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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신혼집까지 다 마련해 놓고 파혼, 뭐가 문제였을까?

by 무한 2015. 11. 23.

결국은 이 사연을 다루게 되네요. 사실 B씨가 다시 메일을 주시기 전까지 저는 긴가민가 하는 부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다시 주신 메일로 인해 확인하게 된 부분도 있으니, 그냥 매뉴얼로 발행하도록 할게요. B씨는 제가 저장해 둔 글을 그냥 줄 수 없냐고 물어보셨는데, 예전에 비슷한 상황일 때 몇 번 그런 적 있거든요. 그랬더니 그 후에는 그게 당연한 듯 다시 요구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렵다고 대답하면, 또 서로 둘 다 감정 상하는 일로 이어지곤 하니…, 그냥 매뉴얼로 적도록 할게요.

 

B씨의 사연을 세 번이나 고쳐 쓰다가 결국 접어두고 만 게 왜인지 다시 보니, 제가 계속 상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웠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B씨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시작해 볼게요. 짧게 쓸 수 없는 매뉴얼이니, 길어져도 조금 이해해 주세요.

 

 

1. 나는 떳떳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

 

B씨는 사연에

 

"제게 실재하는 여자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라는 문장을 세 번쯤인가 적으셨는데, 실재하는 여자문제가 없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상대가 B씨의 짐들에서 '과거 여자친구의 흔적'을 발견한 뒤 큰 갈등이 생긴 까닭에 B씨가 저 얘기를 했을 순 있어요. 그런데 상대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건 '여자문제가 실재 하는가'라기 보다는,

 

'왜 구여친의 흔적을 아직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한 번 갈등이 생긴 후에도 왜 전부 없애지 않았는가?'

 

라는 거거든요. B씨의 입장에서는 그게 그냥 별 생각 없이 놔두고 있다 보니 거기 있게 된 거고, 이후에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에 끼워 있는 흔적들을 상대가 발견한 거라 억울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결혼 후 같이 살 집까지 다 계약한 상태에서 그런 흔적들을 발견하는 게 충격과 공포일 수 있거든요.

 

나에게 아무렇지 않다고 해서 상대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에요. 설령 그것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해도, 상대가 그것을 불안해하거나 그것 때문에 걱정을 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증명할 필요가 있어요.

 

"나중에는 제가 예전 폰을 패턴으로 잠가놓고 간직하고 있는 걸, 거기에 구여친과의 어떤 추억이 있어서 그러는 걸로 오해까지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열어달라고 했으면 저는 그냥 열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는 오해를 쌓고 있었더라고요."

 

상대는 자라(응?)를 봤잖아요. 그러니 솥뚜껑 보고도 덜컹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게다가 오비이락으로 '뭐뭐누나'라는 이름의 카톡까지 B씨에게 오니, 상대가 의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해요. 그게 B씨의 친척누나라는 걸 상대는 모르는 상황에서, 그간 발견된 구여친의 흔적들로 인해 심란해 하고 있을 때 '뭐뭐누나'라는 이름으로 톡이 와버리니, 더 깊게 오해를 해버리고 마는 거죠.

 

물론 B씨는 상대가 그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화내거나 티를 내지 않았으니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오해를 푸는 게 맞거든요. 나는 떳떳하니 됐다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얘기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B씨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지울 수가 없어요. B씨는 가끔 폰 충전해서 안에 있는 사진이랑 내용 확인한다고 했는데, 뭘 확인하는 건가요? 그리고 그거 컴퓨터로 옮겨놓고 폰을 없앨 수도 있는 거잖아요. 패턴 걸어서 잠가둔 채 가끔씩 혼자만 들어가 볼 게 아니라 말예요. 또, 1차로 구여친의 흔적이 발견된 이후 B씨는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다 버렸다고 했는데, 왜 다 안 버리고 다시 간직하고 있다가 2차 발견까지 만들고 만 거예요? 남이 보기엔 이렇다는 얘기에요. B씨가 한 점 부끄러움이 있든 없든, 이렇게 의심하게 될 수 있다고요. 

 

또, 이후 상대가 그걸 가지고 이야기 했을 때, B씨는 어땠나요.

 

"그때라도 보여 달랬으면 제가 보여줬을 거예요. 그런데 그땐 말도 안 했잖아요. 왜 그래놓고 혼자 오해해요? 그리고 제가 지인들이랑도 술 먹은 다음에 뭘 했나요? 술만 마신 건데 뭐가 문제죠?"

 

라는 식으로 일단 '자기방어'에만 더 열을 올렸잖아요. 저는 저 부분이 좀 안타까웠어요. 갈등이 생기기 직전까지 B씨는 다정하고 자상한 듯한 사람인데, 대립하게 되면 표정을 싹 굳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2. 조건부 애정?

 

제가 위에서 한 이야기에 대해, B씨도 할 말 많다는 거 알아요. B씨가

 

"할 만큼 했는데 그래도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저런 태도를 보이게 된 겁니다."

 

라고 말하면 저도 더는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연인이라면 폰 붙잡고 카톡으로 말싸움 하다가 송곳니를 드러내선 안 되는 거거든요. 그것보다는 분명 더 크고 여유가 있어야 해요. 상대가 패닉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 하면, 일단 진정시키고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카톡으로 말고, 만나서 손이라도 잡고 '그런 게 아님'에 대해 충분히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역시 제가 이렇게 말하면 B씨는

 

"왜 저만 그래야 하나요? 상대가 패닉에 빠질 때마다 왜 저만 상대를 진정시켜야 하죠?"

 

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손익을 따지거나 비지니스적인 사고로만 접근하지 말고 '동반자'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세요. 그게 노력이에요. 매번 만나러 내가 차 몰고 내려가고 돈 더 많이 쓰면서도 아무 말 안 하는 게 노력이 아니라, 상대가 실수를 해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상대의 기분까지를 돌아보려는 게 노력인 거라고요.

 

전 사실 B씨가 잘못한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어요. 따지자면 B씨보단 상대에게 문제가 훨씬 더 많았거든요. B씨에겐 저런 내색을 전혀 안 한 채 자신의 부모님에게만 자신의 의심을 털어 놓고 있었다든지 하는 문제요. 그런데 B씨가 제게 다시 보낸 메일을 보니, 파혼 후 취소 수수료들은 반반 물고 어떤 건 여자 쪽이 알아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역시 비지니스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B씨의 말이 틀린 건 없어요. 그런데 기회가 된다면 상대와 다시 잘 해 볼 의향이 있는 와중에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비지니스적으로….'라는 생각이 보이는 것 같아서 좀 그랬거든요. 허용된 조건을 충족할 때만 베풀어지는 애정이라고 할까요.

 

헤어진 지금, 그래도 상대가 행복하게 살길 바라세요? 아니면 파혼이 정말 아쉽고 아직 상대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결혼할 것 아니니 상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세요? 이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3. 현실에서의 문제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B씨가 어떤 이성과 몇 달 전부터 알게 되었어요. B씨는 그녀와 실제로 만나서 어울리는 시간이 거의 없고, 대부분 메일로만 대화를 주고받아요. 서로 존대하며 마치 펜팔하듯이요. 물론 오랫동안 메일을 주고받은 까닭에 친해지긴 했어요. 서로가 서로를 이상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며 결혼까지 약속했죠. 

 

그럴 경우,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8할 이상이 긍정적인 이야기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관계가 현실로 옮겨왔을 때에도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평생 메일로만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일 년에 한두 번 만난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현실에서 가깝게 지내며 여러 일들을 겪게 될 테니 말이에요.

 

메일로는

 

"오늘 참 저를 힘들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혜경씨를 생각하니 힘이 나네요. 우리 결혼해서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외부의 일들로 지쳤을 때에도, 집에 돌아와 서로의 얼굴을 보면 다시 힘이 나고 행복해 지는 그런 삶이요.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런…."

 

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저런 얘기에 상대 역시

 

"그래요. 저도 오늘 집에서 부모님과의 마찰이 좀 있었어요. 제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저를 통제하시려는 부모님 때문에, 아깐 정말 극단적으로 집을 나가 독립하겠다고 말하려고까지 생각했거든요. 제가 어린 아이가 아닌데도 이것저것 참견하시고 지적하시는 것 때문에 숨이 막혔어요. 하지만 이것 역시 잠깐이고, 이제 곧 우리가 함께 살 테니, 그때까지 참고 견뎌야죠. 이렇게 제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게 현실로 오게 되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예요. 직접 겪지 않고 상대가 하는 얘기들만으로 상상할 땐 몰랐던 것들이, 현실에선 고개를 들 수가 있어요. 위에서 여자는 부모님이 '참견하고 지적하는 것' 때문에 집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죠? 그것처럼, 나중엔 B씨와 살다가 B씨의 참견과 지적 때문에 집을 나가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단 얘기에요. B씨 역시 'B씨를 힘들게 만드는 많은 일들'이라는 게, 나중엔 '그녀'가 될 수 있는 거고요.

 

이렇게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B씨와 상대의 연애가 '판타지'였다고 생각해요. 서로 첫인상에서 가진 이미지와 이후 펜팔하듯 나눈 대화를 제외하곤 둘의 기반이 없어요. 그녀와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이 뭔지 B씨는 아세요? 그녀의 학창시절 별명은? 아니면 그녀가 크리스마스에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그녀가 콘서트에 가고 싶어 할 만큼 좋아했던 가수는? 그녀가 좋아하는 색깔은? 모르잖아요. 상대도 B씨에 대해서 모르고요.

 

둘은 함께 할 미래에 대한 행복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또 현재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긴 했어요. 그런데 알맹이가 없었던 거예요. 주례사 읽듯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맹목적으로 호의를 보이긴 했지만,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현실에서 만나 겪을수록

 

'이 사람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걸 깨닫는 일이 많아지는 거잖아요. 비유하자면, 웹에 있는 펜션 보고 정말 예뻐서 예약하고 기대에 벅차있었는데, 가보니 바로 옆에 축사가 있어서 소똥 냄새가 진동을 하고, 모기와 벌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으며, 수압이 약해서 물이 졸졸 나오기만 하는 거랑 비슷한 거예요. 게시판에 단 글을 보면 정말 이보다 더 친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펜션주인은, 막상 만나보니 저녁에 제공된다던 바베큐 시간에 김치 값 따로, 숯 값 따로 받으려 드는 사람일 수 있는 거고요.

 

둘 중 한 사람이 저런다고 해서, 나머지 한 사람이 그저 장단만 맞추고 있어선 안 되는 거예요. 현실에 발 딛고 생각하게 해야죠. 저렇게 마음에 품고 부드럽고 포근한 말들만 건네는 게 당장 정서적 행복감을 줄 순 있지만, 훗날 '현실화'에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어요. 저는 B씨가 그 환상을 깨고 현실화에 성공하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B씨는 지금까지도 상대에 대한 환상을 조금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상대는 B씨에 대한 환상이 깨져서 다른 환상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것 같고요. 그러니 B씨도 이제 그만, 상대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으시길 권할게요.

 

 

4. 지겹도록 얘기한 두 가지.

 

제가 지겹도록 얘기했잖아요. 결혼하기 전 꼭 체크해야 하는 두 가지.

 

- 상대는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했는가?

 

저걸 꼭 봐야 하는 이유는, 우선 '정신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가장 흔하게

 

'나 VS 상대, 상대 부모님'

 

의 구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에요. 상대랑 오늘 밤새 이야기를 해서 결론을 구해도, 상대가 집에 돌아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다음 날 다시 다른 사람으로 변해 '부모님 의견'을 들고 찾아올 수 있거든요. 앞으로 우리가 2년간은 이러이러하게 살아서 어느 정도 준비하고 그 다음으로는 이러이러한 삶을 살자, 라고 침이 마르도록 계획을 세워봐야, 다음 날 상대가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일하는 것에 반대하셔."

 

라고 말하면 방법이 없는 거예요. B씨와 결혼을 약속했던 상대가 딱 저런 모습이었잖아요. 나쁘게 말하자면 그녀는 그냥 부모님의 대변인이었던 거예요. 대변인이랑 아무리 많은 대화를 나눠봐야, 결정권자가 그 결정을 뒤엎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잖아요. 상대를 보세요. 앞으로 함께 살 B씨와 무언가를 의논하기보다, B씨는 그냥 '이방인'으로 두고 자신의 부모님과만 대화해서 결정을 내리잖아요. B씨가 노력을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답답한 상황만 만들어지고 말았던 건, 상대의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라고 적어둘게요.

 

그 다음으로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엔, 상대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고 해도 아직 정서적으로는 미성년자와 다를 바 없는 경우가 많아요. 꼬꼬마시절 우리가 부모님의 경제력에 의존해서 살 때, 부모님 말씀만 잘 들으면 먹고 사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잖아요. 그때는 우리가 사고를 쳐도 부모님이 알아서 뒤처리를 해주셨고, 뭔가를 하다가 때려치워도 부모님이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보호를 해줬잖아요. 어디를 간다고 하면 부모님이 태워다 주시기도 했고, 또 나가서 돈을 버는 것이나 집안 일 역시 다른 가족들이 알아서 해주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됐고요.

 

B씨와 상대의 경우를 보세요. 상대는 결혼에 대해서도 '부모님이 알아서 준비해주시는 것' 쯤으로 생각하고 있잖아요. 결혼을, 엄마가 내 손 붙잡고 학원에 가서 등록해 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니까요. 게다가 파혼이 결정되었을 때 상대는 어땠어요? 부모님 뒤로 숨죠? B씨가 자신의 부모님과 만나 해결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죠? 본인은 그저 앞으로 좀 더 자신을 먼저 돌보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식의 이야기만 하면서 말예요.

 

그 분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그냥 '아이'인 거예요. 이쪽이 상대의 인생까지 대신 살아 줄 정도의 정신력과 경제력이 있으면 같이 사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겠지만, 그게 아니면 대체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억지로 하루하루 살아나가게 될 수 있어요.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을 말해보자면, 어른들이 봤을 때 결혼상대로 참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런 경우들이 종종 있어요. 밖에서 봤을 땐 부모님의 통제 하에서 말 잘 들으며 사는 게 '화목한 가정'으로 보일 수 있고, 또 경제적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며 교양을 쌓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저 여유로워 보일 수 있거든요. 사회적인 조건을 보더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부모님들이 자식을 늦게까지 계속 책임지고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조건도 좋아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그런 상대는 부모님의 꼭두각시이며, 부모님의 보호와 통제 안에서 여유롭게 꿈만 꾸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머리가 다 굵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순종하긴 힘드니 때때로 마찰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결국 저 상황을 이어가곤 해요. 성별 구분이 없이, 그냥 몸만 어른이 된 아이일 수 있다고요. 그 와중에 결혼 역시 부모님께 기대서 하려고 하니 그 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되는 수밖에 없는 거고, 결혼해서도

 

'결혼 전엔 부모님이 알아서 다 해주셨는데 결혼 후엔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결혼하기 전이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자유도 없고 기쁨도 없다.'

 

라고 생각하며 늘 부정적인 에너지만 쏟아내는 경우도 있어요. '부모님의 보호'를 받던 것에서 '상대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환승하려 한 건데,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다시 부모님의 뒤로 숨는 경우도 있고요.

 

상대가 B씨에게 기대한 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같은 거였어요. B씨는 그저 그 상황에 들떠 그런 걸 주겠노라고 약속했지만, 만나다 보니 상대는 B씨가 자신의 부모님과 같을 순 없다는 걸 하나 둘 발견하게 된 거죠. 부모님은 언제나 내리사랑으로 그녀 자신을 이해해주고 달래줬는데, B씨는 B씨 자신도 힘들다고 그녀에게 따지듯 말하기도 했잖아요. 그러니 그녀는 B씨에게로의 환승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고 만 거죠.

 

 

누굴 폄하거나 나쁘게 말하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힐게요.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건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거든요. 결혼한 커플 중에도 저런 일들 때문에 계속해서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들이 있는데, 저걸 모른 채 '상대가 이상한 사람이라서'라고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위와 같은 상황에서 결혼까지 이어간 커플들을 보면, 나중엔 결국 상대 부모님을 찾아가서 담판 지으려 하거나, 상대를 개조한답시고 정신적, 경제적으로 괴롭히는 사례들이 많아요. 상대의 집안과 원수처럼 지내며, 둘 다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서로 괴롭히며 사는 거예요. 결혼해서 그런 반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 아닐까요?

 

파혼 후엔, 이별로 인한 마음의 고통 외에도 실질적인 고통이 찾아올 거예요. 예약한 예식장에서 전화가 오면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상대한테 전화하라고 소리질러버리고 싶기도 하고, 반지 다 됐으니 찾아가라는 전화 오면 확인사살 당하는 것 같아서 더 빡치기도 하죠. 그 외에 신혼여행 가려고 구입했던 항공권 취소 문제부터 집, 차, 인테리어, 가구 등 참 다양한 문제로 전화가 와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사람 뺨을 때리죠. 부모님, 친척, 지인, 친구 얼굴 보는 것도 그냥 다 불편하고, 저 사진과 앨범은 다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동안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거예요.

 

결혼식 준비할 때 미소로 B씨를 맞아주었던 사람들에게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동네 분식집에서도 순대랑 떡볶이랑 튀김 주문했다가 순대 취소한다고 하면 주인 얼굴 굳어요. 그들이 미소를 보이는 건 B씨가 손님일 때뿐이니까, 그것에 실망하며 속상해하지 마시고 그냥 툭툭 털어내세요. 상대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에요. 파혼한 이후에 B서방, B서방 하는 상대 부모님 없거든요. 취소 수수료 얘기 꺼내면 멱살부터 잡으려 들 수 있으니까, 인간적인 기대를 앞세우진 마시고 이럴 때야말로 철저히 비지니스적으로 나가시든가, 아니면 그냥 지갑 한 번 잃어버린 셈 치는 게 나을 거예요.

 

그래도 또 꽃 피고 새들 노래하는 봄은 다시 올 거예요. 그러니 지금처럼 너무 처절한 심정으로, 폐허가 된 곳에 오래 앉아계시진 마세요. 길이 아닌 곳에서 돌아 나온 거니까, 미련두지 말고 다시 다른 길로 걸어가 보자고요. 가다가 잘 가고 있는 게 맞는지 궁금하면 언제든 또 사연 주시고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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