사자, 뭐 그런 얘기만 하거든요. 제가 말을 꺼내도 일단 돈을 좀 모아야 된다는 얘기만 하고요."
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다 그렇게 바람직한 태도만 보인다면 내가 이렇게 매뉴얼을 발행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렇다 할 말이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결혼에 대한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 있고, H양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그러는 것일 수 있으며, 당장 여건이 안 되는 까닭에 말을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일 수 있고, 지금 딱 정해버리면 그 계획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 같은 기분에 말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이전까지 그는 누굴 만나도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고 하는데, 그런 태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H양이 결혼 얘기를 하니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저런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얘기가 안 나왔으면 역시나 비슷한 생각으로 계속 연애를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남친이 H양과의 연애 중 하는 행동을 봐도 결혼할 생각이 큰 것 같진 않다. 그는 연애 이외의 삶을 H양에게 말하지도 않은 채 살고 있는 중이고, H양과 나눴던 얘기와 달리 시험을 포기하고 취직을 할 때에도
"그 결정은 내 결단을 필요로 하는 거였다. 너와 상의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 것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글쎄 난, 이렇게 '너 따로, 나 따로'일 때가 빈번한 관계라면, 식을 올린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H양은 그가 결혼하고 나면 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연애 중 일방적인 통보를 하던 남자는 결혼 후에도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친구들과의 약속과 H양과의 약속이 겹치면 친구들이 아닌 H양에게 양해를 구하며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던데, 이런 상황이 결혼 후에도 벌어진다면 그땐 H양이 어쩔 생각인지 난 묻고 싶다.
3. 결혼은 꼭 할 거예요. 해결책만 주세요.
H양이 결혼해도 좋을지 아닐지를 묻는 게 아니라는 걸 밝혔음에도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건, 그만큼 이 관계가 분명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H양은
"저는 한 번도 오빠의 경제적인 부분을 걱정한 적 없습니다. 지금 오빠가 가진 게 없어도, 오빠의 성실함만 있다면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라고 말하는데, 난 솔직히 그것부터가 걱정이 된다. 그리고
"요즘은 막연한 걱정들이 많아집니다. 만약 내년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집은 어떻게 할지, 당장 버는 돈도 얼마밖에 저금을 못 할 텐데 그런 걸로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아무것도 아닌 속 좁은 일들로 고민하게 됩니다."
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저게 왜 아무것도 아니며 속 좁은 일들인지 나는 되묻고 싶다. 저건 창업하겠다는 의지만 강렬할 뿐, 창업 후 뭘 얼마에 팔 것인지, 어떤 마케팅 전략을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전무하다는 얘기 아닌가. H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난
"남친을 믿고 응원하는 건 좋아. 그런데 그저 남친이 미래에 해줄 것만을 막연히 기대하며 결혼하는 건, 도박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잊지 마."
라고 말해줬을 것 같다.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실적인 생각을 해봐야 한다. 통장에 천만 원도 없는데 결혼을 한다는 건 앞으로 가시밭길을 함께 걷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성실함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낳아야 한다. 아무리 성실해도 계획이 없고 뭔가를 이뤄가지 않는다면, 그 성실함은 그냥 '가능성'의 형태로만 계속 남아 있을 뿐이다. 가능성 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결혼해서도 그냥 계속 가능성만 있을 뿐이라면 그땐 난감하지 않겠는가? 올 한 해 그가 자신의 성실함을 활용해 뭘 얼마나 이뤄가는지도 보길 바란다.
H양이 남친을 대하는 방식 역시 잘못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현재 H양은, 마치 극성 엄마가 아이에게 방학 동안 호텔방을 잡아주곤, 거기서 나오지 못하게 한 채 과외 선생을 붙여 공부만 시키듯 하고 있다. 그 엄마 입장에선
"의식주 전부 해결해주고 사달라는 것도 다 사줬는데, 왜 거기서 공부하다는 게 답답하다는 것인가? 비싼 돈 주고 최고의 선생들만 골라서 과외까지 시켜줬는데, 그래도 불만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아이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면, 그건 아이에게 수감생활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그렇게 받은 것들을 '좋은 성적'으로 갚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호텔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H양은 남친에게, 고시생이라는 걸 자신이 다 이해하고 배려해 줄 테니 취직 말고 공부를 더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는 동안 데이트비용도 전부 H양이 부담했으며, H양의 생일에 그가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채 밥상만 차려줬지만 그것에도 만족했다.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는 그가 분명 챙겨줄 거라 기대하면서.
난 저런 태도가, 둘 모두에게 부담과 서운함만 증폭시킬 거라 생각한다. 남친은 남친대로 계속 뭔갈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자신이 받는 입장이니 싫어도 H양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H양은 자신이 다 이해하며 뒷바라지 하는 중인데 그가 이쪽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당황하거나 화가 날 수 있고, 상황이 나아지면 그가 잘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그 계속 H양이 이해하고 뒷바라지 하는 형태로 굳어지면 절망할 수 있다.
그가 '나 취직해서 월급타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라고 했던 것들이, 몇 번의 월급을 탔지만 아직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난 이걸,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과거에 형성된 관계가 계속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때문에 난 둘 사이의 문제도 심각하고 둘이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도 심각하며, H양이 좀 덜 잘해주거나 단순히 위기감만 심어준다고 해서 해결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이 짧은 시간을 만난 건 아니지만, H양이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일방적으로 기다려온 시간을 빼면 또 길게 만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H양이, 결혼이 내년 가을이냐 겨울이냐를 고민하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좀 더 만나보며 생각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지금 H양이 가지고 있는 건, 상대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는 막연히 긍정적인 믿음에 가까우니 말이다.
가진 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 둘이 힘을 합해 이뤄가겠다고 한다면 난 말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데 그냥 상대는 성실하니 나중에 잘 되겠지 하며 일단 한쪽에서 거의 다 부담하고, 결혼 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계획 없이 그저 식을 올리는 게 내년 가을이냐 겨울이냐 하고 있는 거라면, 난 이게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제가 불만을 말하거나 화를 내면, 남친은 웃으면서 애교로 넘어가고…."
오늘 그렇게 넘기면 내일도 똑같고, 내일 그렇게 넘기면 모레도 똑같다. 올해 그렇게 넘기면 내년도 똑같을 것이고 말이다. 결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9박 10일 해외여행 갈 때에도 지금보다 세 배는 더 집중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다. 결혼은 반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며 떠나는 여행이니, 지금처럼 대충 넘기며 유예만 하지 말고 확실히 정하길 권한다. 둘이 앞으로 1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정하고 1년 뒤 그 결과를 보면, 남은 반평생이 어떨지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결혼에 대한 조급함은 내려두고, 그것부터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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